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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는 미라트를 믿고 있네.”

 

칼로스남작은 경직된 표정으로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사……!”

 

페리온스는 우렁차게 그 말을 끊었다.

 

“영주님! 이바를 아십니까!”

 

“이바?”

 

그는 즉각 반응이 왔다. 수염이 가늘게 떨리며 눈도 곧 떨리어 왔다.

 

“이바를 어떻게 알지? 아니, 아니, 악마의 도시에서 왔다고 했었지. 그렇지만…….”

 

“몸을 의탁하고 싶습니다. 이바를 걸고.”

 

페리온스는 품 안에서 이바를 꺼내려고 천 옷 안에 손을 집어 넣었다. 그러나 그 것이 바깥으로 드러나기 전에 르네의 팔이 페리온스를 막아섰다.

 

“이바는 아직 악마의 도시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겠지요. 칼로스 남작. 이바를 뽑아들 수 있는 것은 허락된 혈통 몇몇 밖에 없다는 것을.”

 

페리온스는 르네를 보았다. 알 수 없는 남자. 믿어도 될까?

 

그러나 그는 알 수 없는 듯했으나 자신에게는 유일하게 기댈 구석이었다. 지금도 세느와 르네가 없었다면 기사들이 자신들의 목을 베었으리라. 그나저나 이바를 뽑아들 수 있는 것은 허락된 혈통이라고 했다. 역시…… 자신에게는 하늘이 내린 사명이 있다. 페리온스는 확신을 가졌다. 르네는 자신을 도와줄 것이다.

 

“나를 시험하는 건가!”

 

“알려드리는 것 뿐.”

 

르네는 엷게 미소를 띄더니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아무리……. 아무리…….”

 

칼로스 남작의 긴 수염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는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듣는 귀가 무서웠다. 그런 그의 행동은 그대로 르네에게 읽혔다.

 

“지금은 기사가 아무도 없습니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요. 제가 다 해치워놨습니다.”

 

르네는 빙그레 웃었다. 칼로스남작은 그제야 페리온스와 르네를 제대로 보았다.

 

“이바를 가져오지 않으면 나는 보호해줄 수 없네.”

 

“이바는…….”

 

페리온스가 앞으로 나서려고 하자 르네가 다시 막아섰다.

 

“이바는 아직 없습니다.”

 

“없으면 보호를 못해준다니까!”

 

“억지를 쓰셔도 지금은 없지 않습니까. 가져올 수 있게 도와주시면 가져올 수 있죠. 영주님께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이 친구를 데리고 온 겁니다. 저도 은혜를 아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 동안 영주님이 거두어주신 밥값을 하려고 데리고 온 겁니다. 영주님이 드래곤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아니까요.”

 

“이바를 얻는 것은 내 숙원이지만 악마의 도시의 후계자를 내가 보호했다는 사실을 교황전하가 알게 되면 나는 죽음일세! 저 자가 거짓말쟁이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지? 저 자를 숨겨주었다는 게 들통이 나면 끝이야!”

 

“거짓말쟁이라면 교황전하께 처벌을 안 받습니다. 악마의 도시의 후계자가 아니니까요.”

 

르네는 어깨를 으쓱했다.

 

“약올리는 건가!”

 

칼로스 남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바를 가져오게 하십시오. 교황전하께는 들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들킨다고 해도, 아시지 않습니까? 교황전하께서도 아무리 악의 씨앗이라 해도, 씨앗은 씨앗일 뿐, 자라나지도 않은 것을 공연히 두려워하시지도 않을뿐더러 이바를 얻은 공이 더 크실 겁니다. 그리고 이건 우리끼리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이바를 얻은 다음이면 교황폐하뿐만 아니라 황제폐하께서도 충분히 사랑하시겠지요.”

 

칼로스 남작의 수염이 바들바들 떨렸다. 회색빛으로 딱딱하게 굳은 그 얼굴에는 탐욕과 공포가 이지러지듯 교차했다.

 

“고민할 시간을 주게.”

 

“언제까지 말입니까?”

 

“일주일.”

 

“삼일까지 대답주십시오.”

 

르네는 차갑게 웃었다.

 

“제가 변덕이 심해 일주일까지 못 기다립니다. 교황전하께 바로 바치면 저도 영지가 생길테고. 저도 저한테 유리한 걸 계산하다 지칠 것 같거든요. 의리로 영주님께 왔습니다만.”

 

“네 녀석!”

 

“유예기간을 뒀다는 걸 들키면 어차피 무사하지 못합니다. 남작.”

 

“나가! 나가게! 혼자 생각을 해봐야겠으니까 나가!”

 

 칼로스 남작은 탁상을 쾅쾅 쳤다. 르네는 여유롭게 돌아섰다. 페리온스는 뒤를 따랐고 웜, 어니스트는 어안이 벙벙해서 따라왔다.

