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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합니다. 다음에 인연이 된다면…….”

 

“좋은데 갈등구조가 약하네요. 저희와는 맞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도심의 빌딩은 거대한 나무처럼 늘어서 있었다. 그 안의 틈은 매연과 찬 바람으로 가득하다. 진형은 그 틈새 사이에 서 있었다.

 

진형은 까끌까끌하게 메마른 자신의 입술을 매만졌다. 얼굴이 건조하다.

 

몇 번째지?

 

헤아려본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수십 번째는 되리라. 5번을 세고 나서 다음부터는 세지 않았다.

 

도시의 콘크리트 숲속 안에서 진형은 갈 곳 없는 눈동자를 굴려 저 멀리 구름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구름은 자유로이 떠돌고 있었다. 진형은 깊은 곳에서 우러난 한숨을 쉬고 나서 하늘을 보며 몇 발자국을 옮겨내었다.

 

통장에 잔액이라고는 100만 원밖에 없었다. 집세만 내도 석 달이면 다 떨어질 금액이다. 입술이 바싹 말랐다.

 

자신도 욕심을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기만은 될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하아…….”

 

더 생각해봤자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진형은 한숨을 삼키고 하염없이 걸었다. 정신을 놓고 걷자 발걸음 따라 도착한 곳은 어느 골목 안의, ‘바리스타 정’ 간판 앞이었다.

 

“지금 시간에 이선이가 있으려나.”

 

진형이 발걸음을 머뭇거리고 있을 찰나였다. 비닐봉지가 가볍게 진형의 등을 두드린다. 뒤를 돌아보자 이선이 길게 묶은 머리를 나풀거리며 서 있었다.

 

“왔으면 들어오지?”

 

“아아.”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그게 말이야.”

 

“들어와! 추워!”

 

이선은 먼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서 들어오지 않는 진형을 답답하다는 듯 재촉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진형은 이선이 폭발할까 재빨리 가게 안에 들어간다. 가게 안은 따뜻해서 얼어있는 얼굴을 금세 녹여주었다.

 

이선은 프라이팬을 씻고 원두를 볶기 시작했다. 진형은 말없이 바에 앉았다.

 

“뭐해?”

 

진형이 묻자, 이선은 프라이팬에 원두를 넣고 흘낏 진형을 보았다.

 

“오늘 이가체프랑 인디아 원두 새로 들어왔어. 너 인디아 좋아하잖아. 한 잔 내려줄게.”

 

“흠, 뭐 도울 거 없어?”

 

“앉아서 미소를 짓도록 해.”

 

진형은 그제야 입꼬리를 올려 본다. 그러나 누가 봐도 강제로 입꼬리를 잡아당긴 표정이었다. 이선은 드리퍼를 씻으며 개수대와 맞닿아있는 바의 탁자에서 진형을 마주 보았다.

 

“항상 즐거워 보여서 짜증 났는데 입가가 처져 있으니까 그것도 보기 좋지 않네.”

 

“뭐어……. 티가 났나?”

 

“인생사 그런 거지.”

 

“또 떨어졌다. 하하. 내 거, 재미가 없나 봐.”

 

이선은 가만히 있어도 째려본다는 소리를 제법 들어왔었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진형을 째려보았다.

 

“같은 원두, 같은 온도라도 맛이 다른 거 알아?”

 

“응. 드리퍼 구멍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다며?”

 

“사람이 하는 거니까, 개성마다 다양한 맛 중에 최고가 뭐겠어?”

 

“뭔데?”

 

“그 사람의 경험. 그다음은 만든 사람의 정성.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네 만화도 정성이 들어가 있다면 누군가에겐 그게 최고야. 그걸 잴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지금 평가가 낮다고 해서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

 

“고마워.”

 

진형은 씩 웃었다. 그리고는 덧붙인다.

 

“그래도 개선은 해야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는 말란 소리지. 나도 장사가 안되면 남들을 모방해서 바뀌거나 원두 관리도 대충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러지는 않기로 했어. 손님이 적건 많건, 우리 집 커피는 맛있으니까.”

 

이선은 말없이 물을 붓기 시작했다. 얇은 물줄기가 빠르게 원을 그린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커피 한 잔이 완성되었다. 이선은 그 컵을 진형에게 주고 나서 자신의 커피도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뭐, 맛있다.”

 

진형은 따뜻한 컵을 붙잡고 음미하듯 향을 불어넣으며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깊고 진한 맛이었다.

 

“여기서 좀 그리고 가야겠다.”

 

진형은 씨익 웃었다.

 

“그러던지.”

 

이선은 무뚝뚝하게 내뱉고는 선반 정리를 시작했다. 천우가 곧 허겁지겁 뛰어왔다. 진형은 손을 흔들었다. 천우는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지각인가요?”

 

“아냐. 5분 전이야. 천천히 준비해.”

 

이선이 선반 사이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

 

 

-장사는 잘돼?

-아니. 전혀.

 

밤이었다. 이선은 친구, 혜은의 안부 문자를 보고 늦게나마 답장을 했다. 장사가 되지 않아도 낮에는 원두를 관리하는 데에 온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연락이 온 친구들에게 답장하고는 했다. 그래선지 장사를 시작하고 나서 점점 연락은 드물어졌다. 사회생활은 시작했는데 점점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어 이선은 종종 쓸쓸해지기도 했다.

