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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빠지지 않는 옷

 

                                             강복주

 

왜 이렇게 했어?

내 말을 들어야 해

내 말이 옳아

내 말 들으랬잖아

 

출처를 알 수 없는 거센 물결

휘몰아치는

세탁기 안에서

 

주인은 옷에 물이 빠지지 않기를 바랬다

물론 빨기는 빨아야 했고

원래 옷감은 거친 색이었지만

물든 빨간색이 예쁜 빨강으로 오래 가지고 가기를

 

그 주인을 볼 겨를 없는 채

옷감은 물살에 얻어 맞았다

 

나는 빨개야 하나?

내가 빨간 건 잘못된 건가?

 

옷감은 울고 싶었지만

물결은 울음조차 쏙 빼갔다가

자신이 더 슬프다며 몰아쳐 와

남의 눈물과 자신의 눈물이

분간이 가지 않게 축축 젖어 버렸다

 

엉엉 울며 바깥에 나왔을 때

주인은 얼른 빨랫감을 집어 들며

아직은 멀쩡하다며 안도하며

건조대에 빨래를 널었다

 

주인의 미소를 보며

이제는 물이 빠지지 않은 게

어쩌면 다행일 수 있겠다 싶었던

빨간 옷감

 

옷감은 이게

울세탁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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