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콧잔등을 슥슥 문지르다가 이내 천옷에 닦았다.
“어쩌면 이 깃대만 붙잡고 다니느라 도망쳤을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간에 첫 출진에 욕심내면 안된다. 처음에 욕심내는 녀석들은 반 이상이 죽어나갔다.”
장난스러운 얼굴로 협박도 하는 것이다. 카일이 주사위를 휙 위로 던졌다가 잡아냈다.
“살고 죽는 것이야 하늘의 뜻이지요!”
카일은 호기롭게 외쳐보는 것이었다. 키가 크고 민첩하게 생긴 마른 듯하면서 덩치 커다란 깃발병은 하하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깃발병은 웜이나 페리온스보다도 키가 한 뼘은 더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어울리는 위압감이라고는 전혀 없어서 그야말로 순찰병이라는 애매한 직함을 달기에 어울렸다.
“형은 이름이 어떻게 되죠?”
웜이 물었다.
“어니스트. 소박한 이름이지. 나는 지도보다도 여기에서 줍게 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10년 전 지도를 가져왔어. 너희들도 줍게 되면 나에게 넘겨. 보상금 중에 얼마간은 얹어주마! 보물! 그건 말이야. 어디에 있느냐하면 말이지.”
그새 서로 친해진 것처럼 어니스트와 페리온스 일행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니스트는 지도 한 가운데를 가리켰다.
“악마의 도시에서 가장 번성했던 곳.”
“이 문양은?”
“술잔인데?”
일행이 카일과 웜이 웅성거렸다.
“그래. 펍이다! 악마의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펍이었고 요리와 맥주가 일품이어서 악마의 도시 10년 전 지오트라스공국에 가면 반드시 먹어야할 게 돼지 앞다리와 흑맥주였거든!”
“악마의 술이 된 건가요?”
“그런 셈이지. 벨키스의 저주를 받은 이 땅은 마법이 어린 술창고를 중심부에 숨겨놓게 되었어. 이번 용병대는 군대가 아니라 저주와 마법과 싸우는 셈이지. 그러니까 너희같은 어린애도 고용될 수 있게 된 거란 말이야. 너희들은 운 좋은 거야.”
어니스트는 어깨를 으쓱했다.
“게다가 용돈벌이 이상으로 짭짤할 거다. 특히 이 형님을 통하면 안전하게 거래까지 가능하지.”
카일은 덥썩 어니스트의 손을 잡았다.
“형만 믿을게요!”
“고럼. 고럼.”
어니스트도 과하게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하지만 페리온스에게는 슬몃 불안감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정말로 쉬울까?’라는 의문이었다.
페리온스에게는 비밀 아닌 비밀이 있었으니 그 것은 바로 ‘펜던트’. 누구나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시비를 좋아하는 몇 사람은 비웃으며 “네가 귀족가에서 잃어버린 자식이라도 된 줄 아나본데!”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인의 존재를 기억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악의 씨가 자신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저 악마의 도시라고 불리우는 공국을 다스렸던 분이다.
페리온스는 그 것에 대해서는 확신했다.
그 하인은 이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15세는 반드시 넘긴 이후라고 몇 번이나 다짐하듯이 말했으니까. ‘성 안은 도련님의 놀이터셨습니다. 그 중앙에 있는 관리실에 한쌍의 단도가 있습니다. 도련님, 그 봉인은 도련님이 들어서는 순간 풀려, 도련님을 보호할 것입니다. 잠자는 숲 속의 군주는 그 때 깨어날 것입니다.’
하인의 나직한 어조, 음성, 내용, 그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하인의 이름까지.
“로스. 나는 살아남겠어. 그리고 되살리겠어. 아버지의 영광을.”
갑자기 총기가 돌아온 듯이, 또렷하게 말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페리온스는 아랫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런 모습은 보여서 좋을 것이 없다고 로스가 도망치는 동안에 누누이 말했다. 웜이 돌아오면 자신은 다시 벙어리처럼 굴 것이다. 악의 씨를 없앴을까? 라는 질문에도 “아무렴요. 없어졌겠지요.”하며 바보같이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카일과 웜과 어니스트가 신나서 떠드는 동안 이렇게 멍청하게 앉아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몬스터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저도 모르게 페리온스는 정말 바보같은 말을 꺼내고 말았다. 어니스트가 커다랗게 눈을 뜨고 페리온스를 보았다. 이름부터가 뭔가 밥맛인 저 놈은 영 붙임성도 없고 분위기를 맞출 줄도 몰랐다. 하지만 저 말은 오만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혼자 있을 때 몬스터를 맞는다.”
