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웜도 나에게 섭섭해하고 이바를 다룰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하는데, 너도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잖아.”
-흐흠 네가 그 말을 하니, 나도 네게 섭섭한 게 아주아주, 아니 매우매우 많았던 것같은 느낌이 드는군!
페리온스는 입을 삐죽이며 큰 눈망울로 이바를 바라보았다.
이바도 뭔가 자신이 모르는 어떤 것으로 인해 기분이 상해서 평소에 자신을 상대도 안하는 것일까?
“이바, 왜 타모르를 공격했어?”
-한심한 질문이군! 그건 바로! 너를 지켜야하기 때문이지!
“난 늑대인간이었는데…….”
-흥, 늑대인간은 안 다치고 안 죽냐?
“고마워. 이바.”
-흥, 흥.
“왜 내가 부르면 안 나오는 거야?”
-너도 나이 들어봐라! 나이 들면 다아~ 알게 돼!
“무슨 의미야?”
-제이의 후손이 대체 몇 명이 되는 지 알고 있냐? 그리고 몇 대인지 알고 있느냐고? 그 것뿐이면 다행이게! 내가 아무리 열심히 지켜줘도 죽어서 다시 하늘로 돌아간 영혼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고 있느냐고! 나는 항상 열심히 했었지! 하지만 나는 바뀌지 않고,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바뀌고 있지! 그 것도 지금처럼 마법이 봉인되는 것처럼 안 좋은 쪽으로 모든 것들이 흘러가게 되기도 해! 나는 원래 이렇지 않았지. 하지만 다 부질 없는 것이야! 흥.
“나는 아직 열 여섯이라, 잘 모르겠지만, 나이 들면 다 좋아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나 보네.”
-너도 500살 쯤 먹으면 알 수 있겠지.
“어렵다. 영어보다 더 어려워. 어쨌든 가자. 나와줘서 고마워, 이바.”
페리온스는 일어섰다. 요정들이 이바의 주변을 날아다니며 구경을 나와있었다. 그 옆으로는 반딧불이들이 조명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건, 웜에게 선물이 될 수 있겠다. 그 녀석은 밤에도 책을 읽으니까.”
문득 웜이 생각이 났다.
페리온스는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mesh(메쉬)”
그물망이 구현화되어 나타났다.
“메쉬는 그물망이라는 단어인데, 어렵게 찾았어. 오늘 기억이 나서 다행이다.”
그물망 안에 반딧불이를 7마리 잡아넣고는 페리온스는 천막으로 내려갔다. 이미 일행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페리온스는 웜의 머리맡에 반딧불이가 든 촘촘한 그물망은 내려놓았다. 자신도 이제는 자야겠다.
다음 날, 페리온스는 어수선한 천막 안 분위기에 잠이 깼다. 어니스트가 침구를 개고 있었다.
웜은 반딧불이 상자를 보며 잠이 덜 깬 페리온스에게 물었다.
“이게 뭐야? 네가 가져온 거야?”
“밤에 보면 예쁜데, 선물이야. 밤에 불 밝히는데 쓰라고. 너 책 많이 읽잖아. 필요할 것같아서.”
웜은 울컥했다. 항상 자신이 마음을 쓰는 것에 비해서 페리온스는 무심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을 쓸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었던 것같다.
“어라, 웜 우는 거야?”
어니스트가 침구를 개다가 놀라서 웜을 보았다.
“아니예요! 우는 거 아니라고요!”
웜은 항의했지만 눈물방울이 밑으로 툭 떨어졌다.
“우는 거 아니야. 페리.”
웜은 우겼다. 페리온스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렸다.
“알았어. 오늘도 많이 걸어야하니까 형이랑 나는 나갈게.”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니스트는 당황해서 페리온스에게 속삭였다.
“그냥, 뭐. 체조나 하러 가요. 형.”
페리온스는 급히 천막 밖으로 나갔다. 어색해서 죽을 것 같았다.
몸을 풀고 천막을 내리는 것은 이제는 익숙했다. 천막은 접어서 알약에 집어넣었다. 알약은 뚜껑을 열면 천을 빨아당겼다. 굴첸의 도구들은 편리했고 저장하기는 쉬웠다. 내리막길은 걷기가 수월했다. 너무 빠르게 걷게 되어 정신은 없었지만 어느새 포우의 국경수비대의 초소가 보였다. 여섯 명의 보초가 창을 들고 서있었다. 국경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경비대는 쇠보호대 대신 가죽옷을 입고 있었다.
