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온스는 무릎을 꿇었다.
“신이시여, 이바를 가져왔습니다.”
바람이 불었다. 스쳐가는 기운에 뒤를 돌아보았더니, 빛이 그 쪽에 몰려있다. 뮤오린이 곁눈질했다. 키가 작은 소년같은 남자였다. 날개가 달린 신발을 신고 있었고, 지팡이는 뱀의 모양처럼 꼬여 있었다.
-나를 불러내다니, 이대로 사라지는 줄로만 알았는데, 누구지?
“저는 페리온스입니다. 버려진 신전이었는데요.”
-응. 미라트를 모시는 신전같이 생겼겠지만, 이렇게 생긴 신전은 좀 다르지. 나는 도둑과 상업의 신, 헤르메스다. 이 중에 도둑과 상업을 잘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니? 한가하니까 도와줄게.
문득 카르멘과 카일이 생각났다. 페리온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그 분야가 아니지만요.”
-그래? 이 신전에 찾아오든지, 신전을 더 만들든지 해야 도와줄 수 있겠는데.
“아티마가 혹시 있습니까?”
-뭐야? 아티마를 알아?
“아르테미스님이 도와주시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미라트를 물리치고 다시 올림푸스로 되돌려 놓을 겁니다.
-아르테미스가?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군. 맞아, 우리가 인간의 몸에 빙의를 하면 현실에서도 싸울 수가 있는데 말이야. 흠, 그렇담, 제단에서 두 칸 떨어진 비석을 열어봐.
페리온스가 앉아있는 자리였다. 페리온스는 일어나 비석을 열었다. 대리석조각이 떨어지며 그 안에 작은 공간이 보였다. 그 곳에 작은 붉은 색 아티마가 하나 있었다.
-그래. 죽기 아니면 살기 아니겠어. 나도 제우스님을 찾으러 함께 가보겠어. 너도 아파보이는군. 상처 정도는 치료해주겠다. 그런데, 마법의 기운이 너무 세군.
”저는 늑대인간이 된 것같습니다.“
-음!
”치료할 방법이 없나요? 신성력으로도 안 되는 것같은데요.
-마법생물을 제어할 방법은 마법 뿐이지. 마법을 익혀봐. 아니면 신을 항상 빙의하면 지켜줄 수도 있지. 하하하! 네 몸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겠지만.
“네.”
페리온스는 절망감이 들었다. 신전에 오면 뭔가가 해결될 것만 같았는데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자신은 늑대인간이었고, 타모르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되돌아가는 것을 망설이는 데에는 자신이 한 짓의 결과가 두려운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되돌아가야만 한다. 페리온스는 아티마를 쥐었다. 아티마를 얻어 돌아가도 이제 반겨줄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다. 그래도 돌아가야만 했다.
헤르메스는 아티마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뮤오린이 계속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너는 역시 신들의 전쟁을 주관할만해. 헤르메스를 찾아내다니.”
뮤오린이 말했다. 페리온스는 뭐라 대답할 힘이 나지 않았다.
“고마워. 하지만, 어쨌든, 되돌아갈까? 뮤오린.”
“그래. 앞으로 보름간은 그래도 괜찮을 거야.”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뮤오린을 의지하고 지도 삼아 온 거리를 되돌아갔다.
성 바깥에 다다랐을 때, 르네가 마차에 기대어 서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르네는 시야에 그들이 들어오자, 다시 꼿꼿한 자세로 섰다.
“르네백작님…….”
“묻지 않겠네. 돌아가면 돼.”
페리온스는 푹 고개를 떨구었다.
“수습하긴 해야겠지만, 왜 말하지 않았나?”
“늑대인간이 된 걸 어떻게 말하죠. 이렇게 되어버렸지만.”
페리온스는 짐짓 원망섞인 말로 그렇게 말했다. 그를 원망할 일이 아닌 것을 안다. 하지만 갈 곳 없는 감정들이 속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다.
“우린 마법을 수호하기 위해 모였지 않은가? 방법을 함께 찾아냈을 수도 있어! 어쨌든, 돌아가자. 갈 곳은 두 곳이다. 먼저 제 2왕자부터 보도록 해. 그가 자네를 찾고 있다. 자네가 늑대인간이라는 것은 절대 말하지 말게.”
페리온스는 갖은 감정을 지금은 가라앉혀내고 싶었지만, 불만을 억누르고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뮤오린 자네도 타게. 가자.”
세 사람은 마차 안에 앉았다. 페리온스가 살았던 마을의 구두닦이가 마차를 몰고 있었다. 마차가 출발했다.
마차는 성 안으로 곧장 향했다. 악어들이 노는 강을 넘어 가장 구석진 외곽의 성벽에 제 2왕자의 침소가 있었다.
