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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이 들어가는 건 찬성이야. 하지만 나는 들어가지 않아.”

 

“사회가 그렇게 만만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좋은 기회를 선물하는 겁니다.”

 

해준은 담담히 말했다.

 

“들어갈 수 없어. 알잖아?”

 

“뭐를요?”

 

“나도 남자야.”

 

“…….”

 

“다른 사람이라면 나는 굽신거렸을 거야. 그게 사회생활이고 나도 그 정도는 아니까. 하지만 진해준, 당신에게는 그럴 수 없어.”

 

“진형아.”

 

이선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나 진형은 이선의 손을 잡고 제지했다.

 

“난 내 힘으로 서겠어. 맞설 수 없는 거 알아. 하지만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당당해지고 싶은 거 알아? 난 이번만큼은 당당하게 살겠어. 열심히 할 거야.”

 

“그래요.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이선씨는?”

 

“저는 더 배워야 해요. 전의 바리스타 대회에서도 1등을 놓쳤고.”

 

“이선씨는 꼭 체인점의 장을 맡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진해준이 말하자 진형이 얼른 끼어들었다.

 

“그래. 그게 좋을 것 같아. 일단 진해랑이란 놈 너무 위험해.”

 

“안전을 위해서 능력이 안되는 일을 할 수는 없잖아.”

 

“어휴 저 똥고집.”

 

진형이 무심코 뱉어버린다.

 

“너도 마찬가지잖아. 고집쟁이야!”

 

이선이 잡고 있던 진형의 손을 뿌리쳤다. 진해준이 고개를 저었다.

 

“사랑싸움은 제가 보고 싶지 않군요.”

 

“사랑싸움 아녜욧!”


이선과 진형이 둘 다 동시에 외쳤다. 진해준은 씁쓸한 미소를 걸었다.

 

“당신의 커피를 전국의 사람들에게 맛보여주고 싶지 않나요?”

 

“제 커피를…….”

 

이선은 잠시 흔들렸다. 꿈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더군다나 예쁜 풍경, 맛있는 커피, 좋은 추억, 변함없이 아름다운 것들을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은 이선에게 있어 큰 기쁨이었다. 다만 전국에서 자신의 커피숍을 찾아오는 것은 생각했어도 자신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국에 가게를 낸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일관성 있는 맛, 외관 등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 그러나 이선이 정신을 못 차리도록 다시 한번 진해준의 말이 이선에게 유혹을 해왔다.

 

“고급화 전략으로 갈 겁니다. 아무나 체인점을 열지도 못하고요. 이런 정원을 손수 가꾸어야만 합니다. 그걸 통솔해주시는 겁니다. 바리스타 대회에서 1등은 하지 못하셨지만 2등은 하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선이 망설이는 동안 해준은 결론을 내렸다.

 

“실패해도 좋습니다. 한 번 해보시죠. 해보시는 것으로 알고 가겠습니다.”

 

“잠시만요!”

 

이선이 해준을 불러세웠다. 해준은 돌아보았다.

 

“왜 우리에게…….”

 

“전에 제 친구 얘기를 해드렸지요. 다시는 그렇게 되기 싫습니다. 그리고 말했다시피 당신들의 능력을 인정하는 겁니다. 꾸준히 열심히 해왔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니, 이렇게 말했지만 다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하지 않다니요?”

 

해준은 씁쓸하게 웃었다.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없어요. 하지만 그냥 난 당신이 좋고, 당신들이 좋습니다.”

 

“전무님…….”

 

“나는 꿈을 포기했으니까요. 하지만 꿈을 꾸는 사람들을 도울 수는 있죠.”

 

“당신들이 좋다고 해도 난 안 좋아. 난 절대 좋아하지 않을 거야.”

 

진형은 이선이 어쩐지 감명을 받는 분위기가 되자, 당장 그 분위기를 깨려고 말을 꺼냈다. 진해준은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그림체가 좋더군요.”

 

“뭐?”

 

“스토리는 더 연습해야겠지만.”

 

“당신 조언 듣고 싶지 않아!”

 

“우리 회사에 몸담는 것보다 더 유명해지려면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안 됩니다. 진형씨.”

