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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사, 그래서 네가 좋은 거야. 르네.”

 

“영광입니다.”

 

“드래곤같은 난폭한 생물은 이해하기 힘든 아름다움이니까. 사람은 정말 섬세하고 아름다워.”

 

“몇 백 년이나 사시면서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인간만큼 이중적이고 탐욕스럽고 더러운 동물은 없어요.”

 

“하지만 개 중 르네같은 인간이 있는걸. 적지 않게.”

 

그레마는 몇 년밖에 살지 않은 아이같이 웃었다. 르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은!”

 

“아아, 마법구로 보았던 일행이 거리에 나타난 것같아.”

 

“지오트라스님의 아들입니까?”

 

“어떻게 할 거야?”

 

거리에는 눈에 띄는 수레가 들어서고 있었다. 통행증이 있는지로 성문지기와 실랑이를 하는 듯이 보였다. 르네는 그제야 일어서서 겉옷을 챙겼다.

 

“함께 나가시겠습니까?”

 

이미 그레마의 눈빛은 장난기로 가득하다. 르네로서는 대답은 듣지 않아도 알 것같았다.

 

밖.

 

페리온스는 펜던트를 보였으나 성문지기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사기꾼이 한둘이 아니며 네가 귀족의 자손인 것을 어떻게 믿냐는 것이 성문지기 말의 요지였다. 마을사람들은 다들 욱했지만 실상 귀족의 마차라기에는 페리온스 일행은 허술하기 그지 없었다. 마을사람들이 한 껏 준비한 투구며 창이었지만 햇빛을 받아 빛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펜던트마저 손때가 묻어 빛나지 않았다.

 

“보내주시죠.”

 

그 때 르네가 나타났다. 페리온스로서는 구원자였으나 르네의 안색을 보는 순간 페리온스는 인상을 굳혔다.

 

자신의 짧은 경험으로, 저렇게 얼굴빛이 희고 손이 고운 사람 중에 믿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칼고스 남작 님을 뵈러 온 귀족인 것을 내가 알고 있네.”

 

“아, 르네 백작님.”

 

성문지기는 난처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르네가 쥐어주는 은화 몇 푼에 안색이 달라졌다.

 

“르네백작님과 아는 사이시라면 뭐. 들어가십쇼.”

 

성문은 쉽게 열렸다. 그레마는 르네의 뒤에서 싱긋 웃더니 서스름없이 마차에 올라탔다. 르네 역시 그레마의 뒤를 따랐다.

 

“출발하지.”

 

다소 뻔뻔스러운 르네의 말이었지만 일행은 바로 출발했다. 페리온스가 대답하기 전에 마을 아저씨들이 열심히 내달렸기 때문이다.

 

“뭡니까!”

 

“지오트라스 공작님과 닮았군.”

 

르네는 대답했다.

 

“저희 아버지를 알고 계십니까?”

 

페리온스는 눈을 크게 떴다.

 

“칼고스 남작은 시험하기를 좋아해. 물론 지오트라스 공작님과는 절친한 사이였다고 들었지만 너를 시험할 테지. 바로 성으로 가겠느냐? 아니면 우리 집에 들렀다가 가겠어?”

 

“아니면 일단 칼고스 남작에게 들렸다가 르네의 집에 가는 방법도 있지. 문지기가 바로 보고 했을 거야. 괜히 우리 관계를 들킬 필요 없잖아?”

 

그레마가 페리온스를 보고 눈을 찡긋했다.

 

웜은 넋을 놓고 있었지만 페리온스는 상당히 경계하고 있었다. 둘 다 평생 보지 못한 미남 미녀였는데, 낯선 것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로 예쁠수록 사기꾼을 경계해야한다는 이상한 믿음이 페리온스에게 있었다. 그러나 페리온스의 그런 반응은 그레마의 장난기를 돋웠다.

 

“귀엽잖아!”

 

“지오트라스 공작님이 생전에 좀 귀여우셨습니다. 지나치게 진지하셨죠. 그대로 물려받은 모양입니다.”

 

“큭큭, 이래서 사람이 좋다고 하지 않았어? 르네, 너는 아닌 것처럼 말을 해!”

 

“저는 더러운 사람입니다. 그나저나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르네는 그레마가 낄낄거리자 난처한 표정이었다.

 

“야! 내 꺼 탐내지 마!”

 

르네의 걱정은 이바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갑자기 들린 고함이었다. 르네는 자신의 걱정이 드래곤의 싸움을 염려하는 무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너한테 니 꺼가 어디에 있어? 아직 영지도 없는 주제에.”

