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바닥을 보았다. 손 언덕에 작게 지져진 흔적이 있었다. 나는 선우의 흔적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손을 꼭 감아쥐었다.
“블루헤드 우주선으로 갈 건데, 같이 갈 건가? 히어로들.”
카모스가 물었다.
“가서 어쩌려고?”
“길티모어를 포로로 잡아서 인질로 주고 지구와 무역을 하려고 한다. 난 지구의 음식이 마음에 들었어. 파괴하고 싶지 않군.”
“넌 누군데?”
수선화가 물었다.
“카모스.”
“네가 바로……!”
수선화도 놀란 표정이다.
“우리 팀을 일단 부르겠어.”
“시간이 없으니 가면서 불러라. 나 혼자라도 상관없으니까. 크하하핫!”
우리는 카모스의 뒤를 바로 따라붙었다. 카모스는 칼을 꺼내 들었다. 카모스의 모습을 보자 블루헤드의 우주선으로 향하는 동안 비켜서는 블루헤드가 대부분이었다.
용감하게 카모스를 막아서는 블루헤드가 있었다. 몬스터 대장 겔무가 채찍을 들고 카모스를 막아섰다. 우주선의 입구였다.
“멈추십시오. 카모스님!”
“비켜라. 사령관, 길티모어를 보겠다.”
“히어로들과 함께라니요!”
“그럼 나 혼자 들어가겠다.”
겔무의 뒤로 거대한 해골 갑옷을 입은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저 사람이 바로 길티모어인가?
“길티모어. 왜 나를 죽이려고 했지?”
카모스가 물었다.
“힘을 회복하셨습니까?”
“인정하는 바이냐?”
“지구침공에 맡은 바 책무를 다했을 뿐, 태자님께서 철이 없으셔서.”
나는 길티모어의 말을 더 듣지 않고 선우의 레이저를 쏘아버렸다. 기습공격에 길티모어는 가슴을 잡고 꿇어앉았다. 그 틈을 타 수선화는 칼로 우주선 천장을 살짝 가르더니 아예 찢어버렸다. 카모스는 훗, 웃었다.
“우주선을 추락시키면 안 되는데 말이지.”
그러나 기우뚱 우주선이 기울고 있었다. 우리는 추락하는 우주선에서 빠져나왔다. 우주선은 서서히 가라앉다가 점점 빠르게 논밭에 떨어져 부서졌다. 우리는 한동안 그 잔해에 서 있었다. 카모스는 길티모어를 끄집어냈다. 환상대장 겔티가 짧은 다리로 무릎을 꿇었다.
“제 동생 겔무는 제발 살려주십시오. 카모스님.”
“그렇게 할 작정이다. 길티모어에게 환상빔이나 좀 쬐어주어라.”
환상대장은 봉을 휘둘러 길티모어에게 음파모양의 빔을 쏘았다. 우리는 멍하니 지평선 너머를 보고 있었다. 산들로 가로막혀 있지만 저 멀리서 트럭 몇 대가 부리나케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트럭보다 먼저 선우와 이찬이 날아왔다.
“카모스!”
선우는 바로 카모스를 알아보았다.
“협회장을 불러오겠나? 정전을 청하고 싶군. 우리는 퇴각한다.”
“왜지?”
“……지구의 음식이 좋아서.”
“그게 아닐 텐데?”
선우는 바닥에 서서 카모스의 이마를 노려보았다.
“역시, 각인인가?”
“데려갈 생각은 없으니 안심해라. 그래도 내 미래 아내의 땅이 될 곳이니 존중해야겠지.”
“그녀는 네 아내가 될 생각이 없어!”
“훗.”
카모스는 웃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곧 협회장도 소환이 되었고 카모스는 메스컴의 대대적인 주목을 받으며 대통령과 만찬까지 열었다.
특수 감옥을 제작하여 길티모어가 인질로 잡혔고 그 대가로 우주선은 식자재를 가득 실었다. 수선화가 메인 우주선을 찢어버렸는데, 그 건 선우가 복구했다. 선우의 능력은 신기했다. 우주선을 붙잡고 ‘시간여행’을 시전하자 우주선이 옛날 모양으로 돌아왔다.
이찬 오빠는 외계인에게 선물로 줄 거대한 우주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악감정도 많았지만 어쨌든 수십 년의 긴 전쟁 끝에 화해를 청하게 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나는 가끔 기운이 빠져 힘이 없었지만 쓰러질 그것 같은 일은 잦지 않았다. 내 문제는 뿔의 영향력도 있었던 것 같다.
