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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기의 무게

 

 

아침이 밝으면 할 것들이 쌓여있었다. 나는 잠이 드는 와중에 아침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진성과 했던 대화들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며 나는 잠을 뒤척였다. 그 대화 하나하나가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방금 회사에서 나와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따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불쾌해 빨리 걷고 있을 때,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연 씨. 이 연 씨.”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 김유다.

 

그는 소년 같은 이미지가 아직 남아있는 청년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수염과 대충 입은 듯 한 빛바랜 점퍼가 중년 남자의 느낌이었지만 그 것과는 상관없이 그에게서는 소년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저번에 보았을 때보다 많이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름 그대로 유해 보이는 사람으로 내가 유에게 성격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을 때, 유는 웃으며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은 유의 성격을 알 수 없게 하는 면이 있었지만, 유는 무뚝뚝함이 묻어있는 선한 인상이었다. 외양은 너무 대충 입는 탓에 방랑객 같은 거친 이미지도 있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이 보였고 그런 면이 오히려 여유로운 느낌마저 주곤 했다.

 

며칠 전부터 계속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기에 여기로 찾아왔어요.”

 

.”

 

나는 유를 금방 알아보았다.

 

무슨 일이 있는지 신경 쓰여서 찾아왔어요. 당신도 내가 찾아다녀야하는 사람이 될까봐.”

 

그의 말은 농담조였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의 말투는 언제나 전혀 추궁하지 않는다. 내가 그제야 휴대폰을 자세히 살피며 신경 쓰는데, 그는 표정의 변화가 없이 무슨 일이 있었어요?’라고 묻던 표정 그대로였다. 약간의 걱정까지 담기어 보이는 무덤덤한 표정에 나는 미안해졌다.

 

그 동안 일이 많아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저도 모르게 연락도 끊고 살아온 것 같아요. 미안해요.”

 

휴대폰의 액정에 부재중 전화가 떠있는 것을 보며, 이렇게 많은 전화가 왔었던가, 경악할 지경이었다. 나는 왜 이 전화들을 느끼지 못했던가. 하루에 한 통씩, 6통이었다. 그는 집착이나 다급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강도로 꾸준히 연락해왔던 것이다.

 

휴대폰에 뜨는 명세서 같은 것은 확인하고 있었다. 그의 전화만 그대로 넘겨버린 것은 어찌된 일인지 나로서도 알 수 없었다. 분명히 보았을 텐데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의 뇌가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나에게는 상당히 자극적인 인물이어서 평소라면 명세서는 넘겨도 그의 연락만큼은 흘려 넘겼을 리가 없었다.

 

먼저 연락을 달라고 해서 연락을 했는데, 받지 않아서 당황했어요. 재에게 흥미가 떨어졌을까 생각해보다가 그냥 찾아왔어요 귀찮게 한건가요?”

 

아니요. 그런데 단순히 흥미 때문에 제가 관심을 가지는 건 아니에요. 전화를 못 받은 건 미안하게 생각해요.”

 

나는 흥미라는 말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말을 바꾸죠. 흥미 대신 관심으로.”

 

…….”

 

그의 느닷없는 냉소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그를 보았다.

 

있긴 있었나본데요? 어느 쪽으로 관심이 생긴 거예요? ?”

 

그는 아까의 냉소와는 전혀 다르게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었다. 나는 사실을 찌르는 것에 당혹했다. 그는 그런 내 반응을 보더니 칼을 거두었다.

 

나는 솔직히 개인적인 흥미라서.”

 

유는 냉소를 거두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도 그런 줄 알았죠.”

 

나는 입을 다물고 그가 다시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이어 말했다.

 

재를 만나러 가겠어요?”

 

유는 재의 친구였다. 그리고 재는, 평범하지만 남다른 곳이 있었다. 김유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류의 사람들은 자신을 언제나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라고도, 그는 말했다.

 

김유는 평온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정상의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겉보기로는 완벽히 정상의 범위에 속하는 온순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평범하지 않고 뒤틀려있다고 말하곤 했다.

 

나를 포함해서 다같이,

 

이상한 사람들.

