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주 2024. 5. 16.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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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어니스트, 오늘 안색이 안 좋네?"

"오늘은 나도 할 말 없어."

 

어니스트는 뚱하게 대답했다. 그러더니 다시 투덜거렸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일이 다 끝나고 오냐. 좀 일찍와서 도와주면 좀 좋아?"

"할 말이 없으시다더니?"

 

또 다시 어니스트와 카르멘은 불이 붙는 것같았다. 그 때였다.

 

"너!"

 

토마스 수비대장이 돌아와 있었다. 그는 많이 놀랐는지 동공이 커져있었다.

 

"이상하다 했어! 알론이 아니잖아!"

"어머나? 들켜버렸네?"

 

tie up!(타이 업: 묶다)

 

페리온스가 급히 외쳤다. 수비대장은 밧줄로 묶여서 털썩 주저앉았다.

 

"후후, 우리를 여기에 가두려고 했죠?"

 

어니스트가 벌떡 일어섰다. 어니스트는 성큼성큼 다가와 수비대장을 들쳐맸다. 그 동안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수비대장의 큰 체격도 어니스트가 드는 데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

 

"이 녀석들! 감히 나를!"

"아저씨,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 잠시만 여기 갇혀 계세요."

 

웜이 공손하게 말했다. 그리고 카일과 어니스트가 갇혀있던 철창 문을 열었다.

 

"이 놈들!"

 

페리온스는 그 동안 배웠던 한글을 떠올렸다. 상처입히지 않고 진정시키는 방법. 진정해보다 효과적일 것같다. 페리온스는 수비대장의 귀에 속삭였다.

 

잘자요. 

 

수비대장은 쌕쌕 잠이 들었다.

 

"자, 이제 옷도 갖췄고 전원이 모였군."

 

카르멘이 으쓱 어깨를 들썩이며 가볍게 말했다. 바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일어섰다. 모두 원을 그리며 한 곳에 모였다.

 

"호투성 감옥에 왕이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거같아. 카르멘, 지도가 있어요?"

 

페리온스가 먼저 운을 띄웠다.

 

"기밀이라 지도는 없구, 구조는 파악해왔는데, 설명해볼게. 우선, 호투성은 탑도 하나 있지만 그건 속임수이고, 왕은 지하에 있어. 그런데 그 지하가 끝도 없다는 거야. 계단으로도 내려갈 수 있지만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은 좀비가 많대. 그래서 비밀의 방을 찾아서 들어가야한대. 그런데 그 비밀의 방은 금기시되어 있고 꽤 커서 찾기는 어렵지 않을 거래.

그렇게 비밀의 방을 크게 만든 이유! 자신감이라는데, 사드만은 왕을 서바이벌로 뽑는대. 전대 왕이 600명의 자식을 뒀고, 그 600명이 경쟁을 통해서 하나씩 떨어져나가며 왕의 눈에 드는데, 이번 왕은 거기서 2등을 한 사람이라는 거야. 왜 1등이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 왕이라면 그 비밀의 방과 지하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대.

그리고 좀비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은 신성력이 필요한데, 신성력을 너무 많이 쓰게 되면……."

"그건 알고 있어. 다크프리스트 말이지?"

 

어니스트가 말했다.

 

"형 좀비가 되었는데도 듣고 있었어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지."

 

어니스트가 머쓱하게 말했다.

 

"흠~ 어쨌든 나는 모르니까 계속 설명한다? 하여튼 그래서 성수를 만드는 방법이 최고인데, 우리에겐 뭉크가 있고 다행히 사드만에는 강이 있단 말이야? 그 둑을 터트리면 도시 전체가 잠긴대. 좀 위험하지만 홍수냐 좀비를 치료하냐의 문제야."

 

"신전에 가면 사제들이 도와주실 겁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해야할지 정하지 못하셔서 가만히 계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뭉크가 말했다.

 

페리온스는 카르멘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했다.

 

"두 팀으로 나누자."

 

페리온스가 말했다.

 

"마법생물은 좀비가 되지 않는대. 나와 뮤오린, 투마, 세느는 여기서 왕을 찾으러 가고 뭉크, 웜, 어니스트, 카일, 카르멘, 바오는 바깥활동을 해줘."

 

"너는 마법생물이 아니잖아?"

 

어니스트가 말했다.

 

"고백할 게 있어."

 

페리온스는 숨을 들이쉬었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난 엘프의 꽃밭에서 늑대인간에게 물렸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늑대인간이지."

"치료할 방법은 있을 거예요. 좀비도 치료할 방법이 있으니까."

 

웜이 말했다.

 

"그럴 것같더라. 그 체력이 이상하긴 했어."

