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주 2024. 5. 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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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기사?”

 

페리온스가 되물었다.

 

“진짜 기사는 말을 타고 있어. 내가 전에 해치우고 돌아왔던 놈은 말을 타고 있었어. 하지만 원리는 비슷한 것 같군. 투구를 벗기면 사라져!”

“저런 기사를 상대했었다고?”

 

페리온스는 말문이 막혔다. 바오는 그렇게 강해보이지도 않았다. 바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바오밥 나무 덕분이었지.”

“그게 무슨 얘기야?”

 

뮤오린이 물었다, 어느새 바오를 중심으로 다들 빙 둘러싸고 있었다.

 

“저 기사는 이상징후가 포착되지 않는 이상, 한쪽으로만 움직이니까, 내가 바오밥 나무 뒤로 숨었을 때, 바오밥 나무가 다쳐가며 막아주었어. 그 틈을 타서 나는 말 뒤로 올라타서 투구를 벗겨보았지! 어떤 놈인가 싶어서 말이야! 그런데 저런 어두운 기운이 올라오면서 쓰러지는 거야.”

“오, 너 용기있다.”

 

카일이 칭찬했다. 바오는 칭찬에 머쓱해하며 설명을 멈추었다.

 

“그게 다야.”

 

어니스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어두운 밤이었다.

 

“이젠, 아무리 기다려도 해가 뜨지 않아. 출발하자.”

“해가 뜨지 않는다고?”

“그게 이런 거였어?”

 

으스스하다는 듯이 다들 몸을 떨었다.

 

light(라이트: 불빛)

 

뮤오린이 빛의 구를 하나 만들었다. 그 것을 손위에 띄우고 손바닥으로 방향을 옮기자, 어제까지만 해도 친근했던 낯선 토지가 창백하게 얼굴을 드러냈다.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다 light(라이트: 불빛)를 켜자.”

 

페리온스와 세느가 불을 켜자, 제법 낮같이 밝아졌다.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더 가자.”

 

어니스트가 일행을 격려했다. 바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삼일 내에 강이 나올 거야. 거기만 넘으면 이제 사드만이야.”

 

날이 어두워지자, 식인 박쥐가 많이 나왔다. 그러나 이제 페리온스와 일행에게는 익숙한 몬스터라 해치우는 게 어렵지 않았다. 몬스터를 해치우면서도 일행은 어렵지 않게 앞으로 걸었다. 어두우니 걷는 것조차 막막하다. 여기로 가는 게 맞는 건지 잘 알 수 없었지만, 바오가 말을 타고 앞장서고 있었다.

 

뮤오린은 전등처럼 라이트를 앞장세워 시야를 밝히고 있었다.

 

그러다가 멈추어 섰다. 철제갑옷을 온 몸에 두르고 갑옷안의 텅 빈 어둠이 빛으로 인해 가셔지고 있었다. 칼은 정면으로 들고 있었다. 아수라 성기사였다. 공포에 질려 일행이 흩어지려고 했지만, 뮤오린이 손을 들었다.

 

“이 기사는 움직이지 않아!”

“이상하군.”

 

어니스트가 중얼거리며 성기사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는 전시된 갑옷처럼 그대로 멈추어 서 있었다. 어니스트는 걸쇠를 풀었다. 그러자 갑옷 안에 검은 기운이 빛에 휘발되며 그대로 무너졌다.

 

“왜 움직이지 않지?”

“아까는 엄청 빠르게 움직였는데?”

 

일행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일단 앞으로 가보자.”

 

어니스트가 말했다.

 

몸으로 막아낼 기사라고는 어니스트 정도밖에 없는 것같다. 어니스트는 손가락을 까닥하며 투마를 불러 자신과 투톱으로 앞장세웠다. 투마도 막아내는 데에는 강인할 것같다.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는 거라 속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검을 구겨버릴 정도로 힘은 셌으니까. 그리고 중간에 뮤오린이 light(라이트: 불빛)을 켜고 조심스레 앞장 서 나갔다.

 

페리온스는 허전함을 느꼈다. 반려처럼 데리고 다녔던 검이 두 동강이 났다. 이제 이바를 쓸 수 밖에 없을 것같다. 창을 가지고 일행의 가장 중간에서 라이트 마법을 켠 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나무 밑둥이 잘려있었다.

 

아주 거대한 나무……. 몇 백 년은 된 바오밥 나무인 것같았다.

 

“봤어?”

 

페리온스가 일행에게 물었다.

 

앞만 보고 가던 일행이 의아한 표정으로 페리온스를 보았다.

 

“뭐가?”

 

“나무가……!”

 

페리온스는 정면을 보고 놀랐다. 라이트 마법을 자신도 앞쪽으로 비추었다. 넓어진 빛이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광야에 드문드문 자라있던 나무가 모두 거칠게 잘려있었다.

