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 시대의 부모님
신나게 놀다가 돌아오자, 발이 시려웠다. 인식도 못하고 있었다. 신나게 발을 털고 현관문 앞을 들어오는데, 우울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갔다왔니? 엄마 혼자 두고."
익숙한 술냄새. 엄마는 요새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셨다.
"엄마. 나도 이제 20살이야. 냅두라고."
말하고도 솔리는 자신이 못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만 보면 말이 그렇게 나오기만 했다.
"널 낳고 나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녀는 신세 한탄을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어. 그래, 이번 출산금지령은 잘한 일이야. 자식 낳는 거? 해방될 수 있으면 제일 좋지."
"엄마, 딸 듣고 있어요."
"20살이라며? 이제 20살이면 남이지. 흥."
"그래요. 남이예요."
그렇게 말하고도 왜 마음은 아픈 걸까. 눈물이 날 것같았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 독기가 올랐다. 못되게 말해야지. 엄마는 나무로 된 식탁 위에 유리로 된 술병을 탁 내려놓았다.
"너도 남자 말고 여자 만나. 요새는 그게 좋다더라. 끼리끼리 만나는 게 유행이잖아."
"엄마랑 내 생각은 다르니까."
"출산 안하고 연애만 하고, 얼마나 좋아."
이젠 도저히 못 참는다.
"엄마, 나 애 낳을 거야."
"지금 반항하는 거니?"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조치도 다 취해놨어. 나 애 낳을 거야."
"뭐라고?"
엄마는 고개를 흔들었다. 술이 좀 깨는 듯 했다.
"엄마랑은 달라. 난 아빠가 없으니까."
"네가 아빠가 없긴 왜 없어! 네 아빠는 찐국 대통령 여봐라야!"
"그게 어떻게 아빠야!"
솔리는 버럭 외치고도 죄책감이 들었다. 맞다. 솔리의 생물학적 아버지 여봐라. 그러나 권리는 주장할 수 없었다. 엄마는 그의 정자를 정자은행에서 구입했고 그의 생물학적 자녀는 아마 500여 명은 된다고 했다. 엄마는 잘 키우려고 좋은 유전자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과거에는 모르겠지만 현재에는 그런 삶의 방식도 당연해서 별로 특이할 것은 아니었다. 잘 사는 집도 많았다. 다만 우리 집만 엄마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을 뿐이다.
"난 정말 좋은 가정을 꾸릴 거야."
"좋은 가정? 난 모든 사람의 축복을 받으면서 가정을 만들었어. 그런데도 불행해. 너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고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시련이 가득한 가정을 꾸리려고 하는데,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잘 생각해."
"언제는 남이라며?"
"우리가 어떻게 남이 될 수 있니?"
"휴."
솔리는 심호흡을 했다.
"몰라. 난 자녀 계획이 있어."
"솔리야! 나는 네가 혼자 잘 살라고 솔리스트라는 뜻의 솔리라는 이름을 지어줬는데!"
"아 몰라. 이미 피임회피약을 먹었어."
"어떤 놈이야!"
"알면 뭐할 건데!"
"들어가!"
엄마, 나홀로는 솔리를 노려보았다.
"너랑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들어가!"
"알았어. 나도 말하고 싶지 않아!"
솔리는 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갔다.
단생각의 말을 듣고 뇌에 칩을 이식하지 않았는데,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머리 터질 것같아. 메신저는 와있고. 솔리는 메신저를 확인했다. 친구, 할건대가 연락이 와있었다.
"왜!"
"엥 안 좋은 일 있냐?"
"아, 엄마랑 싸웠어. 왜!"
할건대는 학교친구였는데, 남자애였지만 말이 너무 잘 통해서 단짝처럼 다니고 있었다.
"내 동생이 너 보고 싶대서."
할건대의 동생 할거니는 17살이었다. 이제 나는 20살. 하늘과 땅차이다.
"아 안녕하세요."
"언니, 말 편하게 하세요."
"그래. 잘 지냈어?"
"내 동생은 왜 그렇게 널 좋아하는지 몰라."
"오빠 방해하지 말고 나가!"
