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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요오옹~ 삐요오옹~

 

.”

 

왜 그러심까 선배님.”

 

벨소리가 그게 뭐야!”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 주제가에요.”

 

승철은 새터의 다음날 아침부터 술이 얼큰하게 취해 해장술을 먹으러 짬뽕집에 향해 가는 중이었다. 여자가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학교 자체가 k공대였고, 그 중에서도 기계공학부에는 여자가 200명 중의 4명 뿐이었다. 자연적 남자들끼리 술을 퍼마시고 먹이고 퍼마시고…… 그렇게 슬픔을 달랬다.

 

잠시만요.”

 

얌마, 너 배신때리기 없기다.”

 

승철은 휴대폰에 화연이 떠있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 무슨 용건인지는 몰라도 만나자는 걸테고 여기서 받기는 좀 그렇다. 하긴 이제 이 형들과 있는 것도 좀 속에 무리가 오려고 한다.

 

………가봐야할 것같은데. 선배님, 집안에 일이 생긴 것같습니다.”

 

화연도 화연이지만 술을 더 먹을 수는 없었다. 이러다 죽겠다.

 

승철은 뺨을 긁적였다.

 

얌마! 무슨 집안 일이야.”

 

다음에 더 먹겠습니다. 먼저 드시고 계세요.”

 

너 폰 저장해놨다. 개강 전에 부를 거야!”

 

!”

 

 

선배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승철은 빼꼼히 고개를 들어 눈치를 보았다. 선배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는 화연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다. 그새 전화는 울리지 않고 있었다. 분명히 또 삐졌을 거야. 라고 승철은 생각한다.

 

여보세요. 너 어디야?”

 

명동에서 만나자.”

 

너 사람 많은 거 싫어하잖아. 딴 곳.”

 

승철은 명동? 생각하더니 휙 넘겨버린다. 화연은 번화가를 좋아했지만 그런 곳에 가면 화연이 새하얗게 질려버리니 자기는 상관없다고 해도 보는 사람이 좋지가 않다. 무엇보다 승철 자신이 번화가는 질색이다. 볼 일을 보러 온 건지 사람을 보러 온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어딘데?”

 

화연은 짜증스럽게 물었다.

 

나 학교 앞이야.”

 

나도 학교 앞이야.”

 

우리 학교랑 너네 학교랑 붙어있잖아. 바보야. 근처에서 만나면 되겠구만.”

 

누가 바보야! 바보야!”

 

화연은 버럭 화를 냈지만 승철의 말이 맞다고 이내 인정했다. 그래서 r대와 k공대 사이의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커피숍에서 승철과 만나게 되었다.

 

커피숍 안에는 잔잔한 인디밴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무로 꾸며진 카페 안은 은은한 주황색 조명과 함께 어우러져 따뜻한 색감이었다. 군데군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책장이 있었다. 비록 책이 많지는 않았지만 편안한 휴식의 느낌이 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공간에서 화연은 예민해져있는 듯 머리를 부둥켜안고 책상에 머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런 화연의 모습에 승철은 어떻게 해야하지.’라고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화연이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화연이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말한 적없는 화연의 비밀이었지만 승철은 어렴풋이 화연의 직감은 너무나도 뛰어나고 어쩌면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것은 몇 번 자신의 속마음과 들키지 않아야할 어떤 것-예를 들면 야한 잡지-의 위치를 들켜버렸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기도 했다. 화연은 그런 것을 귀신같이 알아맞혔다.

 

번화가에서도 물건 살 때면 주인 속마음은 귀신같이 알아차려서 반값으로 깍아버리고 말이야. 무시무시한 생활력.’

 

승철은 입을 비쭉이 내밀었지만 승철이 생각하기에 무려 그런 생활력을 가졌음에도 화연은 늘 걱정되는 존재이기도 했다. 가끔씩 이렇게 주체 못할 정도의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아서.

 

. 서화연.”

 

승철은 툭 뱉어놓고 조금 후회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이런 식으로밖에 말을 못하는 자신이 자신이 생각해도 투박했다. 조금 더 세련되게 표현했다면…….

