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주 2024. 5. 9.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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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은 이런 것을 처음 봅니다. 아수라 성기사는 특수하게 몬스터를 제거하기 위해 어둠의 60일에 활동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기사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도 막 공격하지 않았어요? 의식이 없는 것같아요. 아니, 사람인지조차도 모르겠어!”

 

카일이 마구 말을 쏟아냈다.

 

“이것이 성기사의 어두운 부분이라면, 사제님도 마음이 좋으시지는 않겠습니다.”

 

페리온스가 말했다.

 

“소승은 마법의 부활과 미라트의 명령이 부딪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뭔가 제가 모르는 어떤 것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미라트의 힘은 진실입니다. 저는 성스러운 신성마법을 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증거입니다.”

 

“신성마법에도 light(라이트: 불빛)이 있나요?”

 

페리온스가 물어보았다.

 

“light(라이트: 불빛)은 없고 holy light(홀리 라이트: 거룩한 빛)을 쓸 수 있습니다.”

 

“내일 기회가 된다면, 아수라 성기사에게 그걸 써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알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은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요.”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몰라서 좀 두렵기도 하군요.”

 

“짐작하시는 바가 있습니까?”

 

“미라트에게 복종하기로 하고 거역한 자들을 아수라성기사로 뽑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인간으로 보시는 거군요.”

 

“저는 그렇습니다.”

 

카일이 나섰다.

 

“그건 완전 몬스터로 보였다구.”

 

“용병대에서도 아수라 성기사는 공포야. 정말 강하다고. 오늘 해치우는 법을 알았으니, 큰 걸 배웠어. 그런데 마법재판에 붙여지는 거 아닌 거몰라. 그래도 성기사인데 해치워 버렸으니…….”

 

“그렇군요. 그러고보면 인간은 아닌지도 모릅니다…….”

 

뭉크는 자신의 의견을 정정하고 합장을 했다.

 

“어쨌든 사제님도 잘 모르시는 거군요.”

“저도 제 할 일만 할 뿐이니까요. 저도 최선을 다할 것이고, 미라트께서 그걸 알아주시리라 믿습니다.”

 

갑자기 식인박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일행은 깜짝 놀라 베개와 이불을 들어올려 던졌다.

 

“아 깜짝이야.”

 

카일의 말에 다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자자. 조금이라도 자둬야 돼.”

 

페리온스가 말했다. 다들 각자의 텐트에 들어갔다. 페리온스는 뭉크의 눈치를 살폈지만 뭉크는 별생각이 없어 보인다.

 

“괜찮으십니까? 사제님.”

“소승은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도록 단련을 받았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어쩐지 뭉크가 무너져 내리면 그것이 더 싫을 것만 같다. 이 다른 세상 사람 속에서도 그가 언제나 당당하기를, 페리온스는 바랬다.

 

페리온스는 뭉크를 보내고 잠자리에 누웠다.

 

‘나는 지오트라스 공국을 재건해야 하니까. 신성력과는 대립할 수밖에 없지.’

 

페리온스는 잠이 오지 않는 말짱한 몸을 뒤척이며 생각했다. 자신을 억압하지 않으면 싸울 일도 없을 텐데 그러나 뭉크가 자신을 억압하고 있다고 봐야 할까? 뒤바뀐 이곳에서 그는 편안한가? 잠이 들지 않자 생각이 많아졌다. 내일이 밝으면 또 잊어버릴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어느새 생각이 희미해진다.

 

 

 다음 날은, 언제가 다음 날인지 알 수 없었다. 모닥불이 희미해진 자국만으로 시간을 유추했다. 이런 시간을 유추하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헷갈리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다만 시간에 관계없이 살아나갈 뿐일 것이다. 태양이 없어진다는 건, 모든 규칙이 희미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페리온스는 잃어버린 검이 헛헛했다. 출발하기 전에 카르멘에게 단도를 다루는 법을 간단히 배웠다. 아무래도 창으로 쓰는 것은 짧은 시간 지속되는 것같다. 이바도 자신을 다루지 않는 것에 서운해하기도 했으니, 이참에 단검술이든, 창술이든 배워보자 싶었다.

 

어둠의 60일 내도록 비가 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약간은 습했지만 뚝뚝 떨어지는 비를 맞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텐트에는 물기가 고여있었다. 텐트를 접고 나서 일행에게 페리온스는 일부러 기운차게 말했다.

 

“체조를 하고 출발하자!”

