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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동쪽 마녀를 찾아 

      

                                                                    강복주

 

신탁? 나한테 말도 하지 않고 신탁을 받았단 말이야?”

 

론은 경건한 신전을 거닐다가 하마터면 칼을 빼낼 뻔했다. 굵다란 신전기둥에 비딱하게 서서 나를 보는 어릴 적 친구인 저 타마스놈 때문이다. 그는 비딱한 자세와 어울리지 않게 금테가 둘린 신관복을 입고 있었다. 신탁이라는 것을 한 번 받게 되면 신의 명령이 떨어지는 대로 무조건 실행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것을 하지 않았을 때 잘못된 것을 몽땅 덤터기쓰기 마련이다.

 

너희 할아버지를 치료해야 하잖아. 내가 봤을 때 할아버지 몸상태가 좋지 않은 건 저주가 내려진 거야. 풀려면 성수가 필요해. 그런데 네가 그냥 성수 구하러 가라면 가냐?”

 

미친놈아! 거긴! 죽으러 가라는 거잖아!”

 

괴성에 론의 발밑의 풀꽃들이 흔들렸다.

 

아니 미친 놈이!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데!”

 

돌아가실 나이가 됐어!”

 

미친 놈이! 패륜자식같으니!”

 

너 내가 중요해? 할아버지가 소중해?”

 

너희 할아버지는 내게 아버지같은 분이야.”

 

역시 저 놈은 나보다 할아버지가 더 중요하군. 론은 그에게 들리지 않게 투덜거렸다. 할아버지도 건강하실 적에 자신보다도 타마스를 더 걱정하고 챙겼다. 자신은 일주일에 한 번 겨우 뵈러 가면 누워있는 할아버지 곁에서 항상 타마스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신탁은…… 네가 동쪽의 성수를 떠오라는 것으로 나왔다.”

 

동쪽에는 용이 있잖아!”

 

용도 있고 몬스터들도 짭짤하게 있지.”

 

타마스는 할아버지를 대하는 론의 태도가 마땅찮기 때문일까, 계속 비딱했다.

 

너는 살아돌아올 거다. .”

 

신탁에 그 것도 나오던?”

 

론은 흥, 코를 풀었다.

 

너는 이 도시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기사단장이고 세기의 천재라고 불리는 나 타마스도 길을 나설 것이니까.”

 

너도 간다고?”

 

저주는 끈질길 거야. 저주의 원한을 뿌리뽑을 수는 없지만 이미 퍼진 병은 이 도시의 신관으로서 책임지고 치료하겠다고 대신관님께 맹세하고 나오는 참이다.”

 

으으.”

 

이렇게 되면 론으로서는 더 이상 말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꼼짝없이 용과 싸우러 동쪽으로 떠나야한다. 무려 100년만에 탄생한 천재라는 타마스가 모험을 하신다는데 말이다.

 

너랑 가느니 혼자 가는 게 속편한데!”

 

론은 진심이었다. 죽더라도 혼자 죽는 게 마음이 편하다. 마을의 덕자인 타마스와 함께 길을 나서는 것보다는 혼자 떠나고 싶다. 그러나 타마스는 고개를 저었다.

 

너 혼자서는 살아돌아오기 힘들 거야. 그리고 정 가기 싫어하는 것같아서 하는 말인데 용이 사는 곳에 동쪽의 현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있는데 네가 모르는 검술을 잔뜩 알고 있다고 한다.”

 

순간 론은 눈을 반짝였다.

 

오래 체류해도 되는 건가?”

 

그건 안되지만 귀한 책자 정도는 받아올 수 있겠지.”

 

뭐 그렇다면…….”

 

론은 번지는 미소를 억누르며 어깨를 으쓱했다.

 

가보는 것도 좋을 것같군.”

 

불효자식.”

 

. 할아버지는 예전부터 너만 예뻐했다구. 친손자가 나인지 너인지도 모르게!”

