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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을 의지하여 앞으로 가고 있었지만, 바오의 안내가 아니었다면 계속 멈추어 섰을 것이다. 모래먼지가 종종 불어와서 일행은 천으로 입을 보호했다.

 

뜨거운 태양이 몇 번이나 뜨고 졌을까. 밤에는 불을 켜고 텐트를 쳤고, 낮에는 뜨겁지만 계속 걸었다. 그런 한 때였다. 페리온스는 뮤오린의 옆에 서서 걸었다.

 

“데테르 상사가 엘프는 천 년을 산대.”

 

혼자 걷기 지루해져서 말을 붙여보았다. 뮤오린이 흘끔 페리온스를 보았다.

 

“모두 다 천 년을 사는 건 아니야. 모든 인간도 100년을 살지는 않잖아.”

“인간과 수명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인간과 함께 가는 엘프를 안쓰럽게 보기도 하던데.”

 

페리온스의 눈치없는 말에, 뮤오린은 약간 발끈했다.

 

“나는 내가 좋아서 온 건데, 불쌍하게 볼 이유가 없어.”

“그치.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야, 이별을 알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와는 사정이 달라.”

“왜?”

“그야, 넌 살아있으니까. 이렇게 귀찮게 말도 하고.”

 

페리온스는 몽글해지면서 멋쩍어졌다.

 

“노을이 참 예쁘군.”

 

그런 페리온스에게 말을 탄 바오가 다가왔다.

 

“그렇게 감상에 젖을 시간 없어. 이제 곧 어둠의 60일이야. 아마 내일이 될 수도 있어.”

“60일 내도록 비가 오니까, 오늘의 이 건조한 노을도 당분간은 못 보겠네.”

 

선두에 선 어니스트와 뮤오린, 페리온스가 하늘을 보다가 일행을 멈추게 했다.

 

“얘들아, 오늘은 노을 구경하다가 여기서 쉬다 가자.”

“좋네. 좋아. 오늘은 노을이 예쁘네.”

 

카일이 말했다.

 

“색이 루비같아.”

 

카르멘이 말했다. 웜과 뭉크는 말없이 제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세느는 그렇게 걷고도 기운이 넘치는지 뛰어다니고 있었고 투마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노을을 보던 일행은 곧 일어서서 텐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몬스터가 가끔씩 나타나서, 마방구와 텐트없이는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순조로운 편이었다.

 

텐트는 이번에도 페리온스, 어니스트, 웜이 한 팀, 카일, 투마, 뭉크가 한 팀, 뮤오린, 카르멘, 세느가 한 팀이었다. 바오는 페리온스의 텐트에서 지내고 있었다. 며칠 동안 텐트에서 지내며 바오는 국경의 일에 대해서도 자세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드만이 침략해오고 왕세자가 피신한 일에 대해 분개하며, 그는 복수를 다짐했다.

 

“나는 아버지를 죽인 아수라성기사에 대해서도 복수하고 쳐들어온 사드만에도 함께 가고 싶어. 내 목숨이 다한다해도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불타올랐다. 페리온스는 늑대인간이 되고나서부터는 그런 열정도 많이 식어있어서, 그런 그가 낯설게 보이기도 했다.

 

오늘은 해가 지기 전에 야영을 했기 때문에, 여러 맛있는 것들을 주변에서 모을 수 있었다. 선인장 열매와, 바오밥나무 열매, 전갈과 코코넛 정도였지만 만찬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양이었다.

 

“맛있게 해줄게! 카르멘과 어니스트도 자자, 보조를 맞추세요. 전갈요리하는 법을 배워왔지!”

 

카일이 오늘은 요리사였다. 세느가 옆에서 노래를 부르고, 거기에 뭉크가 화음을 쌓았다. 모처럼 일찍 쉬니까, 축제 분위기였다. 뮤오린이 풀을 하나 꺾어서 세느와 뭉크에 노래에 맞춰 풀피리를 불었다.

 

웜과 바오, 투마는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페리온스는 거기서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바위에 걸터앉아 멍하니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일렁일렁 함께 춤을 춘다. 페리온스의 그림자도 까닥까닥, 작게는 움직이고 있었다.

 

어둠의 60일 전, 가장 밝은 축제.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자정이 넘도록 웃고 떠들다가 먼저 들어가 자는 사람부터 잠이 들었다. 페리온스는 일찍 자러 들어간 편이었다.

 

과식을 한 것같았다. 페리온스는 자다가 배가 꼬르륵거려 다시 일어나 바깥을 나왔다.

 

빗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고, 조금만 더 가면 사드만과 포우의 국경이었던 강이 나올텐데. 페리온스는 멀리보지 않고 텐트 구석 쪽의 나무 한 칸에 마련된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는 이상한 깡, 깡,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마방구를 쳐놓았고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마방구에 닿기만 해도 사라졌었는데. 페리온스는 그제야 정면을 보았다. 너무 놀라서 배가 아픈 것도 싹 사라지는 것만 같다.

