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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느가 금새 풀렸는지, 뮤오린을 안고 있던 손을 풀고 만세를 불렀다.

 

“나도 갈래!”

 

달려가는 세느를 뒤따라 뮤오린과 페리온스도 바깥으로 향했다.

 

바깥의 잔디밭에는 공을 차는 카일과 웜, 그리고 오늘도 운동을 하는 어니스트가 있었다. 그리고 대문 근처에서는 카르멘과 뭉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뭉크는 탁발할 바구니를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 파인애플이 놓아져 있었다. 투마는 두꺼운 팔을 베개 삼아 낮잠을 자고 있었고 어니스트는 근육운동을 하다가 벌떡 일어섰다.

 

“페리!”

 

“산책하려고 나왔어요. 마법을 마스터하는대로 바로 출발해요. 형.”

“그런데, 카일이 소문을 냈는데 말이야.”

 

카일이 자신의 이름을 듣고 돌아보았다. 공은 그대로 꽃밭에 넘어갔다.

 

“나도 투자할래! 나도!”

 

카르멘이 달려왔다.

 

“아, 2000골드 말이군요. 어차피 빚인데요.”

 

“소외당하는 건 싫단 말이야. 돈 안되는 것도 싫지만, 나도 갈 거니까. 50골드 투자할게. 그냥 내 마음이야. 알겠지? 페리온스.”

 

“생색은.”

 

어니스트가 투덜거리자, 이번에도 카르멘은 어니스트의 발을 꾹 밟았다.

 

“나도 갈거니까 투자할래!”

 

갑자기 불붙은 분위기였다. 세느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전재산!”

 

1실버였다. 

 

“아, 고마워. 세느.”

 

“엄마가 일주일에 10실버 용돈을 주는데, 오늘 금요일이라 1실버 남았어. 미안 오빠.”

 

세느는 시무룩했다.

 

“하암, 빚을 갚는 거면 나도 검 하나 만들어주지. 혼자서 만들면 한 100골드쯤 되겠지.”

 

잠이 덜 깬 투마도 비척비척 걸어와 앉았다. 제정신으로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고 곧 몸의 반정도 되는 길이의 망치에 기대에 쌕쌕 잠이 들었다.

 

“소승도 투자해도 되겠습니까? 소승도 필요하다고 말씀하셔서.”

 

뭉크가 다가왔다. 페리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돈은 그렇지만 하나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약간 체념하고 있었다. 페리온스는 어쩐지 2000골드를 혼자 지고 있었을 때 속은 더 편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 일행이 자신의 재산이었고 마음이 고마웠다.

 

“오늘은 제가 운이 좋아 선물로 파인애플을 받았습니다. 파인애플을 받아주십시오. 팔면 5실버는 나올 거예요.”

 

“고맙습니다.” 

 

카일이 헤실헤실 웃으며 다가왔다. 페리온스는 카일의 어깨를 잡았다.

 

“더 이상 소문내지 말 것.”

“맞아, 비밀결사 기사님들까지 다 찾아오겠지?”

“네가 하니까 정말 협박같다…….”

“안할게. 안할게. 그리고 멤버들이 투자한 건 내가 서류에 다 기록해놓았다구. 함께하자는 차원에서 그런 거라고. 적은 금액이더라도 운명공동체라 이거지.”

“말로 널 어떻게 이기겠냐.”

“그치?”

 

카일은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는 것같다. 그래도 덕분에 불러모으지 않고도 다같이 모인 것같았다. 대부분 모여있었지만 카르멘은 일이 있고, 뭉크도 봉사활동이나 탁발등으로 바빴기 때문에 보기가 힘들었다.

 

“모였으니 아티마에 대해서 이야기할게. 신들을 나혼자 모시는 것도 무리고, 능력을 주시면 각자 받는 게 나을 거같아서 하는 말이야. 우리끼리 토론을 해서 각자에게 신의 능력을 배분하자. 나 혼자 갖고 있지 않을게.”

 

“신을 빙의하면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된다고 했었지?”

 

어니스트가 말했다.

 

“대신 자아가 없어진대요.”

“신과 사람, 서로간의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뮤오린이 말했다. 페리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테미스님은 뮤오린이 모시고 있고, 헤르메스님에 관한 건데, 나는 후보를 카일과 카르멘을 생각했어.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카르멘이 손을 들었다.

 

“나, 나.”

“반대합니다.”

 

어니스트가 손을 들었다.

 

“카르멘은 아티마를 손에 넣으면 반드시 팔 거야. 그건 안돼.”

“음, 그건 그래!”

 

카르멘도 인정했다.

 

“좋습니다. 답은 하나 뿐이군요.”

 

페리온스는 말하고 어정쩡하게 카일을 보았다. 카일은 씨익 웃으며 두 손은 쫙 뻗어 내밀었다. 왜 선택에는 최선이 있지 않고 차악이 있을까. 페리온스는 떨떠름하게 아티마를 내밀었다.

 

“진짜, 잘 간수해. 카일.”

“헤르메스님께 잘 배워서 거상이 될테니까 염려 마셔.”

 

카일은 아티마를 목에 걸고 뱅그르르 돌았다.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페리온스도 정작 그러는 카일을 보자 괜한 걱정을 했나 싶었다. 저렇게 희망차 보이는데.

 

아티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문득 뭉크가 신경이 쓰였다. 그는 미라트를 믿는 사람이고, 이런 이야기가 불편할 수 있을 것같다. 그러나 뭉크는 가만히 미소지으며, 도저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신전복에 신전띠까지 두르고 있는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페리온스는 회의가 파하고 다들 각자 할 일로 돌아가고 있을 때, 뭉크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사제님, 제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페리온스님. 그럴 것까지는 없는데, 진정마법을 익히셔야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신전 사람들은 마법을 싫어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뭉크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키가 작은 소년, 힘이 없어 보였지만 산에 갈 때 보았던 바로 신성력은 뛰어났다. 미라트도 몇 백 년을 내려왔고 없는 힘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네. 잠시 산책을 하는 김에, 얘기도 듣고요. 호위무사도 할 겸해서요.”

