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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까 아까 커피를 맛보았으니 히어로슈트를 입어봐야겠다.

 

나는 히어로시계를 꺼내 내 슈트를 착용했다. 앞 화면이 지직거린다.

 

수면 가루 위력D 속성: 풍

 

역시……! 

 

블루헤드의 짓이다.

 

거실로 들어서자 선우가 신문을 읽고 있었다. 요즘은 다 인터넷으로 신문을 읽는데 선우는 아직도 종이신문을 고수하고 있다. 나는 선우쪽으로 성큼 발을 올리는데,

 

“출입금지. 일 층은 부엌만.”

 

쫀쫀한 녀석. 나는 입이 댓 발로 튀어나와 부엌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말할 게 있어.”

 

“뭔데?”

 

선우는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보았다.

 

나는 이때다 싶어 미주알고주알 커피숍에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카모스의 이야기는 차마 못 했지만 집에서 슈트를 쓰니 블루헤드의 기술이 화면에 떴다는 것까지.

 

“내일 또 가볼 거야?”

 

“응!”

 

“너도 어쩔 수 없는 히어로다. 안 그래?”

 

“…….”

 

그렇게 그가 제안한 히어로를 거절했던 때가 떠올랐다. 아직 그렇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기도 하지만.

 

“눈이 반짝거려.”

 

선우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방구석에 가서 뭔가를 들더니 먼지를 털었다.

 

“내일 혹시 모르니까 이걸 써.”

 

“그게 뭔데?”

 

“방독면. 특수방독면이라 가볍고 유해물질은 다 차단해줘. 히어로슈트로는 부족할 거야. 아직은.”

 

선우는 부엌 식탁에 방독면을 올려놓았다. 단단해 보였지만 얇아서 옛날 우주선 모자같이 생겼다. 나는 선우를 빤히 보았다. 얇지만 길게 뻗은 콧날. 속눈썹.

 

“왜?”

 

“고마워서.”

 

“고마우면 훌륭한 히어로가 돼라.”

 

이 녀석 머릿속에는 역시 날 히어로로 만들겠다는 생각밖에 없는가 보다.

 

나는 방에 들어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독면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아는 방독면보다 험상궂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다. 마음에 쏙 들었다. 머리에 써보자 머리에 착 감기면서도 뒷면이 딱딱하지 않고 가벼웠다.

 

스르르 잠이 몰려왔다.

 

다음 날, 눈을 뜨자 고요했다. 평소라면 새소리라도 들릴 법한데, 불길할 정도로 적막하다.

 

나는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방독면도 아직 벗지 않았다. 위기상황에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 나는 우선 선우를 찾았다. 그라면 이래서 그런 거였다, 라고 설명을 해줄 것 같다.

 

“선우야!”

 

그러나 이름을 불러도 그는 나오지 않았다. 먼저 학교에 가거나 일터에 간 걸까?

 

나는 그가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했던 집 안 경계선을 넘어서 살짝 문을 열어보았다.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만, 문제가 생겼다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문 너머에 보인 상황은 그 예측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선우는 쓰러져 있었다.

 

“선우야!”

 

쓰러져 있다기보다는 자고 있었다. 미세하게 코를 골고 있다. 새근새근, 잘도 자고 있다. 자는 시간이라 해도 이상할 건 없지만 이 상황은 뭔가 심상찮다.

 

“일어나 봐!”

 

그러나 그는 으음, 소리를 내며 깨지 않았다. 나는 불길함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화장실에 가서 작은 바가지로 아주 조금만 물을 퍼서 그에게 끼얹었다. 그는 그래도 쿨쿨 자고 있다. 나는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

 

“안 되겠어.”

 

내가 어떻게든 해야 한다.

 

그래, 나도 히어로니까.

 

나는 8시에 만나기로 했던 커피숍으로 달려갔다. 슈트를 입자 빠르게 날아갈 수 있었다. 나는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이렇게 저렇게 버튼을 누르자 비틀거리며 날아갈 수 있었다.

 

날아가는 동안 끔찍한 사고들을 봐야 했다. 사람들이 길거리에 쓰러져 있었고 자동차 몇 대가 부딪혀서 찌그러져 있다. 피를 흘린 채로 자는 사람도 있었다.

 

커피숍에 도착하자 놀랍게도 누군가가 서 있었다. 무거운 방독면을 쓰고 서성거리는 수상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잠들어 있었다.

 

“누구세요?”

