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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층에서 투신자살. 뭐 괜찮지 않아?”

 

이선은 재빨리 다가오는 해랑의 팔목을 꺾었다. 해랑은 휘청 휘어지더니 옥상 난간에서 기우뚱했다. 겨우 중심을 잡은 해랑이 중얼거렸다.

 

“방심했다.”

 

해랑은 씨익 웃었다. 이선은 재빨리 뿌리치고 달려가는데 해랑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다시 달려온다. 잡히는 것은 금방이었다.

 

“멈춰! 이 개새끼야!”

 

남자의 고함이 들렸다. 이선에게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았다. 진형은 욕은 잘 하지 않는데. 이선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두두두 돌진해오는 체격 큰 남자는 해랑을 힘으로 밀어붙였다. 해랑은 질질 밀려나다가 쿵 넘어졌다. 진형은 해랑의 위에 올라탔다. 뺨따귀를 주먹으로 날리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팔을 잡았다.

 

“때리면 안 돼.”

 

이선이 걱정스럽게 진형을 보았다. 진형은 일이 커진다는 뜻으로도 알아들었다. 진형은 해랑을 노려보았다.

 

“너도 여기서 죽는 건 어때?”

 

“그만둬!”

 

이선의 외침이 있었지만, 진형은 해랑을 질질 끌고 가서 난간에 세웠다. 해랑의 눈에도 겁이 서렸다. 자신에게 이랬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광기와 겁이 서렸다.

 

“죽여봐라!”

 

“살려달라고 할 때까지 놔주지 않는다. 너도 한 번 놀라봐야 다시는 안 찝쩍거리지. 아 그러다 죽을 수도 있고?”

 

“감방에 갇히고 싶냐?”

 

“감방? 죗값 받고 오면 되지! 네가 설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협박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처음이다. 해랑은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놔! 이거 놔!”

 

“정 네가 살고 싶다면 이선이한테 부탁할 수밖에 없을걸!”

 

“이런 비천한 것들한테!”

 

그러나 해랑은 버둥거려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윽고 해랑은 약해졌다.

 

“살려줘!”

 

“이선이보고 말해.”

 

해랑은 이선을 보았다. 이선은 계속 진형의 한쪽 팔을 붙잡고 늘어져 있었는데 진형은 미동도 없었다.

 

“그만둬! 진형아.”

 

“사, 살려줘.”

 

해랑은 간신히 내뱉었다.

 

“이선아 어떡할래?”

 

“놔줘! 살인할 셈이야?”

 

“너 빚졌다. 이선이한테.”

 

“놔!”

 

다시 해랑이 버둥거린다.

 

“어허……. 안 놔준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다……시는 안 그럴게.”

 

“좋아.”

 

진형은 해랑을 바닥으로 내던져버렸다. 그는 한참을 캑캑거렸다. 복수의 눈빛으로 진형을 보다가도 진형과 눈이 마주치면 바로 시선을 피해버린다. 경찰이 오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김영환이 헐떡거리며 말했다.

 

“밑에 조폭들이 쓰러져있던데.”

 

“모르는 일입니다.”

 

진형은 시치미를 뚝 뗐다. 이선은 놀랍게 진형을 보았다. 조폭하고도 싸운 거야? 아직 손이 벌벌 떨린다. 영환은 시치미를 떼는 진형을 그냥 넘어가 주었다.

 

“그렇겠죠. 여긴 경찰이 진압한 거고요. 진형씨는 도와준 거고요.”

 

어쩌면 윈윈이다. 봐줬다. 김영환은 씨익 웃었다. 진형도 씨익 웃었다. 모처럼 마음이 통했다.

 

경찰이 해랑을 데려가고 진형과 이선은 따로 차를 타고 갔다. 경찰차가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이선의 집을 먼저 가고 있는데 진형이 이선의 손을 붙잡았다. 계속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손.

 

“저도 여기에 내려주세요.”

