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주 2024. 5. 1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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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치운 연산을 자네는 알고 있나?"

"몬스터 팻말을 주지. 자네들이 환영을 해치웠을 때 그 팻말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어. 가져가."

 

여러 개가 흩어져 있었다. 투마는 낑낑거리더니 그 숫자를 조합했다.

 

4×(2×2×2+2╶2+5×5÷5╶5+3×3╶3+3+3+5+5)

 

그러더니 바닥에 나열하여 그런 수식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되겠어. 소인수는 아니지만, 이렇게 하면 딱 30이야. 그럼 120층으로 간다!"

 

투마의 계산은 끝났다. 페리온스는 씁쓸하게 웃고 있는 들소왕자를 보았다.

 

"괜찮겠어? 2층에는 수호령이 있었는데, 넌 수호령이 없니?"

"난 엄마도 일찍 돌아가시고, 수호령따윈 없다. 그냥 소들이랑 어울리는 게 좋았어."

"지하실에서 혼자 괜찮겠어?"

"가끔 너희같은 침입자들이 오니까 괜찮아. 저층은 심심하지는 않거든. 하지만 저층이라도 대부분 나한테 져서 돌아간다고."

 

페리온스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것에 동질감을 느꼈다. 자신도 기억하기로, 자기가 태어날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래 감성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핫핫핫, 오히려 잘됐어. 30층을 내려갈 수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다음부턴 이건 금기야. 금기. 꼭 ×5를 맞춰야 돼. 알겠나? 아니면 너무나도 번거로워진다는 말일세."

 

"알았어. 투마. 가자."

 

페리온스는 마음을 다잡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일행이 들어오는 동안 들소왕자를 보았다. 응원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한 동안 덜컹거렸다. 내려가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같았다. 그러나 많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안내방송이 나왔다.

 

지하 120층입니다

 

문이 열리는데 앞이 깜깜했다. 약간 춥기도 했다.

 

'아 참, 바깥은 어둠의 60일이었지.'

페리온스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하인데도 바깥처럼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달깍, 달깍하는 이상한 소리도 어둠 속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나를 잊고 있었지?

 

카랑한 소리가 품 속에서 울려퍼졌다. 페리온스는 퍼뜩 안에 차고 있던 단도, 이바가 떠올랐다.

 

-마법이 좋아서 나를 잊고 있었지? 이 녀석아! 얼른 들지 못해?

 

이바의 말에는 무조건 따라야할 것만 같은 압박감이 있었다. 페리온스는 단검술이 서툴었지만 바짝 긴장해서 단도를 들었다. 머지않아 검이 머리 위에서 내려쳤다. 페리온스는 자동으로 단도를 들었다.

 

깡깡깡깡

 

몇 번이나 막았지만 힘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페리온스!"

 

follow shot!(팔로우 샷: 따라가는 쏘아올림)

 

페리온스가 힘겹게 막는 동안 뮤오린의 화살이 칼을 든 누군가를 추적했다.

곧 깡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10여 초 막았을 뿐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날이 다 상했잖아! 내 몸인데, 이게!

 

이바가 빼액 외쳤다. 엘리베이터 안은 더 이상 공격당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페리온스는 숨을 몰아쉬었다. 페리온스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말똥히 보던 세느가 외쳤다.

 

"오빠, 내가 할게!"

 

세느가 번쩍 손을 들었다. 투마가 흠칫했다. 페리온스는 애써 웃었다.

 

"괜찮아. 세느. 세느는 우리의 비밀무기니까."

 

페리온스는 이번에는 뮤오린을 보았다. 차가운 곳에 있으니, 뮤오린의 붉은 입술이 더욱 붉었다. 뮤오린은 페리온스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뭘까? 통성명도 안하고."

"익숙하지 않아?"

"나도 그런 느낌이 조금 들긴 들었어."

"라이트 마법을 써보자."

"좋아. 버튼을 누른다.

 

light(라이트:빛) 

 

페리온스는 심호흡을 하고 불을 켠채로 문을 열었다. 뜨악스러운 장면이 있었다. 페리온스는 뒷걸음질 쳤다.

 

아수라성기사가 칼을 든 채로 멈춰서있었다.

 

big light!(빅 라이트: 큰 빛)

 

페리온스는 재차 마법을 걸었다. 빛이 깃들어서 방이 완전히 하얗게 변한다. 9명의 아수라 기사가 있었다. 사칙연산이 붙어있는 것으로 봐서 환영이었다. 환영이지만 실제와는 거의 똑같은 것같다. 본체가 있을까 싶었다. 본체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구석에 키득키득 웃고 있는 한 아이가 있었다.

 

"너는 통성명을 안하니?"

