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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였다.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장인가?"

 

어니스트가 중얼거렸다.

 

"조용히 하라더니, 나가요! 기다려요!"

 

카일이 벌떡 일어섰다. 카일이 문을 열었을 때였다. 철컥 쇠로 된 수갑이 손목에 채워졌다. 뒤를 이어 사드만의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와 수갑을 걸었다. 웜과 뮤오린이 그대로 체포되었다. 어니스트는 동공을 굴리며 페리온스 앞을 막아섰다.

 

"너희들을 금언령을 어긴 죄로 체포한다."

 

"싸울까? 주군?"

 

그러나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어니스트의 손목은 꺾였다. 페리온스는 일행이 다 잡힌 것을 보고 순순히 체포되었다.

 

"저희를 왜 체포하시는 겁니까?"

"신분증은 보호소에 가서 확인하겠다. 너희들이 시끄럽게 해서 언데드가 무려 20명이 여기로 몰렸고, 우리는 그 언데드를 모두 죽여야했다. 알겠나? 좀비와 언데드를 20명이나 죽여야했다고!"

 

페리온스는 거기서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좀비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는 듯이 그는 울분에 차있었다.

 

"우리는 조용히 했다구요!"

 

카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언데드가 왜 여기로 모이나? 그리고 사드만은 봉쇄령이 내려져 있어! 밀입국을 했으면 조용히라도 있던지!"

 

그는 수갑을 강하게 당겼다. 카일은 비틀거렸다.

 

'카르멘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페리온스는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그녀가 도둑길드에 소속되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쨌든 뭔가를 더 알기 위해서는 바깥의 정보로는 한계가 있었다. 내부로 들어가볼 수밖에 없다. 페리온스는 굳게 마음을 먹고 사드만의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그들은 불도 키지 않고 그들만이 아는 어두운 길로 행진했다. 일행이 중간에 있고 양옆으로 군인들이 튼튼하게 막고 있었다. 좀비를 오히려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 그들은 있는 듯 없는 듯 걸었다.

 

초소에도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불빛에는 좀비들이 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너무나 희미한 불빛이어서 그럴까. 밤이 촉촉했다.

 

일행은 모두 끌려가 차가운 의자에 앉았다. 세느가 잠이 덜 깬 채로 걸어온 탓인지 하암, 하품을 했다. 뭉크는 신전복을 갈아입은 상태로 낡은 천으로 된 잠옷으로 그대로 걸어와 있었다. 그 것은 카일, 웜, 어니스트도 별로 다르지는 않았다.

 

"춥습니다. 옷을 주실 수 있나요?"

"지금 네 상황을 잘 모르는 것같군."

 

페리온스는 역시 그런가, 하고 주위를 살폈다. 차갑고 삭막한 풍경이었다. 사드만은 높은 건물을 잘 만든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그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벽들이 모두 차가운 시멘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철골로 튼튼하게 세워져 있었고 칠도 하얀색, 회색등으로 매우 깔끔하다. 페리온스가 그 것들을 관찰하는 동안, 사드만의 경비대장은 좀 고민하다가 말했다.

 

"너희는 어린 아이들인 것같군."

"어리지는 않습니다. 15살은 다들 넘었으니까요."

"그래, 어쨌든 옷을 가져다 주겠다. 가만히 기다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소란스럽더니 한 병사가 나타났다.

 

"큰 일났습니다. 불빛이 새어나가 좀비들이 몰려옵니다."

"그들이 물러가게 할 방법을 생각해봐. 죽지 않게!"

"……지금은 물리칠 방법밖에 없는 것같습니다."

"네가 인간이야? 방법도 생각하지 않고 겠다고?"

 

일행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가 카일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근데, 저기 아저씨들. 좀비는 몬스터 아닌가요?"

"모르면 조용히 해!"

 

경비대장은 카일에게도 화를 냈다. 페리온스가 몸을 틀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안 죽이고 멀리 보내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 하지만 네가 무슨 수로?"

"저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뮤오린과 세느도요."

"대장님! 급합니다! 이제 병사들도 좀비가 될 겁니다!"

 

병사가 다급하게 말했다. 경비대장은 페리온스의 수갑을 풀었다.

 

"너희들도 이 녀석들을 풀어줘!"

 

병사들이 급히 모든 일행의 수갑을 풀었다. 페리온스는 바깥에 나갔다. 찬 공기. 어두운 시야, 아직 적응은 되지 않았지만 달빛에 번쩍이는 병사들의 창이 사나운 이빨과 침의 공격을 막아서고 있었다. 수가 많지는 않았다. 좀비는 10마리 정도였지만 병사들은 다들 어쩔 줄 몰라하며 막고만 있었다. 이빨이 까드득하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울리고 있었다.

 

페리온스는 마나를 끌어모았다.

 

"드로우!(throw:던지다)"

 

마나를 더 끌어올려 힘을 주었다. 좀비는 힘 없이 20미터는 나가떨어졌다.

 

"불 때문에 모이고 있어요! 불 끄세요! 아니면 창문을 막아!"

 

어니스트가 그 모습을 보다가 상황을 수습했다. 좀비와 대치한 병사들 외에 나머지 병사들은 건물 안에 들어와 정리를 했다. 그 동안 뮤오린도 세느도 모두 좀비들을 던졌다. 세느가 던질 때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날아가기도 했다.

