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은 경민에게 묻는 것인지 허공에 던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는 입을 꾹 눌러 다물었다.
“몰라.”
“너는 왜 말을 안 해줘? 서윤이처럼. 불러놓고.”
“서윤이처럼?”
경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민감하게 반응해온다.
“말을 안 하잖아. 원래 이런 성격 아니면서.”
“난 죽지 않아. 같은 취급하지 마. 뭐야, 기분 나쁘게…….”
“기분 나쁠 게 뭐 있어.”
그러나 그 말에 대답은 없었다. 일종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아이들은 죽은 그녀를 악인으로 몰아세우기로 마음먹었고 그 것은 바꿀 수 없는 다수의 생각이었다. 파도를 거스르는 사람은 없었다. ‘왜’ 악인인지, 그녀를 알기 위한 노력 없이 그녀는 악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다들 미워하고 있었다.
“왜, 한 번씩은 죽음을 생각해보잖아. 서윤이에게 섭섭하지만 그렇게 못된 애였다는 생각은 안 들어. 그렇게까지 잘못한 걸까. 애들이 서윤이 이야기만 나오면 치를 떠니까.”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달라. 걘 모두에게 상처를 줬어.”
경민의 눈은 단호했다. 여전히 자신의 처지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하지 마.”
경민은 못 박았다.
“나는 죽지 않으니까. 절대로.”
“그런 뜻은…….”
“어쨌든.”
경민은 연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너는 생각이 많고 복잡하게 생각하는 게 문제야. 그런 쪽으로 생각이 깊어지면 안 돼. 네가 그러니까 그런 인간들이 너에게 뭐 얻어갈 것이 있는 것 같아서 널 이용하는 거란 말이야. 잘못한 건 그 애들이야.”
연은 대꾸하지 못했다.
“네가 이해할 필요가 없어. 네가 마음 다칠 필요가 없는 일이야.”
경민 특유의 냉소적인 어조가 격렬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쏘아 연에게 다가간다. 연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지독히도 이기적이고 지독히도 위로가 되는 말이다.
재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연은 사방이 목재로 이루어진 널찍한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은은히 퍼지는 커피 향을 맡았다. 햇볕이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연은 요즘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정작 외적인 일을 그럭저럭 풀리는데도, 사적인 일이 엉키고 있었다. 연은 자신이 타인의 일에 너무 깊게 발을 들인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곳에서 재를 만나기로 했지만 그를 만나고 나서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연은 생각을 놓았다. 생각을 놓고 흐르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경민도 역시 알 수가 없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불러내어 고민만 하다가 자신을 돌려보내기 일쑤였다. 종종 불러내놓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친구를 연은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친구조차 이러한데 재란 사람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참으로 막연하지만 연은 재나 경민에게 어떻게 관여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무시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둘의 이야기를 연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대인관계는 무척이나 비생산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을 길지 않았다. 입구로 들어오는 중키의 청년은 초췌해보였지만 차림새는 깔끔한 편이었다. 상위의 와이셔츠는 깔끔하게 다려져있었다. 재는 쉽게 연을 발견하고 저벅저벅 걸어갔다.
미안해요. 연은 자신의 집요함에 대해 사과했고, 재는 이번에도 얼굴을 붉히며, 아닙니다. 라고 답했다. 그 모습을 보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박 비슷한 것을 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무모함은 그와 가장 거리가 있어 보이는 단어였다.
“저번에 연락이 왔을 때는, 두려운 상태였습니다. 어떤 남자에게 맞았죠.”
재는 자신의 뺨을 가리켰다. 히끄레하게 멍자욱이 남아있었다. 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걸었는데, 이야기를 건 사람이 아니라- 그 것을 우연히 본 어떤 사람에게 맞았어요.”
그리고 웃는다. 뜻밖의 선량한 웃음이었다.
“실험은, 잘 되어 가나요?”
연은 물었다.
“애매합니다.”
그는 싱긋 웃으며 창문 밖을 보았다.
“극단적인 우호, 극단적인 거부, 극단적인 무관심…… 내가 좀 극단적인 사람인가봅니다.”
차라리 그가 극단적인 사람이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는 그러기에 평이했다. 연은 재의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만 있었다.
