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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칫덩이들. 너희를 없애주마.”

 

그 옆에 난쟁이에 눈이 열 개가 달린 괴생명체가 나타났다. 나는 그 녀석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환상 대장 겔티!”

 

“키키키키키.”

 

“우리를 쫓아온 거야?”

 

나는 짐짓 호기롭게 외쳤다.

 

“히어로 카를 보면 속이 뒤틀려서 참을 수 없다.”

 

겔무는 그렇게 말하고 바닥에 채찍을 내리쳤다. 나는 바짝 긴장했다. 기술을 혹시 훔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기술은 1번만 쓸 수 있으니 조심해서 써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술의 숫자가 너무 적다.

 

“겔무의 기술을 훔칠 생각은 하지 마. 저놈은 기술을 쓰는 게 아니라 몬스터를 만들어 와.”

 

선우는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남았을까. 그럴 동안 철창은 계속 박혔다. 위를 올려보자 위도 막혀 있다. 완전히 새장 안에 갇힌 꼴이 되어버렸다.

 

“키키키, 일루젼!”

 

거기에다 환상까지 덧씌워진다. 자동차의 모양과 그림자조차 지워진다.

 

나는 머리가 지잉 울렸다. 철창 뒤로 전에 보았던 분홍과 초록이 다시 시야를 뒤덮었다. 애매한 공감각만이 남아 있었다.

 

끼이익!

 

높은 비명소리. 아까의 몬스터가 새장에 들어왔다.

 

“데스매치다!”

 

이미 윤곽이 보이지 않는 겔무가 외쳤다. 멀찍이서 채찍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덩치가 큰 새가 내게로 날아왔다. 나는 팔로 얼굴을 감싸고 넘어졌다. 빠르게 선우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새가 부리로 나를 쪼는 것을 빠른 속도로 ‘챙챙’하는 소리와 함께 막아냈다. 나는 망설였다. 기술을 무한정 쓸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는 겁 없이 썼는데, 한정된 자원이라고 생각하자 운용능력이 없어진다. 게다가 선우까지 옆에 있으니 뭘 해야 할지 더 막막해진다. 선우는 내 앞에 서서 나지막이 외쳤다.

 

“침착해!”

 

“알았어. 철창부터 없앨게.”

 

나는 화면에 뜬 암흑오라와 황금주먹을 번갈아 보며 다시 망설였다. 새가 다시 높이 올랐다가 거대한 부리로 다가왔다. 나는 간신히 피했다. 아스팔트 바닥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암흑오라!”

 

나는 철창을 향해 오라를 날렸다.

 

“일루젼은 깨지지 않는다!”

 

겔무가 외쳤다. 그 말대로 잠깐 화면이 일그러졌을 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선우는 다시 내 앞에 섰다. 내가 방해되는 것만 같다.

 

“새장과 일루젼이 결합하여서, 위력 B로는 아슬아슬하게 무리인 것 같아. 그럼, 소라야. 잠시 눈을 감아봐.”

 

선우가 말했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경험치로는 확실히 선배이니까 나는 믿고 눈을 감았다.

 

선우는 침착하고 낮게 말했다.

 

“섬광, 레이저.”

 

용광로에서 빛을 내리쬐듯이 타다닥하는 소리가 났다.

 

“눈 떠도 돼.”

 

나는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렸다. 선우의 손바닥의 짙은 그림자가 보였다. 내 눈을 막아주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들어 올렸다. 그의 손도 고맙긴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야 할 것 같다.

 

분홍과 초록은 없어져 있었다. 위를 보자 어둑어둑한 하늘에 빛 번짐이 일어나 있다.

 

옆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일어섰다.

 

그러자 철장이 다 잘려나간 모습이 보였다. 날카로워서 위험해 보인다.

 

겔티와 겔무도 히어로카 너머에 서있었다.

 

“에잇!”

 

그들은 히어로카에 불을 질렀다.

 

선우의 표정이 굳었다.

 

끼이익! 

 

여전히 곰 모양의 새는 울고 있었다. 스텔라 맨은 사라졌다. 그 것이 선우의 주특기라는 것은 알고 있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것인지, 진짜 투명한 것인지는 아직 알지 못했지만. 그리고 순식간에 새는 추락한다.

