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엄마가 많이 아팠어. 그걸 말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입이 안 떨어지더라. 그 동안 말을 안했는데 어떻게 말하겠어. 게다가 난 내입으로 내 처지를 말해본 적이 없어. 내가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 내 옆에 아무도 없더라. 장례식장에 예의상 와줄 사람도 있을걸 알지만 부르지 않았어. 들키긴 싫거든. 가까운 사람이 없다는 걸 느꼈어. 내가 많이 외롭다는 걸 이번에 느꼈어…….”
연은 숨을 쉬며 경민을 안았다.
“마음을 좀 열어봐.”
“마음을 열었다가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말이야. 기류가 흐르는 것을 잘 맡아봐. 물타기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 물타기를 잘하고 이미지를 잘 관리해야 성공할 수 있지. 아직까지도. 이미지가 가장 중요해.”
연은 조소하는 경민을 꽉 끌어안았다. 경민은 울고 있었다. 오래도록 곪은 감정이 쏟아져 내려 들썩이고 있었다. 그 것이 원망인지 증오인지 연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있는 것은 오래도록 경민의 안을 부유하던 감정들이라는 것이다. 경민은 마지막으로 연을 비웃었다.
“너는 그 남자를 원망해야 돼. 혐오해야한다고. 네가 바보가 아니라면.”
“나는…….”
“너는 공기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거야,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척 하는 거야.”
“아마…… 느끼지 못하는 척 하는 것일걸.”
연은 대답했다.
“느끼지 못하는 척 하는 거야. 아직도.”
연은 눈을 감고 그렇게 말했다. 덥썩. 경민이 연의 어깨를 잡고 다가왔다. 연은 귀 가까이에서 위협하듯 나지막한 소리를 들었다.
“앞으로 관여하지 마. 죽은 사람에게도 죽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도.”
연은 경민이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놀란 채로 제 자리에서 굳어있었다. 연과 경민은 서로를 토닥거린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한적한 건물 안으로 돌아왔다. 경민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며 조용히 삭혔던 것만큼이나 어머니의 죽음은 조용했다.
모든 일은 거기서 끝났다.
“안녕하세요. 이 연 씨입니까?”
어느 날 걸려온 전화의 낯선 남자 목소리는 애초에 오지랖을 넓히지 않던지 오지랖을 넓혔다면 끝까지 갑시다. 라고, 연에게 말하는 듯 했다.
“이재 씨 친구죠? 나도 친굽니다.”
“네?”
연은 당혹했었다. 유와의 첫 만남은 느닷없었고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지금 이재가 가사상태라 연락드렸습니다. 꽤, 친하다고 들었는데요.”
“친한 것까진 아닌데요.”
“가족들이 말하더군요. 좋은 관계에 있는 분이라는 것 같던데.”
“네? 전…….”
“그 놈. 친구가 거의 없어요. 최근 연락한 사람 몇이라도 와야 체면이 살지 않겠어요. 이대로 뒈지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살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연은 그 때, 이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비극을 맛만 볼 생각은 아니었는데도,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슬슬 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버린 것이다.
연은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다시 느껴지고 말았다. 깊은 곳에 있는, 자신에 대한 혐오.
전화를 받고나서 연은 두려움을 느끼고는 일어섰다. 그 낯선 남자가 말한 병원. 병실. 그 것을 적어놓은 쪽지를 쥐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 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병실 안으로 뛰어갈 때, 병실 밖 복도에 놓인 의자에 있는 사람이 연을 불러 세웠다.
“연 씨인가요?”
“네.”
“당신이군요.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요. 아직 재는 죽지 않았어요.”
밝은 형광등 불이 희끗하게 분산되고 있는 모양이다. 연의 시선은 어지럽다. 남자는 일어서서 연을 병실 안으로 안내했다. 점퍼를 입고 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였다. 그다지 관리를 하지 않은 모양새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앳된 티가 났다.
“그래요. 어차피 곧 이 녀석 가족들이 올 테니, 잠시 이야기하겠어요?”
재는 구석에 누워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그의 상태에 관해서 연이 짐작할 수 있는 바는 거의 없었다. 다행히 외상은 없어보였다.
“저는 이재 씨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요.”
연은 변명하듯 말했다.
“음, 난 궁금한 게 있어요.”
남자는 스스럼없이 옆에 앉으며 말했다.
“내게도 연락을 끊었던 놈인데 어째서 마지막까지 연락한 사람이 당신일까, 그런 궁금증이지요.”
순간 연은 이 남자도 게이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옆을 보았다.
“당신도?”
연은 그렇게 묻다가 입을 다물었다. 무례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재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말할 정도라면, 충분히 무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연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질문을 바꾸어 다시 물었다.