 

이상한 투구를 쓴 기사가 기계적으로 마방구를 검으로 때리고 있었다. 마방구는 아직 깨지지 않았지만 기스가 나고 있었다.

 

“누구야?”

 

습기찬 어둠에 쩌렁쩌렁하게 소리가 울려퍼졌지만 기사는 듣지 않는 듯 기계적으로 똑같이 깡깡, 내리치고 있었다. 페리온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무슨 일 있어?”

 

눈을 비비며 웜이 나왔다.

 

“사람인지, 몬스터인지 모르겠어. 다들 일어나! 어니스트 형! 바오!”

 

페리온스는 검을 뽑아 들었다. 어둠의 60일에 관해서는 어니스트와 바오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몬스터가 많이 나오고 어두운 것만 생각했던 페리온스는 이 이상한 기사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생겼다. 그 기계적인 횡포에는 아우라가 있었다.

 

페리온스는 점점 발걸음을 옮겨 그에게 다가갔다.

 

‘눈이 없어…….’

 

온통 까맸다. 진땀이 났다. 무섭다.

 

그러다가 그는 깡깡거림을 멈추고 페리온스 쪽으로 시선을 틀었다.

 

“마방구가 부서지겠어!”

 

웜이 말하자, 페리온스는 문득 마방구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앞으로 튀어나갔다. 마법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자신감이었다.

 

tie up(타이 업: 꽁꽁 묶다)

 

검을 들고 외쳤다. 저 기사를 묶어 추궁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법은 통하지 않고 밧줄이 튕겨져 나와 허공에서 사라졌다.

 

-멍청한 녀석, 얼른 나를 들어라! 얼른!

 

갑자기 배쪽에 걸려있던 이바가 외쳤다. 그러나 저 칼을 든 기사의 목적은 페리온스로 바뀌어 있었다. 그가 내리치는 칼날을 페리온스는 본능적으로 검으로 막아섰다. 그러나 그 검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검이……!”

 

페리온스는 검을 놓쳤다. 그러자 이바는 다급하게 몸을 뒤틀어 배밖으로 빠져나왔다.

 

-빨리 잡으라고! 이 녀석아!

 

이바는 물의 이바에 간신히 몸을 닿았다. 그 때 강렬한 빛이 어둠 속에서 부웅 구를 그렸다. 그 빛에 어둠의 기사는 몇 발짝 떨어졌다. 페리온스는 단도 이바가 하나가 된 창을 잡고 사방을 둘러 보았다. 어둠과 비. 빛은 없어졌고, 어둠은 깊었다. 마방구 안에서도 모닥불이 점차 꺼져가고 있었다. 잠에서 덜 깬 일행이 웅성웅성 바깥에 나왔다.

 

fire(파이어:불)

 

뮤오린이 다시 불을 지폈다. 마방구 안에서 어니스트가 소리쳤다.

 

“얼른 들어와! 페리온스! 안에서 막아야 해!”

 

아직 기사는 죽지 않았다. 그는 다시 검을 들었다. 페리온스는 급히 창을 들었다. 이 창은 부서지지 않는다.

 

-아야! 아야야!

 

이바는 진짜 아픈 건지 아닌 건지, 기합인 건지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마방구까지 도망치기에 거리가 너무 멀다. 1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 이 기사의 검술은 대단히 뛰어나다. 뛰어나다기보다는 엄청나게 빠르게 내리치는 것뿐이지만, 이 단순함이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바오가 과감히 마방구 밖의 기사에게로 뛰어들었다.

 

“위험해 바오!”

 

페리온스가 외쳤다.

 

“가만히 막고나 있어. 에잇!”

 

바오는 투구 밑의 걸쇠를 풀어 투구를 내던져 버렸다. 일행은 숨을 들이켰다. 거기에는 머리가 없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모닥불이 켜져 있어,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보였다. 그러고 나서 기사는 쓰러졌다. 쓰러졌다기 보다, 장난감 블록이 넘어지듯이, 무너졌다고 하는 것이 맞을런지도 모른다.

 

“들어와! 들어와!”

 

어니스트가 검을 들고 바오와 페리온스가 있는 곳으로 몇 걸음을 디뎠다. 그의 호위를 받으며, 페리온스와 바오는 다시 마방구 안으로 돌아왔다. 페리온스는 이바의 안부를 살폈다. 일단 기스가 난 곳은 없었다.

 

“괜찮아, 이바? 아까 아프다고 소리 질렀는데.”

 

-아픔이란 건 내게 없다. 육신이 없기 때문이지. 부러워서 소리질러 봤다! 아픈 건 어떤 걸까 싶어서!

 

이바를 챙겨넣고 바깥을 보자, 무너진 철조각이 보인다.

 

“저게…… 아수라성기사?”

 

페리온스는 더듬더듬 말했다.

 

-나도 봉인되어 있었기 때문에 잘 몰라!

 

이바의 당당한 대답이었다.

 

“저건 견습기사야.”

 

바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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