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사드만 안에서 그런 날들이 올거고 이미 늦었는데 뭐. 도미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무리잖아.”
“으윽, 난 따라가기는 하겠지만 분명 경고했어. 용병단이 겪은 어둠의 60일에 대해 넌 몰라.”
어니스트는 투덜투덜대며 탁자에 앉았다. 그 때 여관의 문을 벌컥 열고 수비대장이 들어왔다. 저도 모르게 어니스트는 벌떡 일어섰다.
“왕세자님이 들어오신다. 데테르, 자네가 선봉장이 되어 1000명을 이끌고 왕실에 지원하러 가게.”
“알겠습니다.”
데테르는 갑작스러운 명령이었지만 불만없이 받아들였다.
“수비대장과 데테르 상사는 이번 일이 끝나면 모두 특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페리온스, 당신도 외부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벼슬을 내려주겠습니다. 대신 부탁이 있습니다.”
“뭐죠?”
페리온스는 왕세자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얼굴이 말끔해진 왕세자는 건강해보였다.
“외교단 역할을 해주세요. 사드만에게. 분쟁지역을 좀 내어주고 우리도 정비할 시간을 갖겠습니다. 휴전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그건…… 사드만의 왕과 접촉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저희가 신분증명을 해드리겠습니다. 포우의 증명서는 사드만에서도, 푸코에서도 쓰실 수가 있을 겁니다.”
전쟁 중인데 신분증을 쓸 수 있을까? 이 일은 부탁에 가까웠다. 왕세자는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수비대장도 옆에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페리온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페리온스는 자신의 목적이 아티마를 찾는 것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그래도 포우에는 정이 많이 들었고, 마법을 위해서라면……. 물론 아직까지 유니콘은 없지만.
“알겠습니다. 가는 길에 전달하고 가겠습니다.”
어니스트도 페리온스가 그럴 거라고는 예상을 했는지, 입을 삐죽이다가, 곧 집어넣고 목도를 휘둘렀다.
“긍정적인 마음! 강해지겠구만, 어니스트!”
페리온스는 어니스트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둠의 60일은 자신도 겪긴 했지만 용병대가 겪은 것은 또 차원이 다를 것이다. 60일 내내 비가 내렸고 집 안에 틀어박혀 몬스터 울음소리를 들었다. 자신이 겪은 어둠의 60일은 그게 다였다. 여관의 탁자에 둘러앉아 페리온스가 자세히 설명하자, 일행은 모두 수긍은 했다.
며칠 간은 계획을 세웠다. 일단 며칠 후, 데테르와 헤어져 페리온스 일행은 따로 움직이기로 했다. 전갈학교를 들러 도미 할아버지의 손자 학생을 찾은 뒤, 강을 넘어 사드만의 수도로 바로 향하기로 했다. 계획을 짜면서 원래도 비밀결사이긴 했지만, 일행들은 더더욱 비밀결사가 된 느낌을 받았다. 계획을 세우는 동안 페리온스는 틈틈히 수비대원들에게 창술을 배웠다. 요리 서고. 저리 서보고. 많이 휘둘러 보았다. 지금으로서는 잘 겨누는 방법만 터득해도 성공이었다.
이바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서운함이라는 건 이런 감정인 걸까?
장비와 준비에 대해서는 카일과 카르멘이 신경써주었다. 마법을 쓰기에는 이 인원을 다 챙겨가기는 커녕 한 두명도 거기까지 이동시킬 마나가 되지 못해서 페리온스는 아쉬웠지만 걸어서 전갈학교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번 일로 haste(헤이스트:신속) 마법을 배울 수가 있어서 뭉크, 뮤오린, 세느와 함께 일행의 발에 일일이 마법을 걸 수가 있었다. 투마는 발이 느려서 데리고 온 한 마리의 말에게 태우고 haste(헤이스트:신속)마법을 걸었다.
이윽고 일주일 정도 채비를 했을 때, 헤어질 시간이었다. 군사들이 정렬해 있고 정신이 없어보였지만, 따로 여행채비를 한 페리온스 일행을 데테르와 수비대장이 마중나왔다. 투마는 수비대장의 손을 꼭 잡고 이별의 눈물을 흘렸다. 페리온스는 멋쩍게 데테르를 보았다. 고맙고 아쉬웠지만, 투마처럼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또 볼 날이 있을지 모르겠군…….”