 

네 검술이 누구로부터 왔는지를 생각해봐. 그리고 그 검술을 손에 넣었을 때 네가 그 분께 어떻게 했는지도 다시 생각해봐.”

 

론은 가는 길 동안 몸의 고단함도 고단함이지만 이런 잔소리를 내내 들어야한다는 것에 스트레스가 적잖게 쌓이는 것을 느꼈다.

 

타마스가 워낙 잘나서 그렇지 자신도 도시 내에서 모자란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최연소로 기사단장이 되었고(첫 번째는 자신의 할아버지였다.) 시민들의 평판은 모자라도 기사단 내에서는 어리지만 쌓인 것을 잘 풀어주는 기사단장이었다.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이제 어리지 않으니 잔소리를 들을 시기는 지난 것 같았다. 하지만 타마스와 할아버지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론이 가족들에게 떠난다고 말하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걱정은커녕 기뻐했다. 론은 툴툴거리고 싶었지만 기뻐하는 가족들을 보자 체면상 도저히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화려한 계단 너머 윗 층에 석 달째 누워있는 할아버지에게로 향했다.

 

신탁을 받아 떠납니다.”

 

네가? . 틀림없이 알아서 떠나는 것은 아닐게다.”

 

이렇게 말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다니! 론은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맞습니다. 타마스가 함께 가자고 하더군요! 할아버지가 사주하셨죠!”

 

이 놈이! 말뽄새보게!”

 

할아버지 역시 욱해서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몸에 반점들이 그의 힘을 빼어내는 듯이 그는 다시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다시 낫게 해드릴게요. 대신 잔소리 좀 하지 마세요.”

 

저 놈! 저런! 나으면 네 검을 부러뜨려 버릴 테다!”

 

다 나으시더라도 제발 아직 한창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셔야할텐데!”

 

문 밖에 나와서도 론은 분통을 터뜨렸다. 문 안에서 무어라고 고함소리가 들렸다. 론은 고개를 흔들며 밑으로 내려갔다.

 

 

다음 날, 마을사람들이 성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성 안의 스타인 타마스와 론의 모험을 응원하러 찾아온 사람들이다. 저주는 마을 안에서도 영향력 있는 위인들을 위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저주가 찾아오면 온 몸에 반점이 생기고 힘이 점점 빠져나간다. 신탁에 의하면 그 저주는 성수를 한 모금만 삼키면 다시 나을 수 있다고 한다.

 

저희도 함께 가겠습니다!”

 

론의 집 앞에는 중년의 남성이 두 명 서있었다. 기사단장인 론을 혼자 보낼 수 없다며 찾아온 사람들이다. 론은 그들과 말을 타며 함께 성문까지 천천히 달려갔다.

 

괜찮아. 어차피 성수를 떠오는 것이니까 인원이 많아질수록 위험해질 뿐이야. 저주도 성수도 모두 동쪽에서부터 왔다고 하니까 동쪽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혼자 가는 게 편해.”

 

론은 천천히 걷는 말 위에서 천천히 또박또박 설득했다. 말은 또각또각 걷다가 한 번씩 멈춰섰지만 꾸준히 앞으로 걷고 있었다.

 

하긴 저희 실력으로는 함께 가봤자 방해만 되겠지요.”

 

그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틀린 말은 아니군. 혼자가 편해. 게다가 타마스까지 있으니까 말이다.”

 

론은 싱긋 웃었다.

 

성문 앞에 서자 타마스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론은 타마스를 보자 괜히 심통이 나서 뚱하게 말 위에 서있었다. 타마스는 론을 보자 빛의 구를 쏘아올렸다.

 

으악! 내 눈!”

 

론과 함께 말이 놀라 날뛰었다. 론이 낙마하자 타마스는 미소지었다.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군.”

 

, 이 놈!”

 

론은 악마!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이 수많은 타마스의 팬들 앞에서 악마!라고 외쳐보라. 틀림없이 삶아 죽이려고 할 것이다. 부조리하다. 이 부조리! 론은 통탄하며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론을 찾아온 기사단원들도 이 상황에서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타마스는 론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걸어서 가야한다. 산세가 험하거든.”