 

그랬다면 호완이놈 대신에 내가.’

 

미안해.”

 

승철은 흠칫 했다. 이 녀석은 항상 이런 타이밍에 뜬금없이 치고 들어온다. 마치 생각을 읽는 듯이.

 

한 편 화연은 빙긋이 웃었다. 이 능력을 승철에게만큼 사용한 일이 없었는데 눈치채기는커녕 신기해만하는 승철의 무심함에는 가끔 놀랄 따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멋대로 하는 것인지도 몰랐지만 자신의 피곤함에 승철까지 피곤하게 하는 것은 미안했다.

 

갑자기 답지 않게. 네가 미안하다니 좀 더 엎어져 있어도 괜찮겠다. 아니 영원히 엎어져 있자.”

 

승철은 두 팔을 탁자에 올리고 팔짱을 꼈다. 그리곤 멀뚱히 화연을 본다.

 

피곤해서 말이야.”

 

화연은 변명하듯이 말한다.

 

무슨 일 있었어?”

 

나 원래 이러잖아.”

 

뭐 그렇긴 하지.”

 

승철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캐묻지 않는다. 사고도 거기에서 멈춘다.

 

그 때. 카페의 문이 벌컥 열렸다. 카페에는 어울리지 않는 술냄새. 민폐다.

 

누가 술먹고 들어오는 거야. 대낮부터.”

 

화연은 승철에게만 들리도록 말한다. 승철은 킁하더니 자신의 옷의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그러고보니 승철도 술을 마시고 왔더랬다. 승철은 말한 적이 없지만 알고 있었다. 술해독능력이 얼마나 짐승같은지, 냄새조차 나지 않았지만. 게다가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는지 이제야 술이라는 단어가 읽혀진다.

 

마셨구나.”

 

화연은 핀잔을 주었다.

 

아아. 근데 있잖아.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진지한 이야기도 좀 하려고 했는데.”

 

진지한 이야기? 무슨?”

 

욕하지마. 호완이랑 헤어졌을 때, 어떤 남자에게 반했었어.”

 

승철은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그 것도 한 순간, 승철의 귀에는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난 아메리카노.”

 

, 얌마, 이승철!”

 

그런 선배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승철은 화연에게 집중했다.

 

네가 반했다니…….”

 

‘15년 간 알아오면서 그건 처음이잖아.’ 승철은 선배들의 등장보다 그 자체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집안에 일있다더니 짜식, 여기 있었어?”

 

인마, 죽었어! 왜 여깄어? 이 자식.”

 

여자친구냐? 여자친구야?”

 

승철은 화연과 선배들을 번갈아보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무리 승철이라지만 여기서는 어떤 식의 단순한 대응이 필요한지 감도 오지 않는다.

 

…….”

 

놀랍지? 우리도 놀랍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올라간다더니 그렇게 사랑하냐? 집안일? 이미 집안의 여자라 그 뜻이냐?”

 

아닙니다. 저흰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승철은 손을 내저었다.

 

그럼 네가 좋아하는 거야?”

 

그럴 리가요! ”

 

화연은 승철이 쩔쩔매는 것을 보고 승철의 선배들이 온 것은 알겠지만 생각보다도 더 말을 할 수 없음을 눈치 챘다. 그녀는 가방을 정돈하고 옷을 챙겨 일어섰다.

 

고마워. 그리고 정말 미안해. 이승철. 넌 정말 최고야. 너를 잃고 싶지 않아. 할 수 있다면 계속해서 잃고 싶지 않아.”

 

가려고?”

 

하려던 말은 다른 게 아니고,”

 

다른 게 아니고?”

 

너한테 늘 고마워. 우리 항상 친구로 지내자. 알겠지.”

 

사라지는 화연의 뒷모습을 보며 승철은 나오지 않는 말을 어버버하고 있었고 선배들의 기분은 즉각 풀렸다.

 

차였냐?”

 

그러게 우릴 버리고 갔으니 차이지.”

