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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했냐?”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신문을 덮고 숟갈을 들려고 했을 때였다. 아버지, 새어머니, 동생인 흥진과 로진이 달그락거리며 숟가락질을 시작하고 있을 때 로진은 말했다.

 

형님.”

 

걱정하듯이 흥진도 말을 건네왔다.

 

독립심을 조금 기르고 싶어서요.”

 

무슨 엉뚱한 짓을 하려고 독립심이냐? 최근 네 행동을 봤을 때 믿을 짓을 해야지 믿지! 요새 얼이 빠져서 놀고나 다니는 모양이더구만.”

 

다른 친구들은 해외에서 실력을 쌓는데 저 혼자 독립심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주식을 조금 처분해서 투자를 좀 해볼까도 하고, 당분간 혼자 살아보기도 하고 싶습니다. 반대하셔도…… 할 생각입니다.”

 

그러라고 준 게 아니다. 쓸데없는 소리!”

 

잠시만 나가서 살다가 오겠습니다. 아버지. 저를 더 키우고 싶습니다.”

 

정말로 너를 키우고 오겠다고 그러는 거냐?”

 

?”

 

그건 진실이 아닐 게다.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너는 그저 놀고 싶은 거야.”

 

아닙니다.”

 

마음대로 해라. , 돈은 네 멋대로 쓸 수는 없다. 돈을 쓴만큼 보고 하도록 해.”

 

……. 알겠습니다.”

 

오히려 로진에게 있어서는 그 말이 반가웠다. 어쨌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 것이다.

 

…….”

 

걱정스레 바라보는 흥진을 무시하며 로진은 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

 

집에서는 나갈 작정이다. 다만 어떻게 나갈 것인지가 남아있었다.

 

로진은 다음 날로 학교 근처의 부동산으로 가서 집을 알아보았다. 옆의 건물이 비어있는 집으로 골랐더니 매물은 금새 줄여졌다. 나와있는 집은 단 한 집밖에 없었다.

 

건물은 그럭저럭 살만한 서른평 정도였다. 학교 옆인데다가 새집이었지만 가격 탓인지 분양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남아있는 집이라고 했다.

 

로진은 여기라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결제를 처리하고 나서 로진은 다시 채희의 전공수업이 주로 있는 강의실에 서서 기다렸다.

 

역시 나타나는 것은 채희가 아닌 제훈이다.

 

제훈은 후드를 뒤집어쓴 채 잠에서 깨지 않은 퉁퉁 불은 눈을 하고 좀비처럼 걷고 있었다. 오후수업인데도 잠에서 덜 깬 것처럼 보였다.

 

오늘은 죽어가는군.”

 

로진은 졸면서 걷는 제훈의 앞을 막아섰다. 제훈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집은 준비했냐?”

 

물론이지.”

 

? 벌써?”

 

벌써라고 할 것도 없지……. 하루이틀쯤은 지났으니.”

 

로진은 제훈이 이런 반응이자 조금 김이 빠졌다.

 

언제 입주할거냐? 채희도 같이 오면 좋겠고.”

 

. 채희랑 나랑 같이 살라고?”

 

제훈의 얼굴이 빨개졌다. 로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생각을 고쳐줘야할지 알 수 없다.

 

아니. 아마 너랑 나랑…….”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되겠어.”

 

제훈은 로진의 말이 끝나기 전에 말을 잘라먹고 치고 들어왔다.

 

소윤누나랑 저녁약속이 있거든.”

 

채희를 놔두고…… 좋아한다는 말도 거짓말이었군.”

 

남이사.”

 

로진은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건 네 자유지만 그 앨 상처입히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 앨 상처입히는 걸 두고보지 못해서 가만히 있지 않는 건 내 쪽이네. 너는 늘 가만히 있었고!”

 

제훈은 검지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로진은 팔짱을 끼고 제훈을 바라보았다. 제훈은 열변을 토해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는 친한 여자도 없냐? 난 어쨌든 그녀에게 별 마음 없어.”

 

마음 없이 사귀는 것도 깨끗한 건 아니지.”

