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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윤의 집 앞에 섰다. 이 것이 소통의 방식이라면 연극은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이었다. 그리고 참으로 미묘한 끈으로 우리의 관계는 조금조금씩 엉망진창이 되리라. 서윤의 인생의 자극적인 면을 다 보고, 그 애의 인생에서 중요인물을 모두 만나보고, 얽히고 섥히게 되는 것은 상상만으로 질렸다. 그 일은 서윤과 나의 관계를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윤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연극은 몇 시간의 공연 후면 막이 내려야하는 것이다.

 

문 앞에 서는 것은 쉬웠지만 그 다음부터는 막막했다. 철문은 두텁게 나를 막고 있었다. 서윤은 보통 사람보다 조금 더, 어려운 사람이었다. 웃는 연기를 하던 사람이 나를 위해 우는 연기를 해주었다. 서윤이 쓴 가면의 피에로는 웃는 그림 밑에 장난스레 그려진 물방울조차 없었다. 안타까웠다. 이런 식으로 밖에,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벨을 눌렀다.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계속 벨을 눌렀다. 다섯 번쯤 눌렀을 때야, 서윤이 나왔다. 철문의 철컥거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무겁고 차가웠다.

 

미안해. 요리하느라. 열쇠로 열고 들어오지 그랬어. 괜찮은데. 두고왔어?”

 

아니, 돌려줄 게 있어서 왔어.”

 

빌려준 게, 있었어? 내가.”

 

이거.”

 

나는 열쇠를 내밀었다. 서윤은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고 그랬잖아. 원인이 이건 거 같아. 아닐 수도 있는데 괜히 의심하기 싫어. 그냥 딴 사람한테 맡겨.”

 

난 받기 싫은데.”

 

받아. 안 받으면 나, 내가 의심하던 거 진짜라고 믿게 돼.”

 

의심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안 받아.”

 

미묘한 거짓말덩어리. 의심이 뭔지 모르면 왜 안 받아. 나는 서윤을 보았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이런 여유가 배어나올 수 있을까 싶은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그 표정만 보고 있으면, 내가 떼쓰는 어린 아이이고 서윤이 달래는 어른같았다.

 

이미 진짜라고 내가 믿어버린 것 같지만, 받아. 안 받으면 나 친구 안 해. 그리고 받든 안 받든 이 열쇠는 안 쓸 거야.”

 

.”

 

눈을 감는다. 서윤도 인내력의 한계인 듯 싶었다.

 

너 이미지 진짜 좋아. 그러니까 여기서 조금 나빠져도 별 영향도 없을걸. 그러니까 여기서 싸우든 어쩌든 말 좀 해보자.”

 

너 받으면 말할게.”

 

받으면 말이 안되잖아.”

 

왜 말이 안돼.”

 

네가 왜 그렇게 이 열쇠에 집착하는지부터 모르겠어.”

 

열쇠 맡길 사람이 없어서 그래.”

 

그 것만은 아니잖아.”

 

네 포커페이스가, 열쇠맡길 사람 하나 없는 데서 무너질 포커페이스가 아니잖아. 나는 미간을 누르는 서윤을 보았다. 서윤은 나직나직히 말했다.

 

네가 그 열쇠를 받지 않으면, 나도 너와 관계를 끊겠어.”

 

그게 이렇게 큰 문제야?”

 

너도 말했잖아. 안 받으면 관계를 끊겠다고. 그 것과 동일한 말을 한 것 뿐이야.”

 

타협의 여지가 없는, 그렇게 민감한 문제야?”

 

그런 건 아니야.”

 

서윤은 빙긋 웃었다. 피곤해보이지만, 역시 좋은 웃음이다.

 

신기할 정도야. 네 방식.”

 

나는 질려서 내뱉었다.

 

열쇠 가져가.”

 

서윤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열쇠를 주려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거부였다. 뒤로 물러선 사람을 따라가 강제로 손을 펴서 열쇠를 주었지만 열쇠는 이내 바닥에 떨어졌다.

 

어차피 줘봤자 난 안 쓸거야.”

 

…….”