 

이선은 놀라 진형을 보았다. 우리 집에서 내리겠다니. 하지만 지금은 반가운 소리다. 태연한 척 있지만 정말 누구라도 곁에 있었으면 싶으니까. 지금은 혼자 산다는 사실이 너무나 버거우니까.

 

“……고마워.”

 

이선은 작게 말했다. 진형은 분명하게 그 소리를 들었다. 그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고마울 일이라고는 단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집에 도착하자, 이선은 작은 방 안에 불을 켰다. 작지만 아담하게 꾸며져 있는 방안은 작은 소파가 세 개쯤 있었고 소파마다 쿠션이 놓여있었다. 침실은 심플했지만 푹신해 보였고 노트북과 의자가 함께 놓여있다. 진형은 소파에 앉았다.

 

“맥주 줄까?”

 

“응. 아무거나.”

 

붉어진 얼굴을 어떻게 숨겨야 할지 모르겠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지 않았다.

 

“아 있잖아.”

 

침묵 끝에 이선이 입을 열었다.

 

“응.”

 

진형도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간단히 대답했다.

 

“내가 있는 곳, 어떻게 안 거야?”

 

“느낌이 왔어. 직감.”

 

“진짜야?”

 

“음, 시호역 주변에 가장 높은 빌딩을 살펴봤는데, 제일 높은 빌딩에 덩치들이 서 있더라고. 감이 왔지.”

 

“그랬구나.”

 

“운도 좋았지만.”

 

“네가 찾아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진형은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위험할 때 싸워버리다니. 이선은 차갑게 한 맥주를 진형의 앞에 내밀었다.

 

“그래서 별로 겁먹지 않았어.”

 

“거짓말.”

 

진형은 말했다. 진형에게는 그 미세한 이선의 손 떨림이 아직 남아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이선은 진형에게 물었다. 아직 무엇도 듣지 못했다. 사업계획도, 그의 자세한 마음도. 진형은 미리 생각해둔 것처럼 차분하게 말했다.

 

“많이 생각해봤는데, 너를 지킬 때까지 시간이 필요해.”

 

“뭐?”

 

“너에 대한 내 마음은 진심이야. 그냥 꾸며서 하는 말이 아니야.”

 

“…….”

 

이선 자신도 그 마음을 어쩐지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도 그와 점점 같아지고 있으니까.

 

“감옥에 들어가면 절대 못 나올 거야. 그때까지는 같이 다니자. 그리고 우리, 각자의 일에 전념하자. 내가 너를 책임질 수 없다면, 너는 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가라. 그게 누구든…… 네가 선택하는 대로.”

 

“섭섭하네. 이진형.”

 

“이대로라면 더 추한 모습을 보이고 점점 더 섭섭해질 거야. 그럼 정도 떨어지겠지.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간 5년. 5년을 정해두자. 그 때 만나는 거야.”

 

“어디서?”

 

“바리스타 정에서.”

 

“좋아. 네가 정 그렇다면.”

 

만화사업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진형은 맥주를 쭉 들이켰다. 그리고 이선을 알게 되었다.

 

‘아, 얘 술 못 마셨지…….’

 

진형은 졸린 눈으로 이선을 보았다. 분명히 저 눈은 약간 정신을 잃기 직전이다.

 

“네가 침대 가서 자라. 나 소파에서 잘게.”

 

저렇게 당연한 말을 저렇게 결연한 각오를 다지듯이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래 간다.”

 

“이선아. 잠깐만 나 예전부터 소원이 하나 있었다.”

 

이건 뭐지? 술주정인가?“

 

“뭔데?”

 

“너랑 입 한 번 맞춰 보는 거.”

 

“하, 무드 없어.”

 

이선이 그 말을 하는 사이 진형의 그림자가 이선에게 드리웠다. 이선은 찡긋 한쪽 눈을 감았다. 진형은 가볍게 이선에게 쪽 입을 맞추더니 그대로 뻗어 잠이 들었다.

 

“28살 먹고 키스도 아니고 뽀뽀라니…….”

 

이선은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제 조금씩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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