“재미있어요. 이거 알아요? 포유류 중에 500여 종이 넘는 종이 동성애를 하고, 그 동물들 중 10%가 동성애를 합니다. 그 정도 비율이면 자연이 어떤 필요에 의해서, 이런 동물이 있도록 한 걸 겁니다. 모든 비정상적인 것은 만약을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특수한 상황에서는 비정상적인 것이 인류의 생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필요했기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차피 낳는 부모는 이성애자 아닙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걸러내어져 절멸되고도 남았어야하지만 절멸이 되지 않습니다. 타고난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는 한탄조로 말하고 있었다.
“그걸, 그 사람들한테 말하면 안 되나요?”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길잖아요.”
“정말로…… 끝나면 알려주세요.”
연은 당부했다. 말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말릴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말없이 사라지지는 않겠죠?”
“아마도.”
그는 웃었다.
“처음으로, 바깥에서 게이가 아닌 사람에게, 게이에 대한 의견을 속 시원히 말해봅니다. 아마 우리가 모르는 인연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겠죠. 사실은, 가족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입니다. 말하고 나니 시원하네요.”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다는 것에서 연은 서윤을 겹쳐 생각하고 있었다. 서윤이 ‘말없이’ 죽은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이루어낸 기류 탓이 아닐까. 모두가 그 것을 직감하고는 있을 것이다. 다만, 죄인이 되기 싫어 서윤에게 모두 뒤집어씌운 것 뿐.
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한 달이 넘어서까지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고 연은 그가 말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두어 번 문자를 했으나 답신이 없는 것을 보고 그 것이 간접적인 거부라는 것을 읽었다. 연은 짐작했다. ‘그는 나와 더 이상 얽히기 싫은 것이다.’라고.
“만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그 번호로 연락이 왔다.
“누구시죠?”
“‘이재’라는 사람 동생이에요. 최근에 문자나 통화가 발신된 사람이, 언니밖에 없어서.”
“언니라니……….”
“왜요? 언니 아닌가요?”
“몇 살이세요?”
“이제 갓 대학교 올라왔어요. 어리죠?”
그녀는 흐흐 웃는다. 이재의 동생.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연은 깨달았다. 자신은 그 남자의 나이조차 몰랐다. 본인이 참 지독하게도 오지랖이 넓다는 생각과 함께 그 언니라는 단어가 무척 낯설었다. 동생은 연이 이재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빠르게 문제를 쏟아내었다.
“오빠가 실종됐어요. 집에 연락이 오지 않은 게 삼 일째에요. 휴대폰도 두고가고, 혹시 어디 있는지 아세요?”
걱정이 섞였지만 크게 불안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다 큰 성인남자가 본가에 3일 째 연락이 없는 것은 흔한 일이기도 했다. 오히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쪽은 연이었다. 그 무책임한 내기를 가족들은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동생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태연할 리가 없었다.
“안 온다고요?”
연의 불안한 목소리에 대꾸가 덩달아 불안하다.
“네. 무슨 일 있어요? 휴대폰도 두고 갔는데 몇 달째 문자가 쌓여있어요. 그런데 답장한 건 언니 한 사람밖에 없더라고요…….”
그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는 데에 연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동생은 자신의 오빠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재의 짓은 타인에게 분명한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연은 더듬더듬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던가요?”
“옛날부터 제멋대로거든요. 착한 것 같긴 한데 매번 제멋대로에요.”
“큰 일이 날지도 몰라요.”
“네?”
“죽을 거라고, 그렇게 말했어요. 큰 일이 날지도 몰라요.”
연은 저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여동생은 의외로 태연했다. 그렇구나. 그 인간이 또 그런 말을 했어요. 라고, 대수롭잖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연은 재의 모습을 떠올리고 초조해졌다. 그의 모습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넘길 정도로 장난스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동생은 곧 그늘 없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저기…… 혹시 만날 수 있을까요? 오늘 바로. 찾으러가죠! 그 인간.”
동생의 이름은 이연이라고 했다. 연과 동일한 이름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오빠가 게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오빠에게 드디어 여자친구가 생겼나봐요. 나한텐 말도 안하고. 라는 여동생의 첫마디로 보아서는 그랬다. 밝은 사람이었다. 어딘지 짐작이 가는 데가 여럿 있는데, 언니도 있느냐고 연에게 묻고는, 연이 없다고 대답하자 자신이 짐작 가는 곳으로 내비게이션을 돌리면서 죽기 전에 걷어차 줄 거라고 장난스레 말했다. 빨리 가자고 말하는 재의 동생을 보며 연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아야할지 알 수 없어 듣고만 있었다.
“언니가 이연씨였구나.”
동생은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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