 

한 동안 던지자, 주변이 다시 까맣고 조용해졌다. 페리온스와 뮤오린은 숨소리만 적막에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다. 세느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힘들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세느는 또 언제 까르르 웃을 지 몰랐다. 페리온스는 세느를 안아들고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좀비들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경비대장은 창문을 다 막아놓은 어두운 사무실에서 촛불을 줄지어 켜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페리온스를 맞이했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표정이 심각하다.

 

"너희들은 옷을 가져와. 신분증명만 되면 너희들을 풀어주겠다."

"사드만에 대해서 좀 질문드려도 되나요?"

 

페리온스는 질문을 던졌다. 비밀스러운 나라였다. 사드만은.

 

"기밀만 아니면 말해주겠어. 사드만에 대해 궁금하다면."

"사드만은 왜 포우와 전쟁을 하나요?"

"그건 기밀이다."

"그렇다면, 왜 나라에 좀비가 많은가요?"

"그 것도 기밀이다."

"좀비를 왜 죽이시지 못하는 거죠?"

"그 건 기밀이다."

 

역시, 사드만은 비밀스러운 나라였다. 페리온스는 어떤 질문이 좋을까 생각해봤다. 절호의 찬스인데, 질문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 때 카일이 번쩍 손을 들었다.

 

"우리가 폐하를 만날 수 있나요?"

 

경비대장은 콧웃음을 쳤다.

 

"밀입국자를 만날 정도로 폐하는 한가하시지 않다."

"저희도 메더스 왕실 소속이라구요?"

"음, 신분증을 다오. 그래봤자 너희는 아이야."

 

그 때였다. 쩔그렁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오린 경비대장, 쥐새끼 한 마리를 놓치고 말았다네."

 

물에 젖은 생쥐꼴로 절그럭하는 소리가 들렸다. 화려한 옷차림이 모두 물에 젖어 엉망이었고, 무엇보다 페리온스가 놀랐던 것은 아는 얼굴이었다.

 

"성벽이 무너졌다고. 믿겨지는가? 성벽이 무너졌어!"

"형님, 괜찮으십니까?"

"나는 이제 끝장이야! 언데드들도 성벽 바깥으로 가게 되겠지. 아니, 근데 이 아이들은 누군가?"

 

어제와는 완전히 반대된 차림이었다. 페리온스 일행은 모두 씻고 말려서 깔끔한 행색을 하고 있었고, 그때 페리온스를 쫓아냈던 수비대장은 물에 젖은 생쥐꼴이었다. 그때 그 수비대장이 맞았다.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페리온스는 외면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싶었다.

 

"이 아이들은 좀비를 구해주었습니다."

"아니, 자네는 아직도 그 미련을 못 버렸나? 쓸데없는 짓을 했구먼. 에잉."

 

수비대장은 마땅찮은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비린 물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말씀 조심해서 해주십시오. 우리 좀비는 그냥 좀비가 아니지 않습니까?"

"자네와 싸울 생각은 없네. 어쨌든 이 아이들이 쫓아냈다고? 한참 애송이 같아 보이는데. 너희들은 누구냐? 어디서 왔어? 부모님은 안 계시냐?"

 

그새 여관에서 돌아온 병사들이 옷가지를 던져놓았다. 페리온스는 말없이 옷을 잡았다.

경비대장이 무뚝뚝하게 물었다.

 

"신분증은?"

 

페리온스는 이 때 말을 많이 해서 좋을 건 없다고 판단했다. 최대한 수비대장의 시선을 피해 경비대장에게 메더스의 둘째왕자가 발급해준 신분증을 내밀었다.

 

"어?"

 

그러나 수비대장도 괜히 수비대장인 것은 아니었는지 눈이 커졌다.

 

수비대장은 페리온스와 신분증을 번갈아 보았다. 분명 기억에 남아있었던 종이였다. 그리고 이 아이의 무뚝뚝한 묘한 분위기.

 

그러더니 페리온스의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 잡았다! 나를 좌천시키려고 작정한 쥐새끼! 너지? 너지, 이 자식아."

 

과묵한 분위기였던 경비대장이 당황했다. 그는 둘을 뜯어 말렸다. 페리온스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진정하십시오. 형님."

"이 놈들이 성벽을 날려버렸어!"

"어떻게 성벽을 날립니까? 성벽은 튼튼한 회색벽돌로 쌓아올렸잖아요?"

"진짜라고. 언데드가 나라 바깥으로 나가고 있는 중이야. 못 믿겠나?"

 

경비대장은 아까 좀비들을 던져두던 페리온스의 힘을 기억해내었다. 하지만 그 정도인가? 성벽을 부술 정도라고? 아까는 조금 던져둘 뿐이었는데.

 

"보고는 해야겠지만, 난 좌천이야. 틀림없다고."

 

수비대장은 하소연했다. 경비대장은 페리온스를 돌아보았다.

 

"정말이냐?"

 

페리온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바오가 페리온스를 돌아보다가 속삭였다.

 

"어떻게 할 작정이야? 너."

 

"정말이라면, 너희는 국가재판에 붙여져야한다."

"국가재판이라면 어디에서 열리죠?"

"폐하가 계시는 수도의 한 복판, 광장에서 재판이 열린다. 시민들도 천 여명이 참석할 거다. 물론 빛의 300일이 되어야만 재판은 열리겠지만."

 

페리온스는 결심했다.

 

"저희가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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