 

이 놈! 내 눈!”

 

되도록 험한 말은 삼가게. 친구.”

 

타마스는 눈꼬리가 휘어지도록 웃었다. 이 놈. 진심으로 기쁜 거다. 론은 머리끝까지 약이 올랐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 정말 타마스님과 론님은 사이가 좋으셔.”

 

론은 어느 아줌마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아내고 자루에 끈을 달아놓은 배낭을 매었다. 타마스의 형편없는 체력을 생각하자면 자신은 혼자 갈 때보다 두 배나 많은 짐을 지어야한다. 부조리! 론은 속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하루에 걸을 수 있는 양은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타마스는 신전에서 몇 시간씩 책만 보는 샌님이었다. 체력단련을 했다고는 했지만 검술만 하는 론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타마스는 금새 지쳐있었다. 론은 내심 답답해져서 제안했다.

 

엎고 갈까?”

 

싫다.”

 

오늘은 이 근처에서 야영해야겠는데. 나 참. 제일 처음 나오는 괴물은 뭐냐?”

 

계획서 첫 장에 나오는데 안 읽어봤어?”

 

네가 있는데 뭐. 굳이 읽어볼 필요가 있겠어.”

 

타마스는 기가 막혔다. 체력적으로 자신이 부족하고, 그러므로 죽을 가능성이 높은 것도 자신이다. 내가 죽으면 저 녀석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타마스는 그러나 굳이 말하지 않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단련을 한 보람은 있어서 산의 초입까지는 저녁까지 어떻게든 다다를 수 있었다.

 

이 산을 넘어가면 들판에 두눈박이 사자가 나온다.”

 

타마스가 말했다.

 

두눈박이 사자? 사자는 원래 두눈박이 아니야?”

 

맞아. 그냥 사자야.”

 

날 바보로 아냐?”

 

의심해봤지.”

 

론은 모닥불에 장작을 넣다가 이 장작으로 타마스를 후드려 팰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지금 이 상황이라면 타마스의 팬들도 없는 상황. 그러나 팅팅 불어있는 타마스의 발을 보자 그런 생각이 가셔서 약초 두 잎을 펼쳐 타마스의 발등 위에 턱 올려놓았다.

 

붓기는 좀 가라앉을 거다.”

 

론으로서는 뜻밖에도 그 약초가 효과가 있었는지 그 이후로는 타마스의 잔소리가 매우 뜸해졌다. 타마스가 지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는 빛의 결계를 만들어놓은 이후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론도 타마스와 불이 맞닿지 않게 자세를 고쳐준 후, 담요를 덮었다. 갈 길이 멀었다.

 

그 다음 날도 타마스와 론은 하염없이 걸었다. 산에는 가끔씩 오크들이 나무몽둥이를 들고 튀어나왔다. 몽둥이와 함께 론의 일격에 잘려져나가는 이들이었지만 그 놈들이 등장한 이후로 앞으로 걷는 속도는 더 느려졌다.

 

이번에 론 앞으로 뛰어든 오크 녀석 하나는 왕관을 쓰고 있었다. 하루 종일 오크를 절단내고 다닌 이들에게 원한이 쌓인 모양이다. 크르르거리고 있었다. 돼지 코고는 목소리로 우리 일족을 해치웠으니 곱게 안보내겠느니 뭐니 하는 말을 해댔지만 무슨 말인지 자세하게 들어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론은

 

!”

 

기합소리를 내더니 검기를 모아 순식간에 나무며 오크를 쓸어버렸다.

 

나무꾼으로 대성공하겠군.”

 

뒤에서 오크의 명복을 빌어주던 타마스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들이 있던 풀숲을 헤치고 걸어 나가자 산능선에서 아래의 전경이 보였다.

 

밀림이다.”

 

타마스 말에 대꾸하지 않고 론은 먼 곳을 보았다. 들판이 이어져있었다.

