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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온스는 편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본인은 바람둥이가 아니라고 해도, 여러 여자들에게 집적대는 태도를 보면 바람둥이로 보이는 건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페리온스는 물었다.

 

“내일 아버지가 오는 건 확실해?”

 

“아마. 둘째 왕자도 온다고 하니까, 오시지 않을까. 내 추측이야.”

 

확실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페리온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문을 열었다.

 

“저녁 먹으러 가자.”

 

“그래~. 내 스파게티가 남아있어.”

 

“불어터졌을 거야.”

 

페리온스는 모처럼 농담을 던졌다. 카일이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각자 몸에 맞는 턱시도를 입고 대기하고 있었다.

 

“오오 아가씨!”

 

카르멘이 나오자 카일이 소리를 질렀다. 카르멘은 풍성한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움직임이 불편해보이고 어깨뽕이 턱까지 올라와 있었다. 가슴도 풍성하게 과장되어 있고 밑의 드레스도 움직임이 불편해보였다. 무엇보다 카르멘의 표정은 불편함으로 가득차있었다. 평소 입던 옷과는 상반된 옷이다.

 

“아름다우세요.”

 

웜이 얼굴을 붉혔다.

 

“그래? 헤헷, 난 뭐든 잘 소화해내니까!”

 

카르멘은 불편함에 질린 듯했는데도, 꾸역꾸역 말을 해냈다.

 

“귀족파티에 저희가 가도 되나요?”

 

웜이 물었다.

 

“일하러 가는 거니까, 페리온스를 잘 따라가라. 그리고 부탁드립니다. 타모르.”

 

타모르가 매끈한 철제갑옷을 입은 기사복장으로 서있었다. 옆에는 어니스트가 철제갑옷을 입고 불편한 듯 덜그럭거리며 서있었다. 타모르가 대답했다.

 

“걱정마십시오. 르네백작님은 어디에 계실 겁니까?”

 

“저는 칼고스남작 옆에 있겠습니다. 아, 오늘 로즈소드를 주면 공증이 되겠군요.”

 

“네. 백작님.”

 

페리온스가 2자루의 로즈소드와 2자루의 이바를 차고 말했다. 이바는 시끄러울 때는 엄청 시끄러웠는데, 대체로는 말이 없었다.

 

가끔씩 서운할 때도 있었다. 물론 자신의 잘못이기는 했지만, 늑대인간을 마주쳤을 때 도와주었다면 지금 이렇게 긴장 속에 있지는 않았을 텐데.

 

르네백작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나머지 일행도 파티분위기에 휩쓸렸다. 카일은 벌써부터 귀족아가씨들과 하하 웃으며 주변을 산만하게 보고 있었다.

 

페리온스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오늘은 절대 하늘을 보아서는 안된다. 성 안에서의 파티이고 안쪽에만 있다면 오늘 밤도 무사히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바깥쪽에도 많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웃으며 대화하는 이들도 많았다. 뜰에도 과자들이 한웅큼씩 놓여 있었다.

 

로즈소드만 바치고 돌아오자. 몇 번이고 다짐하며, 페리온스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드레스가 자꾸 밟히는지, 카르멘이 휘청거렸다.

 

“괜찮아요?”

 

웜이 물었다.

 

“호호! 괜찮아!”

 

평소라면 자신도 뒤돌아보거나 했을 텐데, 페리온스는 그냥 앞으로 걸어나갔다. 카르멘은 눈치를 보며 뒤따라갔다.

 

칼고스남작은 금새 눈에 띄었다. 오른쪽에는 소문으로 들었던 발톱자국의 제 2왕자가 껄껄 웃으며 와인잔을 들고 있었고 왼쪽에는 아주 작은 의자에 르네백작이 앉아있었다. 르네백작은 희미하게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분명 칼고스남작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페리온스는 칼고스남작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영주님, 로즈소드를 가져왔습니다.”

 

“어라. 살아 돌아왔군.”

 

칼고스는 쓰게 웃으며 수염을 작게 떨었다.

 

“오호, 이게 로즈소드인가?”

 

제 2왕자가 흥미를 보였다.

 

“이건 내가 가져야겠는걸. 선물을 받고 싶은데. 괜찮나? 영주?”

 

칼고스남작은 울상이 되었다.

 

“아니, 왕자님. 그건…….”

 

“하긴 로즈소드는 희귀해서 개당 500골드정도는 하지. 자네 1년 재정이겠네. 크하하!”

 

“네. 네. 그렇습니다.”

 

“이 소년에게 돈은 줬나?”

 

“아니, 그건……. 그 의탁료라고 할까요?”

 

“그럼 안 되지! 사용했으면 사용료를 지불하는 게 깔끔하지 않겠나?”

 

“네. 네.”

 

칼고스 남작은 쩔쩔매며 어쩔 줄 몰랐다. 페리온스는 준비해두었던 로즈소드를 한 자루 더 꺼냈다.

 

“왕자님께도 필요하실지 몰라 가져왔습니다.”

 

“헛헛! 오 이 친구! 마음에 드는군.”

 

소란스러운 상황에 주변의 이목이 왕자에게로 집중되었다. 왕자는 로즈소드를 빼어들었다.

 

“아름답군!”

 

“네. 왕자님.”

 

“자네가 원하는 건 뭐지?”

 

“예전에 악마의 도시로 불렸던 지오트라스 공국의 부활입니다.”

 

귀족들이 모두 수근거렸다.

 

“당돌하군. 미라트를 믿는 지금 상황에서, 지오트라스 공국의 부활이라?”

 

“제시해드릴 게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말씀드리기 힘듭니다만.”

 

페리온스는 작게 말했지만, 모든 귀족이 다 들을 것만 같았다.

 

“따로 내 방에 오게.”

 

그러나 제 2왕자는 전혀 겁에 질리거나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종교재판이 열리는 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발언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페리온스가 일어서자, 제 2왕자는 다시 와인을 기울였다.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갑자기 멱살을 잡는 손이 있었다.

 

“너, 이 자식, 실력도 없는 주제에!”

 

영주의 아들, 카몬이었다. 페리온스는 멱살을 잡은 손을 쥐었다.

 

“놔. 넌 네 인생 살고, 난 내 인생 살자.”

 

“지니까, 역시 겁먹었지? 이 영지에서 썩 사라져!”

 

페리온스는 카몬을 보았다. 검술로는 자신이 졌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전보다 패배감이 들지는 않았다. 카몬에게 칼이 겨누어졌다. 뒤를 보자 어니스트가 있었다.

 

“넌 뭐야!”

 

“난 이 분의 기사다.”

 

“흥, 기사? 나는 수도로 올라간다.”

 

카몬은 자랑하듯이 말을 꺼냈다.

 

“그래?”

 

“성기사가 되어 너희들을 다 종교재판에 붙여버릴테다.”

 

“그럼 지금은 안 싸워도 되는 거네.”

 

페리온스가 말했다.

 

“싸움이 아니야. 너희들을 벌하는 거지. 두고 보자.”

 

어니스트의 검날이 예리하게 둘 사이를 막아섰다. 카몬은 어니스트의 자세를 둘러보다가, 이를 악물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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