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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찬과 여자애와 카모스와 나는 커피숍에 앉았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나누었다. 여자애의 이름은 수선화였다. 나는 속이 따끔했다. 카모스의 비밀을 지켜야 하는지, 폭로해야 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거의 일반인에 가까운 내가 알 수 있는 블루헤드의 비밀은 없었다. 카모스가 잡혀들어갈 때 들어가더라도 어떤 사실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와 수선화는 안쪽 자리에 앉고 카모스와 이찬오빠는 바깥쪽에 앉아 마주 보았다.

 

“카모스는 학생이야?”

 

살갑게 묻는 것은 항상 이찬오빠다.

 

“군인이다.”

 

“군인?”

 

“우리 군은 황태자를 주축으로 해서 외부고문에 가까운 사령관이 군을 통솔하고 있다. 권력이 이분화되어 있는데, 황태자의 능력개발을 목표로 군을 파견하고 황태자의 능력개발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면 사령관으로 권한이 전권 위임된다. 이 여자애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 있어야 황태자가 다시 군권을 잡을 수 있게 돼. 그래서 네가 훔친 그 물건을 돌려받으러 왔다.”

 

“외국인이었구나.”

 

중요한 포인트는 그게 아닌데도 이찬은 눈을 반짝였다.

 

“한국말 잘한다.”

 

“내가 좀 잘났다.”

 

카모스는 차갑게 이찬을 바라보았다. 이찬은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는다.

 

“소라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큰 문제인 것 같으니까 돌려줘야 할 것 같은데.”

 

“안 돼.”

 

“왜?”

 

“전쟁을 일으킨다고.”

 

나는 차갑게 말했다. 카모스보다 말투는 더 차갑게 말할 수 있다.

 

“벌레 같은 것들을 없애버리는 게 뭐가 잘못됐지?”

 

카모스가 받아쳤다. 이찬의 얼굴이 그제야 일그러졌다.

 

“안 돼. 안 돼. 모손. 그런 생각은 위험하다고.”

 

“위험하다는 건 겁쟁이들이나 하는 소리다.”

 

“아니야. 사람은 누구나 지킬 수 있어야 해. 나 자신이든, 다른 소중한 누군가든. 그러기 위해서 군인이나 히어로도 있는 거잖아.”

 

카모스는 말이 없었지만 자기 두 손으로 팔짱을 끼고 방어적인 태세로 있었다. 이찬은 턱을 괴었다.

 

“돌려주는 건 나중이 좋겠어.”

 

“나는 당장 돌려받아야 해.”

 

“어떻게 돌려주면 되는데?”

 

“뭐?”

 

카모스는 눈에 띄게 눈이 둥글어졌다.

 

“일단 내 몸에 들어왔어. 어떻게 내보내는지 몰라.”

 

“그건 간단하다. 내 이마를 핥아줘.”

 

“뭐?”

 

나는 기겁을 했다.

 

“그러니까 설마 훔쳤다는 게…….”

 

이찬도 같이 기겁을 했다. 저 오빠는 무슨 오해를 한 건지.

 

“내 마음을 훔쳤어. 뭐 이런 거냐?”

 

카모스가 멀뚱히 이찬을 본다. 나는 카모스가 얼른 해명하기를 기다렸지만,

 

“말하자면 그거랑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지.”

 

카모스의 답변에 카오스가 되었다.

 

이찬은 나와 카모스를 번갈아 보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선화는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하품을 했다.

 

“아냐. 내가 너한테 키스를 왜 하냐?”

 

“키스가 뭐지? 난 그냥 이마를 핥으라는 거다.”

 

카모스는 여전히 뻔뻔스럽다. 누가 악당 아니랄까 봐.

 

“그 표현이 더 저질이야!”

 

“지구인들은 알 수가 없군. 알기 쉽게 잘 말해주지 않았나? 하긴 우리도 이마를 핥는 것은 특별한 관계뿐이지. 그리고 내 뿔을 가져간 것도 그게 융기된 것도 특별하다면 특별하다. 난 강요를 할 생각은 없다.”

 

“당연하지! 네 입장을 지금 모르는 것 같은데, 나는 정보와 뿔을 교환하거나 네 나머지 뿔도…….”

 

“널 유혹하겠다.”

 

당당한 말투. 수려한 얼굴선. 붉은 문양을 지우자 선이 날카로운 갈색 얼굴은 제법 미형이었다. 나는 그 자신감에 할 말을 잃고 카모스를 보았다. 유혹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저 입 험한 황태자가 나를 유혹하겠다고?

 

“구차한 건 싫어한다. 당당하게 네 마음도 가지겠다. 내 이마를 핥아주겠지.”

