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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부끄러운 건 한 두 해 일도 아니었다. 나는 꿋꿋하게 일어서서 뿔을 들고 내려갔다. 경직되어 땀이 흐른다.

 

사람들의 시선, 역시 의식이 된다. 좀 더 배짱이 좋으면 좋을 텐데. 나는 1층으로 내려와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스텔라맨을 볼 수는 없었다. 최근 창궐하기 시작한 방화클럽을 잡기 위해 일주일간 결석계를 냈다고 한다. 항상 나한테는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구나, 싶어 섭섭하기도 했고 호텔에서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이 나였다는 것에 대해 특별대우를 느끼기도 했다.

 

수시를 내는 시즌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이미 학교 안에서는 면접을 보기 위해 빠진 아이들도 있었다.

 

나도 수시를 낼 생각이었다.

 

물론 특수히어로학과는 아니었다. 스텔라맨과 협의한 것은 복수 전공이었으니까. 일단 건물복구학과를 갈 생각이었다. 히어로의 활약상을 찍어 기록해두는 히어로사진과도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래도 사진사로서도 눈에 띄는 것은 싫어서 선택한 학과였다.

 

여러 고민을 하며 수업을 듣고서 마치는 종이 울리는 것을 들었다. 지루하지만 시간은 흘렀다.

 

갈 때도 선우가 없으니 따로 갈 사람이 없어 혼자 길을 걸었다. 나보다 스텔라맨에게 더 관심이 많은 친구보다는 그냥 혼자 집에 가는 것이 편하기도 했다. 같이 가도 스텔라맨의 이야기뿐일 테니까. 그래도 다들 내가 혼자 길을 가는 것을 두지 않았다.

 

“소라야!”

 

웅성거리는 20명가량의 아이들이 교문 앞에서 내게 다가왔다.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빙그레 웃었다. 이제 나도 고3이다. 예전과 같으면 그냥 지나가거나 표정이 굳어서 그들을 대해 구설에 올랐겠지만 어느 정도 눈치는 생겼다.

 

그때였다. 

 

“소라야!”

 

굵직한 아저씨의 목소리. 익숙한 목소리.

 

아빠였다.

 

중년치고는 살이 많이 붙지 않은 날렵한 얼굴과 몸의 아빠가 씨익 웃고 있었다. 히어로바이크가 옆에 놓여있고 뽀삐도 나와 있었다. 아이들이 뽀삐에게 몰려있었다. 뽀삐는 아직도 현역으로 스텔라맨과 활약하고 있었으니까.

 

“미안.”

 

나는 웃음으로 스텔라맨의 팬들에게 인사하고 아빠에게 다가갔다. 아빠랑은 일주일간 말도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반갑다.

 

“아빠…….”

 

나는 미안함과 감동이 섞여 아련하게 말을 건넸다.

 

“내가 방해했나?”

 

아빠는 겸연쩍게 말을 건넸다. 뽀삐가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입을 헥헥 거리며 웃었다.

 

“잘 오셨어요.”

 

“내일 수시 내는 날이지?”

 

“기억하고 있었어요?”

 

의외다. 아빠는 언제나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는데.

 

“물론이지. 내일도 바래다줄게. 일단 가자.”

 

내가 뒷자리에 타자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 위로 둥글게 투명한 막이 생겼다. 하나의 타원처럼 앞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하자, 나는 예전처럼 아빠와 어색해졌다. 그러나 열심히 아빠에게 말을 걸려고 노력했다. 요즘, 채소는 챙겨 먹는지. 반찬은 먹었는지. 운동은 하고 있는지.

 

“내일 수시인데, 그거 준비나 해라.”

 

결국, 아빠도 퉁명스럽다.

 

“앞에서 발표해봐. 아빠가 교수라고 생각하고.”

 

“엑.”

 

“설마 하나도 준비 안 한 건 아니겠지?”

 

“준비했다고요.”

 

그러나 면접을 보러 가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어쨌든 자리를 만들고 아빠를 식탁 앞에 앉혔다.

 

“제가 건물복구학과를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는,”

 

그때였다.

 

우리 집에 포탈이 열리게 된 것은.

 

나는 대처가 느렸다. 내 귀에 이상한 까작까작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지만, 아빠의 눈이 둥그러니 커지고 나를 감싸 안았다. 뒤를 돌아보자, 이 계의 차가운 공기가 막 하나 아래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아빠는 은퇴한 사람들에게도 주어지는 히어로시계를 켜서 막을 두껍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포탈이 열렸지만 한참 동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거대개미처럼 생긴 외계생물이 나왔을 때, 끽, 그 개미의 목을 잡고 누군가가 등장했다.