아빠는 여전히 해영 아줌마와 만나고 계셨고 우리는 가끔 집에 오갔지만 돌아오라는 말은 없으셨다. 가끔 씁쓸한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셨다. 뽀삐는 이제 내가 낯선지 가끔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유명인이 되었다. 정서리 선배가 칼럼을 쓴 게 대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카모스의 뿔에 당한 히어로가 정전의 이유가 되었다’라는 글이었다.
뿔이 없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나는 다시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기도 했다. 이제는 주목을 받을 일은 많이 없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히어로들은 모두 정렬해서 카모스를 배웅했다. 카모스는 이내, 훗, 하는 웃음과 함께 우주선에 탑승했다. 나도 정렬해 있었다.
우주선이 출발하자 온 사람들이 그 모습을 바라본다. 뒤꽁무니에 빛나는 붉은 빛이 인상적인 거대 우주선은 소음도 없이 산뜻하게 떠서 출발했다.
어쩐지 허탈감도 밀려온다. 정말 끝인가?
태어날 때부터 전쟁은 시작되어 있었는데.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데 이렇게 쉽게 그만둘 수 있는 거였단 말인가?
행사가 끝나고 선우와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보고 싶어.”
“나도 일렉트로닉 걸은 항상 보고 싶다. 몸은 괜찮아?”
“3개월 동안 아무것도 안 묻네.”
“네 마음 돌보는 게 먼저니까.”
“카모스는 다시 올까?”
“다시 오겠지. 너를 보러.”
“나를 보러? 왜?”
“블루헤드 일족은 자신이 처음 입술을 맞댄 사람을 평생 잊지 못한대. 그리고 그 사람이 아니면 결혼할 수 없다고 하더라.”
“…….”
나는 경직되었다.
“그런데 그건 그쪽 생각이고. 나도 양보할 생각은 없거든.”
나는 말문이 막혔지만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시간여행을 해서 카모스가 우리 엄마를 해쳤는지 알고 싶어.”
“갈 필요 없어. 무리가 많이 되는 능력이고, 카모스가 맞아.”
“뭐?”
“……내가 가봤어. 일렉트로닉 걸은 미친 카모스의 손에 돌아가셨어.”
“그럼, 내가…… 엄마의 원수랑.”
나는 골이 띵했다.
“일렉트로닉 걸은 지금 상황을 장하다고 하실 거야. 너는 어쨌든 그런 우호적인 감정으로 전쟁을 막은 거야.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 너는 분명, 히어로의 딸이야.”
“날 왜 그렇게 히어로로 만들고 싶어 한 거야?”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힘든 일이지만, 일렉트로닉 걸도 그러길 바라셨어.”
“그래.”
“카모스의 일은 어쩔 수 없었어.”
나는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카모스는 사라졌지만 이 집에서 살아.”
선우는 가끔 나를 당황시킨다. 하지만 나도 싫지 않아서 대답했다.
“응.”
“그래.”
“근데 왜 2층에 안 올라오는 거야?”
“……사고 칠까 봐.”
“뭐?”
“아 됐어. 됐고, 정서리 선배가 계속 수선화가 누구 좋아하냐고 묻는데 넌 아는 거 없어?”
“그러게. 누굴까? 후보는 있는데.”
아무래도 정서리 선배에게 전달하는 것이니 되도록 확실했으면 좋겠다. 말 안 해주면 어쩔 수 없지만 일단 학교에 가자마자 수선화에게 물어보았다.
“나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네가 좋아하는 사람 누구야?”
“일렉트로닉 걸.”
“농담하지 말고.”
“진짠데. 그래서 너도 아저씨도 싫은 거야. 우리 일렉트로닉 걸 고생시켜서.”
“……그런 거야?”
“그런 거야. 농담이야. 믿었냐? 거짓말은 아니긴 하지만.”
농담을 이렇게 살 떨리게 해도 되는 건가. 역시 수선화다.
“좋아하는 사람? 있긴 하지만 아직 그냥 인간적인 호기심일 뿐일걸. 이찬오빠는 네게 호의적이니까. 그래도 중요한 건 히어로로서 일하는 거지. 사랑은 됐어. 이번엔 네 몸을 던져 카모스를 쫓아 보냈으니 인정해줄게.”
“고맙다.”
“아, 서리 선배한테 말하지 마.”
나는 뜨끔했다. 비밀을 지켜야겠다.
“알았어.”
서리 선배도 무서웠는데 지금은 편해져서 다른 의미로 긴장이 된다.
그래도 하나는 안 것 같다. 나는 나만 생각했었는데, 도움을 주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
히어로학과 1학년, 이소라. 오늘은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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