그 말을 듣자, 그제야 페리온스는 울컥했다.
“잘 말하고 올게요.”
“부탁한다.”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행이 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많이 배웠어요. 갈게요.”
간신히 발을 떼고 페리온스는 뒤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투마도 곧 뒤이어 왔다. 나머지 일행들도 다 각자 여기서 친해진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후인 것같다.
일행은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들 머물렀던 시간을 추억하는지 말이 별로 없었다. 며칠 동안 하염없이 퍽퍽한 땅을 밟던 일행은 이틀을 꼬박 걸었을까, 장관을 마주했다.
뿌리가 거꾸로 자란 듯한 통통하고 거대한 나무가 신전의 기둥처럼 길게 늘어서 있었다.
“바오밥 나무야.”
웜이 말했다.
“그렇담…… 여기가 전갈학교겠어.”
그리 크지 않은 학교가 황무지 안에 덩그러니 서있었다. 황무지에 서있는데다가, 전쟁으로 인해 사람이 없어서, 학교는 더 휑하니 비어 보였다.
“도미 할아버지의 손자를 찾을 수 있을까?”
“주소는 있는데, 이름은 바오고.”
어니스트가 받은 쪽지를 몇 번이나 뒤집어 봤지만 뾰족히 좋은 수가 생각나지 않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게 주소를 알았다고 해도 물어볼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볼까?”
페리온스가 말했다. 일행은 haste(헤이스트:신속)마법을 풀고 천천히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바오밥나무의 열매가 떨어져 있었다.
입구부터 바로 책상과 의자가 놓여진 교실이었다. 칠판은 사람이 가로누워 다섯명은 들어갈 정도로 크고 길었다. 그러나 높낮이도 같고, 불편해보이는 큰 교실이었다. 먼지바람과 함께 서늘한 기운이 들었다.
“여긴 아무도 없어.”
“다른 곳에 가보자구~.”
카일이 그렇게 말하며 옆 방의 문을 열었다. 학교의 구조는 길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옆 방은 교직원이 머무는 공간이었다. 방이 있었고 부엌이 있었다.
뮤오린이 바깥에 나가서 살펴보더니, 들어와서 말했다.
“이상해. 방이 하나 더 있는데, 입구는 없어.”
“이건 내 전문이지. 이 학교에는 무슨 비밀이 있군.”
투마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비밀입구가 있을만한 곳은 드워프가 제일 잘 알지. 에헴.”
투마는 방안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벽돌로 쌓여올라간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벽돌 하나가 쑥 들어갔다. 그러자 비밀의 문이 드러났다.
“비밀의 문!”
카르멘이 외쳤다.
“인간치고는 잘 만들었지만, 드워프의 눈을 속일 수는 없지.”
문을 벌컥 열자, 고요한 숨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숨어 있는 듯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커튼과 붙박이장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페리온스는 위협감을 느끼지 않도록 외쳤다.
“저희는 해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페리온스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문을 열겠습니다.”
페리온스는 붙박이장을 열었다. 놀란 사람 한 명이 심장을 움켜잡고 주저앉았다.
“괜찮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어니스트도 휙 커튼을 열었다. 부둥켜 안고 있던 두 명이 비명을 질렀다.
책상 밑에 숨어있던 한 사람은 확 어니스트의 발을 움켜잡았다. 어니스트는 넘어지다가 휙 덤블링을 했다. 그 청년은 쥐고 있던 힘에 끌려 나와 털썩 바닥에 앉았다.
“놀랐어. 헉. 헉.”
어니스트와 청년은 동시에 놀란 것같았다.
“진정하세요. 저희는 도미 할아버지의 부탁으로 왔는데요. 혹시 바오라는 학생 아십니까?”
페리온스는 왜인지, 침입자가 된 기분이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것, 바오라는 학생이라도 찾자는 마음이 들어서 소리쳤다. 그러자, 사람들은 좀 누그러진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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