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규모 용병단
용병들을 맞이하는 막사는 낡았고 추레했다. 대 여섯 번을 더 쓰고 걸레감으로 만들면 딱이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비바람이나 막아줄 수 있을지 의심이 가는 막사였다.
페리온스는 접수대에 이름을 적어놓고는 한참을 멀찍이 떨어진 바위에서 앉아있었다.
마디가 굵고 두터운 손은 스물은 너머되어 보였지만 아직 성장하지 않은 어깨가 그의 나이를 조금은 어리게 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17세가 된 소년이었다.
그가 이 곳에 오게 된 지는 9여년이 지났다. 마을에 적응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집도 없었던 페리온스는 내기검투장을 들락거렸고 거기에 참가하는 것으로 간신히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토박이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소년들은 페리온스를 자기들 무리에 끼워주었다.
그러나 페리온스는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전부를 보였을 때 마을사람들이 호의적으로 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모르기 때문에 너와 나, 우리는 웃을 수 있었다. 페리온스가 9년을 이 고장에서 살면서 웜이라는 친구 단 한 명에게만 보여줬던 물건이 있었다.
그 것은 팬던트였다.
그림으로나마 강제로 기억하게 되는, 그러나 자신이 태어나자 마자 돌아가셨기에 기억이 강제된 것이 틀림없는 부모님의 모습이 그 안에 있었다. 그 팬던트는 쫓겨올 때의 기분을 온 몸에 올라오도록 깊이 실감시켜주었다.
자신은 쫓기고 있었고 마을로 도망쳐 내려오고 있었다. 하인 한 명은 자신을 지키다가 죽었다. 그 생명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잊을 수 없었다.
멸망한 지오트라스 공국 공작의 단 한 명 뿐인 아들.
그 것이 자신이었노라고.
그 작은 옛공국은 이제 악마의 도시라고 불린다. 도시라기보다는 폐허에 가깝다. 그 도시는 여기 세실마을과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위치해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도시로 가느니 비잉 둘러 다른 길로 가고는 한다. ‘공국’이라는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는다.
마을사람들이 종종 기괴한 표정을 하며, “그 악의 씨를 죽였어야 했는데!”라고 말하거나 “죽었을 거요. 염려두!”라고 말할 때면 페리온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대로 최대한 뻔뻔스럽게 웃으며 “아무렴요!”라고 대꾸하고는 했던 것이다.
“악마의 도시에 순찰을 지원하려고 그래?”
접수대에 적힌 이름을 훔쳐본 웜은 자신의 이름은 밑에 적지 않고 걸터앉은 페리온스에게로 내달려와 물었다.
“그래. 어떤 곳인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페리온스는 웃었다. 가끔 검투같은 것을 할 때면 자신의 몸이 상하지 않게 꼼꼼하게 진료해주기도 하는 웜은 아버지가 의사였다. 똑똑한 아버지 밑의 문제아드님이었지만 붕대등이 넉넉해 페리온스로는 영 믿음직스럽다.
웜은 펜던트의 존재를 잘 알면서도 아무 말하지 않고 옆에 있어주는 믿음직한 친구이기도 했다.
펜던트가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페리온스 자신조차도 ‘나 따위가 뭐가 그리 대단하단 말이야!’ 하고 집어치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펜던트를 준 늙은 노인이 페리온스에게 했던 말은 아직도 페리온스에게는 직접 들려오는 듯이 웅웅거렸다.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도련님. 저 땅이 선조의 땅임을 잊어버리셔서는 안됩니다. 도련님은 반드시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라는 간곡한 음성이 왕왕 귀를 때렸다.
자기자신을 망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음에도 긍지를 잃지 않고자 노력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버려진 아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보잘 것이 없었다. 먹을 것을 빌거나, 정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구경거리라도 만들어내어 구걸했다. 페리온스가 택한 방식은 복싱과 검투였다. 복싱은 그래도 나았지만 검투는 자칫하다가는 피투성이다. 그래도 페리온스는 제법 검술에 소질이 있었다. 12살 때 반죽음이 된 이후로 인구가 2000명쯤 되는 큰 마을에서 또래 중에서는 챔피언이었다.
“거긴 전쟁터야. 검투와는 차원이 다를 거라고! 너는 나에게 말도 없이 이름을 적었어!”
웜은 고함을 쳤다.
“하지만 순찰 갔던 사람들 반은 늘 살아돌아왔잖아.”
“네가 그 반이 될 거라는 무모한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
“근육.”
페리온스는 농담처럼 말한 후 싱긋 웃었다. 페리온스는 남자아이들이 대부분 부러워하는 유연하고도 강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웜은 체질적으로 마른 편이었으므로 페리온스의 근육을 부러워했다.
“네 꼴을 보아하니 나도 의무반에 지원해야겠다. 너는 항상 걱정을 끼쳐.”
“이번 탐사는 일주일이면 끝난대.”
페리온스는 위로 하듯이 말을 건넸다. 그 둘의 대화를 듣던 도박사 카일이 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끼어들었다.
“여어, 페리. 시어머니가 따로 없지?”
웜을 두고 하는 소리다.
“웜은 올 거라는 생각을 조금 했는데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거야?”
페리온스는 뒷머리를 긁적인다.
“생존률이 50%면 도박에서는 굉장히 높은 건수라구? 게다가 배당금도 높고. 나도 일찌감치 지원해놨지! 내 이름 못봤어?”
