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죠?”
그렇게 네 명은 둘러앉아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여자의 이야기는 이랬다. 남자가 첫눈에 반했다며 잘해주는 것에 속아 석 달 만에 결혼했고 결혼을 하자마자 자신의 앞으로 빚을 지워놓았다. 그리고 잠적하였는데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빚이 생긴 이후로 험악한 남자들이 따라와 협박하고 집을 부수기도 한다고 했다. 돈에도 너무 힘들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것이 가장 쓰리고 가슴이 아팠다.
천우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눈물을 글썽였다. 진형과 이선, 해준은 담담했다. 특히 해준이 차갑게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남자와 여기서 만나자고 했어요. 가끔 왔거든요.”
여자는 말했다.
“같이 오신 분 기억하고 있어요. 오시면 신고할게요.”
이선이 말했다.
“실례지만 이 일을 웹툰으로 그려서 널리 알려도 되겠습니까? 퍼트려서 얼른 잡죠.”
진형이 말했다.
“일단 폭력배들이 협박하지 않게 도움을 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잘 알아보고 명의를 주거나 결혼을 하셨어야 했어요.”
해준이 말했다.
여자는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뭐든 할게요. 저 지금 갚을 능력이 전혀 없어요. 직장에서도 잘렸고요.”
“잡일이나 사무보조로는 취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뭘 믿고 쓰죠?”
단발머리 여자의 눈빛이 갈 곳을 잃자 이선이 나섰다.
“제가 보증할게요.”
“보증은 아무 때나 하는 게 아니에요. 저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고도 그래요?”
진해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위급한 상황이잖아요.”
“됐어. 정이선.”
이번에는 진형이 나섰다.
“내가 보증할게. 넌 빠져.”
“뭐로 보증하실 겁니까? 나는 당신에게서 탐나는 게 없는데.”
“뭐든 가져가. 난 몸뚱이밖에 없으니까.”
“약속입니다.”
진해준은 입가를 비틀어 웃었다. 진형은 진해준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보았다. 이놈은 악역을 하는 데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이 사람을 돕는 것 같은데도 아니꼬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취직하셨고 법무사 붙여드릴 테니까 갚으려면 금방 갚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웹툰 그리는 것도 협조할게요. 그놈을 꼭 잡고 싶어요.”
“한 번 찾아보죠.”
진형은 SNS를 켰다. 연재는 A툰에서 연재해서 알릴 생각이었다. 일반연재는 첫 시작이었다.
“저녁쯤 완성될 거예요. 그때쯤 올릴게요.”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해준은 에스프레소를 먹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고, 일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사람들이 SNS로 널리 알려주었기 때문인지 조회수는 신인치고는 폭발적이었다. 저녁까지 진형은 카페에 앉아서 SNS를 보고 있었다. 진형에게 너도나도 저런 일을 겪었다며 쪽지가 왔다. 진형이 열심히 SNS를 하고 있으려니까 맞은 편에 이선이 앉았다.
“왜?”
“곧 닫을 시간이거든요.”
“아아, 눈이 따갑네.”
진형은 기지개를 켰다.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워낙 이런 일들이 많으니까. 힘든데 사진 대조해서 보고 있어.”
“열심이네.”
“정이선이 없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불만이야?”
“좋다고 하는 거잖아~. 청소하는 거 도울까?”
자정의 정원은 깜깜했다. 이따금 풀벌레들의 소리가 들렸다.
“됐어. 다했어. 문 닫으면 돼. 천우씨 다했지?”
“넵!”
이선이 걷자 진형은 졸졸 뒤따라 걸었다. 어둠이 드리워진 골목길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섰다.
“왜 따라와?”
“바래다줄게.”
“비도 안 오는데? 괜찮아.”
“위험하니까.”
“됐어. 밤길은 너한테도 위험해. 각자 자기 팔 흔들자.”
“난 안 위험해. 운동 꾸준히 하니까.”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다.”
“있잖아. 그것보단 그게 위험하단 생각 안 들어? 저렇게 쉽게 결혼 사기당할 수 있다는 거 말이야.”
“응. 오래도록 잘 알아보고 만나야겠지.”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만나야 해.”
진형은 흘끗 이선을 보았다. 이선은 빤히 진형을 보았다.
“예를 들면?”
“예를 들면 글쎄, 재벌 2세를 사칭하는 사람은 좀 아니란 거지.”
“진해준씨?”
이선은 어이없다는 듯이 진형을 바라보았다.
“꼭 그렇단 건 아니고 조심하라고. 예를 들면 네 근처에 좋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말이야.”
“지금은 결혼할 생각도 없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래. 아무도 사귈 생각 없댔지. ……오늘 왜인지 예쁜데. 내 눈이 삐었나?”
“응?”
이선은 뜬금없는 말에 진형을 보았다. 이렇게 어두운데 화장이 보이는 걸까? 그리고 지금이면 다 지워지고도 남았을 텐데. 그런 의문을 담은 눈길이었다. 진형은 당황한 눈빛으로 제 자리에 섰다. 어느새 이선의 집 앞이었다.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야. 잘 들어가. 일찍 자고.”
“너도.”
이선이 손을 흔들자 진형은 손을 흔들다 말고 멀뚱히 보고 서 있었다.
“안 들어가?”
“너 들어가는 거 보고 들어가려고.”
이선은 피식 웃고는 뒤돌아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것과 삐빅하는 잠금 소리가 들리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진형은 뒤돌아섰다. 가는 길이 조금 허전했다. 가로수 등불이 흐릿하게 빛났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아서 더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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