흰 꽃
강복주
마음에
흰 꽃을 보내었습니다
뿌리없고
씨앗있는
흰 꽃을 보내었습니다
겨우내
흰 서리를 맞은
어느 구석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씨앗은
게슴츠레 눈을 뜨고
눈이 녹아
지저분해지기 전,
떠나려 합니다
향은 불붙어
흰 꽃은 타 들어 갑니다
수 십 송이 놓았던,
이젠
예의 없이
재만 남은,
또 한 송이,
겨우내 나는
꽃을 놓습니다
흰 꽃을
용기
용기
강복주
겪는 것만큼
큰 교훈은 없다지만
상처는 겪을 수록
아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겪은 후
반드시 피해있는 시간을 가져야
반복하지 않지만,
때로 드는 의문,
반드시 겪었어야만 했을까?
진정된 감정들 속에서
지금의 나는
겪지 않았다면 없었을 것을 알지만
그 것은
교훈이었을까
삶에는 이유가 있을까,
그러나 이유를 믿지 않는다면
살 수 없기에
어둠에 모여드는 이들
이유를 찾기 위해,
다만
이유를 만들어내지는 않을
용기를 가지자
악이 되지 않을
용기를 가지자
단편
단편
강복주
약한 자를 위한 장검이 없듯이
약자는 단편을 쥔다
강렬한 소식은
왜 진실이 아닐까
어떻게든 끼워맞추려는
코끼리 다리 만지기
현란한 솜씨도
효과가 없다
10년, 20년이 모여
조각들이 완성되어 간다
장편이 되지는 않지만
최선이었다면
혹은 차선이었다면
그걸로 됐다
바둑판
바둑판
강복주
흑백의 세상이 있었다
검은 돌과
흰 돌로
도끼 썩는 시간이 지나가는 그 속
보았는가
검은 돌
흰 돌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지켜온
19줄과 19줄
그리고 황토색 들판
흑백으로 싸우는 와중에도
그 둘을 공평하게 떠받친다
지하철
지하철
강복주
아무도 가지 않은
지하를 뚫는
사람들
빠르고
적막한 길
이루어지기 전에는
여럿이 외로웠던
차가운 바람
빠르게 오고가는
거미줄처럼
지하철이 오갈 때
사람들도 오가고
규칙이 생기고
여전히 빠르고
차가운 공기는 여전하지만
지하철로 어딘가를 왔다고
평범하게 말하는
일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