 

나는 물었다.

 

“소라야!”

 

나보다 더 반가워하는 그 목소리. 목소리가 걸걸해졌지만, 목소리를 듣자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찬 오빠였다. 오빠는 아직 슈트가 없을 텐데.

 

“다들 잠들었어. 어떡하면 되냐?”

 

“오빠는 어떻게 된 거예요?”

 

“히어로는 대비를 해야 하는 법! 불안해서 방독면을 꺼냈어. 일어나니 어머니도 주무시고, 다 자더라.”

 

“우리 둘만 남은 것 같은데요.”

 

 

“그래.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혼자면 정말 곤란했을 거야.”

 

“저도 그렇기는 한데. 블루헤드는 언제 쳐들어올까요? 이렇게 해놓고 가만히 있을 리는 없을 것 같아. 그리고 선우를 깨워봤는데 깨질 않아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차 했다. 같이 사는 게 들키면 안 되는데. 그러나 이찬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일단 초능력이니까. 한계 시간이 있지 않을까?”

 

“시간?”

 

“능력은 베꼈어?”

 

“네. 소량이라 취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가루인 것 같아요. 수면 가루라고 떴어요. 위력이 D라는데 너무 강력하네요.”

 

“D면 무조건 제한시간이 있을 거야.”

 

“아무래도 커피숍에 포탈이 열릴 확률이 높은 것 같아요. 거기서 시작했으니까.”

 

“그래. 좋아. 가자.”

 

우리는 커피숍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시간은 꽤 오래된 것 같다. 왜냐하면 그때의 주인아주머니도 퇴근을 하지 않고 잠들어 있었으니까. 경찰이 왔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메모지를 떨어뜨린 경찰복을 입은 사람 두 명도 잠들어 있었다.

 

“여기에 포탈이 열릴까?”

 

나는 중얼거리다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블루헤드라면 사람들을 재워놓고 무엇을 가장 타겟으로 만들어 놓을까.

 

아마도……. 

 

“이 커피숍이 아닐 것 같아요!”

 

“뭐?”

 

이찬이 물었다.

 

“뛸 수 있겠어요?”

 

“물론이지! 어딘데?”

 

“조금만 더 가면 돼요.”

 

나는 카모스가 있는 커피숍으로 내달렸다. 이찬 오빠가 내 뒤를 따라 달려온다.

 

유리문을 열자, 역시 잠들지 않은 카모스가 붉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에스프레소를 홀짝이고 있다.

 

“어쩐 일이지?”

 

그는 태연하게 내게 물었다.

 

“네 녀석 짓이지?”

 

“어떻게 방독면을 하지 않았는데 자지 않고 있지?”

 

이찬이 놀라서 말했다.

 

“나는 마력 덩어리라서, 이 정도로는.”

 

“마력 덩어리?”

 

“차차 설명할게요.”

 

나는 일단 이찬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진정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팽팽하게 세워 카모스를 가리켰다.

 

“네 녀석, 역시 잠입이었어!”

 

“아냐. 나도 당황스럽다. 난 순수하게 커피숍을 열었을 뿐인데.”

 

“뭐라고?”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는 중얼거렸다. 그제야 카모스의 뒤가 보였다. 포탈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병사가 얼굴을 들이밀 때마다 카모스는 손가락을 튕겨 그 얼굴을 다시 잡아넣고 있었다.

 

“블루헤드도 전체가 한 사람은 아니라서 말이야. 나를 이용하려는 사령관이 있어. 황권과 군권이 부딪히는 거지.”

 

“네 명령이 아니란 말이야?”

 

“아니다. 너는 내 명령인 줄 알고 왔나 본데, 어떻게든 맞추기는 했어. 우리 팀 녀석들도 나를 데려가려고 이 짓을 벌인 것 같으니까. 하지만 뿔이 없이는 돌아갈 수 없다. 뽀뽀를 부탁한다.”

 

“미쳤어!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일은 없어!”

 

“공짜로 부탁하지는 않는다. 내게 뽀뽀를 하면 잠든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서 내려오는 블루헤드들을 막아주마.”

 

“…….”

 

“이벤트로 죽여줄 수도 있고.”

 

그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정말 징그러운 놈이다. 포탈이 점점 열리고 있었다.

 

“늦기 전에 부탁한다.”

 

카모스는 정중한 척 말을 했다. 나에게는 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라야!”

 

이찬의 질린 목소리가 들린다. 포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나는 결심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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