 

진형이 이를 바득바득 가는 동안 해준은 홀을 빠져나갔다. 진형은 컴퓨터를 올려놓았다.

 

“14시간 동안 그림 그릴 테다……!”

 

이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끔 진형의 승부욕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런 프라이드가 진형을 멋있게 만들 때도 있었지만 좋은 기회인데……. 남 말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혜은이 연락이 왔다. 커피숍에 놀러와도 되냐는 문자에 당연히 된다고, 이선은 말했다. 열심히 그리고 있는 진형에게 다가가서 혜은이 온다고 말하자, 진형은 자리를 비켜줘야 할지에 관해 물었다. 혜은과 진형은 3년간 같은 동아리에 있었는데도 묘하게 친하지 않았다.

 

“친구랑 오랜만에 얘기해. 나는 더 그려야 하니까, 집에 갈게.”

 

결국, 결론은 그렇게 났다. 사실 바리스타 정의 자리는 그렇게 넓지 않아서 진형의 존재감이 컸다. 진형은 얼른 도구를 챙겨서 밖으로 나섰다.

 

혜은이 오기 전까지 빈자리를 보자, 뭔가 텅 빈 느낌이 났다. 해준의 제안이 믿기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되면 상당히 바빠지겠지. 승낙하는 게 맞는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혜은은 예정했던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차가 밀렸지 뭐야.”

 

혜은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혜은의 회사에서 여기까지는 꽤 멀어서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린다. 자연히 자주 볼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오랜만이네. 정말. 아이스 라떼 내려줄까?”

 

“아냐. 저녁엔 커피 안 마시려고. 딴 거 없어?”

 

“생과일 에이드도 맛있어.”

 

“그럼 그걸로!”

 

혜은은 작은 전단지로 부채질을 하며 이선을 보았다. 전단지의 광고가 눈에 보였다. 이선은 잠깐 멈칫했다.

 

“A툰? 요즘엔 그런 것도 광고하니?”

 

“아, 이거? 그러더라. 요즘 완전 경쟁이 붙었잖아. A툰이랑 HG 그룹에서 만든 준쓰. 서점 앞에서 받아왔어. 완전 치열하더라. 나도 책전단지는 처음 보네.”

 

“HG그룹…….”

 

“요즘 완전 뜨고 있어. 만화계에선 아주 핫하다니까. 나도 왕년엔 코스프레 좀 했잖아. 관심 있게 보고 있지. 그리고 종교 전단지도 잔뜩 받아왔다. 사탕이랑 휴지량 챙겼는데 하여튼 난 너무 잘 잡혀서. 나도 너처럼 좀 카리스마 있게 생기고 싶다.”

 

“내가 무슨 카리스마니? 얘도 참.”

 

“내가 섹시한 언니들을 좀 좋아하잖니.”

 

“그만해.”

 

“알았어. 알았어. 농담이야. 농담. 진형이는 어떻게 지내? 둘이 여전히 잘 지내고 있어?”

 

“잘 지내지.”

 

“자주 보고?”

 

“그렇지. 걔는 회사원은 아니니까, 우리 가게 와서 그림 그리고 가.”

 

“여전하구나. 둘 다.”

 

“그렇지. 뭐.”

 

“사귀지 않고?”

 

“뭐라고 하는 거야!”

 

이선은 얼굴이 조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참 여전~하다.”

 

“뭐가. 에이드나 마셔. 네가 더위를 먹었나 보다.”

 

“오늘은 손님이 좀 없네?”

 

“오늘은 한산하네.”

 

“진형이도 참 특이하지. 동인지도 안 그리고, 그냥 자기 그림만 주야장천 그리니까. 게다가 SF물만 그리고. 재능이 아깝더라. 동인지나 성인지 그리면 돈도 꽤 벌 수 있을 텐데, 그림체가 좋아서.”

 

“직접 말해주지.”

 

“에이~ 난 걔랑 안 친해. 걔도 되게 까다롭고.”

 

“까다로운 건가?”

 

“너한텐 안 까다로웠지.”

 

혜은은 쭉, 빨대를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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