 

“그때, 그 미친놈!”

 

그가 폼을 잡고 나오는 동안 나도 히어로협회에 포탈이 열렸다는 신고를 마쳤다.

 

“귀가 가려운데? 감히 나 카모스에게 헛소리를 하는 인간이 있을까?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내가 미쳤다고 하는 미친 인간이 있다면, 역시 세상은 망해야겠다.”

 

카모스는 상당한 위압감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아빠와 나는 최대한 방어태세였다. 사람들에게 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여기에서 일차적으로 막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소리쳐서 그를 불러세웠다.

 

“어딜 가지? 여기다!”

 

“아하. 하도 에너지가 작아서 보지도 못했네.”

 

에너지 화살이 날아왔다. 아버지는 나를 밀쳤다. 나는 보호막 바깥으로 튕겨 나갔고 아빠는 손을 돌려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완충했지만, 에너지가 다 깨져버렸다.

 

“크흑!”

 

보호막은 다 부서졌다. 아빠는 다행히 다치지 않은 것 같다. 아빠가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따로 움직이자. 놈을 거실에서 나가게 해선 안 돼.”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히어로 시계를 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유인하는 것 정도지만, 해보겠다.

 

“내가 찾는 건 스텔라맨이다.”

 

나는 오싹했다.

 

“위치를 알려주면 너희들은 용서해주지.”

 

“핫핫핫!”

 

아빠 카멜레온맨이 호쾌하게 웃었다.

 

“가르쳐줄 리 없지!”

 

“그럼 볼 일 없다.”

 

카모스는 걸어갔다.

 

“잠깐, 이긴다면 힌트 정도는 주마.”

 

아빠는 당황한 게 확실하다. 그러나 그 틈에 안방에 걸려있는 카멜레온맨 슈트를 확실하게 가져오고 있었다.

 

“약속했다. 히어로.”

 

카모스는 비릿하게 웃었다.

 

그러나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차원에서 온 다른 몬스터가 없었고 카모스 혼자 뿐인 데다가 카모스의 위압감도 무슨 일인지 예전 같지 않다. 전에 비하면 확실히,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위압감은 아니다. 그러나 아빠 혼자서는 안 된다.

 

나는 아빠에게로 달려갔다.

 

“안 되겠다. 넌 도망쳐. 네가 있어도 시간도 못 벌어.”

 

“히어로협회에 신고는 했다고요. 아빠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어요.”

 

“재수 없는 말을 하네! 내가 왜 죽어?”

 

아빠는 그 카모스의 위압감을 아직 모른다. 아직 힘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

 

“히어로의 힘을 전수해줘요.”

 

“뭐, 넌 히어로가 되기 싫다며?”

 

“어쩔 수 없잖아요!”

 

히어로가 되려면 그 힘은 다른 히어로의 승인이 필요하다. 힘의 형태는 보통 네 가지로 이루어진다. 지수화풍. 거기다가 행성의 힘이 얹어진다. 아빠의 힘은 풍의 수성이다. 아빠가 전수하면 나는 내 재능이 뭐냐에 관계없이 풍의 수성에 해당하는 힘이 꽃피워진다. 그래도 자녀이니 힘이 맞을 확률은 높은 편이다.

 

“언제까지 속닥거릴 생각이지?”

 

카모스는 다시 암흑화살을 하나 날린다. 아빠는 간신히 피하고는 내 눈을 쳐다보았다. 아파트 벽이 마구 깨지고 있다.

 

“너는 도망쳐. 다음에 얘기하자.”

 

“그래. 찌질아. 네가 나설 자리는 아니다.”

 

카모스가 피식 웃었다. 비웃은 거지? 그러나 지금은 화낼 수도 없었다. 나는 불현듯 생각난 것이 있어 내 방에 들어갔다. 가방 안에 톱니바퀴 모양의 뿔을 넣는다. 그러고 보니 카모스에게 돋아난 세 개의 뿔 중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이 건 매우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히어로들에게 이곳으로 내려오는 것을 안내할 작정이다. 아빠도 제발 도망치면 좋으련만. 이제 현역도 아닌데. 몸 관리도 엉망이었고.

 

파창!

 

주택의 천장에 구멍이 나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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