 

나는 눈을 찡그렸다. 그대로 철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사라졌다.

 

겔티와 겔무는 재빨리 작은 우주선에 탑승했다. 아까 큰스님이 있던 방만한 크기의 우주선이다. 선우는 그들을 쫒아가다가 포기하고 다시 내려왔다. 불이 아직 타오르고 있었다.

 

“괜찮아?”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아. 히어로카니까 불 정도는. 그래도 오늘은 타고 가지는 못할 것같다.”

 

불에도 견디는 차라니 의외다. 대단하다. 선우가 화나긴 했지만 태연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선우는 시무룩하게 말했다.

 

“괜히 가져왔나보다. 차.”

 

“아니야. 우리 히어로잖아.”

 

“너한테 미안해서.”

 

“마음만으로도 고맙네요.”

 

“그래도 뿔 때문에 걱정했는데 큰 일은 없을 모양이다.”

 

큰스님이 말하지 않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나는 픽 웃었다. 선우는 완벽한 줄 알았는데 이런 부분도 있었구나. 그냥 사실만을 바라보면, 나는 곧 죽을 건데. 카모스가 거짓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죽으면 나는 히어로로서의 의무는 다한 거야.

 

“보고했어. 곧 차가 올 거야.”

 

“날아가지 않고?”

 

“너를 그 정도로 돌릴 수는 없지.”

 

선우는 털썩 바닥에 앉았다.

 

“잘 됐다. 그동안, 네 능력에 대해 알려줘. 궁금해.”

 

“그건 기밀이야.”

 

“나한테도?”

 

선우는 빙긋 웃고는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 뭔가 내가 운동하다가 뻗댄 것처럼, 그때의 데자뷰를 보는 것 같다. 나는 나도 같이 드러누워 버렸다. 철창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다. 그라운드에서 뻗은 두 명의 라이벌같이 우리는 누워있었다.

 

 

방학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끈적끈적하게 녹아내리는 여름의 저녁 날, 우리는 순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라 하면 선우, 나, 이찬 오빠, 수선화를 말했다. 하나의 팀답게 여러 사건으로 호흡을 맞춰가고 있었다.

 

우리 네 명은 그동안 자주 어울렸다. 선우는 자주 빠졌지만 오늘처럼 밤늦게 손전등을 키고 돌아다니며 함께 있는 적도 많았다. 블루헤드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강도나 좀도둑들을 잡거나 홀에 빠진 사람을 구해내거나 했다.

 

수선화의 능력도 이제 분석이 끝났는데, 내 능력으로 봐서도 알겠지만, 분석이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수선화의 능력도 잠재력이 더 커 보이는 능력이다. 뭐든 찢을 수 있다고 했다. 철이든, 시멘트든, 더 나아가 차원이든.

 

그 이야기를 듣고서 선우는 딱 한 마디를 했다.

 

“기가 질린다.”

 

라고. 어쩌면 선우의 능력과는 상극일까? 비슷하게도 느껴지는데.

 

어쨌든 우리는 딱딱 소리를 내며 저녁의 골목길을 거닐었다. 땅거미 진 어둠 곁으로 가로등의 불빛이 희미하다.

 

가로등의 불빛과 섞인 어둠과 벽돌은 마치 커피색을 하고 있다.

 

“수상한 인기척이 있는데.”

 

앞장선 선우가 중얼거렸다.

 

“좀도둑인가?”

 

이찬이 휙 건물 사이의 좁은 건물을 들여다보았다. 놀랍게도 깜짝 놀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 불빛에 우리도 깜짝 놀랐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세 사람이었다. 그중 한 명은 익숙했다.

 

“서리 선배!”

 

나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방송언론학과, 신문부 정서리선배였다.

 

“우릴 찍고 있어요?”

 

선우가 반갑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냐. 우리 정보에 따르면 여기에 오늘 블루헤드의 출현확률이 가장 높다고 해서…….”

 

다급하게 변명하던 서리 선배는 변명하다가 냉정함을 되찾은 듯 훗 웃었다.

 

“반갑다. 히어로들.”

 

“갈까?”

 

이찬이 아이들을 독려했다. 나는 몸이 잠시 굳었지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알려지는 것도 히어로의 숙명인데, 알려지는 것은 어쩐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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