“제 2왕자는 늑대인간에게 트라우마가 있네. 저 뺨의 상처, 늑대인간과 싸우다가 생긴 것이거든. 어제도 어울리지 않게 도망가더군.”
르네가 말했다. 페리온스는 왠지 섬찟했다. 섬찟해야할 사람은 제 2왕자일지도 모르지만, 찝찝하다. 페리온스는 마차에서 내렸다. 무엇을 말해야 할까. 제 2왕자가 우리를 후원하려고 한다면 어떤 말을 하는 게 좋을까.
제 2왕자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매달린 해먹에 기대어 누워있었다. 페리온스가 무릎을 꿇자 벌떡 일어서며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왔군! 로즈소드.”
“왕자님.”
“그래. 어디 한 번 들어보자. 지오트라스공국의 부활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고대의 신을 두 분 찾았습니다. 아르테미스와 헤르메스, 그리고 나머지 분들도 더 찾을 겁니다. 그 분들도 신성력을 쓸 수가 있으시더군요. 다른 신을 모셔도 된다는 말이고, 그 힘을 우리가 찾으면, 미라트를 견제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신을 찾겠습니다. 그 것은 드래곤의 뜻이기도 합니다. 신들의 전쟁을 도와주시면, 당신은 새로운 신의 수호자가 됩니다.”
“그럼, 악마의 도시라는, 지오트라스공국의 불명예도 벗게 된다?”
“그렇습니다.”
“나도 미라트를 믿는 기존의 왕들과 달리 내 땅을 가질 수 있게 되고?”
“그렇습니다.”
“뭐, 좋군. 한 번쯤 투자해봐도 나쁘지 않겠어. 신을 찾으러 가는 건 자네가 가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2000골드를 주겠다. 다만,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자네가 지는 것이야. 2000골드를 그대로 갚아야한다는 이야기다.”
아찔했다. 2000골드라면 이 영지의 4년치 운영비. 그걸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달리 어떤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다. 성공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신들을 모두 찾아내면, 된다.
“알겠습니다.”
“배짱이 마음에 드는군. 핫핫핫! 아 그리고 어제 늑대인간이 갑자기 출몰했다는데.”
“……네.”
“나를 지키다가 자네의 기사가 의식불명에 빠졌단 소리를 들었네. 감사의 인사를 전하네.”
페리온스가 늑대인간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듯했다. 페리온스는 마른 목소리로 겨우, 감사하다 대답하고 일어서서 돌아섰다. 돌아서는데, 알 수 없는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왜 울지? 페리온스.
페리온스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자신 스스로가 불쌍해서 우는 것일까. 앞으로의 짐이 더욱 무거워질 것을 염려해 우는 것일까. 타모르가 다쳤다는 사실이 너무나 미안해서 우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눈물을 닦아내고 앞으로 걸었다. 마차는 그 자리에 서있었다. 마부가 된 예전 마을의 사람이 페리온스를 흘끗흘끗 보는 것같다. 페리온스는 마차에 올라탔다.
“이제 타모르에게 갑니까?”
페리온스가 물었다.
“저택 안에 있으니까, 타모르에게 가는 셈이지.”
“의식불명이라던데요.”
“음……. 웜의 진단인데, 다시 못 일어날 지도 모른다더군.”
마차는 달리고 있었다. 페리온스는 시간이 더 지나가지 않기를 바랐지만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다. 저택의 바깥에 카일, 어니스트, 카르멘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큰 검에 기대어 세느도 쪼그려 앉아있었다. 페리온스를 기다리고 있다.
페리온스는 마차에서 내렸다. 웜은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찾아보니 저 구석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뛰어왔다.
“페리온스!”
셋이 입을 모아 외쳤다. 페리온스는 고개를 들기 힘들었다. 그들도 뛰어서 다가왔지만 이상하게 서로에게 감도는 어색함과 벽의 기운이 있어 멈추어섰다.
“타모르는?”
얼굴에 모두 걱정근심이 서렸다.
“쓰러졌는데.”
“늑대인간이 그런 거야.”
“넌 어디에 간 거야?”
페리온스는 듣다가 내용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늑대인간이 그런 거라는 거에, 페리온스가 그랬다는 의미는 들어있지 않은 듯하다. 페리온스는 고개를 들어 카르멘을 보았다. 카르멘이라면 확실히 알고 있으리라. 마지막 의식을 붙잡고 있었던 것은 카르멘이니까. 그러나 카르멘은 페리온스의 시선에 공격받는 사람처럼 피하기 바빴다.
“늑대인간을 잡으면 돼! 이제부터 늑대인간은 우리의 적이야!”
페리온스에게도 늑대인간은 적이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사람. 그러나 자신도 늑대인간이 아니던가.
뮤오린은 로브를 벗었다.
“타모르가 있는 곳으로 가야겠어. 늑대인간을 본 사람은 카르멘과 타모르, 그리고 나 뿐이야. 웜, 안내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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