 

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다만 내 손에 열쇠를 쥐어주고 열려있던 문 밖으로 나를 밀쳐냈다. 나는 밀쳐진 채, 닫기는 문을 보고만 있었다. 그악스럽게 문을 잡고 들어가 싸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닫기는 문을 보며 드는 감정은 격렬하지 않았고 잡고 들어가서 싸워 보아야 바뀔 것이 있을까 싶었다. 그 견고한 가면만큼이나, 서윤은 완고했다. 부드러운 웃음과 말투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고집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열쇠를 두었다. 지금으로서는 그 것이 최선이었다. 문을 떠나는 길이 씁쓸했다. 이렇게 된 이상, 그 것은 확실히 연극이었다고- 마음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 표정은 언제나와 같이 견고했고 도시는 언제나와 같이 복잡하고 어둡다. 휘황찬란한 겉. 도시에게 잡아먹힐 거라고 중얼거리던 그 때의 내가 틀렸다는 걸, 지금에야 알았다. ‘먹힐것이 아니었다. 이미 먹혀버렸던 것이다. 울고 싶었다. 쓸데없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말로, 쓸데없이.

 

 

 

결혼할 것 같아. 아무래도.”

 

화연은 신중하게 말했다. 화연의 얼굴을 매개로 나는 서윤을 생각한다. 성가신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들 중 누구를 보더라도, 승철과 화연, 나는 그 얼굴 하나에서 동갑내기 넷을 떠올릴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밀접하게 교류해왔다. 서윤은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추억 속에 잔류했다. 어쩌면 그 애에게도 우리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서윤은 내게 상처였다.

 

그 일 이후 몇 년이 흘렀다. ‘결혼할 것같아.’라는 화연의 말은 최근 1년 동안 꾸준히 말해온 것이어서, 나는 흘려들었다. 그리고 당연히 승철과 화연이 결혼하리라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화연이 그 말을 할 때면, 언제나 눈에 불안과 기대가 묻어있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려 보았다.

 

.”

 

와야돼.”

 

당연히 가야지.”

 

화연을 볼 때면 유달리 서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곤 했다. 그녀가 지독히 싫어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그리고 화연의 심정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열쇠를 놓고 간 이후, 서윤은 가지고 가지 않으면 관계를 끊겠다.’라는 본인의 말을 충실히 지켜,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역시 서윤의 깔끔함이 냉혹스럽다는 원망을 버릴 수 없었다.

 

나 역시 서윤처럼 연락을 하지 않다가, 1년 쯤 지나서 전화를 걸어본 일이 있었다. 신호는 가는데 받는 사람은 없었다. 허무했다. 전화를 걸고서야 서윤과 연락이 끊겼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느낌은 더없이 허무했다. 1년 이상 연락한 적이 없다는 그녀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똑같이 되어버렸다.

 

나는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 것을 깨닫자, 나는 씁쓸해져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무서워서 이제껏 차마 전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상과 예상을 확인하는 것은 또 달라서, 확인하자 한층 마음이 무거웠다. 쓸쓸함이 깊게 짓눌렀다.

 

부탁하는데, 서윤인 데리고 오지마.”

 

데리고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어.”

 

무슨 말이야?”

 

연락이 끊겼어. 서윤이랑. 이제…… 못 만나.”

 

나는 쓴물을 삼키며 말했다.

 

언제고 그렇게 될 애였어.”

 

화연은 차갑게 말했다. 별로 놀란 기색도 아니었다.

 

나쁜 애는 아니었지만, 뭐랄까- 허무해. 아직도, 허무해. 연락이 끊긴 지는 제법 됐는데.”

 

네가 끊었어?”

 

그런 셈이네.”

 

그 애의 소통을, 내가 거절한 셈이니까.

 

그럴줄 알았어. 언젠가, 네가 받아주는 것도 한계가 올 거같다고 생각했지.”

 

서윤에 대한 화연의 평은 여전히 차가웠다. 세월이 무색하게, 적의가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세월이 무색하게 내 씁쓸함과 그리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너무 어릴 때부터, 너무 오래도록 알고 지내서 그 어떤 감정이든 세월에 변색되어도 흔적이 남아있었다. 서윤은 어떨까. 그 애에게는 어쩌면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알잖아. 걔 엄마…….”

 

그 얘긴 하지 말자.”

 

나는 화연의 말허리를 끊었다. 화연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 그런 애가 세상을 너무 잘 살아가는 게 신기해. 진짜, 난 걔가 싫어……. 감정가지기도 싫은데 감정을 가지지 않을래야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혼란스럽게 한다고. 아니야?”

 

본인이 혼란스러우니까……. 제일 힘든 건 본인이겠지.”

 

걔 일이야 걔 일이고. 근데, 그 애한테 그렇게 매력이 많아? 난 그게 이해가 안돼. 제일 이상한 앤데, 좋은 수식어는 몽땅 다 붙어있잖아.”

 

도시니까.”

 

나는 웅얼거렸다. 하지만 그 좋은 수식어는 철저한 외로움과 바꾼 댓가니까 무어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서윤의 세계에서 추방당했다. 그 애의 잘 만든 가면을 벗기려고 한 순간, 한 번도 맨 얼굴을 보인 적 없는 주인에게서.