 

그레마는 단도에 대고 버럭 소리쳤다.

 

“나랑 계약했으면 내꺼야! 영지는 탐욕스런 너네들이 다 뺏어갔잖아!”

 

“누나한테 버릇이 없어?”

 

“누나는 무슨 누나냐? 할머니야!”

 

“확 태워버린다.”

 

“육체나 주고 그런 소리 해라! 태워버릴 게 어디있냐? 망할 드래곤!”

 

웜은 단도와 대화하는 광경을 입을 벌리고 보았고 페리온스 역시 그레마를 얼떨떨한 눈으로 보았다. 르네는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이 모습만 봐도 어제의 회의가 상상이 되는 듯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이 분은 드래곤이시다. 그리고 네가 계약한 이바는,”

 

“드래곤이시다.”

 

붉은 단도가 말을 하며 으흠, 소리를 냈다.

 

 

5.

 

르네의 집은 레드드래곤이 사는 집 다웠다. 조명이 불꽃모양으로 되어 있고 대낮인데도 등을 켜놓았으며 집 안에 내리쬐는 빛은 은 전체적으로는 황금빛으로 화려하면서도 붉은 기가 돌았다. 시골에 살던 페리온스와 웜으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화려한 집이었다. 둥글게 올라가는 계단이 사층까지 있었다. 악마의 도시에 폐허가 되어도 굳건히 서있던 성을 보았으나 그 것은 단지 요새로 생각될 뿐 집으로는 생각되지 않았기에 왕이나 영주도 아닌 사람이 사는 집이 이토록 높고 이토록 많은 촛불이 켜져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었다.

 

“무, 무슨 집이.”

 

“오, 내 취향인걸!”

 

단도는 쉬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어제까지의 침묵이 거짓같았다. 페리온스는 이바가 말이 많아지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웜이 수근거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단도가 말없다고 걱정하지 않았어?”

 

“그러게. 어디 아픈가 했는데.”

 

페리온스도 난처한 표정으로 웜을 바라보았다. 이바는 그런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끊임없이 ‘이 것은 내 취향이다.’ ‘저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열심히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어제는 이바님이 단도에 깃들지 않았을 것이다.”

 

페리온스를 바라보며 르네가 말했다.

 

“삼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드래곤 회의가 열려서 몸은 버려두고 영혼만 참석하셨던 것이지.”

 

“내 몸 아니야! 저게 왜 내 몸이야! 숨쉬지도 않는데! 호흡도 안하는 몸이 몸이냐! 차갑고 딱딱하기만 한 무생물이 내 몸이냐!”

 

남 말을 듣기는커녕 자신의 말만 하는 듯이 보였던 이바가 대꾸하듯 쏘아붙였고

 

“말없고 많고는 걱정 안해도 돼. 꼬마 도련님! 쟨 원래 이중인격에 조울증이거든. 거의 대부분은 조증이지만.”

 

그레마가 엿듣고 있다가 즐겁게 대꾸했다.

 

“조증은 너겠지!”

 

“시끄러워. 이바 어린이.”

 

그레마가 어마어마한 눈빛으로 쏘아붙이자 이바는 순식간에 말이 없었다. 그레마는 방금 전의 신경질은 어디에 갔는지 다시 싱긋 웃었다. 페리온스일행에게는 어디까지나 친절했다.

 

“그런데 어떻게 드래곤과 함께죠? 말로만 듣던 드래곤이 수호하는 자인가요?”

 

웜은 벌벌 떨면서도 궁금증은 풀어야만 하겠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르네는 두리번 거리다가 자신을 가리킨 후 그레마를 보았다. 그레마도 그 순간 르네를 보아 둘은 마주보았다.

 

“음, 우리는 그러니까. 그레마님께서는 수호신은 아니시고.”

 

“그 것보다 더 특별한 관계?”

 

그레마가 한쪽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었다.

 

“드래곤과 인간의 특별한 관계가 드래곤이 수호하는 인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웜은 비록 시골출신이었으나 책을 늘 반복해서 보는 습관이 있었다. 웜은 역사책에서 본 내용을 또박또박 말했다. 이번에는 아까 전의 물음보다는 훨씬 덜 떨고 있었다.

 

“그러니까.”

 

“수호는 하지만 수호신은 아니고 부부라고 할까? 애인?”

 

르네와 그레마의 입에서 동시에 말이 튀어나왔다. 그 말이 튀어나온 것과 동시에 웜에 페리온스의 입이 떠억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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