 

나올 때는 보지 못했던 기사 동상들이 뜰 여기저기에 서있었다. 칼을 빼어들고 있는 동상은 없었고 전부 걷거나 서있는 사람 동상이었다.

 

나무로 된 마차에 들어서자마자 웜이 물었다.

 

“왜 이바를 얘기한 거야? 그래도 드래곤이신데.”

 

“음, 사정이 있어.”

 

페리온스는 르네, 웜, 어니스트가 탄 것을 확인하고 마차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일렁이는 빛이 눈 앞을 비추더니 한 소녀가 자신의 무릎 위에 앉아있었다.

 

“헤헤.”

 

“세느님.”

 

르네가 빙그레 웃었다.

 

“잘했어?”

 

“어…… 고마워.”

 

페리온스는 어찌할 줄 모르며 얼떨결에 대답했다. 좁은 마차 안에서 턱 걸터앉아 있는 이 낯선 소녀를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엄청난 거라네.”

 

르네는 갑자기 이내 그 입꼬리만 올리는 미소를 지으며 페리온스에게 말했다.

 

“이 좁은 공간에 워프한다는 건 섬세하고도 천재적인 작업을 수행해야하지. 세느님은 그런 분이다.”

 

“그럼 세느, 네가 시간을 멈춘 거야?”

 

페리온스가 물었다. 세느는 페리온스의 무릎에 앉아 밝게 말했다.

 

“응! 드래곤은 마법의 종족이니까! 이런 건 자신있다구.”

 

페리온스와 얼굴이 가깝게 닿아있었다. 르네는 인상을 찌푸렸다.

 

“세느님께 반말을…….”

 

“하지만 쬐끄만걸.”

 

“난 오빠가 편하게 대해줘서 좋아! 아빠!”

 

웜과 어니스트가 말문을 잃고 세느를 보았다.

 

“마법……은 금지 되어 있는데?”

 

이윽고 웜이 입을 열었다. 분명히 최근의 역사서에는 마법사와 마녀를 모두 처형했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그 이후로 황제가 지배하는 대륙에는 마법이 금지되어 있었다. 어니스트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았다.

 

“뭐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해를 못하겠어.”

 

“어떻게 된 거냐하면.”

 

페리온스는 차근차근히 설명을 해주었다. 영주가 자신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다는 것과 그 시간을 돌려준 세느에 대해서.

 

“그러니까 시간을 돌려주는 마법을 썼다고?”

 

“영주가 우리에게 사형을 내렸다고?”

 

웜과 어니스트가 각기 말을 내뱉었다. 시간이 진행됨에 따라서 칼까지 뽑아든 둘이었는데, 과거로 돌아가니 기억도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페리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르네를 보았다.

 

“그 중에 어째서 르네백작님은 멀쩡하셨던 거지요?”

 

“비밀로 해두지.”

 

르네는 빙긋 웃었다.

 

“그나저나 말이 너무 많네. 바깥에서 마법이니, 뭐니, 그런 소리는 삼가게.”

 

“이바님은 제가 갖고 있습니까? 이바님을 걸 수밖에 없었는데요.”

 

“자넨 자네가 가진 힘을 모르고 있네. 차차 알게 되겠지만, 일단은 느껴보게.”

 

르네는 기다란 종이를 촤악 펼쳤다. 무엇인가가 쓰여있었다.

 

“지오트라스 공작을 추모하는 사람들. 비밀결사라고 할 수 있지. 시간이 꽤 지나버렸지만 자네는 자네의 신분을 증명하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팬던트이겠지요?”

 

“그 것이 착각일세. 팬던트를 보여주거나 이바님을 보여주게.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거야.”

 

르네는 이내 그 미소를 지었다.

 

“여기 있는 열 세 사람을 모두 만나고 오는 것이 미션일세.”

 

르네의 집 앞에서 르네와 페리온스일행은 흩어졌다. 페리온스는 묵묵히 종이를 보았다. 읽을 수는 있지만 어떻게 찾아가야할지 막막하다. 낯가림도 심한 데다가 여행이라고는 떠나본 적이 없는 길치였다. 정색하고 종이를 들여다보고 있는 페리온스에게 어니스트가 다가갔다.

 

“주군. 이런 건 내게 맡겨.”

 

페리온스는 한 뼘은 더 큰 어니스트를 올려다보았다. 어니스트는 주변을 돌아보다가 간판에 단도 두 개가 교차한 그림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페리온스와 웜이 그 뒤를 따라갔다. 안쪽으로 휘어진 계단을 내려가 천막을 들추자 제법 큰 공간이 있었다.

 

안에는 어둡고 습한 공기가 흘렀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빛이 날카로웠고 은연 중에 담배연기도 맡아지는 것같다. 짤그랑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칼소리기도 했지만 돈이 계속 오고 가는 것같았다.

 

어니스트는 능숙하게 카운터를 보고 있는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까만 머리를 포니테일로 뒤로 묶고 있었고 딱 달라붙은 옷은 허리가 다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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