 

왜 나한테만…… .”

 

서화연 너는 왜 나한테만. 승철은 순간 답지 않게 눈물이 찔끔 나려고 했지만 간신히 견디고 선배의 아메리카노를 원샷했다.

 

야 인마! 내 꺼!”

 

켈록켈록.”

 

그리고 바로 뿜어냈다.

 

시럽을 대체 몇 번 넣은 겁니까!”

 

"단 게 좋지."

 

선배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화연으로서는 조금 꺼림칙하지만 화연은 승철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안다는 것은 가끔 더욱 헷갈릴 때가 있었다. 자신이 아는 것만큼 상대도 안다고 착각하고 그 아이가 모든 것을 들여볼 거라고 잘못된 판단을 하고 만다.

 

길거리를 걷는다. 그 행동은 수많은 소리를 걷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사람들의 생각들이 이제 신물이 나지만 멈출 수도 없는 것. 칼바람이 얼굴을 스쳐온다. 얼굴이 얼어붙듯 차가웠다.

 

잘못된 판단, 그건.

 

서화연!”

 

뒤에서 맹렬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불쌍하니까 한 번 가보라는 선배들의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승철은 갔다.

 

맹렬하게 단순하다. 정말.’

 

화연은 머리에 손을 짚고 달려오는 승철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넌 단 한 번도 너한테 그런 말한 적 없잖아! 반했다고? 어느 놈?”

 

승철이 숨가쁘게 뛰어온 것은 사랑인지 그의 자존심인지 모를 말이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잘 지내자는 말인데 왜이렇게 헐레벌떡 뛰어와서 그래. 너 과생활 안할 거야?”

 

왜 나는 안되냐는 거야.”

 

승철은 담담하게 물었다. 그 와중에 화연은 씁쓸하게 웃었다.

 

호완이 놈은 왜 되는데.’

 

승철의 그 생각이 너무나도 강력하게 읽혀와서. 거기에서는 억울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말했잖아.”

 

화연은 말했다.

 

널 잃고 싶지 않아. 분명히 우린 이별하게 될 거야.”

 

화연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승철을 보았다.

 

고백할 게 있어.”

 

왜 그렇게 숨기는 게 많아.”

 

나는 말야. 사람들이 숨기는 것을 다 알아.”

 

뭐라고?”

 

보지 말아야할 것들, 무시해야할 것들, 그러려니 넘겨야하는 것들까지 나에게는 너무나도 잘 보이지.”

 

?”

 

네가 이제 내 절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해주는 거야. 내가 너를 연인으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이유. 네가 납득하려면 이래야 될 것같으니까. 정호완은 그냥 만났었던 거고, 호완이 너였다면 또 만나지 않았겠지.”

 

이해가 안가.”

 

귀 좀 대봐.”

 

승철은 화연의 가까이로 귀를 가져다대었다. 화연은 작게 속삭였다.

 

나는 말이야. 사람의 마음이 들려.”

 

화연은 싱긋 웃었다.

 

"무섭지 않아?"

 

", 거짓말."

 

팥빵, 애플파이, 소시지빵.’

 

갑자기 승철의 머릿속에 생각이 떠오른다.

 

팥빵, 애플파이, 소시지빵.”

 

무심코 화연은 말해놓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왜 이딴 걸 맞춰야 해.

 

너 배고파?”

 

, 내가 믿을 것같아!”

 

화연은 한숨을 쉬었다. 믿어달라고 말하는 것 자체도 한심스러운 일이었지만

테스트를 해도 승철답다. 한심스러운 소리를 뱉어줬는데도 승철은 여전히 고함을 지른다.

 

만에 하나 우리가 사귀게 되는 일이 벌어져도 승철에게 한 순간이라도 설렐 수가 있을 지가 의문이었다. 화연은 승철의 등을 퍽 쳤다.

 

기대 안 해. 집에나 같이 가.”

 

아냐. 이건.”

 

못 들은 걸로 해. 못들은 걸로. 팥빵이나 사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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