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더스에서 온 페리온스입니다. 이제 안전한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국경에는 1000명이 넘는 병사들이 있습니다. 마법을 하는 병사도 있고 창술에는 모두 대가입니다. 가시죠.”
데테르가 말했다.
“페리온스라, 잊지 않겠네. 자네는 누군가?”
“저는 데테르 상사입니다.”
“자네가 그 유명한! 수도에서도 자네의 혁혁한 공을 알고 있네.”
“감사합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도망치기엔 다소 늦은 것같다. 저 멀리서 몬스터 군단이 오아시스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100마리는 되겠군.”
데테르도 그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리자드맨이 100마리, 언데드 마법사가 20마리였다. 흙먼지를 날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위협적이었다.
페리온스는 내심 이바가 나와준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와줄지, 나와주지 않을지는 이바의 마음이다.
“창은 잘 다루지 못하지만……. 부탁해, 이바.”
-그러니까 창도 못다루고, 단도도 못 다루고, 이바님에 대한 존중이 없어! 너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불의 이바 쪽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물의 이바 쪽이 말했다.
-불의 이바, 흥분하지 마세요. 우리는 이 소년을 지켜야 해요.
페리온스는 이바가 자신을 상대해주니 기뻤다.
“그, 그럼 이제 도와주는 거지?”
왕세자와 시종, 데테르가 너무 놀라 말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지만, 페리온스는 그런 것은 하나도 눈치채지 못한 채 신나서 이바를 들었다.
-쳇, 귀찮아서 정말.
-아이 하나 키우기가 쉽지 않군요.
두 명의 이바가 중얼거렸다. 페리온스는 서툴게 불의 이바를 앞으로 기울였다. 제대로 조준이 되자, 팍 하고 저 멀리까지 불꽃이 뿜어져 나갔다. 아주 좁고 강력한 불길이었다. 리자드맨 열 마리 가량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서툴게 물의 이바를 기울였다. 조준을 좀 더 섬세하게 하자 거센 물대포로 20마리 가량이 사라졌다. 그러나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있어서 그 새 리자드맨은 앞으로 밀어닥치고 있었다. 벌써 언데드 마법사의 암흑마법구가 날아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너무 느려!”
기다리다 못한 데테르 상사도 앞으로 나와서 마법과 함께 창을 휘둘렀다. 분명 힘에서는 앞서나가고 있었는데, 쳐내는 속도가 너무 뒤쳐졌다. 이제 정말 리자드맨이 코앞까지 다가와서 뒤섞이고 있었다. 리자드맨의 발톱을 간신히 피해내자, 리자드맨의 입에서 길이가 길지 않은 불꽃이 활활 내뿜어져왔다.
창을 가지고 있는데도, 창술이 서투르니 이바가 20마리를 다시 쳐냈어도 다시 뒤엉키고 있었다. 그런 페리온스를 데테르가 창을 휘둘러 보호하고 있었다.
“마법보호구로 돌아가! 거기서 창을 쓰는 게 낫겠어. 네 창은 원격무기로군.”
“저도 가고 싶지만…….”
이미 리자드맨에게 둘러쌓인 상태였다. 정신력이 흐트러지는 상황이다. 그때 였다.
페리온스의 옆으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빛의 구가 터졌다. 리자드맨 두 마리가 사라졌다. 그 곳에는 모래에 꽂힌 화살 하나가 남아있었다.
페리온스는 창을 뒤틀었다. 그러자, 창은 다시 단도로 돌아왔다. 페리온스는 다시 검을 꺼내 들었다.
저 멀리서 외침이 들렸다.
“야호!”
“페리온스!”
뮤오린 일행이었다. 오른쪽에서 뮤오린이 화살을 쏘고 있었다.
“우리도 오아시스 끝까지 도착! 재생마법을 너무 많이 받아서 토할 것같아!”
왼쪽에서도 소리가 들렸다. 어니스트와 웜, 뭉크가 우다다다 달려오고 있었다. 어니스트는 선두에 서서 다가오는 박쥐들을 한 방에 박살을 내고 있었다. 웜과 뭉크는 뒤편에서 온갖 활성마법과 방어마법과 재생마법을 걸어둔 상태였다.
리자드 맨들이 화살을 맞고 분산되자 그 틈에 페리온스와 데테르는 리자드맨을 헤치고 나아가 마법보호구를 공격하는 언데드 마법사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페리온스의 검술에도 맥없이 사라질 정도로 언데드 마법사는 체력은 약했다. 데테르의 창은 그 것보다 과격하게 언데드 마법사의 뼈를 쓸어버렸다. 금새 20마리가 다 사라졌다.
보호구 근처에 남은 리자드맨은 어니스트와 뮤오린이 상대했다. 세느도 거대한 블레이드 소드로 뮤오린의 앞을 막아서서 접근하는 리자드맨을 쓸어버렸다. 카르멘은 뒤에 서서 열심히 몬스터가 사라지고 남은 아이템들을 주워 모으고 있었다.
일행이 모이자, 리자드맨과 언데드 마법사군단을 처리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일행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시 한적해진 사막 한복판에 서 있었다. 몬스터들은 깨끗하게 사라져 있다.
데테르가 열차를 만들었다.
“왕세자님, 돌아가시죠.”
