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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귀신

 

죽을 만큼…… 사랑하지는 않아. 하지만 좋아해. 많이. 좋아해.

그가 했던 말.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시계가 도는 소리가 울린다. 텅 빈 공허가 피부에 실체처럼 닿아온다. 차가운 마루, 차가운 한옥 아래에 나는 홀로 앉아있었다. 폐허였다. 먼지를 닦아놓은 마루가 광택을 내며 빛을 발했지만 그래도 폐허였다.

 

왜 여기에 살려고 해요?”

 

이 집을 구할 때, 도와준 사람은 내게 그렇게 물었다. 나는 글쎄요. 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곳은 무섭다.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적막을 띄고 있었다.

 

무섭다란 단어보다 어쩌면 기괴하다란 단어가 더 잘 어울릴 법한 곳. 케이블에서 한 번쯤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고 탐방해올 법도 했다. 혼자 살기에는 조금 불편할 법했지만 나는 보일러를 끌어다놓고 수도를 끌어다 놓고, 방을 단 하나만 이용하며 이럭저럭 살고 있었다.

 

왜 여기에 살려고 해요. 그 물음에 대해서 마음에서 울리는 대답은 기다리려고요-였지만 이제 그 대답이 어리석어진다 바보가 되기보다는 그저 독특한 인물로 남는 게, 내게는 더 큰 이득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말끝을 흐리고 답하지 않았던 것이다. 굳이 한옥을 개조해서 사는 괴짜. 타인들에게 그 정도로 비치면 족한다.

 

철벅철벅. 물의 소리가 더욱 크다. 나는 스스로가 축축함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진득한 미련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끈적끈적하게 마음속으로 달라붙어 왔다.

 

죽을 만큼 사랑하지는 않는다면서, 왜 죽었니.

 

나는 묻는다. 무서운 사람.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나는 내 생명이 다하는 기한까지 너를 붙들고 있었을 텐데.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비명이 소름끼치도록 뇌리에 들러붙는다. 그렇게까지 내가 미웠니. 아니면 내가, 나도 모르는 새에 많이 잘못한 걸까.

 

한 줌의 도망칠 곳을 남겨놓고 시작한 사랑이었다. 나에게도 그랬고, 그 사람에게도 그랬다. 그래서 그 결말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이 아니라 현실이었을 텐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많이 울었다. 사람들이 내 멱살을 잡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례적이고 의례적인 절차 속에서 나는 이 사람이 많이도 외로웠다는 것을 늦게 절감할 수 있었다. 아무도 화내지 않았고 아무도 그 빈 곳에 진짜 슬픔을 나타내지 않았다. 꺼억 꺼억 우는 사람이 하나 있었지만,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으로, 그저 세상살이가 서러운 듯했다. 그 사람과 나, 둘만 울었다.

 

왜 여기에 살려고 해요?”

 

문득 부동산업자의 말을 떠올렸다. 여기서 죽었거든요. 사람이. 미치지 않기 위해 온 거에요. 내가 남 눈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싱긋 웃으며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 그래요. 왜 그렇게 살아요. 지나친 관심들. 내 상처를 내 품에 안고 나 혼자 치유하겠다는데, 뭐가 그리들 하고픈 말이 많은지. 상처를 내보이면 바로 돌을 던질 작자들이 내뱉는 싸구려 관심이 아팠다.

 

 

 

여기에 살아요?”

 

작은 꼬마 아이였다. 처마에 떨어지는 비를 보며 바로 잠들어 있던 나는, 그 호기심 어린 눈망울에 깰 수 있었다. 깨끗한 눈망울. 나는 죽은 눈으로 일어선다. 몸이 얼어 차가웠다. 비가 몸 안의 세포 곳곳에 배어있었다.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곤 아이를 보았다.

 

.”

 

여기 귀신 나온다던데.”

 

안 나와.”

 

눈빛이 맑아서 투명해 보이는 아이였다. 짙은 눈동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빠져들게 했지만 어린 나이에 이토록 짙은 눈빛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호기심이 많은지, 자꾸 이곳을 기웃거린다. 사람들의 관심에는 신물이 났던 터라 아이의 눈빛마저 귀찮았다.

 

귀신…… 나올 텐데.”