 

무대 없는 배우는 거리에서 공연을 한다. 서윤은 뛰어난 배우였다.

 

가끔씩, 정말 잡아먹힐 것 같아. 도시에.”

 

나는 느닷없이 말을 뱉어냈다. 화연은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는 잡아먹히지 않을걸.”

 

먹힐 것 같아.”

 

다른 사람 다 먹혀도 넌 안 먹힐 거야.”

 

그게 뭐야…….”

 

너같은 앤 도시에 잡아먹히지 않아. 사람에 잡아먹히지.”

 

…….”

 

도시에 잡아먹힌 애한테 잡아먹히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어지간히도 미워하네. 정말.”

 

걔만 말하는 거 아니야. 어디, 도시에 잡아먹힌 애들이 한둘이겠니.”

 

화연의 눈빛이 저렇게 차가웠던가, 싶을 정도로 냉정히 빛났다가, 이내 웃음지으며 턱을 괸다. 애매하다. 서윤은 분명히, 무언가 아픈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철저히 가면을 쓰게 되었을 것이다. 마음이 아주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그 사정에 대해서 아픈 무언가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서윤의 내부에서도 다 치유되지 못한 채 흉터든 상처든 남아있을 게 분명했다. 그 상처를 다 내게 책임지고 나누어달라고 지우면, 나는 버텼을까. 분명히 또 다른 부담-이었으리라. 나는 그 것을 다 헤집고도 책임질 자신이 있었을까. 갑자기, 무서워졌다.

 

그 짐을 함께 떠안을 사람이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거의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서윤은 매우 영리한 선택을 한 셈이다. 나는 떼를 썼다. 그런 걸 생각하자, 더 무서워졌다.

 

직감이야. 걔가 위험하다는 건.”

 

화연은 말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런 뜻도 없는 흔듬이었다. 무언가에 대한 부정이긴 했지만, 무엇에 대한 부정인지 확실치 않았다.

 

상처를, 입으면 안돼.”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애초에, 상처를, 입으면 안돼.”

 

자신의 탓이든. 자신의 탓이 아니든.

 

…….”

 

그 애와 나는 작은 공통점이 있었어. 작지만, 그 것 때문에 끌렸던 거야.”

 

나는 머리가 아파서 뒤로 몸을 젖힌 채 멍하니 천장을 보았다. 이기적이지 않은 관계란 존재할까. 너무, 이기적이어서, 나 자신조차 두려움에 젖어, 슬펐다. 관객 하나를 위해 우는 피에로. 그건 더 무서웠고 더 슬펐다. 기괴스럽기까지, 한 것이었다. 아직도 마음이 쓰라리다. 나는 혼돈을 가라앉히기 위해 눈을 감았다. 이제 모두 끝난 일이다. 피에로는 나를 떠났다. 등 뒤에는 가면이 있을 리 없었다. 좋은 연극이었다. 관객은 당신을 잊지 못해.

 

나는 눈을 뜨고 결혼이야기를 다시 꺼내며 무거움을 지웠다. 화연은 밝은 평소와는 달리 때때로 무섭도록 냉냉한 표정을 지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이 그런 표정이었다. 내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면서도 화연의 표정에는 쌀쌀함이 묻어있었다. 왜 화제를 전환하냐는 물음이, 그 표정에 담겨있었다. 나는 그 쌀쌀함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끊임없이 건넸다.

 

아프고 싶지 않았다. 아프고 싶지 않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픔을 감춘 채 연극하는 존재에 대해서, 나는 이해자보다는 관객의 입장이었다. 답지 않게 자꾸 아파하면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관객처럼 추억 속에 남겨두고 싶다.

 

언젠가는 아름답게마저 보일 수 있게. 그 것이 사실과 완전히 다른 기만이라 해도 나는 애초에 친구가 아니었다. 서윤에게는 친구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렇게 한 사람의 배우처럼 아름답게, 언제는 내게서 잊혀져도 상관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몇 년 전에는 이렇게 될 것을 가장 두려워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몇 년이나 지난 후였고 그녀는 스쳐가는, 혹은 스쳐갔던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렇게 기억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기억한다한들, 내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전혀 없었다. 만일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서윤은 여전히 부드럽게 웃는 표정으로 내 환상을 깨지 않을 것이다. 환상은 영원하다. 그녀는 늘 웃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만날 날이 있다면, 서윤은 마치 예전의 일이 없었다는 듯 포근한 웃음을 지어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환상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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