“오오, 고맙네. 자네들을 잊지 않겠네.”
뮤오린 일행이 보호된 오아시스에 피신해 있던 사람을 데려온 것은 세 사람, 어니스트 일행은 다섯 사람을 데리고 있었다. 지붕이 없는 열차에 다같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기차는 출발했다. 데테르 상사는 지쳐 보였다. 그는 페리온스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오늘 마나는 다 썼어.”
다행히 여관까지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도착했다.
여관 안에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있던 수비대장이 화들짝 놀라 자신의 집으로 왕세자를 데리고 갔다. 사람들도 우르르 왕세자를 따라 수비대장의 집으로 이동했다. 데테르의 여관은 한적해졌다. 일행은 각자 방에 들어가 씻고 다시 나왔다. 데테르가 수건으로 자신의 목을 닦으며 셔츠를 입고 나왔다. 가장 빠르게 씻고 나온 것은 데테르와 페리온스였다. 둘은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웃었다. 왠지 너무 빠르게 친해져서, 낯설다.
“데테르, 데테르의 방에 놀러가도 되요?”
“지금?”
페리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놀러와. 한가하니까.”
데테르는 흔쾌히 승낙했다. 1층에는 주방과 작은 방 두 개가 있었는데, 그 중 작은 방을 데테르가 쓰고 있었다. 페리온스는 호기심이 있는 눈길로 데테르의 방에 들어갔다. 연극 홍보그림으로 벽이 도배가 되어 있었고 사진액자가 군데군데 있었다. 여자와 데테르가 함께 그려진 그림도 있어서, 애인이 있었나보다 싶기도 했다. 짧은 기간 알았지만, 이 나라에서는 꽤 유명인물인 것같았으니까.
“앉아. 앉아. 뭐 내올 것은 없는데.”
“포우에도 아티마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게 있나요?”
“아티마? 그게 뭐지?”
“휴대용 신전인데요. 그게 있어야 미라트에 대항할 수 있대요. 왜냐하면 신의 힘이라서요. 버려진 신전에서 두 아티마를 찾았는데요.”
“사람들에게 물어볼게.”
역시 데테르와 있으면 뭔가가 해결되는 기분이 난다. 페리온스는 초상화를 보았다.
“이 분은 누군가요?”
“음, 내 와이프인데, 너야말로 그 엘프소녀는 뭐야? 너랑 각별해보이더군.”
“엘프들이 귀하게 여기는 꽃을 피우기 위해 저와 여행을 다니는데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왜?”
“마음이 좋아야 핀다고 하는데, 다들 저만 보면 섭섭해해서요.”
“너만 그런 건 아닐 거야.”
“그래요?”
“그래. 나도 서운함은 많이 받는걸.”
“그럼 이대로 살면 되나요?”
“조금은 노력해주는 게 좋겠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너자신이 흔들리지 않는 거야.”
“제가 흔들리지 않는 거라고요?”
“이기적으로 들려? 하지만 그게 이기적으로 들리는 사람에게는 절대 이기적인 게 아니야. 왜냐하면 자신이 살아있고 좋아지고 그런 게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거니까. 네가 있고서야 그 다음에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겠어. 대부분 그래. 네가 행복하면 주변도 함께 행복해지고 네가 다치면 너 혼자 다치는 게 아니니까.”
“그런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나저나 그 엘프소녀도 안됐군…….”
“안 됐다니요?”
페리온스는 자신의 잘못인가 싶어 뜨끔했다.
“인간의 수명은 100년 정도인데, 엘프는 1000년이라고 알고 있어.”
“그렇다고 들었어요.”
“나는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해.”
데테르상사는 씁쓸하게 웃었다. 페리온스는 이해가 될 듯 말 듯했다.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어니스트, 카일, 웜이 시끌벅적하게 대화하는 소리이다. 데테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가자. 소년.”
바깥에는 보호된 오아시스에서 구조되어 아직 여관에 머무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목소리는 어니스트 쪽이 압도적으로 컸다. 카일이 장난을 걸자, 어니스트가 카일을 쥐어박으려고 쫓아다니고 있었다.
“소년들, 혈기왕성하군.”
데테르 상사가 그들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데테르, 창술을 좀 가르쳐주세요.”
페리온스는 데테르에게 다가왔다.
“어렵지 않지. 어, 도미 할아버지 앉아계세요.”
도미 할아버지가 둘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터덜터덜 걸어 페리온스에게 다가왔다. 보자기에 싼 것을 꼭 껴안고 있었는데, 데테르와 페리온스는 그게 금덩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자네에게 꼭 부탁이 있네. 늙은이의 소원일세.”
“뭐죠? 할아버지.”
도미할아버지는 보자기를 페리온스에게 내밀었다.
“전쟁이 터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그래도 전갈학교는 외곽에 있어서 무사할 거야. 이걸 손주에게 좀 전해주게. 학비가 아니더라도 지금 밥도 못먹을까봐…….”
“알겠습니다.”
페리온스가 선뜻 대답했다. 어니스트가 카일을 쫓아다니면서도 그 얘기를 들었는지, 황급히 걸음을 돌려 페리온스에게 다가왔다.
“주군. 안 돼. 어둠의 60일이 오고 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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