어니스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껄껄 웃었다.
“검술을 시험해보고 싶어서요.”
페리온스는 멋쩍게 웃었다. 그제야 소년다운 인상이 풍긴다. 어니스트는 그 웃음 덕에 페리온스에게 작은 호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아직까지 마을을 습격한 적도 없다고 하니까 운이 좋은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몬스터가 나타날 확률은 크지 않겠지. 아마 이번 탐험은 중독이나 마법에 걸려버리는 것을 더 조심해야할 거야. 마법사는 귀하고 해독은 정말 어려운 거라고! 집 한 채가 날아갈만한 중독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서 나쁠 거 없지. 하지만 몬스터는 덜 조심해도 된다는 것에 내 명예를 걸지. 아마도 안 나올 거라는 얘기야.”
“검술을 정말 실전에서 쓰고 싶어서 익힌 거라서.”
페리온스는 더듬더듬 말했다.
“몬스터를 해치우는 용사라면 어느 마을에서든 환영받겠지.”
어니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려서부터 집이 없었거든요.”
페리온스의 그 말에 어니스트의 오해는 완전히 풀렸다. 그 처지는 자신도 같았기 때문이다.
“용병으로서는 정말 평범한 이야기로군.”
그러더니 어니스트는 침을 손바닥에 탁 뱉고서는 그 손을 페리온스에게 내밀었다. 카일과 웜은 무슨 더러운 일이냐는 듯 어니스트를 보았지만 어니스트는 건방진 듯 얼굴을 들었다.
“마음에 들었다. 이건 우리 용병단에서 마음에 드는 녀석을 동료로 인정할 때 손 내미는 방식이다. 어때? 페리온스?”
“좋습니다.”
페리온스는 이런 면에서는 둔했기 때문에 어니스트의 침묻은 손을 턱 잡았다. 가히 좋지 않은 느낌의 미끌거림이 손에서 느껴져온다. 그 일과 동시에 어니스트에게는 웜과 카일의 항의가 빗발쳤다.
“왜 우리는 침묻은 손바닥을 내밀어주지 않죠?”
“너희는 집이 있잖아.”
어니스트는 너희들에게는 친해지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부여하겠다는 듯 능글맞게 웃었다. 곧 침묻은 악수를 하게 되었지만 웜과 카일은 적잖게 약이 올랐다. 페리온스는 늘 외따로 다니는 듯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기 일쑤여서 약간은 질투심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 것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만은 아니었다. 카일은 그러한 감정이 더 컸으나 웜에게 있어서는 페리온스라는 원석을 독점적으로 취급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었다.
‘페리온스를 맨 처음 인정한 것은 나라구!’
라는 기묘한 자존심이었다.
웜의 맨 처음 인정을 받은 페리온스는 며칠 밤낮을 모포를 덮고 하늘을 지붕삼아 취침했다. 그래도 마차 안에 들어가서 자곤 하는 카일과 웜은 페리온스가 거친 것에 적응하는 것을 놀랍게 바라봤다.
웜이 조금 걱정스레 페리온스를 보자 카일이 뒤돌아누우며 중얼거렸다.
“저 녀석은 똥덩어리 위에서도 잘 녀석이야. 네가 그렇게 걱정해줘봤자 저 무쇠덩어리가 고마움이라는 감정을 조금이라도 느낄 것같냐. 그냥 무시하고 자.”
카일의 말은 본질을 찌르는 데가 있었다.
웜은 항상 섬세하게 페리온스를 걱정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웜의 진심은 마치 반사판에 닿듯 페리온스에게 닿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또 반면에 페리온스는 웜을 가장 좋아하는 친구로 무던히 인정하고 있기도 했다. 페리온스가 사는 세실마을에서 누가 페리온스와 가장 친하니? 라고 물으면 10명 중 7명은 웜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3명은 아마 관심도 없고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어쨌든 무심히 며칠이 지났고 가는 동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행은 가고 있었고 멀지 않은 그 언젠가 도착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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