 

아이는 걱정이 잔뜩 묻어있다. 왜 남의 일을 걱정 하냐. 나는 툭 던지고 싶은 말을 참고 아이의 볼을 만졌다.

 

그런 거, 다 어른들이 지어낸 말이야.”

 

옆집에 진수도 여기에 귀신이 있는 거 봤다고 했단 말이에요.”

 

겁이 많아서 그래. 어른도, 아이도. 겁이 많아서 있지도 않은 사실을 지어내고, 그걸 믿어버리는 거야. 그리고 지레 겁을 먹고 그 사실 자체에 다가가지 않아. 귀신은 없어……. 초라한 집은 맞지만.”

 

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아이의 눈은 혼란으로 가득 찼지만, 나는 아이에게 친절할 마음이 없었다. 아마 이 아이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 또한 없고 호불호만이 있을 것이다. 그런 게 아이들의 좋은 점이자, 싫은 점. 단순하고, 극단적이고, 도덕적이고. 아이는 내 손을 치워냈다.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진수는 거짓말 안 해요.”

 

. 진수는 거짓말 안 해.”

 

나는 귀찮아져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래, 네 말이 맞으니까 여기서 그만하자.

 

, 언니는 귀신이죠!”

 

?”

 

진수 말이 맞다면서요. 귀신이라서…… 여기에 살고! 그죠?”

 

졸지에 귀신으로 몰리자, 할 말이 없어진다.

 

너 맘대로 생각해라…….”

 

오해를 풀기에는 기력도 의욕도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내가 귀신이면 어떠랴,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이의 동그랗게 뜬 눈을 보며 나는 여기에 살며 조금은 재미있어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골치 아플 것 같은 예감도 선뜻 뇌리를 찔러왔지만, 여기서 더 골치아파봤자 어떠랴 싶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어디야?”

 

일단…… 먼 곳. 외곽지.”

 

어디냐고. .”

 

바다가 있어. 그거밖에 할 말이 없네.”

 

네 인생이 이렇게 가볍냐? 하던 건 다 어쩌고.”

 

그러게…….”

 

파도 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다. 파도가 넘실대는 것처럼 수화기 너머의 소리도 넘실댄다. 노이즈가 짙어서, 나는 휴대폰을 귀에 바짝 붙이고 통화를 하고 있었다.

 

문득 나는 동물적인 공포를 느낀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나 혼자 떨어져있구나. 하지만 휴대폰으로 흘러나가는 말은 공포 따위는 없이 유유하다. 나는 문득 허허 웃어버렸다.

 

아직 학생이니까 할 수 있는 방황이지. 너무 걱정하지 마.”

 

넌 늘 그 따위더라.”

 

…….”

 

의논하는 법을 배워. 늘 혼자 그러니까, 알 수가 없잖아.”

 

그러게…….”

 

주위 사람들은 알아?”

 

아니. 너한테만 말했어.”

 

한숨 소리가 귀를 울린다.

 

돌아와.”

 

나중에.”

 

.”

 

끊을게.”

 

나는 탁 트인 하늘을 보며 휴대폰을 닫았다. 집중하던 청력을 흩뜨려놓자, 이질적인 말소리가 느껴진다. 숨을 잔뜩 죽였지만 다 귓바퀴 안으로 들어올 만한 크기의 소리였다. 요즘 귀신은 휴대폰도 써? 요즘은 귀신들도 현대에 적응하나봐. 나는 귀를 간질이는 내 뒷담화에, 누구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뒤에서 말하지 말고, 나와.”

 

들켰잖아! 나직하게 울리는 소리에 나는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나와 봐. 안 죽일게.”

 

두 명의 작은 아이는 벌벌 떨면서 앞으로 나왔다. ‘안 죽일게라는 말이 역효과를 발휘했는지, 공포심이 가득한 얼굴들이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번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냈다. 저 두려움은 내가 귀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는 걸까. 절대다수의 스쳐가는 사람들을 보는 내 마음 속이 저럴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아닌 걸 짐작하면서도 확신하고 공포에 떠는 내 모습이 꼭 저럴 것이라고. 여자애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너하곤 저번에 봤었지?”

 

, 잘못했어요. 사람들한테 말 안할게요.”

 

이름이 뭐야?”

 

효은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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