카일은 페리온스에게 물었다. 페리온스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이름만 적는다고 못 봤어.”
“페리는 주변에는 도통 관심이 없으니까.”
카일은 주사위를 던졌다. 행운의 주사위라고 말하는 그 주사위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이 점점이 찍혀있었는데 도박을 할 때마다 들고 다녔다. 온종일 그 것을 들고 있는다.
“외곬수지.”
웜이 말한다. 가문이 그리 좋지 않은 중에서는 의사라면 최고 부르주아 중 하나다. 그런 웜의 아버지는 페리온스가 하는 검투며 싸움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서도 페리온스를 한 번 보고 나서는 “괜찮은 친구구나.”라고 인정해주었는데 그 것이 웜에게는 굉장히 기뻤다. 아버지는 외곬수를 좋아하셨다. 그리고 페리온스는 친구들이 모두 인정해마지 않는 외곬수였고 별종이었다.
페리온스는 수시로 상념에 잠겨있었다.
그럴 때 웜이 말을 걸면
“나중에 우리가 국가를 운영하게 된다면.”
이라는 기도 안찰 소리를 내어뱉는 것이었다. 페리온스는 집도 없었다. 거리의 부랑아가 운영운운하는 것은 웃긴 일이다. 기껏 야망을 가져야 술집을 운영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웜은 그런 페리의 망상에 장단을 맞췄다.
누구를 해꼬지하는 것도 아닌 그런 상상은 늘 즐거웠고 유쾌했다. 상상 속에서는 얼마든 가질 수 있었고 광산을 팔아 거대상선을 사는 것조차 쉽게쉽게 해낼 수 있었다. 조타가 망가졌으니 100골드는 깍아야겠소! 라는 말조차 부담감없이 쉽게 입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상상을 할 시간은 없었다.
난생 처음으로 용병이 된 것이다.
접수처에는 카일, 페리온스, 웜이 적혀 있었다. 웜은 “이제 접수 그만합니다!”란 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마지막으로 이름을 적어냈다.
그들은 내일 떠나야했다.
캠프는 막사를 걷고 난 후, 가지고 온 것들을 통째로 지니고 운반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짐은 곧 그들의 집인 것같았다. 동네에서 모집한 인원은 고작해야 다섯 명으로 17세의 소년이 세 명이었고 기사지망생인 형들이 두 명이었다. 그들은 아직 얼굴에 웃음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나머지 150명 가량은 얼굴에 지나가는 표정조차 없이 딱딱하게 서있었다.
“이번은 누구의 명령으로 떠나는 거지요?”
개 중 그래도 가장 친근한 성격을 지닌 것은 웜이었다. 웜은 선두에 선 얼굴이 가무잡잡한 깃발병에 대고 그가 귀찮지 않게 따라 움직이며 말을 걸었다.
“작은 강을 지나 있는 커다란 왕국에 르네백작이라는 분이 계신다.”
그는 표정만큼은 딱딱하지 않게 설명해주었다.
“그는 몇 번이나 과거 공국에 있는 악마의 도시에 가서 보물을 가져오려고 했지만 실패했어. 사람들은 모두 저주받은 보물이라고 부르며 가기조차 꺼리는데, 그 분은 아주 독특한 분이시지. 악마의 도시의 저주를 받을 필요는 없어. 우리는 지도만을 그리면 된단다. 지도만 그리고 모두 생존해가도 일인당 10골드 우리는 15골드씩 받으니 남는 장사지.”
그리고 그는 근사한 표정으로 걱정해주기까지 했다.
“너희는 처음 여행이라고 하니 크게 일 벌릴 생각하지 말고 그냥 구경하고 살펴보기만 하거라. 그 것도 모두 경험이란다.”
그제야 웜이며 페리온스는 그가 들고 있는 깃대를 낱낱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봉은 얼룩이 묻은 것처럼 짙은 물이 얼룩덜룩 묻어있었다.
“핏자국?”
페리온스가 중얼거렸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찰용병대는 100여회를 순회다니면서도 깃발을 잃어버리지 않았어. 자랑스러운 핏자국이야. 필드의 도둑놈, 고블린의 피가 잔뜩 묻어있지. 내가 깃대를 잡은 지도 3여년이 됐다만 별 일이 다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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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민하다가 올려보는 소설인데요.
우선, 그리스로마의 신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설화보다는 차용쪽입니다.) 누군가의 신념이나 종교적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소재로 차용한 것이며, 허구이며 실제의 단체, 지역, 인명등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10대 때(10대에서 20대초에 썼던 것같습니다.) 썼던 소설인 '쿤의 크림소스'와 이어지는 같은 지도를 쓰고 있는데요. 그 소설을 보지 않으셔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소설과는 느낌이 좀 다른 여자주인공 1인칭 판타지이고요, 로맨스가 없습니다. 미성숙한 점도 많았던 것같습니다. 전자책사이트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리 써둔 분량은 엔터를 쳐서 300페이지, 엔터를 치지 않고는 200페이지 정도를 써두었는데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써둔 분량은 완결이 아니더라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안써질 때는 지독히 안 써지기 때문에... 어떻게 될 지 모르겠네요.
지도는 쿤의 크림소스와 공유하고 있습니다. 서쪽은 쿤이고, 동쪽은 이바입니다.
그럼 즐겁게 봐주세요.
저도 사람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주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바라고 있습니다만,
글도 유기체같을 때가 있어서 뜻대로 통제가 안될 때도 있는데요, 어쨌든 올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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