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사장님.”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겠죠. 나는 계속 옆을 지킬 거니까. 만약 그가 배신한다면.”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요.”
“……알겠습니다. 내가 말실수를 했군요.”
“네.”
이선은 빙그레 웃었다.
“어쨌든.”
해준은 작은 보석함을 내밀었다.
“나와 결혼해주겠습니까?”
이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해준이 어떤 말을 할지는 대충 예상했지만 결혼까지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선은 보석함을 열어보지 않고 그대로 해준에게 밀어놓았다.
“미안해요.”
“일주일.”
해준은 탄식하듯이 말했다.
“기다리겠습니다.”
“사장님.”
해준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그리 순수하게 잘해주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당신이 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놓은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딱 와인 한 잔만 하고 가시죠.”
이선은 어느새 웨이터가 올려놓은 잔을 해준과 짠 부딪혔다.
해준은 약속대로 딱 한 잔으로 끝내고 식사를 다 마친 뒤, 대리기사를 불러 이선을 바래다주었다. 이선의 집도 그 새 20평짜리 아파트로 바뀌어 있었다. 대리기사는 해준을 보더니 놀란 눈치였다.
“남자를 너무 믿지 마세요. 남자는 바뀝니다. 성공하면 더욱 더요.”
그리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선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진해준씨도 남자잖아요. 이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말이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는 이미 진해준이 차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일주일. 길었다.
이선은 초조하게 일주일을 기다렸다. 자주 본점에 나타나는 이선을 보고 천우는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그런 말을 전했다.
몇 년째였지만 여전히 미리가 자주 앉아있었다. 이선은 미리를 보고 진형의 안부를 묻고 싶은 심정을 겨우 억눌렀다. 이제 겨우 며칠이다. 며칠을 망칠 수 없었다.
드디어 5년 후, 그 날이었다.
이선은 아침부터 미용실에 가서 단장하고 몰래 향수도 뿌렸다. 본점 앞에 나타나자 천우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장님, 달라지셨는데요?”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말랬지.”
“아 참. 실수했다. 분위기가 달라지셨어요. 아름다우세요. 오늘 무슨 날인가요?”
천우도 그 새 말주변이 좀 늘었다. 이선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미리와 천우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미리는 눈치가 빨라 눈치를 챈 듯도 했지만 천우는 도무지 둔하다.
“그냥.”
“바쁘지 않으세요?”
“오늘은 비워놨어. 여기서 감시하려고. 천우씨를!”
이선은 짓궂게 말했다. 천우는 그대로 얼음이 된 것 같다.
“이제 정말 괜찮습니다.”
천우는 쩔쩔매다가 다시 맨바닥에 미끄러질 뻔했다. 홀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천우는 얼굴이 벌겋게 됐다.
“농담이야. 추억이 깃든 곳에서 쉬려고. 너무 신경 쓰지 마. 천우씨.”
“네. 알겠습니다!”
그러나 천우에게는 계속 이선이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이선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뭐 하는 거야. 얼른 나타나지 않고. 천우가 신경 쓰여 하잖아. 진형의 책임으로 돌려 보는 이선이었다.
나타나는 듯하면 다른 사람이었고, 또다시 나타나는 듯하면 또 다른 사람이다. 이윽고 1시가 지났다. 이선은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3시. 아, 역시 바람맞은 건가. 이선은 해준의 말을 생각해냈다. 체념하고 아이스커피를 시켰다. 그래, 진형은 자신을 배반한 것이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툭툭 두드렸다. 이선은 휙 뒤돌아보았다.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넥타이를 매고, 푸른색 셔츠에 조끼. 덥지 않을까? 싶었지만 점점 시선이 위로 올라갈수록 놀라움이 커졌다. 그렇게 깔끔한 진형은 처음 보는 듯하다.
“아, 안녕!”
진형은 더듬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얼굴은 이미 감출 수도 없게 빨갛게 물든 후였다.
“푸훕.”
왜 그때 웃음이 났을까. 이선은 그만 웃고 말았다. 진형은 더 빨개지며 성질을 냈다.
“왜, 왜 웃어!”
“왜 이렇게 멋 부린 거야!”
“너, 너야말로!”
예전과 아주 똑같다. 진형은 큼, 헛기침하더니 이선을 보았다.
“아냐. 아주 예쁘고 멋있어.”
“어, 좀 발전했는걸.”
“너도 보답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멋 부린 거냐니. 당연한 거잖아.”
“당연한 거라니. 날 좋아하는 건 너잖아?”
이선은 뻔뻔함을 부려보았다.
“그래. 내 사랑은 변하지 않아.”
진형은 진지하게 이선을 바라보았다. 이선은 싱긋 웃었다.
“사귈래? 결혼할래?”
“뭐, 뭐, 뭐, 어, 어느 쪽이든! 준비는 되어있어. 난 결혼 쪽이…….”
“농담이었어. 커피나 마시자.”
진형은 실망과 원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이선을 보았다. 그러다가 뭔가를 내밀었다. 금은방에서 나온 듯한 작은 상자였다.
“뭐야?”
“목걸이. 선물.”
“어, 좀 발전했는걸.”
“받아줘.”
“응.”
“그리고 결혼 전제로 사귀어 보지 않을래?”
“응.”
“응?”
“응.”
진형은 힘껏 팔을 올려 즐거움을 표시했다. 주변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둘 다 얼굴이 벌게졌다. 주변을 의식하지 못했다. 둘은 도망치듯이 재빨리 가게 밖으로 나왔다.
진형의 차가 밖에 있었다. 진형은 차 문을 열고 이선을 태웠다. 이선도 기꺼이 올라탔다.
“가자! 앞으로!”
“유후!”
둘은 모처럼 서로 통했다. 정말 더딘 걸음이 이제야 맞닿은 것 같다. 앞으로는 함께 걸어 나갈 일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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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에 항상 약한 편이지만...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아라에도 노블레스로 올린 적이 있었지만, 내린 바가 있는데요,
조아라운영팀의 양해로 블로그에도 올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여기까지는 미리 써두었는데요
오늘 공감이 있어서 기뻤습니다
좋은 감정을 선물해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다
조금 정돈하고 다시 소설을 올리도록 할게요!
좋은 나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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