“좋아!”

 

세느가 손을 번쩍 들었다. 라이트 불빛 아래에서 주인공이 된 것처럼 다들 간단하게 몸을 풀었다.

 

어두워서 좋은 점은, 뭔가 정신만은 맑고 뚜렷하다는 것이다. 몸은 가벼웠다.

 

그러고서 한참을 걸었다. 어둠 속에서 걷는 데에는 정신력이 많이 소요된다.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다.

 

빛을 켜고는 있었지만, 페리온스 일행은 주인공이 된 대신 모든 어둠에 노출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사람들의 아우성이 희미하게 들렸다.

 

“저쪽인가봐.”

 

페리온스가 말했다.

 

“아닐 수도 있지. 몬스터의 유혹일지도.”

 

어니스트가 말했다.

 

“그래도 가보자. 사람들 소리야.”

 

그 방향으로 겨우 방향을 잡고 걸었을 때였다. 이번엔 흘러가는 물소리가 들렸다.

 

“강이다!”

 

세느가 외쳤다. 카르멘과 세느가 부둥켜 안았다.

 

“국경이야!”

 

사람들이 와글와글했다. 엄청나게 거대한 성벽이 강변을 빙 둘러 세워져 있었고 군데군데 횃불이 켜져 있었다. 사람들이 성 밑에서 들여보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많다는 것은 보였다.

 

페리온스는 강물에 발을 담궜다가 얼른 빼내었다. 신발이 축축해지면 난감하다. 굴첸이 준 건조약이 있었지만. 어쨌든 강물은 차가웠다. 이걸 어떻게 지나갈지가 문제였다.

 

“어떻게 지나가지?”

“이 근처에 뗏목이 없나?”

 

카일이 말했다.

 

“어둠의 60일이니까 영업을 안할 수도.”

 

어니스트가 말했다.

 

“아냐, 뗏목이 다녀.”

 

카르멘이 말했다.

 

“여기서부턴 내 전문분야.”

 

카르멘이 윙크했다. 어떻게 봤는지, 뗏목이 묶여있는 승하차장 근처로 가서 하나를 풀어서 끌고 왔다.

 

“어둠쪽으로 가면 위험해!”

 

어니스트가 말했다.

 

“호홋, 어둠은 내 전문분야랍니다. 타보자고.”

“아니 허락도 안 맡고……!”

“다시 가져다놓을 거니까, 나 먼저 탑니, 어라, 어라라!”

 

엄청나게 빠른 검술을 민첩한 동작으로 피한 카르멘이 빛 안으로 들어와 주저 앉았다.

 

“아수라 견습기사가 있어!”

“저놈들 건가?”

“그렇담 얘기가 달라지지. 뮤오린!”

 

바오가 과감히 뛰어들었다.

 

페리온스는 순간, ‘뮤오린을 저렇게 쉽게 부르다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뮤오린은 light(라이트:불빛) 마법을 시전했다. 바오가 재빨리 투구를 벗겼다.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닐텐데, 손재주는 일품이다.

 

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갔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강을 건너서 국경까지 갔지?”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우리를 들여 보내줄까?”

 

웜과 카일이 중얼거렸다. 카르멘이 어둠 속에서 기민한 눈동자를 굴렸다.

 

“안 되면 걱정마. 이 카르멘이 성벽 넘는 것에는 또 도사거든. 침입하면 돼.”

“정말 너란 녀석은…….”

 

어니스트의 잔소리가 시작될 찰나였다. 헤드라이트를 기울이고 있던 뮤오린이 주의를 했다.

 

“뗏목이 서로 부딪히면 안되겠어. 배에 아수라성기사들이 타고 있어. 그리고 아수라성기사 주변에는 괴물물고기들이 맴돌고 있어.”

 

“이 참에, 뭉크가 신성마법을 써보면 어떨까?”

 

어니스트가 말했다.

 

“미쳤어, 다 죽으려고 그래! 여기는 강 한 복판이라고!”

 

바오가 커다랗게 외치자, 시선이 여기로 집중이 되었다. 자극이 주어지자 괴물물고기들이 여기로 달려든다. 뒤이어서 아수라성기사들이 탄 땟목도 물고기를 타고 움직였다.

 

“아니, 성기사가 왜 몬스터떼를 이끌고 다니는 거야?”

“성벽으로는 왜 안 가는 거야?”

 

일행은 혼비백산했지만 있을 곳이라고는 작은 뗏목 안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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