 

 

 

그가 사라졌나요?”

 

나는 물었다. 재는 이전에 한 번 사라진 적이 있었다. 죽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고, 나는 사라진 그를 찾았다. 그가 죽을 것이라고 한 것이 나약함이나 한심함으로만은 느껴지지 않아서 나는 그가 내밀지도 않은 손을 강제로 붙잡고는 그를 귀찮게 하고 있었다.

 

아니요. 그런데 어쩌면 더 귀찮게 되어서. 그가 있는 곳은 알고 있어요. 같이 가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나는 대답해놓고서는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미 등을 돌려 걷고 있었다. 길가에 차가 서 있었다. 그는 차키를 돌려 문을 열고는 멀리 떨어져있는 나를 어서 오라는 듯이 보았다. 나는 묻지 않고 그리로 갈 수밖에 없었다.

 

몇 달 전에 만난 이재라는 남자는, 진성과는 다른 의미로 매우 독특했다. 진성에게 다가간 것은 나였고 이재란 사람은 내게 다가왔지만 둘 다 스스로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점에 있어서 같았다.

 

재를, 어떻게 알게 되었죠?”

 

유는 시동을 키더니 그렇게 물었다.

 

유 씨는 어떻게 알게 되었죠?”

 

내가 먼저 물었잖아요.”

 

그러네요.”

 

그와의 첫 만남에 대해서 말해주겠어요? 생각해보니 아직 듣지 못했어요.”

 

액셀러레이터를 부드럽게 밟으며 김유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매우 정상적이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런 면이 오히려 위협적이다. 나는 말했다.

 

그와의 첫 만남은 너무 느닷없었죠."

 

. 이야기 해줄래요?”

 

"길수도 있을텐데요.

 

우리가 언제까지 만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은 충분하니까 일단 재를 만나러 가봅시다. 나는 재를 보면서 인간의 아주 원초적인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건 저에게도 그런 두려운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내가 그에게 잘해주는 것은 어쩌면, 나 역시 과거에 살기 때문이죠.”

 

그런가요.”

 

우리는 어떻게 보면 아주 냉정한 인간들이 아닐까요?”

 

유는 핸들을 돌리며, 싱긋 미소 지었다. 나는 그의 부드러운 미소가 왠지 모르게 차가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재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쪽이지요. 그래도 그가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죽는 것만큼은, 막을 겁니다. 절대로. 이렇게 말을 하면 정이 떨어지겠지만, 나는 어쩔 수 없어요. 내 생각의 폭은 아직 그것뿐이라서.”

 

유는 말했다.

 

왜죠?”

 

난 게이가 아니니까요.”

 

그는 콧등을 문지르며 어색함을 떨치려는 듯 한 행동을 보였다. 그의 어색함이 이까지 전해오는 것이 느껴져서 나는 입을 열었다.

 

 

''의 이름은 연이다. 스스로를 3인칭으로 묘사하는 것은 이 상황에서 결코 객관적일 수 없는 내가 간절히 객관적이려는 발버둥이다.

 

연이 재를 처음만난 것은 6개월 전이었다.

 

어둠이 거스름하게 내려앉은 밤. 2층으로 된 카페 안에서 2층의 테이블. 커다랗게 붙어있는 메뉴판에는 커피뿐만 아니라 맥주나 와인부터 해서 간단한 칵테일까지 가격이 적혀있었다.

 

연은 카페라떼를 시킨 후,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구석진 자리의 창문에는 따뜻하게 비치는 주황빛 조명이 반사되어 여자의 얼굴을 거울처럼 비춘다. 그 곳에 다가온 것은 어떤 낯선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낯선 이의 목소리. 연에게 있어 재가 처음 다가왔을 때의 느낌은 거부감이었다. 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낯선 이가 앞에 서있었고 그는 부탁하는 것이 서툰 사람 특유의 긴장을 내보이고 있었다. 연은 당황했다.

 

제 이름은 이재입니다.”

 

카페에는 비어있는 자리가 많았다. 혼자 있는 자신에게 다가온 혼자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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