마음은 속상했지만, 솔리는 웃었다. 팬서비스. 사회생활에서 중요하다.
할거니와의 대화는 즐거웠지만 혼이 쏙 빠졌다. 기력이 없어서일까, 대화를 마치고 난 후 솔리는 침대와 붙어있는 벽에 기대어 한숨을 푹 쉬었다. 무기력했다. 엄마가 반대하는 결혼. 예상은 했지만.
사실 이제는 결혼도 평생해로라는 것은 없었다. 사람들이 너무 오래 살고 영생을 누리다보니, 한 번 결혼을 하면 그 유효기간은 딱 30년이다. 그 뒤로는 서로 놔주는 것이다. 법적으로 규정해놓은 결혼기간이었다. 놓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단은 한쪽이 헤어지고 싶다고 하면 헤어져야 하는 것이 의무였고 '이혼'이라는 표시가 남지 않는다. 그래도 오래 해로하는 사람이 있다면 해로하는 둘은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직 부모님이라는 개념은 있었지만 그 것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분명 우리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 그 우리에게는 '부모님'이라는 단어가 유효할 것이다.
단생각에게 다시 연락했다.
"단생각, 우리 결혼하자."
폭탄선언을 던졌다.
단생각의 주변에는 여러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단생각은 곧 나타났다.
"지금 일하러 나와서. 다음에 이야기하자. 미안."
신경을 쓰는 건지, 그렇지 않은 건지.
솔리는 침대에 폰을 던지고 몸을 웅크렸다.
다음 날, 단생각이 연락이 왔다. 해가 갓 태어나 비치고 있었다.
"솔리야. 어제 생각해봤는데, 네가 갓 20살이 됐잖아. 5년 정도는 놀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5년 후에도 20살인데."
"뭐라고?"
"나도 바쁘고, 그리고 아, 약물은 꼭 회피할게."
"두려운 거야?"
"너도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바뀔지도 몰라."
"내가 임신하기 위해 미친 사람이야?"
"말을 어떻게 그렇게 해. 내 말은, 사람은 생각이 바뀌니까."
솔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침이라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나랑 헤어질 생각이야?"
"절대 그럴 수는 없어."
"그럼 어쩌자는 거야?"
"그럼 결혼부터할까? 결혼 준비에 2년은 걸리지 않을까?"
"그렇게 오래?"
"오래 살다 보니 점점 느긋해져서 그래."
"이해해."
솔리는 이해를 하는 건지 아닌 건지 참는 것만 늘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럼 상견례는 어때? 우리 부모님 다 널 환영하셔."
"일단은 부담스러운데."
"그럼 파티가 열리거든. 그 때 와서 그냥 잠깐 얼굴 보고 가볍게 들르던지. 다른 사람들도 많을 거고 널 소개시켜 주고 싶어."
"그렇게 할게. 언제라고?"
"1월 1일."
5일 가량이 남아있었다. 솔리는 다시 기운을 좀 되찾아, "알았어." 기운 차게 답하고 끊었다. 할건대에게 자랑을 해볼까 싶기도 했다. 할건대에게는 단생각을 만날 때마다 자랑을 하기는 했었다. 그때마다 할건대는 잘 들어주었다. 착한 남매이기는 했다. 연락이 너무 많이 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었지만. 어쨌든 자랑을 하려고 해도 지금은 시간이 너무 이른 것같다.
어제 오늘 폭탄선언을 두 번이나 했다. 솔리는 다시 거실로 나섰다. 방 한 개와 좁은 거실, 엄마는 이불도 덮지 않고 양치도 하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술병 3개가 널부러져있다. 솔리는 병을 주워 분리수거통에 넣었다.
"엄마, 엄마가 좀 행복했으면 좋겠어."
자는 엄마에게 솔리는 중얼거렸다. 시간은 솔리에게 항상 더뎠다. 솔리에게만 중력이 있는 것처럼.
아이라는 새 생명을 만나고 싶다. 폭력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생명 또한 인간의 본성이다.
그게 5년이 미루어지면, 사람들은 그걸 용납할까. 새삼 무거웠다.
단생각이라면 지켜 줄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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