 

로진의 대꾸에 제훈은 할 말을 잃었다. 사귀지 않는다고 자신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소윤과의 관계를 일부러 사귈 듯 말 듯 유지하는 것은 제훈 스스로였다. 그 것을 사정없이 찔러들어오는 로진이 기꺼울 리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눈엣가시였는데 말을 하자 그 감정은 더 커졌다.

 

언제까지 그렇게 깨끗한 척을 할 수 있나 두고 보겠어…….”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너랑 상관없잖아!”

 

맞아. 나와는 상관이 없지. 채희와 관련되지만 않는다면.”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는데. 제훈은 이를 까득까득 물었다. 모든 일의 원흉인 주제에, 누가 관련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어쨌든 난 오늘 바쁘니까 내일 이야기 하자구.”

 

제훈은 상대해봐야 손해라는 생각에 이야기를 잘라냈다. 그리고 강의실로 걸어들어갔다. 제훈의 뒷모습을 로진은 그저 지켜보고 서 있었다.

 

로진에게도 부채감은 있었다. 비록 제훈은 그를 무신경의 끝판왕이라고 단정지었지만 채희가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가장 크게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로진일지도 몰랐다.

 

그는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잘 알 수 없었는데 채희가 자신을 좋아하고 그 것을 원한다면 자신이 온전히 한 여자를 책임지는 것으로 기꺼이 결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그녀가 그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준비된 것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사님들 사이에선 화경이가 조직폭력배와 접선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거군요.”

 

로진은 수업이 마치는 대로 컨테이너 박스로 된 기사실 안에서 정기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기사는 이런저런 소문을 추려서 간단히 로진에게 전했고 로진은 들리는대로 메모를 해서 그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었다.

 

. 아가씨의 외가 쪽과 연계가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데, 최근에 외삼촌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 분이 주먹들하고도 친하다는 사실이 공공연합니다. 친척들이 다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것은 특별할 게 없지만 두 분이서 따로 밥을 먹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보니 그렇게 추측되고 있습니다.”

 

한 여자 아이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가능은 합니다. 오히려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해요. 밤에 사고난 것으로 처리하면…… 사고가 났다고 해서 그렇게 깊게 파고들만한 사람은 잘 없을 겁니다.”

 

이런 일이 현실에 존재하다니…….”

 

로진은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든 좋은 분도 많지만 좋지 않은 사람들도 많죠.”

 

정기사가 씁쓸하게 웃었다.

 

큰 일이 나기 전에 보호해야겠군요. 그런데 어떻게 하지?”

 

해치려고 마음먹으면 보호하는 게 더 어렵죠. 저희도 외부인사에게 호위팀을 붙이는 것도 어렵구요. 그리고 확실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추측을 하신 겁니까?”

 

…….”

 

혹시 전례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맞습니다.”

 

정기사의 표정은 씁쓸해졌다가 진지해졌다를 반복했다.

 

로진은 입술이 바싹 말랐다. 채희를 지켜야했는데 어떻게 이제 만나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볼 면목도 없었다.

 

결국 로진은 예전에 함께 걸었던 채희의 집 앞에 가서 서성였다.

 

손이 얼어 굳어있었다. 겨울은 기다리기 좋은 계절은 아니었다. 그래도 로진은 국수집에서 사람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을 구경하며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 스토커다!”

 

그 외침이 반가울 정도로 기다림은 지루했다. 제훈이었다.

 

로진은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다. 정기사를 비롯한 기사들은 자신이 고용한 것이 아니었기에 정보를 알려주는 것 외에는 차를 대기시킨다던지 등으로 자신을 도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폼 안 나게 혼자몸으로 하염없이 2시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직 폭력배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로진은 한시라도 채희를 내버려둘 수 없었다. 밤을 새워서라도 혹시나 그녀가 나오면 위험하니 들어가라고 할 작정이었다.

 

새벽 2시에…… 미친 놈이…… 집 앞에 있어요.”

 

제훈이 가까이로 다가오자 술냄새가 확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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