 

“차라리 키스라고 해라. 키스라고.”

 

“네가 원한다면 키스라고 하지.”

 

순순히 납득하는 카모스를 보자 더욱 괘씸했다. 나머지 뿔을 잘라서 본국으로 송환해버릴까? 그럼 블루헤드도 순순히 물러날 것 같은데.

 

“착각하고 있는 게, 뿔 두 개는 힘에 밀려 떨어졌지만 뿔 하나는 힘이 아니라 각오다. 내가 내어주고 싶다는, 항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만 부러진다. 고문을 하던지, 그건 너희 자유지만 쉽게 부러지지는 않을걸.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내가 송환되면 포탄은 쏟아붓고 돌아가게 되겠지.”

 

나는 카모스를 유심히 보았다. 거짓말인지 아닌지, 카모스의 미동 없는 손짓, 발짓과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카모스도 나와 눈을 마주쳤다. 저 투명한 눈은 심지가 굳어 보였지만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나와 카모스의 불꽃 튀는 눈빛을 옆에서 지켜보던 이찬이 우리 둘 사이에 손바닥 하나를 넣고 흔들었다.

 

“안구건조증 생겨. 둘 다.”

 

“아- 함.”

 

선화는 가장 크게 하품을 했다.

 

“수강 신청 얘기나 하려 했더니 영양가도 없고 가자!”

 

선화가 짜증스레 말했다. 선화가 일어서자, 나도, 이찬도 일어섰다. 카모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긴 다리를 쭈욱 뻗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우리가 사준 커피는 입도 대지 않았다. 나를 지그시 보고 있다. 나는 홱 외면하고 먼저 걸어 나왔다.

 

“특이한 사람이야. 히어로학과에 오면 많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선화가 몇 번이고 다시 하품하며 말했다. 듣긴 들은 걸까?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안 들킨 것 같다. 아니, 내가 왜 저 카모스의 정체를 숨겨주고 있는 거지? 뭔가 도와줘야 할 것 같아서 어영부영 돕긴 한 것 같은데.

 

“난 소라를 다시 봤어.”

 

이찬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 뭘.”

 

나는 더듬거렸다.

 

“스텔라맨은 어떡하고, 불쌍해. 바람피우고 그러는 거 아니다. 너.”

 

“아니야! 스텔라맨은 친구고,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 제멋대로 그러는 거야!”

 

나는 스텔라맨은, 에서는 망설였지만, 카모스에 대한 건 시원하게 튀어나왔다. 그러나 듣는 둥 마는 둥, 이찬과 선화는 걸어갔다.

 

 

 

스텔라맨은 무신경한 얼굴에서 좀 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개학하기 전 우리 집에 놀러 온 스텔라맨에게 우리 아빠가 폭탄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방도 많은데 나를 숙박 좀 시켜달라고. 단칼에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빠의 부탁이었기 때문에 좀 더 망설여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5분 뒤,

 

“죄송하지만 안 되겠습니다.”

 

“왜?”

 

“소문도 있고…….”

 

“너 그런 걸 신경 썼냐.”

 

“소라가 여자애기 때문에 아무래도 저와 같이 사는 건.”

 

“맞아. 아빠, 뭐 하는 거야? 강요는 좋지 않아.”

 

“집도 넓으면서.”

 

아빠는 투덜투덜 말이 많아졌지만, 선우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나는 카레나 해서 먹여 보내려고 냉장고를 열었다. 요리를 못하는 나도 웬만한 맛은 나는 게 카레여서 애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항상 냉장고 한쪽 칸은 꽉꽉 채웠던 양파가 텅 비어있다.

 

“양파 좀 사 올게요.”

 

“몬스터 나온다. 조심해서 다녀와.”

 

“저도 같이 다녀오겠습니다.”

 

선우가 겉옷을 챙겨입었다. 이제는 지붕이 보강되어 바람이 불어도 많이 춥지는 않다. 나는 팔랑팔랑 밖으로 나섰다. 선우는 뒤따라 나왔다. 아직 체력이 덜 붙었는지, 평소 추위도 타지 않던 애가 눈에 띄게 추워하고 있었다. 나는 핫팩을 내밀었다.

 

“네 건?”

 

선우가 묻는다.

 

“많아. 빨리 원래대로 돌아와.”

 

“응. 카모스는 요즘 뭐할까?”

 

나는 뜨끔했다.

 

“나 수강 신청할 때 만났어.”

 

“뭐? 왜 말하지 않았어?”

 

“뭐라 해야 하지, 너무 찌질한 모습이어서.”

 

“찌질?”

 

“막 유혹하겠다 그러고.”

 

“유혹?”

 

점점 선우의 말끝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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