 

사자가 있는 곳이야.”

 

나는 걱정 없는데, 네가 문제로군.”

 

...”

 

타마스는 푸르른 입사귀를 걷어내고 먼저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산을 내려와 들을 걷기 시작하자 사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단 개체 수가 많지 않았고 단독행동을 하기 때문에 공격을 막을 곳을 보기도 쉬웠다. 물소떼나 말떼가 더 위협적이다. 그들은 평화로운 풍경을 보며 거닐면 됐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도 가끔씩 사냥하러 나온 사자는 있는 법. 타마스의 뒤를 습격하는 사자를 론은 순식간에 막아섰다.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다. 사자의 일격을 막아낸 후 어느새 사자 옆에 선 론의 검은 정확하게 사자의 목을 쳤다. 얼굴과 몸이 두동강이 난 사자를 보며 타마스는 기겁을 했다. 론은 입맛을 다시며, 사자의 머릿가죽을 떼어낼 생각을 했다. 그러던 순간이었다.

 

론의 옆에 커다란 주먹이 꽃혔다. 사자머리에 정신이 팔려 곁에 온 줄도 몰랐지만 론은 간신히 피해냈다. 무거운 주먹은 다시 위로 천천히 들렸다.

 

! 가죽 못 쓰게 됐잖아!”

 

론은 소리지르며 위를 보았다.

 

골렘?’

 

샌드골렘이다! 아무리 쳐도 회복할 거야. 피해!”

 

!”

 

론은 뒤로 굴렀다. 주먹이 다시 뻗어오자 검을 맞부딪혔지만 점점 밀렸고 그 나마도 점점 모래에 파묻히고 있었다. 론은 주먹 위로 올라타서 검을 간신히 빼내었다.

 

시간을 벌어!”

 

타마스는 고함치고 나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신관복의 금색 테두리가 점점 빛나기 시작한다. 골렘의 주먹은 다시 위로 올라간다. 그 주먹을 타고 론은 골렘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검기를 담아 골렘의 가운데에 붙어있는 수정구슬을 쳤다. 그러나 힘에서 밀려서 다시 밑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조금은 수정구슬에 균열이 일어난 것같다.

 

어택!”

 

론은 검기를 다시 한 번 쏘아올려붙였다.

 

수정구슬이 흔들거리면서 점점 금이 간다. 그 것이 깨질 찰나에 타마스의 신성력이 여기까지 훅 퍼졌다. 론은 눈이 부셔서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감아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골렘은 오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골렘은 사람이 불러내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 몬스터잖아?”

 

론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이 머리를 잡았다.

 

. 동쪽마녀의 짓인 것같다.”

 

이 번에 저주를 퍼부은 것도 동쪽 마녀의 짓이지?”

 

.”

 

골렘은 수정구슬이 깨지면 어떻게 되지?”

 

소환자에게 타격이 가지.”

 

신성력을 쓰면?”

 

타격이 안가.”

 

왜 신성력을 쓴 거야! 조금만 더 놔두면 수정구슬을 부술 수 있었는데!”

 

론이 아쉬워하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고 타마스는 앞으로 몇 걸음을 더 걸었다.

 

이 앞의 마을이 동쪽마녀의 마을이야.”

 

폐허가 된 마을 말인가? 너도 그 곳에서 왔다고 하지 않았어? 혹시 동쪽마녀를 아는 것 아니야?”

 

타마스는 한 동안 말이 없다가 론에게 물었다.

 

단서가 있을 지도 모르니 가보겠나?”

 

가봐야지. 성수와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르니.”

 

론은 타마스가 걷는 쪽으로 내달렸다.

