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주 2024. 4. 1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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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믿고 따라갑니까!”

 

타모르가 작게 외쳤지만 페리온스는 뒤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갑시다.”

 

페리온스가 말하자 타모르는 웅얼웅얼 투덜거렸지만 제일 먼저 페리온스를 뒤따라 갔다. 나머지 일행도 다시 숨죽이며 페리온스를 향해 따라붙었다. 드워프는 자꾸 신전을 뒤돌아보았다. 보석이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강가를 향해 걸으니, 소음도 비교적 신경쓰이지 않는다. 밤 늦게도 물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물이 시작되는 상류에 작은 호수가 하나 있었다. 호수를 둘러싸고 파란 장미가 달빛이 반사되어 아름다운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파란 장미야. 반대편으로 가서 물이 흐르는 곳으로 따라내려가면 입구까지 나올 거야.”

 

일행은 서둘러 장미를 꺾기 시작했다.

 

“많이 가져가지는 마.”

 

뮤오린이 말했다. 페리온스는 가만히 뮤오린의 보았다. 페리온스의 얼굴이 붉어진다. 페리온스는 호수 반대편까지 뮤오린과 찬찬히 걸었다. 각자 한 송이씩 꺽어 종이에 싸두게 하고 다리를 건너 내려오려던 참이었다.

 

뮤오린은 내려오지 않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다. 페리온스는 다급하게 말했다.

 

“시간이 없어요. 같이 가죠.”

 

“…….”

 

“어서요.”

 

“나는 꽃을 피워야 해.”

 

“네?”

 

“엘프들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는 엘프를 버릴 수 없어. 먼저 가.”

 

뮤오린은 처음으로 빙그레 웃었다.

 

“뮤오린…….”

 

“페리온스! 빨리 와!”

 

어니스트가 작은 소리로 고함쳤다. 낮에 경보가 울리듯 결계가 빨갛게 깜박이고 있었다. 페리온스는 눈을 질끈 감고 숲으로 숨었다. 뮤오린은 호수로 다시 걸어 올라갔다.

 

한참 산을 내려오자 동이 트고 있었다. 페리온스는 다른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차 있었다. 뮤오린은 엘프들에게 혼날 것이고, 허락없이 파란 장미를 가지고 온 것도 마음에 걸렸다. 마법생물들을 모두 설득해야 하는데, 완전치 않은 방식이었고, 무엇보다 뮤오린이 걱정되었다.

 

페리온스는 계속 생각하다가 발걸음을 딱 멈췄다.

 

“안되겠어!”

 

“페리온스?”

 

“한 번만 더 이야기를 해보겠어. 한 번만 더…….”

 

“페리온스!”

 

카일이 다그쳤다.

 

“먼저 내려가 있어. 나는 한 번만 그 신전에 가볼게.”

 

“무슨 헛소리야! 꽃은 이미 구했어.”

 

카일이 말했다. 투마가 카일을 제지했다.

 

“아티마도 한 번 찾아봐주게. 드워프에게는 그 것이 중요하다.”

 

“알겠습니다. 무사히 내려갈테니, 아래에서 기다려주세요.”

 

“주군! 무모합니다!”

 

페리온스는 약간 눈이 먼 기분이었다. 제 정신으로서는 이런 기분이 들 수가 없다. 그러나 기분이 오로지 뮤오린에게 매달려 있다. 그녀의 생각은 어떨까?

 

페리온스는 강물을 거슬러 달려 올라갔다. 도둑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엘프들이 여기저기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카르멘에게서 잠복기술에 대해서는 조금 주워들은 바가 있었다. 페리온스는 최대한 숨을 죽이고 잠복했다.

 

기술은 꽤 쓸만한 지 그 날렵한 엘프들도 페리온스를 보지 못하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자신이 신전에서 일행으로 도망쳤던 숲까지 조심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뮤오린은 신전에 없었다. 우리를 도와준 일로 인해 추궁당하고 있는 걸까? 페리온스는 나무에 기대어 신전을 보았다. 더 들어가면 엘프들에게 들킬 것같다. 그리 만만치는 않은 종족이니까.

 

초 저녁의 기운이 쌀쌀했다. 바람이 불자 나무들이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꽤 일찍부터 달이 떠있다. 보름달. 예쁘고 커다란 달이었다.

 

이 아름다운 숲에 갇혀 있는 기분은 어떨까?

 

감상에 젖어 있는데, 누군가가 씩씩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생동물의 숨소리였다. 페리온스는 멧돼지라도 왔는지 의심하며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낮추었다.

 

아우우우! 

 

늑대 울음소리치고는 컸다. 그림자도 크고 눈도 늑대의 두 배는 되어 버린다. 페리온스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말로만 듣던, 늑대인간이었다.

 

그는 커다란 손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페리온스는 재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갔다. 늑대인간은 포효하며 나무를 마구 내리쳤다. 나무 위가 흔들거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페리온스는 허리 뒤 쪽의 검집에서 검을 빼어들며 과감히 뛰어내렸다. 검이 늑대인간의 어깨에 박혔다. 피가 뿜어져 나왔다.

 

페리온스는 공중제비를 돌아 착지했다.

‘내 검술이 헛되지 않았어!’