"키득, 그런 게 왜 필요하지? 이기기만 하면 되는데."

"너는 사제복을 입고 있는데, 흰색과 골드가 아니라 검은 색이구나. 네가 바로 그 다크 프리스트인가?"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 아무리 관찰력이 부족한 페리온스여도, 그걸 볼 수가 있었다. 그는 그 말을 듣자, 자존심이 상했는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페리온스! 자네가 걸쇠를 좀 풀어야겠어! 내 손은 너무 크고 둔해서 말일세."

"알았어! ×5말이지?"

"그렇게 놔둘 소냐! 영혼이 있는 아수라성기사가 있지! 가랏!"

 

멈춰 있던 아수라성기사 중에 하나가 무방비 상태의 페리온스를 찔렀다. 이바가 황급히 허공으로 갔지만 약간 비껴서 허리에 맞았다. 페리온스는 뒷걸음질로 벽에 부딪혀 앉았다.

 

"페리온스!"

 

비명같이 뮤오린이 다가왔다.

 

"페리온스 오빠!"

 

세느는 눈이 뒤집히기 직전이었다.

 

"세느. 안돼. 진정해."

 

세느는 씩씩 거리다가, 그래도 페리온스의 말은 들었다. 투마가 허둥거렸다.

 

"하하하하! 영혼이 있는 아수라성기사! 이건 못 봤을 거다!"

 

아수라 성기사가 말을 하며 한바탕 웃었다.

 

"크크크, 우리 시대다. 다크 라이트(dark light: 어두운 빛)."

 

아예 어두워진 것은 아니지만 안개가 낀 듯하면서 나머지 아수라 성기사들도 전부 움직이고 있었다.

 

"차이점을 발견했어. 본체는 연산기호가 없어."

"본체를 해치우면 되는 거지? 이럴 때 뭉크가 있어야하는데."

 

healing(힐링:치유하다)

 

뮤오린은 큐어링과 힐링으로 번갈아 시전하며 페리온스의 옆에서 몸을 웅크렸다. 이바는 오랜만에 검집 밖에 나와서 빙그르르 돌고 있었다.

 

-저 녀석이랑 힘으로 맞서려면 이 드래곤님밖에 없다! 얼른 나를 합치도록 하여라.

 

"그래, 이바 덕분에 상처가 깊지는 않아. 뮤오린, 고마워."

"안돼. 무리하면."

 

그래도 페리온스는 무시무시한 재생력으로 아물고 있었다. 페리온스는 중얼거렸다.

 

"걸쇠를 뜯어야하는데, 손재주는 없는데."

 

아수라성기사가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이바! 도와줘!"

-진짜 자기 필요할 때만 도와달라고 하고! 섭섭해서 못 살겠네!

 

그러나 단도와 단도끝을 대자 이바는 창으로 변했다.

 

-이바는 드래곤이다. 마법생물이란 말이지. 네가 어떤 마법을 쓰던 9클래스 이상의 위력을 가진 마법으로 증폭된다. 다시 라이트를 해봐!

 

light!(라이트: 빛)

 

이번에는 다크라이트를 삼킬 정도의 빛이었다. 아수라 성기사들은 다시 제 자리에 멈추었다.

 

-그리고! 불이나 얼음 계열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니 명심하도록!

 

"이바 미안하고 고마워."

 

-날 까먹지 말라고, 흥.

 

"그럼 해본다!"

 

페리온스는 이바를 겨누었다. 아수라성기사 본체는 아직 살아있었다. 그가 달려오고 있다. 페리온스는 아수라성기사가 채 다가오기 전에 외쳤다.

 

ice(아이스:얼음) 

 

역시 공격이 몇 배로 증폭된다. 아수라 성기사는 하얗게 덮였고 아수라성기사 뒤 쪽으로는 동굴의 종유석처럼 얼음이 돋아났다. 방을 가로질러 전부 얼음이었다.

 

"없어지지는 않아! 걸쇠를 풀어야 없어지나봐."

"그럼 어떡하지?"

"뮤오린! 여기를 좀 지져줄 수 있어? 이바로 하면 너무 셀 것같아."

"걱정마."

 

torch(토치:방화하다) 

 

뮤오린은 작은 불꽃을 내뿜어 얼음을 지졌다. 얼음이 타면서 녹았다. 그러자 다크프리스트 왕자가 기겁을 했다.

 

"안 돼! 타면 안된다고! 멈춰!"

 

페리온스와 뮤오린은 다크프리스트 왕자를 힐끔 보았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크프리스트 왕자는 빽 고함을 질렀다.

 

"걸쇠만 풀면 되잖아!"

"걸쇠만 풀게."

"지지지 말란 말이다!"

"걱정말게. 투마가 나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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