 

마을의 모습은 처참했다. 나무로 된 건물과 창고가 거미줄이 쳐진 채로 삐걱거리고 있었고 불에 탄 흔적도 있었다. 타마스는 예전의 자신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동생은 신성력이든 마법력이든 뛰어났다. 타마스는 동쪽 마녀의 짓이라고 했을 때부터 내심 눈치채고 있었다. 이 일을 저지른 것은 아마도 자신의 친동생일 것이라고. 왜냐하면 이 근방에 마법력이 강한 핏줄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타마스의 예전 집은 문 한 짝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그러나 건물 안의 공간은 멀쩡했다. 타마스는 여동생을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 곳 저 곳을 뒤졌다. 서랍 안에 일기장이라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그 서랍 안에는.

 

뭐야?”

 

마른 장미꽃이야.”

 

무슨 의미야?”

 

내가 준 건데. 아직 여기 있군.”

 

옛 애인이라도 되냐? 동쪽마녀가?”

 

말해도 될까. 아니다. 위험하다. 타마스는 그렇게 판단내리고 피식 웃었다.

 

진짜인가보네?”

 

아니다.”

 

정말?”

 

그래. 어쨌든 이게 다인 것 같아. 다시 가보자. 동쪽산으로.”

 

그거야 쉽지. 이제 일주일만 더 걸으면 성수가 있는 곳이야. 하지만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지.”

 

론은 체력을 챙기는 데에 열심히였다.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타마스쪽으로 보였다. 론이 자리를 깔자마자 타마스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일주일 후였다. 산의 중턱에서 타마스와 론은 지도를 보며 상의했다. 타마스가 말했다.

 

성수가 있는 근처에는 용이 살아.”

 

안 들키고 떠올 수는 없어?”

 

안 들키면 제일 좋지.”

 

타마스가 대답했다. 론은 음, 하고 소리를 내더니 바로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타마스가 붙잡아 끌었지만 론의 힘은 타마스를 끌고 가고 있었다.

 

일단 가보고 생각하자!”

 

생각하고 가야지!”

 

운 좋으면 뜨는 거고 운 나쁘면 붙는 거지! 달리 방법이 있어?”

 

방법이 없긴 하지만! !”

 

들키면 내가 용의 시선을 끌테니까 그 사이에 성수를 떠.”

 

드래곤을 상대하는 게…… 쉽진 않을 거다.”

 

맡겨둬.”

 

론은 강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타마스는 자신이 다리가 허락하는 최고의 속도로 달렸다. 성수를 뜨기 위해서였다. 론은 타마스의 주위를 호위하듯 달려나갔다. 이윽고 무사히 성수 앞에 도착했다.

 

성수 앞의 연못이 일렁였다. 물 위에 반사되는 그림자가 여자의 얼굴 같아 보인다. 타마스는 흠칫 했지만 신경쓰지 않으려고 수통에 물을 담았다.

 

흑룡의 수호를 받는 마녀. 나는 이 물을 뜨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위쪽이었다. 흑마법으로 어둠의 화살이 쏟아졌다. 타마스는 급히 결계를 쳤다. 성수는 성수였다. 검은 화살들은 성수에는 닿지 못하고 모조리 튕겨져 나갔다.

 

너는!”

 

물은 못 떠가!”

 

그녀가 고함쳤다. 타마스는 그 생김이 어딘가 익숙해서 외칠 수 밖에 없었다.

 

테메르 아니냐!”

 

여자는 움찔했다. 그 것이 자신의 이름이 맞았다. 저 어딘가 익숙한 생김새의 남자는……. 타마스는 중얼거렸다.

 

어릴 때 헤어졌던 내 동생…….”

 

뭐라고? 이상한 말따위에 넘어갈 것같아? 어둠의 기운이여!”

 

그 때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가 물 속으로 첨벙 떨어졌다. 론이었다. 뒤에서 뛰어들어 머리를 친 것이다.

 

여자지만 마녀는 용서할 수 없다. 이걸로 물리친 거지? 핫핫핫! 성수를 떠가자고!”

 

타마스는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론의 일격으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다.

 

풀 숲에 엉망으로 젖은 여자아이를 뉘이고 론과 타마스는 둘러앉았다. 타마스가 힐링을 하자 여자아이는 곧 눈을 떴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아이는 고개를 휙 돌렸다.