"뭐 여기서 유용한데 뭐 문제있어?"

 

모르는 사람이라 봤자, 어니스트와 카일 정도였던 것같다. 둘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괜히 하하 웃었다.

 

"진짜 최초네. 늑대인간 공작님 되는 거."

 

그리고 어니스트는 희망차게 외쳤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어쨌든 그럼 이제 두 팀으로 해요. 지하까지는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물이 들어오기 전에 도달할 수 있을 거예요. 폐하를 구해서 나가도록 할게."

 

페리온스가 말했다.

 

"그게 좋겠다. 이 감옥은 좀비가 우글우글한 것 같아. 좀비라면 이제 더 이상 물리기 싫어."

 

카일이 진저리를 쳤다.

 

그렇게 두 팀은 갈라졌다. 어니스트가 걱정스레 페리온스를 돌아보았다.

 

"나 없어도 괜찮겠어? 검사가 없는데."

"어쩔 수 없죠. 형이 물리는 것보단."

 

뭉크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다가와서 빤히 쳐다보았다. 페리온스는 뭉크를 돌아보았다.

 

"사제님, 할 말이 있으신가요?"

"네. 일단 갑옷 바깥에 성수를 발라 놓겠습니다."

"아 네. 그렇게 하시죠."

 

뭉크는 남은 성수를 조금씩 보호대와 간이갑옷에 펴발랐다.

정말 이제 준비가 끝났다.

 

"조금 있다 만납시다!"

 

카일이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들이 나가고 난 빈 감옥에는 좀비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페리온스는 철문을 열다가 멈칫했다.

 

"철문을 이번엔 방패로 만들자."

"간단하지!"

 

투마가 자신있게 철문을 뚝딱뚝딱 개조했다. 4인분의 방패는 금방 나왔다. 일행은 하나씩 집어들었다.

 

"좋은 생각이 하나 났어."

 

페리온스는 싱긋 웃었다.

 

"마법?"

 

뮤오린이 물었다.

 

"push(푸쉬:밀다)를 쓰는 거야."

"밀 수 있을까? 엄청나게 밀려올텐데. 지금까지는 20명 정도였지만."

"path(패쓰:작은 길)은 어떨까?"

"그게 더 낫겠다. 그건 무적일 거같아."

"짜놓고 가길 잘했다."

 

페리온스는 손바닥을 폈다. 그 제스처를 뮤오린은 의아하게 보았다.

 

"이 손바닥을 손바닥으로 치는 거야. 그게 바로 파이팅이라는 인간의 제스처야."

 

뮤오린은 피식 웃고는 페리온스의 손바닥을 짝 하고 쳤다. 그 때였다. 소리를 들은 좀비떼들이 앞에서 압도적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자칫 기세에 짓눌릴 것같았다. 투마가 주춤하며 말했다.

 

"아무리 마법생물이라도 물리는 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군!"

 

"걱정마!"

 

페리온스가 외쳤다.

 

pathway(패쓰웨이:좁은 길)

 

거대한 좀비무리 사이로 고고한 길이 났다. 좁은 길이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씩 걷기에는 충분했다. 좀비들이 팔을 뻗었지만 그래도 걸을만한 공간은 충분했다.

 

"흠흠! 내가 앞장서지! 어니스트가 없으니까 말이야."

 

투마가 무거운 발걸음을 사뿐사뿐 걸었다.

 

"언니랑 오빠는 내가 지켜줄게!"

 

세느가 팔랑팔랑 투마의 어깨를 잡고 따라 걸었다. 페리온스는 뮤오린을 앞세우고 마지막에 걸었다. 아무래도 처음과 끝이 가장 주의해야할 장소일 것같았다. 어니스트의 존재감은 꽤 컸다. 그 큰 체격의 뒤에 서있으면 든든했는데, 투마도 힘이 세긴 했지만 잘 막을 수 있을까하는 우려는 되었다. 세느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블레이드소드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꼬마였다.

어쨌든 길을 만들고 나니, 조금은 안심하고 라이트볼을 켤 수 있었다. 뮤오린이 빛을 띄우고 앞으로 걸었다. 페리온스는 뒤에서 신중하게 길을 만들었다. 10여분이 지나고 철창으로 이어진 복도를 전부 다 걸어냈다. 좀비들은 무대에 선 연극배우들을 응원하듯이 손을 내밀었다.

잠깐 끊겨진 복도는 꺾여서 다시 이어져 있었는데, 페리온스는 투마를 따라 걷다가 작은 비상구를 발견했다.

 

"잠깐. 여기, 빨간 문이 있는데."

 

작은 문이었다.

 

"오오, 열어봐. 아니 열지마. 좀비떼가 올 거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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