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이바 39
투마는 기동력이 부족해서 수비대장과 함께 남기로 했고, 카일도 중간에서 공방 만들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막으로 가는 건 오전이 좋겠네. 데테르, 자네는 저 소년과 함께 가는 게 어떻겠나?”
“네, 저도 저 소년과 같이 가고 싶었습니다.”
저 소년이라함은 페리온스를 말하는 것같다. 페리온스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데테르상사가 주도하는 분위기에 휩쓸렸다.
교대를 끝낸 수비대원들이 어수선하게 여관 안으로 들어왔다. 서로 농담을 하며 들어왔던 그들은 여관 안 쪽을 보자 깜짝 놀랐지만 수비대장이 앉으라고 하자 별 이견 없이 앉았다. 수비대원은 수비대장의 명령을 기다렸다.
어니스트와 웜과 뭉크, 세느와 뮤오린, 카르멘, 그리고 페리온스와 데테르상사가 짝이 지어졌다.
나머지 인원은 각자 따로 사막으로 향하기로 했다. 페리온스일행은 얼떨결에 모두 그렇게 하기로 했지만 어니스트가 맨 먼저 정신을 차렸다. 데테르 상사가 다시 군복으로 갈아입고 어수선한 여관의 홀에 나왔을 때였다.
“아니, 우리는 어둠의 60일이 오기 전에 사드만을 통과해야해요. 시간이 없어요.”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데테르 상사는 싱긋 웃었다.
“여관은 누가 부쉈지?”
“으윽.”
“그리고 무슨 일로 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마법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야.”
데테르는 페리온스의 손을 잡았다.
“이 소년이 리더인 것같군. 마법소년들? 우리는 신의 땅으로 너희를 보내버릴 수도 있어.”
“당신도 마법을 썼잖아요!”
어니스트가 페리온스 앞을 막아섰다.
“우리는 권력과 조직이 보호를 해줄 거야.”
“그런 게 어디있어!”
카르멘이 말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억울하면 출세해라.”
“아니, 그런.”
어니스트는 말문이 막혔다.
“너희들은 부숴진 의자, 탁자, 다 고쳐놓고 수비대원들 지도에 따라서 사막으로 가도록. 우리는 먼저 출발하도록 하겠다. 가자. 소년.”
“그래. 자넨 먼저 출발하게.”
데테르 상사는 수비대장에게 경례를 하고 페리온스의 팔을 잡고 뚜벅뚜벅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는 힘이 대단히 셌다. 페리온스는 끌려서 빠른 걸음으로 그를 뒤따라 갔다.
바깥에 나가자마자 어둠이 짙게 짓눌러왔고, 이상하고 기괴한 소리들이 들렸다.
박쥐 울음소리가 크게 다가온다. 페리온스는 자신도 모르게 팔을 위로 올려 방어했는데, 데테르 상사가 한 마디를 내던졌다.
kill(킬:죽이다)
칼날이 다가온 거대식인박쥐 한 마리에게 날아갔다. 그는 한 방에 툭 떨어졌는데, 몬스터라 그런지 부서져서 사라졌다. 박쥐가 죽자 칼날은 사라졌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너도 겁먹지 마라. 길은 있으니까.”
“네, 어디로 가는 거지요?”
“보호된 오아시스라는 지역이다. 사막 곳곳에 오아시스가 있는데, 거기로 대피한 사람들을 구출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지.”
haste(헤이스트:신속)
“이 것도 할 수 있겠지?”
처음 듣는 단어라 긴장이 되었지만 데테르가 페리온스의 손에 써준 글자를 되새기며, 페리온스는 쓰고 읽었다.
haste(헤이스트:신속)
페리온스도 발이 서너배는 가벼워졌다.
“소질이 있군. 얼른 마치고 너랑 얘기를 좀 해보고 싶은데 말이야.”
“저랑 얘기를……?”
“다른 지역에서 온 마법사는 처음이다. 그리고 이렇게 어린 마법사는. 나도 마법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너에게 선배로서 좀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있지 않겠어.”
“네.”
페리온스는 얼떨떨했다.
“협조할 수 있겠지?”
“네, 할 수 있습니다.”
데테르 상사는 빠르게 달렸다. 페리온스도 따라 달렸다. 데테르상사만큼이나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신기했다. 마법을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구나. 자신의 몸에 마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쓰면 이렇게 빨라지기도 하는구나하는 신기한 느낌이었다. 상대에게 쓰는 방법만 생각했었는데 틀이 깨어지는 느낌이다.
혹시……?
아르테미스여신이 말한 마법을 익혀 낫게 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던 것일까?