페리온스는 통행증을 꺼냈다. 르네백작이 준 통행증이었다. ‘통행을 부탁합니다.’라고 작은 글씨로 적혀있었고 종이면적의 거의 대부분은 르네백작의 사인으로 차있었다.
경비대원은 모자를 벗으며 허허 웃었다.
“메더스에서 온 녀석들이냐? 거긴 덥고 악어가 많다던데.”
“네. 포우라는 나라는 어떤 곳이죠?”
“사람들과 분위기는 좋은 곳이지. 거의 평지로 되어 있고. 그래선지 몬스터가 많이 나타나는데, 너희들은 운이 좋군. 몬스터가 없을 때가 없는데.”
우어어어어!
경비 초소의 말에 반박이라도 하듯 산에서 메아리가 울려퍼졌다.
늘어지게 서 있었던 여섯 명은 바로 대열을 갖추었다. 갈색의 제복이 나란히 정렬되었다.
“들어와! 얼른!”
그들은 일행을 나지막한 성곽 안으로 불러들였다.
우두두두 멀리서 무겁지만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들어도 몬스터의 거친 발소리였다. 페리온스일행은 분위기에 휩쓸려 경비대 안으로 들어갔다. 어니스트는 검집에 든 검을 들었다.
“전 검사입니다.”
“옆에 서게.”
국경수비대는 의외로 순순히 자리를 내어주었다.
“자넨 몬스터 뒤로 가서 따로 움직여! 우리는 진영을 갖추고 찌르겠다.”
포우의 수비대원들은 모두 품이 넓은 갈색옷에 찌르는 용도의 뾰족한 창을 들고 있었다.
어니스트는 슬라임을 베며 작심한 것이 있었는지 검을 들고 집중해서 평소와 다른 자세로 대기했다.
우두두두, 나무 세 대가 꺾이며 거대한 오우거가 나타났다. 그는 가슴을 두드리며 경비대로 달려갔다.
어니스트는 휙 허공에서 검을 휘둘렀다.
바람이 날렵하고 날카롭게 흘러 오우거의 팔에 내리꽂혔다. 오우거는 어니스트로 시선을 돌렸다.
“검기를 쓰는 법을 알게 되었지.”
“오오, 우리들 대장만이 쓸 수 있는 건데 보통내기가 아닌걸.”
수비대는 그렇게 자존심이 강한 건 아닌 것같았다. 호오, 하며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옵니다!”
오우거가 다시 경비대원으로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페리온스가 저도 모르게 외쳤다. 그러나 그렇게 되자, 수비대는 순간적으로 다함께 집중하는 날카로운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정확히 몸통과 심장을 향해 6개의 창이 내리꽂혔다. 그 것은 둘러싸서 찌르는 것보다 효과적이었다. 오우거는 더 이상 활기차게 움직이지 못하고 이내 쓰러졌다.
쓰러진 오우거는 부서지듯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 곳에 남아있는 것은 장갑같은 모양이었다.
“오우거의 장갑이다.”
수비대는 장갑을 달랑달랑 들고 페리온스일행에게 보여줬다. 어떻게 반응해야할 지 잘 알 수 없었던 일행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검사님, 선물이다.”
수비대는 그걸 어니스트에게 내밀었다. 그러고보니 수비대 전원은 오우거의 장갑을 끼고 있었다.
“역시, 포우사람들은 용병으로 강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니스트가 새삼 존경의 눈빛으로 말했다.
“뭐, 하하하. 시련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 몬스터가 평지로 떼로 몰려서 말이야.”
선량하고 단단하게 생긴 다른 수비대원이 제안을 했다.
“우리집이 여관을 하는데, 식사하고 가겠나?”
“좋아요!”
일행들이 들떠서 외쳤다. 부엌에서 제대로 된 요리를 먹어본지가 얼마나 된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교대할 때까지 좀 기다려줘. 조금이면 된다.”
해가 저물 즈음에 일행은 6팀 정도 앉을 수 있는 작은 여관의 1층에 앉아 포우의 요리를 맛보았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있고 생소한 것도 있었는데, 전갈튀김 같은 것은 생소했다. 대부분 평지라고 했지만 사막도 근처에 있는 모양이었다. 독침이 뽑힌 전갈이 휘어져 있었다.
“포우의 북쪽은 그래도 먹을 것도 있고 나은 편이야. 사막보다 산지가 차라리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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