 

-한 번 놀러 가야 하는데

-언제든 놀러와

 

그러나 혜은도 직장이 자신의 가게와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있었다. 자주 가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주말이면 잠자기 바쁜 혜은이었다. 예전처럼 자주 보지는 못했다. 이선은 망설이다 혜은에게 톡을 보냈다.

 

-주말에 한 번 볼래?

-이번 주말은 안 될 것 같아.

-그래?

-응 남자친구가 온대서. 미안해.

-아냐. 괜찮아.

 

이선은 이불은 감싸고 뒹굴거리며 스마트폰을 만졌다. 스마트폰으로 웹서핑을 하는 시간이 하루에 허락된 달콤한 휴식시간이었다.

 

-뭐해?

 

그때 카톡소리가 울려퍼졌다. 뜨는 이름을 보니 진형이다. 자신의 웃는 얼굴을 프사로 해놨다. 인상좋은 대형개같은 얼굴이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이선은 대답을 하지 않고 넘어갈 찰나였는데, 또 한 번 카톡이 울렸다.

 

-사이트에 내 웹툰 좋아요 좀 눌러줘. 요기 링크.

 

이선은 얼굴에 짜증이 묻었다. 나의 쉬는 시간을 방해하다니. 그래도 사이트에 들어가 좋아요를 한 번 누르고 다시 웹사이트로 돌아왔다. 입을 시간은 없지만 원피스를 한 번 사볼까 싶었다. 쇼핑몰을 둘러보는데 진형의 톡이 다시 왔다.

 

-댓글 달았어?

 

“아 진짜 귀찮네!”

 

이선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다시 링크를 찾아들어갔다. 그래도 아주 인기가 없는 건 아닌지 100여 명의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있었다. 이선은 가식적인 댓글 하나를 달고 나왔다.

 

‘잘봤어요^^’ 

 

-이거 댓글조작아니야?

 

그리고 진형에게 퉁명스러운 톡을 하나 보냈다.

 

-고마워. 반응이 좋으면 한 명이라도 더 볼까 싶어서. 그리고 너도 보긴 했잖아. 나의 첫 독자.

 

이선은 다시 진형의 톡을 무시하고 뒹굴거렸다.

 

-정이선. 이번 주말에 볼래?

 

주말약속이 취소된 참에 유혹적인 소리였다. 이선은 귀찮은 일을 시킨 것에 대해 짜증을 더 내고 싶었지만 마침 약속이 있었으면 했기 때문에 진형의 말에 그런 감정이 스르르 녹았다.

 

-그러지 뭐.

 

 

주말 아침. 이선은 주문한 원피스를 입고 거울 앞에서 스슥 돌았다. 모처럼 꾸미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종종은 혼자서도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도무지 밖에 나가지지 않았다. 집 안에서 푹 퍼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밖에 나가서도 어쩐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비록 익숙할대로 익숙한 진형이었지만 혼자보다는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았다.

 

“여어, 새로운데.”

 

진형은 약속장소에서 손을 흔들었다. 항상 입는 와이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체격이 좋아서 그런 평범한 차림에도 멋이 났다. 이선은 그런 진형을 살피다가 한 마디를 던졌다.

 

“넌 똑같아 보이네.”

 

“……한껏 꾸민 거야. 평소와 똑같은 건 늘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내 모습…….”

 

“됐어. 나한테 꾸밀 필요도 없는 거고.”

 

“쳇.”

 

투덜투덜, 진형은 툴툴거리며 이선의 뒤를 따라갔다. 이선은 팔랑팔랑 앞서 나가다가 귀고리를 파는 가게에서 멈칫했다. 유리창으로 된 가게 안에는 장신구들을 팔고 있었고 싼 귀고리등은 바깥에 나와있었다.

 

“가는 곳을 정하고 가자.”

 

여전히 진형은 툴툴거리고 있었는데 이선이 진형의 팔을 끌었다.

 

“가는 곳을 정했어.”

 

“아악-! 정이선, 쇼핑하려구!”

 

“쇼핑하려고 나온 거 아냐?”

 

“아니야! 난 너랑…….”

 

“나랑?”

 

“아냐. 됐어. 내가 뭔 말을 하겠냐. 쇼핑해.”

 

“응. 알았어.”

 

이선은 작은 가게마다 멈춰서서 귀고리나, 반지, 목걸이등을 보았다. 진형은 투덜거렸지만 이선이 귀고리를 살 때마다 팔에 걸기 시작해서 대여섯개의 비닐봉지가 팔에 걸리게 되었다. 진형은 기계적으로 이선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뭐 먹으러 가자~.”

 

열 군데 이상 돌아다녔다는 생각이 들자, 진형은 이선에게 조르듯이 말을 건넸다. 그러나 이선은 갑자기 길거리에 멈추더니 골목을 빤히 보았다. 교복을 입고 있는 남녀학생 두 명이 여러명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여러명도 학생인 듯했지만 사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명의 손이 올라갔고, 학생 한 명이 두손을 들어 움츠러든 자세로 막으려고 하고 있었다. 이선이 멈춰서자, 진형은 한참 후에야 그 광경을 봤는데, 그 때는 이선이 고함을 치며 달려간 후였다.

 

“너희들! 그만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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