페리온스는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너무 커져 부서지지 않도록 작게 싸맨 조심스러운 희망이. 자신에게는 뮤오린도, 웜도, 뭉크도 있는데 그래도 늑대인간이라는 사실은 너무 큰 현실이라.
오아시스에 도착하는 것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사막을 넘어 오기는 했지만 데테르 상사를 따라온 것이라서 별 생각 없이 길을 달리고 있었다. 주변 배경이 희미해지는 느낌이었다. 사막에는 이미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데테르 상사!”
그는 이미 인기인인 것같았다. 주민들이 일행이 나타나자 환호를 했다.
“여러분, 사막에 들어오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습니까.”
“하지만 전갈튀김을 먹으려면 사막에 들어와야 하잖나. 선인장과 코코넛도 필요하고.”
“그럼 길을 잃지 마세요.”
“그게 어디 쉬운가! 그나저나 큰일이야, 도미 할아버지가 집에 가지 않겠대.”
“왜요?”
“오아시스에 금덩이를 빠뜨렸어.”
“마법으로도 그건 어려운데. 어쨌든 나머지 분들은 가세요.”
데테르가 주문을 외웠다.
transport(트렌스포트:운송장치)
화물차 같이 생긴 열차가 줄줄이 나왔다. 데테르는 약간 힘겨워보였다. 마나가 순식간에 없어지는 것같다. 페리온스는 화려한 데테르의 마법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뭐해? 너도 도와야지. 타서 몬스터와 좀 싸워줘. 아까 단어 기억하지?”
뭔가 쓰기엔 껄끄러운 느낌이었지만 간단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페리온스는 kill을 되뇌었다. 생각보다 간단한 단어라 많은 마나가 소요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력이 자신보다 큰 상대에게는 효과가 없을 것같다. 그때 데테르 상사의 마법을 풀어버린 것처럼.
페리온스는 데테르 상사와 함께 천장이 휑하니 비어있고 칸막이도 배가 있는 정도의 높이 밖에 되지 않는 열차에 탔다. 사람들도 옹기종기 끼여서 열차에 타고 있었다.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페리온스는 외쳤다.
protect(프로텍트:보호하다)
열차에 보호막이 둥글게 씌워졌다.
“오, 좋은걸.”
데테르 상사가 감탄했다. 마법사 동료가 생기니 즐거웠다. 함께 있으니 아이디어가 줄줄이 떠오르는 것만 같다.
“다시 와야해.”
데테르 상사가 자신의 여관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다시 사막으로 출발했다. 페리온스는 데테르에게 의지만 하면 모든 것이 수월하게 진행되어서 편하고 든든했다. 다시 사막으로 가는 길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도중에 거대전갈이 위협해오기도 했지만, kill이라는 단어와 함께 검을 휘두르자, 금방 소멸되었다.
오아시스에 도착해서 데테르는 오아시스를 서성이며 이름을 불렀다.
“도미 할아버지!”
오아시스의 한 복판에 주저앉아 호수를 바라보는 마른 할아버지가 보였다. 페리온스도 뛰어가서 할아버지를 부축했다.
할아버지는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페리온스의 부축에도 쉽게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 앉아 멍하니 호수를 바라봤다.
“할아버지, 금덩이는 포기하셔야겠어요. 생명이 더 중요하지요.”
데테르 상사도 쪼그려 앉아 할아버지를 보았다. 할아버지는 그 말을 듣자 마른 얼굴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낙타를 판 돈이야. 안 돼. 안 돼. 우리 손주 입학금이야. 아들도 일찍 죽고 그래도 자기 혼자 잘 커서 전갈학교에 입학까지 했는데. 안 돼.”
그는 혼잣말을 계속 하더니 데테르 상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제발, 부탁이네. 자네라면 할 수 있지? 제발 내 금덩이를 건져내어 주게.”
“이거 참, 어떡하지.”
“자네는 마법까지 하잖아. 도와주게. 응? 저게 없으면 내가 손주도 아들도 볼 낯이 없네.”
그는 그러더니 깊게 흐느꼈다. 페리온스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더니 결연하게 입을 꾹 깨물더니, 일어섰다.
“해보죠. 데테르.”
“이봐, 마나도 무한정 있는 게 아니야. 잘못하면 여기서 자고 가야될 수도 있다고.”
“저는 여행자예요. 천막도 치고 야영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는 보호구역이었죠?”
페리온스는 알약을 내밀었다.
“마법도구로 축소한 텐트입니다.”
“이런 마법도구는 또 처음 보는군. 너 정말 특이하구나.”
데테르 상사는 도미 할아버지를 바라보던 몸을 일으켜 호수를 바라보았다.
“이 오아시스에서 건져올리는 건 불가능해. 나도 시도해봤지만 잘 안 돼. 어떤 단어를 생각해야 건져 올릴 수 있을 것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