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
강복주
쭉 짜면 길게 나오지만
매일 끊어 써야 해요
하루하루 일어나는 것처럼
하루하루 잘라 써야 해요
이가 반짝반짝
유리도 번쩍번쩍
남은 것도 조금이면 되는,
욕심 내서 짜도 되지만
많이 나와도
쓰이는 건 똑같대요
카메라
카메라
강복주
분명 같은 눈을 쥐어주었는데
보는 것은 다 다르다
색과 감이 다르다
우리 마음에 맺힌 상도
그러하리라
연습을 통해 아름답게 맺히기도
빛이 없어 흔들리기도
그리고
찰나의 동기를 놓치지 않고
저 지평선의 끝을 잡기도 하리라
주전자
주전자
강복주
뜨거운 생각은
입으로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빛나는 곡선은
부드러워 보여도
부서지지 않네
팔팔 끓인 물이 식으면
새롭게 따뜻해지고
뜨거운 것이 괴로워도
차갑기 위해 생겨난 것은 아니었기에
오늘도 김을 뿜는다
차디찬 몸을 덥혀
품은 것을 끓인다
김을 풀풀 흘리는 이유는
단지 품이 뜨겁다는 것을
감추지 못해서
별 보는 망원경
별 보는 망원경
강복주
저 높은 곳 가까이 가기 위해
바라보았네
무서울 정도로 빛나고 흩날리고 삼켜버리는
우주는 사람의 두 발을 들어 올려
그 곳에 있는 것은 진리인지 진실인지
진정한 매혹인지
망원경 아래에서도 뒤꿈치를 깡총 들어올렸네
둥둥 떠올라
한없이 높은 빛을 향해
다른 빛을 향해
이 곳에서도
교감할 수 있기에
저 웅장한
우주의 폭죽 속에서
마녀의 신발
마녀의 신발
강복주
우리는 저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
행동하지 않는 마녀의 신발
그 밑에 숨막힌 사람들은
마녀가 날아오를 때에도
여전히 서로의 목을 죄고 있네
마왕은 지그시 웃으며 따라가는
증오를 찬탄하고
자신을 찬탄하고
마왕과 마녀의 모자도 어느새
꼬여버렸네
무너지는 게 즐거워?
자신이 무너졌을 때만
무너지는 것을 아는
나약한 존재들
마왕과 마녀조차도
웃지 못했네
모자가 벗겨지고
신발은 모자가 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