“재는 자신이 게이라고 말했어요. 저는 그가 죽을까봐 매달렸었죠. 당신은 그걸 알고 있어요?”
“그를 혹시 사랑했어요?”
남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도리어 물었다.
“아니요.”
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 남자가 게이이고 자신에게 혹시 질투한다면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연은 최대한 명확히 말한답시고 말했지만, 남자는 뚱하니, 그렇군. 이라고 뱉었다.
“나랑 비슷한 케이스인가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명함을 내밀었다.
“나는 김유라고 합니다. 당신같이 외자이름이죠. 재에게 관심이 있다면 자주 볼 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남자. 차창 너머로 네온사인이 뿌옇게 흐려졌고 연과 유는 가죽냄새가 나는 의자에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당시의 기억이 연의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마친 후, 멍하니 차창 밖을 응시했다. 연은 유에게 경민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지만 자신에게 계속 아프시다는 사실을 숨기고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섭섭했다는 감정을 말했을 뿐이다. 사람들이 감추어야만 하는 무게가 슬프다는 연의 말에 유는 뜻 모를 웃음을 싱긋 지어냈다.
“그러니까 유 씨 덕택에 재 씨랑 다시 엮이게 된 거에요. 이제 더 이상 알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친구도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말라고 했고 저도 제 멋대로 시작해놓고 제멋대로 끝내려고 한 것이죠. 그 당시에는 정말로 정신이 없었어요. 지금도 정신이 없긴 하지만 그 때는 정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인연이라는 게 참 묘한 것 같아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건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해라는 게 가능할까요? 이해를 하려고 노력했는데 이용당한 적은 없어요?”
“…….”
“그냥 저랑 닮아서 하는 말이니 신경 쓰지 말아요. 다만, 당신이 그저 이런 일을 찾아다니는 것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재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지 않았을까-는 생각이요.”
“저에게 먼저 말을 건 건 이재 씨였어요. 제가 먼저 말을 건 것이 아니니까 찾아다닌 건 아니에요.”
연은 웃었다.
“그건 애매한 말이에요.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스쳐 보내고 있죠. 다들 같은 걸 봐도 같은 걸 보지 않아요. 각자 관심이 있는 것에게 시선이 쏠리게 되니까.”
유는 그렇게 말하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어느새 신호등이 빨간불이었다. 연은 유의 옆모습을 본 순간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에게도……자신과 닮은 문양이 있었다. 방향을 다르게 하여 목에서부터 턱까지 자신과 유사하지만 조금 더 큰 거대한 문양이 꿈틀거리듯이 그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잘못 본 걸까?’
하지만 눈을 감았다 떠도 그 문양은 여전히 그 곳에 있다. 유의 대충 입은 듯한 차림을 생각한다면, 그가 타투를 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왜 그렇게 날 보죠?"
유가 묻는다. 그런 유를 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연은 다소 불안한 감정이 스미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유는 눈이 맑았지만 부드러운 위압감이 있었다. 유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웃었다.
“다름이 아니라 자살소동이 있었어요.”
“자살소동?”
“그는 꽤 민감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살려면 충분히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문제 아닙니까.
내가 감정이 무뎌서 이런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가 특히 예민하다는 생각을 해요.”
유는 연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뜸을 들였지만 연이 아무런 말이 없자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그는 지금 정신병원에 있어요. 두 번의 자살시도니까요. 혼자 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당신을 불러야할 것 같았어요. 가족들도 그러길 바라고.”
“가족들이요?”
“이재 씨의 가족들 말입니다. 당신이 있어야 면회를 시켜준다고 하더군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꽤 경계하는 모습이에요.”
가족들은 어쩌면 재가 그런 성향을 띠고 있는 것을 알면서 모른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유의 말을 들었다.
“갑자기 당신을 데려와서 미안하군요. 괜찮겠어요?”
“재를 만나러 간다는 것은 짐작했으니, 괜찮아요.”
“지금부터 그 요양원에 갈 생각인데 거리가 가까운 편은 아니거든요. 지금 시간도 늦었고.”
“괜찮아요.”
연은 무심코 대답했다.
"내게는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죽어버렸어요. 이름은 말해도 될까? 서윤이라고 해둡시다."
연은 화들짝 놀라 유를 보았다.
“환상적인 여자였어요. 환상적이라는 말보다 환각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군요. 여러모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고, 사라져버렸죠. 친한 사람이었는데 이젠 아름다운 사람인지 지독한 사람이었는지도 분간이 가지 않아요. 어쨌든 덕택에 비슷한 냄새가 난다 싶으면 쫓아다니게 되었죠.”
연은 유가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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