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주 2024. 5. 20.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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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마가 이상한 정을 하나 들고서 망치로 섬세하게 깡깡 내리쳤다. 그러자 점점 얼음이 깎여나갔다. 이윽고 머리 하나가 다 드러났다. 페리온스는 다크프리스트 왕자를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걸쇠푼다?"

"흥. 네 멋대로 해."

 

다크프리스트 왕자가 체념했다.

 

걸쇠를 풀자 아수라성기사는 검은 기운을 내뿜으며 사라지는 게 아니라 뜻밖의 정체를 드러냈다. 그 것은 바로 미라였다. 미라가 갑옷 안에 있었다. 미라는 씨익 웃었다.

 

"지금이다! 아들아!"

 

dark night(다크 나이트: 어두운 밤)

 

다시 방 안에 어둠이 찾아들고 아수라성기사가 모여들었다. 그들의 기계적인 검술에 아랑곳하지 않고 페리온스는 외쳤다. 별로 긴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light(라이트:빛)

 

이바가 있으니 빛조차도 증폭된다. 페리온스의 마법에 다크프리스트의 신성력인지 마법인지 모를 것이 금방 억눌려졌다. 아수라성기사들의 환영은 조금 움직이다가 곧 다시 그대로 박힌 것처럼 멈추었다.

 

"안 될 것을 왜 자꾸 그러는 거야?"

"원통하다."

 

미라가 말했다.

 

"아저씨는 수호령이예요?"

 

페리온스가 물었다.

 

"아줌마다! 그리고 난 진짜 안 갈 거야! 하늘나라 안 갈 거라고!"

"네, 근데 저희도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하는데요."

"몇 층으로 가는데? 아까 곱하기 5라고 그러던데, 설마 600층은 아니지?"

"600층이 맞는데요."

 

아수라성기사였던 미라는 헉 소리를 냈다.

 

"600층에 왕이 있다고. 우리한테도 쩔쩔매면서."

"곱하기 5만 아니면 쩔쩔매지 않았어요."

"우린 무적이란다."

 

페리온스는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480왕자일텐데 무적인가요?"

"얘 좀 봐. 600층의 원리를 모르는구나. 600층은 600층이든 5층이든 도전하는 사람이 한 칸씩 차지할 수 있는 구조야. 그러니까 우리는 120층에 와서 도전해서 남의 층을 뺏지 않고 계속 버틴거지. 그러니까 난 아직 진 적이 없다고. 강한 놈하고는 붙질 않았으니까. 이해되니?"

"어쨌든 더 싸우실 거예요?"

"그럼! 얼마든지 더 싸우겠다!"

"페리온스, 안되겠네. 토치가 필요할 것같아."

 

투마가 말했다.

 

"토치!"

 

수호령은 그 생각은 못한 것같다.

 

"난 뜨거운 게 너무 싫어!"

"하지만 계속 싸우려고 하시잖아요."

"알았어. 졌다!"

"곱하기5의 걸쇠를 풀고 올게요."

 

페리온스는 그녀를 얼려놓은 상태로 아수라성기사의 본체를 떠났다.투마가 외쳤다.

 

"페리온스! 절대 마법을 풀지 말게! 이 사람들 믿을 수가 없어."

"다크 프리스트는 왜 되는 거예요?"

 

걸쇠를 풀며 페리온스가 물었다.

 

"신성력을 너무 많이 써서 아니겠니?"

 

어쨌든 다크프리스트인 사람조차도 자세히는 모르는 것같다.

 

"아수라성기사는요?"

"성기사들이 신성력을 너무 많이 써서 아니겠니?"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윽고 걸쇠가 풀렸고 아수라성기사의 본체는 씩씩거렸지만 이미 졌다고 말해버린 상황이었다. 페리온스 일행은 얼음을 풀지않고 엘리베이터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다크프리스트도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 우리가 가고 난 뒤에 녹여봐."

 

뮤오린이 덧붙였다.

 

dark light(다크 라이트: 어두운 빛)

 

마지막까지 다크프리스트 왕자는 어두운 빛을 시전했다. 페리온스는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 빙그레 웃었다.

 

light(라이트:빛)

 

마지막까지 기싸움이었다. 일행이 들어오고 서서히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드디어 600층, 설레는 마음이 지나쳐 속이 울렁거렸다. 왕은 어떤 사람일까?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온 몸이 쭈빗거린다.

 

엘리베이터는 서서히 내려갔다. 내려가는 동안 모두 말없이 정적이었다. 페리온스는 긴장을 달래기 위해 침을 꼴깍 삼켰다. 그걸로도 부족해 말을 털어놓게 된다.

 

"이제 왕이야."

"왕과도 싸워야할까?"

"이전처럼 통성명만 하고 그쪽이 덤벼들면 또 싸워야하지 않겠나!"

 

투마가 망치를 이고 말했다.

 

"어느 정도로 강하길래, 다들 너무 강하다고 할까?"

"이 깊은 곳에 가장 깊이 있는 사람이라."

 

뮤오린이 심각하게 중얼거렸다. 엘리베이터는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세느가 뮤오린을 꼭 껴안았다.

 

"무서워잉."

 

셋은 동시에 세느를 보았다.

 

"인간이 강해봤자, 세느와 이바만 할까?"