 

장난이었어.”

 

동쪽 마녀의 말이었다.

 

죽지도 않고 그냥 골골거리는 게 끝이라고.”

 

그래? 아주 좋은 저주였어. 할아버지가 꼼짝도 못하는 건 처음 봤거든!”

 

론은 테메르의 이야기를 듣자, 언제 뒤통수를 때렸냐는 듯이 친근하게 맞장구를 쳤다.

 

왜 그런 장난을 친 거지?”

 

타마스가 물었다.

 

우리 마을 사람이 다 죽은 일 기억해? 그걸 내가 했다고 말을 하니 견딜 수가 없었어. 나는 그 마을 출신으로 고아가 됐지만 마법학교까지 졸업했다고. 하지만 마녀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내 마을을 불태웠다는 소리를 들으니 견딜 수 없었어. 소문을 낸 곳에 작은 복수를 한 것 뿐이야.”

 

하지만 우리 할아버지는 소문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론은 자신의 두 팔로 팔짱을 꼈다. 타마스는 여자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해는 풀면 돼. 네가 그러지 않았어. 마을 사람들에게 네가 우리를 도와줬다고 말하지. 함께 마을로 가자.”

 

당신이 내 오빠야?”

 

그래.”

 

어릴 때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아.”

 

나는 너를 기억하고 있어. 나는 다섯 살 무렵이었으니까. 너를 잃어버려서 미안해.”

 

타마스가 내민 손을 테메르가 잡았다.

 

좋아! 그럼 마을로 돌아가자.”

 

론은 발걸음을 옮겼다.

 

걸어서 가려구?”

 

테메르가 말했다. 론이 응? 하는 사이에 셋의 몸은 떠올랐다.

 

날아가면 돼.”

 

마법으로? 용은?”

 

유희를 떠났어. 인간으로 변장하고. 샘물을 지키는 건 나 혼자였어. 이렇게 가도 괜찮아. 마나는 충분해.”

 

좋은 마법사가 되었군.”

 

타마스가 기특해하고 있는 사이 셋은 쏜살같이 날아갔다.

 

 

 

성 안에서는 축하파티가 열렸다. 개선장군의 역은 론이 맡았다. 할아버지는 깨끗하게 건강해져서 일어난 후, 맨 먼저 론의 머리를 때렸다. 론은 그제야 할아버지를 이길 필살 검술기법을 배워오지 못한 것을 통탄했다.

 

네 놈은 멀었어!”

 

으윽! 다른 곳의 검술을 배워오고 말겠어!”

 

파티에서 갑자기 손을 불끈 쥐고 새로운 검술이 필요해!”를 외치는 론을 기사단원들도 다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테메르가 타마스에게서 할아버지와 론사이의 일을 전해듣고 론에게 어떤 책을 내밀었다.

 

여성용 책이지만.”

 

이건!”

 

동양의 호신술 책이야. 검법도 있어.”

 

그래! 이거야! 좋아! 이걸 배워서 쓰러뜨린다!”

 

론은 감정에 북받쳐서 눈물이 흘러나올 것같았다. 타도! 할아버지!

 

아 맞아. 그럼 나도 답례품을 줄게. 옛날 네 서랍에서 나온 거야.”

 

론은 테메르에게 마르고 검어진 장미꽃을 한 송이 내밀었다. 테메르는 싱긋 웃었다.

 

오늘 밤. 테메르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모두 오해를 풀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좋은 쪽으로 오해를 시작했다고 말해야하겠지만 하여튼 그랬다. 실력 좋은 마법사를 매도한 사람들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나은 것을 기념해서 술통을 꺼내들고 밤새도록 퍼마셨다. 마을의 저녁은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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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습작입니다. 소설도 안 쓴지 1년은 되어가는 듯한데요.. 여러모로 많이 부족하지만 읽어주실 분이 있을까 싶어 올렸습니다. 앞으로 더 쓰지는 못하더라도 써놨던 몇 편은 올릴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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