 

“포우의 상징인 바오밥 나무를! 이 놈들 가만두지 않겠어!”

 

바오가 흥분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뮤오린이 중얼거렸다. 아직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어둠에 둘러쌓인 몇 분 후, 다다다 하는 무거운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아수라성기사들, 이번에는 철갑옷에 말까지 철갑으로 단단히 두른 제대로 된 거친 놈들이 몰려서 달려오고 있었다. 20기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우리로 상대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막은 틈에 너희가 뒤로 달려들어 투구를 벗기는 수 밖에 없을 것같은데.”

 

어니스트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검기로 날려보는 건 어때? 형.”

 

카일이 이 와중에도 장난을 잃지 않고 물었다.

어니스트는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검을 휘둘러 검기를 정확히 머리쪽으로 날렸다. 그러나 아수라성기사는 민첩하게 검을 빠르게 휘둘러 검기를 상쇄시켰다. 그리고 표적이 어디인지를 확실하게 알아버렸다.

 

“으아아악! 달려오잖아!”

“맞서야 해!”

 

뮤오린이 결연하게 외치며 라이트 불빛을 기사에게 비추었다.

 

그때였다. 

 

기사는 제 자리에 우두커니 멈추어섰다.

 

“빛이다! 빛이 있어야 해!”

 

바오가 외쳤다.

 

“그렇군. 저놈들 빛에 꼼짝 못하는군!”

 

웜도 그 상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기사도 달려오다가 라이트의 불빛이 내리쬐는 원의 구역에서는 멈칫했다. 그러나 검은 계속 휘두르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는 모양이 기계적이었다.

 

“하나하나씩 하자! 세느, 나랑 빛으로 일행을 지켜. 뮤오린은 빛을 비추고 한 사람씩 투구를 떼어내자!”

 

페리온스가 중앙에서 외쳤다.

 

“좋아, 그렇게 하자구!”

 

어니스트가 자신감 있게 외쳤다.

뮤오린이 빛을 비추자 아수라기사는 그대로 멈추어섰다. 어니스트는 재빨리 투구의 걸쇠를 풀었다. 그러자 기사는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하나하나씩 그렇게 무너뜨렸다.

 

위협감도 있고 귀찮았지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페리온스가 높게 비춘 빛 아래에서 일행이 옹기종기 난간이나 틀도 없는 빛 안에 모여 있는 것은 다소 살이 떨리는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수라성기사들의 숫자도 줄어갔다.

 

이윽고 20기를 전부 해치웠다.

 

“이제 없지?”

 

어니스트가 땀을 뻘뻘 흘리며 물었다. 일행은 사방을 살폈지만 어두운 적막만이 가득하다.

 

“가도 될 것 같아.”

 

웜과 카일이 말했다.

 

“물냄새가 나. 국경이 멀지 않은 것같아.”

 

뮤오린이 감각을 쫑긋 세우며 말했다. 국경. 그냥 넘어가면 되는 걸까? 페리온스는 국경에 뭔가가 있을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공기 사이로 들리는 아우성.

 

“그럼 오늘은 여기서 야영을 할까?”

 

페리온스는 물었다. 낯선 상황 속에 다들 긴장해 있었다.

 

“조금만 더 가서 하자. 여긴 아수라 성기사가 있었으니까, 으윽, 박쥐도 날아오고.”

 

어니스트가 말했다. 페리온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몇 미터만 더 가서 하죠. 내일은 국경을 넘을 수 있을 것같아. 뮤오린, 그 정도의 거리지?”

“맞아. 그 정도쯤 되는 것같아.”

 

페리온스 일행은 조심스레 수십미터를 이동한 뒤, 바오밥나무를 발견했다.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은 확실했다. 이 곳의 바오밥나무는 잘려있지 않았다. 가림막이 되어줄 나무들도 드문드문 있었다.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여기서 묵자! 잠은 자야하니까.”

“그래, 여기가 좋겠다!”

 

어니스트와 카일이 외쳤고, 일행도 다들 수긍했다. 잘 때는 마법을 쓸 수 없었다. 불빛이 그나마 보호를 해줄까 싶어 모닥불을 켜고 나서 페리온스, 뮤오린, 세느는 계속 마나가 소진 되고 있던 light(라이트:불빛) 마법을 껐다.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았지만 일행은 각자 천막에서, 두려움을 달래려는 듯이 이야기를 했다.

 

페리온스의 좁은 천막에도 카일과 뭉크가 놀러왔다. 불안감이 다들 짙어보였다. 마음을 항상 단련하는 뭉크의 눈가에도 두려움이 묻어있었다.

 

“성기사면 뭉크님이 아시지 않나요?”

 

어니스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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