“미라트님께서 언제나 저를 보호해주셔서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인데요.”

“진정마법은 신성력으로도 할 수 있지요?”

“네. 그 비슷한 신성력이 있습니다.”

 

그와 신성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신전으로 걸어갈 때였다.

신성복을 입은 우락부락한 사제들이 팔을 걷어붙이며 뭉크에게 달려 들었다.

 

“오늘은 얼마를 구걸해왔어?”

“오늘은 다 썼습니다…….”

 

뭉크는 힘없이 두어 발짝 뒤로 물러섰다.

 

“야 임마, 우리는 뭘 먹고 살라는 거야? 너 어제는 일도 안하고 오늘은 정원정리, 요리, 빨래, 사형 발닦아주기! 해야지. 오늘도 좀 맞아야겠다. 서기관님의 총애를 받으면 다냐?”

“왜 이러시는 겁니까.”

 

페리온스가 막아섰다.

 

“이보슈, 잘 모르면 꺼지슈.”

“사제복을 입고 그러셔야 되겠습니까.”

“이것봐라. 감히 미라트에게 대항하는 것이냐!”

“이 분도 사제이십니다.”

“핫, 모르면 말하지 마시오. 이 자는 부모가 범죄자요! 종교재판에도 회부될 뻔했지만 뇌물을 바쳐 살아났다지. 그런데 감히 이 신성한 사제집단에 들어오려 했으니, 그 정도는 감당해야지! 사실 우리로서도 이 자를 믿을 수 없소.”

 

뭉크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페리온스는 뭉크와 그 집단을 번갈아보다가, 뭉크의 손을 끌어 자신의 곁에 오도록 했다. 그리고 금화 하나를 꺼냈다.

 

“뭉크님의 이름으로 제가 기부하는 겁니다. 오늘 뭉크님의 일은 빼주십시오.”

“아니.”

 

1골드면 상당히 큰 액수였다. 그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정체가 뭐지?”

“귀족인가? 이 도시에 우리가 모르는 귀족은 없는데.”

 

뭉크가 쩔쩔매며 페리온스를 말렸다.

 

“안 그러셔도 됩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사제님, 제가 사제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아아……. 사형, 제가 악감정이 있어 그런 게 아니니 오해 말아주십시오.”

 

뭉크는 어쩔 줄 몰라했다. 사제들은 팔짱을 끼고 뭉크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페리온스는 뭉크의 손을 잡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공원으로 갈까요?”

“페리온스님…….” 

 

악어동상이 물을 뿜고 있는 공원에 도착한 페리온스와 뭉크는 분수대에 걸터앉았다. 세 마리의 악어의 입에서 물길이 졸졸 흘러나와 페리온스와 뭉크가 걸터앉은 분수대의 턱에 물길이 막혀 다시 물결이 반사되어 퍼지고 있었다.

 

“사제님, 제가 무례했던 건가요?”

“아닙니다. 페리온스님.”

 

뭉크는 항상 평정심을 잃지 않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 분들도 사제의 삶을 사시고 항상 봉사활동을 하시고 좋은 분들입니다. 가끔씩 욱하실 때가 있어 오늘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기부금액은 감사히 쓰겠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신심이 약해져서 어렵습니다.”

 

그 신심을 더 약하게 만들고 있는 자신들에게 뭉크가 협력하는 이유는 무얼까. 페리온스는 겁없이 하늘을 보다가 아차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종교재판에 관련된 이야기는 뭡니까. 사제님.”

“…….”

 

뭉크는 고개를 푹 숙였다. 페리온스는 뭉크를 보았다. 눈가에 약간 눈물이 맺혀있는 것같다.

 

“소승은 부모님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이교도였나요?”

“마법을 배우려고 하셨습니다.”

“…….”

“소승은, 악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우리와 함께 가고 싶으셨던 거군요? 라는 말을 차마 다 마치지 못하고 페리온스는 얼버무렸다. 어쩌면 자신과 닮았다. 종교재판에 회부된 아버지. 그러나 그 선택은 달랐다. 뭉크는 사제였고, 자신은…….

 

“우리를 따라오실 겁니까? 사제님.”

“여행의 허락은 구했습니다.”

“그래요. 우리도 사제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언제든 이별할 수 있겠지만,”

 

페리온스는 손을 내밀었다.

 

“지금 함께이니까요.”

 

뭉크도 빙그레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빨리 가셔야겠습니다. 사형들이 뿔나겠어요. 저 때문에 더 심해지지 않아야할텐데.”

“괜찮습니다. 그 분들도 미라트의 사랑을 받다 보면 좋아지실 거예요.”

 

페리온스는 마음이 다소 복잡해졌다. 어떻게보면 아티마를 찾는 것은 성전이다. 그런 것에 이 순수한 사제님을 협력시켜도 될까? 하는 것이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사제님.”

“무사히. 다음에.”

 

부서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그들은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페리온스는 종이에 큼지막하게 글자를 썼다. 한글로, ‘진정해.’ 그리고 입 밖으로 내어 소리도 내어보았다. 뮤오린과 세느는 평소보다도 더 얌전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특히 세느는 벽에 기댈 정도로 느긋해졌다.

 

“성공이야!”

 

페리온스가 흥분하자, 바로 마법이 풀렸다. 세느는 번쩍 팔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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