페리온스는 속으로 만족하며 검을 다시 검집에 꽂았다. 그러나 잠깐 웅크려 있던 늑대인간은 다시 포효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어깨의 상처가 아물어 있었다. 그는 붉은 눈동자를 크게 뜨더니 페리온스에게 달려들었다.

 

페리온스는 빠르게 피했다. 너무 이르게 승부를 판단했다. 검을 다시 꺼내들었다.

 

드워프제의 검. 이게 질 리 없다.

 

늑대인간의 거대한 손톱과 검이 맞부닥쳤다. 그러나 검과 검이 맞부닥칠 틈을 주지 않고 늑대인간은 마구 휘둘렀다. 검이 그대로 날아갔다. 페리온스는 날아가 바닥에 꽂힌 검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우우우!

 

늑대인간은 다시 하울링을 하더니 이번엔 물어뜯기 위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직 검은 잡지 못했다. 손이 그대로 물어뜯기는 듯 했으나, 늑대인간의 뒤통수에 화살이 박혔다.

 

커다란 나무 위에 엘프가 서있었다.

 

“뮤오린!” 

 

엘프는 연속해서 화살을 쏘았다. 저 자세로 빠르게 쏘기 힘들 것 같은데도, 말로만 듣던 엘프의 연사였다.

 

화살이 열댓 개가 박히자 늑대인간은 포효하며 그대로 쓰러졌다. 페리온스는 손이 부풀어 올랐다. 늑대인간의 이빨에 독이라도 발려 있는 것일까. 페리온스는 일어서려고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뮤오린은 페리온스를 끌고 숲으로 들어갔다.

 

“여긴 내가 결계를 쳐놓은 공간이야. 하늘 위를 보지마. 물렸어?”

 

페리온스가 눈을 뜨려고 하자, 뮤오린이 다그쳤다.

 

“눈을 감아.”

 

페리온스는 그 말을 그대로 들었다.

 

“물렸어요. 독이 있나요?”

 

“독보다도 더 심한 게 있지. 왜 여기에 온 거야?”

 

“이렇게 꽃을 훔쳐 가는 게 아닌 것 같아서…….”

 

“너는 이제 동료들에게 버려질 지도 몰라.”

 

상처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가 싶었던 페리온스는 고개를 저었다.

 

“동료들은 그런 사람이 아니예요.”

 

“아니. 동료들이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고의 문제가 아니야. 당신은 늑대인간에게 물렸어.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지 들은 적이 없나 보군. 늑대인간들은 광견병 걸린 개와도 같아. 당신은 이제 늑대인간이 될 거야.”

 

“…….”

 

페리온스는 충격을 받았다. 뮤오린의 옷깃을 그러쥐었다.

 

“눈뜨지 마. 보름달을 보면 안 돼.”

 

“난 이제 방법이 없나요?”

 

“보름달만 안 보면 돼. 그 말은 오늘로부터 보름까지는 괜찮다는 뜻이겠네. 치료를 하려면 엘프마을까지 가야겠어.”

 

뮤오린은 페리온스를 부축해 끌었다.

 

“눈 꼭 감고 있어. 걸을 수 있지.”

 

“네.” 

 

페리온스는 뮤오린에게 의지하여 걸어나갔다.

 

신전에 도착하자, 다른 엘프들이 없었다. 뮤오린은 촛불을 켜고 무릎을 꿇었다. 제단 앞에 기도를 올렸다.

 

-아르테미스 신이시여, 당신의 자손을 도와주소서.

 

아르테미스는 사냥과 달의 여신이었다. 신전에 빛이 흘러들어와 어떤 형체가 생겼다. 여신의 형체였다.

 

-참 오랜만에 나를 불렀구나. 나의 자손이여, 요즘 여기 갇혀서 하는 일도 없이 심심한데, 오! 늑대인간에게 물렸구나.

 

“치료해주세요. 전지전능하시잖아요?”

 

-늑대인간의 마법은 강력해서 치료를 못한단다. 자기자신만이 치료를 할 수 있지. 마법으로 내성이 생기면 좀 덜해질 거야. 그래서 엘프들에게 마법을 가르쳤잖니? 마법을 가르치니까 늑대인간과도 맞설 수 있고 물려도 내성이 생기고 말이야. 하여튼 그건 도와줄 수 없고, 그 마법말고는 깨끗하게 낫게 도와줄 수 있다.

 

“…….”

 

-그거라도 해줄까?

 

“해주세요.” 

 

-그래. 뾰로롱!

 

페리온스의 몸에 빛이 감싸졌다. 페리온스는 모든 통증이 완화되는 것을 느꼈다. 손의 통증조차 있었던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았다.

 

뮤오린은 인기척을 느끼고 신전 바깥을 보았다. 엘프들이 신전에서 흘러나온 빛을 보고 모여들고 있었다. 신을 부르는 것은 큰일이었다. 뮤오린은 페리온스의 눈에 붕대를 질끈 묶고 눕혔다.

 

“여기 있어.”

 

“…….”

 

페리온스는 불만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나저나 신은 미라트 뿐이지 않았던가, 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분명 손의 상처는 다 나았는데. 신성마법이라면, 미라트의 신성마법 뿐이 아닌가. 이건……아르테미스라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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