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리 선배를 보았다.
“술 한잔하지 않을래?”
“네?”
“아냐. 술 한 잔 사줘.”
“……그러시죠.”
선우는 금세 또 수긍했다. 차는 출발했다.
서리 선배가 먹고 싶은 메뉴로 골랐다. 서리 선배는 원하는 게 단순하고 심플한 것 같다. 우리는 막창을 먹으러 오게 되었다. 서리 선배는 막창이라고 했지만, 선우는 소 곱창과 막창을 함께 파는 곳으로 운전해서 왔다. 은색으로 된 둥근 테이블에 간격이 넓었다. 연기가 은은하게 퍼진 가게 안에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웅웅 퍼졌다. 아저씨들이 많아 보이는 가게였다.
“사주는 거야?”
서리 선배가 물었다.
“네, 선배에겐 사드려야죠.”
선우는 친절한데 사무적이다. 역시 유명한 히어로는 기자들에게 약한 것 같다. 내가 그렇듯 무서워하지는 않겠지만.
“아냐. 내가 살게. 내가 오자고 했으니까.”
“사양하지는 않겠습니다.”
“언니, 소 곱창 3인분이요!”
소 곱창은 처음 먹어본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서리 선배를 보았다. 이 선배는 기자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몰라.
“이리 내! 굽는 자세가 안 됐어.”
그리고 선우가 든 고기를 빼앗아 들었다. 선우도 고기 굽는 건 초짜 티가 많이 났기 때문에 그냥 서리 선배에게 넘겨주었다.
서리 선배는 그새 기분이 많이 풀렸는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우리를 보았다.
“아휴, 귀여운 것들.”
“…….”
역시 좀 무섭다.
“너희는 귀여운데 수선화 걔는 왜 그런다니!”
그리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수선화에 대해 험담은 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고 선우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서리 선배는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끝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말이야. 아주……내가 말이야. 오늘 놀이공원에서 ……서러워서 진짜. 그래서 말이야……응? 아주 완벽히 잘났어요, 히어로들!”
“죄송합니다.”
선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뒤이어 조용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미안할 거 없어. 어서 먹어! 다 익었다.”
“네.”
뭔가 돌 삼키듯 씹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소 곱창을 하나 집어 들었는데, 입에 들어가는 순간, 맛있다. 사르르 녹는다.
“수선화 걔, 언젠가 혼쭐을 내 줄 거야!”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목에서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기사로 혼쭐을 내주는 건, 내게는 너무 두려운 일이었다. 수선화에게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아냐! 그건…… 그건 분명 악의였어! 죽을 뻔했다고!”
“선화가 되게 단순해서.”
“어머, 너 편드는 거니?”
“아닙니다!”
나는 기합을 받듯이 작게 외쳤다.
“걔, 나를 견제한 거야. 안 그래?”
“음, 그렇게 섬세한 애가 아니에요…….”
“걔, 좋아하는 남자 있어?”
“한 번 물어볼게요. 없을걸요.”
“꼭 한 번 물어봐.”
서리 선배는 눈을 빛냈다. 아까 울던 사람이 맞을까.
“자 마시자!”
서리 선배가 잔을 들었다. 선우와 나도 잔을 들었다.
서리 선배를 바래다주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리기사 아저씨가 차를 세워두고 어디론가 가버린 후, 우리는 일 층 부엌에 있는 식탁에 앉았다.
“고생했어.”
우리는 동시에 말했다. 그리고 마주 보고는 서로 피식 웃었다.
“의외로 수선화의 활약이 대단했나 보다.”
“사람 간의 상성이 있다면, 수선화가 이기나 봐.”
“너랑 잘 지내는 거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단순하고 편하기도 하고 그래.”
“이찬이 형이랑은 무슨 일 없었어?”
선우가 잠깐 멈칫하다가 물었다.
“음, 별일은 없었는데, 나보고 착하대.”
“착하대?”
“응.”
“희한하네. 너 안 착한데.”
“뭐라고?”
나는 선우를 째려보았다. 선우는 피식했다.
“복잡하고 까다롭고.”
왜 얼굴이 뜨거워질까. 나는 손을 내저었다.
“아 됐어. 빨리 가서 자.”
“알았어.”
선우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이 번졌다. 나는 얼른 2층으로 올라갔다.
일주일 뒤에 우리는 다시 모였다. 밤늦게 순찰을 다닐 방범대원으로서였다. 다들 안색이 말끔했다. 그동안 마음고생 한 사람은 없는 듯한 얼굴이다. 나는 수선화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그날, 잘 들어갔어?”
“잘 들어갔지. 그때 문자했잖아.”
문자로는 안색까지는 알 수 없으니까.
“아무튼, 고마웠어. 같이 가줘서.”
가끔 수선화는 기대하지 않았던 말을 해준다.
“응.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좋아하는 사람 있어?”
“……여기서?”
수선화의 냉정한 물음에 나는 옆을 둘러보았다. 큰 관심은 없어 보이지만 선우와 이찬오빠가 기지개를 쭉쭉 켜며 앞으로 나가고 있다.
“내일 카페 콜?”
나는 물었다.
“콜.”
수선화가 대답했다.
다음 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방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2층에는 방이 세 개였는데, 그중 한 방을 침실로 쓰고 있었다. 침실이기도 했고 다른 방을 어지르기 싫어서 거의 여기에만 있다.
“왜?”
나는 잠시 드라이기를 멈추고 물었다.
“수선화를 상대해야 할 텐데, 적지로 가는 길에 배고프지 않아?”
“적지라니…….”
그나저나 오늘은 쉬는 날인가? 쉬는 날이라 해도 호출이 오면 바로 나가야 하지만. 선우는 헛기침했다.
“크흠, 아침 해놨어.”
“네가? 진짜?”
나는 방문을 열었다. 선우의 살짝 긴 앞머리가 미간 따라 살짝 움직였다.
“내려와.”
“이것만 말리고.”
나는 빠르게 머리를 말리고 밑으로 내려왔다. 밑에는 토스트와 달걀 하나가 익어있었다. 달걀은 후라이였는데, 노른자가 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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