 

-이제야 내 진가를 알아보는군. 창을 유지하라고!

 

이바가 샐쭉하게 말했다. 그 말을 하자 페리온스는 용기가 좀 생겼다. 왜 이렇게 항상 자기자신을 믿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늑대인간이기 때문일까?

 

엘리베이터는 한참을 내려갔다. 이윽고 서서히 멈추어섰다. 600층. 무려 600층이었다.

페리온스는 잔뜩 방어적인 자세로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그 공간을 바라보았다.

 

횃불이 켜져 있었고 넓은 방이 복도처럼 이어져있었다. 약간 적막했지만 은은하게 밝았고 넓게 트여있었다. 사람은 없었다.

 

"더 들어가야 하나봐."

 

페리온스는 앞장을 섰다. 방은 하나가 꺾어져서 다음 공간이 나왔는데, 거기엔 꺾인 공간이 또 하나 있었지만 그 공간에는 책상과 함께 미남이 한 명 앉아있었다. 짧게 정돈된 머리에 그는 검은 색으로 위에는 딱 붙는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게 별로 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검은 머리에 빨간 눈이 사연있게 드리워져 있었고 키가 크고 몸이 예뻤다. 그는 깃털이 달린 펜으로 뭔가를 쓱쓱 쓰고 있었다.

 

"폐하?"

"나를 찾아왔나?"

 

그가 얼굴을 들었다. 횃불 밑에서 보아서 그럴까, 피부도 맑은 느낌이다.

 

"우리는 싸워야할까요?"

 

긴장을 하니까 말이 엉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페리온스는 더듬더듬 말을 했다. 어쩐지 이 남자, 자신이 작아지게 만드는 느낌이 들게 한다.

 

"나가주었으면 좋겠지만, 더 이상 밀고 들어오면 나도 싸울 수는 있겠군. 하지만 난 더 이상 싸우지 않아."

"폐하, 포우와의 전쟁을 멈추어주십시오. 저희는 외교로 왔습니다."

 

페리온스는 품안에 꼭 숨겨두었던 소개장을 꺼내었다. 왕은 그 것은 힐끔 보았다.

 

"인간은 참 모순적인 존재지."

"네?"

"좀비가 낫지 않으면, 신하들은 계속 그러자고 할 거야. 전쟁을 하자고."

"왕이시잖아요. 그것도 서바이벌에서 제일 강한 왕이시잖아요!"

"나는 제일 강하지 않아. 제일 강한 사람, 1등은 따로 있어."

"그게 누군데요?"

"우리 형. 지금은 좀비가 됐지만."

 

왕은 집무실로 보이는 책상과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뚜벅뚜벅 걷더니 안 쪽으로 들어갔다. 페리온스 일행은 조심스레 따라 들어갔다. 거기엔 단단해보이는 철창이 있었고, 거기 안에는 좀비가 한 마리 있었다. 이미 이성을 잃은 듯 공격적이었다. 인기척이 들리자 철창을 마구 물어뜯었다.

 

"지금은 이렇게 됐지만, 제일 세."

"왜 이렇게 됐죠? 좀비에게 물렸나요?"

"제일 센 사람이라, 좀비들이 상대가 되지 않아. 형은 이 모든 사드만의 슬픔, 좀비의 기원이다."

"제일 세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600층에 도달한다는 뜻인가요?"

"우린 제왕학을 배워. 모든 과목에서 형은 1등을 차지했고, 이 600층은 마지막 관문이야. 하지만 형은 알게 되었어. 왕께서는 후계자인 1등 말고는 나머지를 모두 죽여야겠다고 말을 하신 거지. 2등인 나도 예외는 아니었어. 왕권을 위험하게 만드는 왕자들이 너무 많았고, 싹을 잘라버리겠다 이거였지. 그런데 형은 옛날부터 1등이었어. 누구도 그를 꺾을 수 없었지. 게다가 건강했고, 마법도 체육도 잘했어."

"마법이요?"

"우리는 세상에 있는 모든 걸 다 배워. 힘이 되는 거라면 뭐든지. 마법도 세상에 있는 힘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 제법 잘 다루기도 해."

"저는 마법사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저 책상에 내가 방금 쓴 걸 읽어봐. 읽어도 돼."

 

페리온스는 다음에 600왕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일단은 왕의 일기를 집어들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폭풍같은 사건을 겪으며 마법은 슬픔과 같은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마음에 다양하게 일어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봐야 맑아지고 기쁨이도 커지듯이, 그런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서바이벌을 통해 느낀 것은 내가 죽도록 싸운 그 형제들과 나는 하나라는 사실이었다.

 

"형제에 대한 감정이 애틋하시네요."

 

페리온스가 말했다.

 

"형은 아버지를 죽이고 우리를 살렸어. 그리고 그 죄가 너무 무거워, 그 죄로 하늘의 벌을 받아서 좀비가 되었다. 형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자,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자, 나를 살려준 은인이자,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위험요소야."

 

페리온스는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왕에게는 위로도, 와닿지도 않을 것같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었을까.

 

"하늘의 벌……이요?"

"미라트 위에도 하늘이 있지. 우주라는 하늘."

"당신은 미라트에 대해서 아나요?"

 

카르멘에게도 물어봤지만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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