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이바 20
“저희는 마법생물을 돕기 위한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이 있다는 건 들은 적 없어. 그리고 마법생물로 엮는 건 불쾌하군. 우린 드워프와도, 심지어 드래곤과도 달라.”
“여긴 물이 괜찮나요? 드워프들은 식수문제 때문에 곤란해하고 있는데요.”
“타이(tie)!”
페리온스는 그대로 몸이 돌돌 묶였다. 남자엘프는 말없이 앞으로 걸어나갔다. 주변에 폭포가 있는지 물소리가 우렁차다. 페리온스는 옆을 보았다. 거대한 둑이 있다. 페리온스는 그 모습을 보며 마비약을 맞은 어니스트를 생각했다. 굴첸이 준 해독약은 자신에게 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눠놓을 걸 그랬다.
페리온스는 의자에 앉은 엘프를 보았다. 어쩐지 슬퍼보이는 얼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페리온스는 용기를 내 단전에서 목소리를 끌어올렸다.
“저기요.”
“…….”
“드워프들에게 식수공급을 해주실 수 있나요?”
“……저게 뭔지 알아?”
페리온스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말을 못하는 것은 아니었구나. 페리온스는 그 엘프가 가리킨 손가락의 방향을 보았다. 둑이었다.
“둑이요. 책에서만 봤지만.”
“드워프에게 가는 물길을 막은 거야.”
“아……!”
“…….”
“왜죠? 왜 그런 짓을?”
“…….”
그녀는 외면했다. 페리온스가 무엇을 물어도 답하지 않는다. 페리온스는 포기하고 둑을 보았다.
수풀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야생동물의 존재일까. 페리온스는 여전히 저 의자에 앉은 여자의 감시 아래에 있었다. 그 때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페리온스~.”
카르멘이었다. 눈빛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페리온스는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카르멘은 어둠에서 잘 보이지 않은 검은 옷을 입고 서서히 다가왔다. 드워프에게서 받은 마법단도였다. 밧줄은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페리온스는 그대로 얼음이었다.
엘프는 여기를 보지 않고 어딘가를 보고 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카르멘은 눈치를 채지 못한 듯했다. 페리온스는 꿀꺽 침을 삼켰다. 그러나 분명히 본 것이 틀림없는 엘프였는데, 다시 외면을 해버린다. 관심이 전혀 없다는 듯이.
그러다가 다시 페리온스를 보고서는 동그라미처럼 돌돌 말린 천 뭉치를 던졌다.
“됐다!”
카르멘은 밧줄을 다 자르고 탄성을 질렀지만 고개를 드는 순간, 엘프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드, 들켰다. 도망쳐!”
페리온스는 천뭉치를 급히 집어들고 카르멘을 따라 뛰었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엘프는 여전히 외면한 상태였다.
풀 숲 안에는 일행이 다 와있었다. 투마가 어니스트를 들쳐업고 있었다.
“투마도 마비약을 맞지 않았어요?”
“나는 무쇠야. 약같은 건 통하지 않아! 우리가 결계를 깨고 온 것도 다 드워프제 도구가 있었기 때문이지. 드워프는 이렇게 강력해.”
그러나 투마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페리온스는 해독약을 두 사람 다에게 먹였다. 투마는 사양했지만, 끝내 먹고 말았다.
“천 뭉치를 주웠는데…….”
페리온스는 속삭이며 천 뭉치를 꺼내들었다. 일행이 천 뭉치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느끼며 꼬깃꼬깃 접힌 천뭉치를 펴들었다.
“이건…….”
“엘프마을의 지도로군!”
투마가 외쳤다. 꽃밭의 구획이 나뉜 모습이 상세하게 그려지고 적혀 있었다.
“어디서 구했어?”
카일이 특유의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주웠다고 해야하나.”
페리온스가 버벅거리자, 어니스트가 페리온스의 머리를 헝크러뜨렸다.
“역시 주군!”
“엘프들 상대하지 말고 꽃만 따서 가버리자!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애들인데다가 그리고, 마법도 쓰니까 상대할 수가 없잖아.”
카일이 말했다.
페리온스는 말없이 지도를 보았다. 이 지도의 출처는 그 의자에 앉아있던 엘프여자인데, 왜 이 지도를 준 걸까. 페리온스가 생각하는 틈에, 타모르가 작전을 짰다. 산을 둘러서 가다가 파란 장미가 피어있는 꽃밭에 가서 빠르게 결계를 깨고 행동이 빠른 타모르와 카르멘이 꽃을 따오기로 했다.
그 동안 페리온스는 고민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저 둑도 무너뜨려야 해요.”
“왜?”
일행이 물었다.
“드워프에게 가는 물을 막고 있대요.”
“그런! 엘프놈들이 막아놨단 말이냐!”
투마가 흥분했다. 타모르가 투마의 어깨에 손을 얹어 말렸다.
“그럼 파란 장미를 따고 오는 길에 터트리죠. 주군. 일단 장미가 우선입니다.”
“둑이 우선이다. 역시 인간을 믿을 수는 없어!”
“작전에 균열이 생긴단 말이오! 드워프!”
투마와 타모르가 서로를 보고 으르렁거렸다. 페리온스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물어볼까요?”
“네?”
“뭐라고?”
타모르와 투마가 되물었다.
“이 지도를 준 엘프에게요……. 왔던 길로 돌아가죠.”
“함정인지도 모릅니다!”
“아니요. 지금은 새벽시간이고, 그녀는 혼자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내게 이 지도를 줬어요. 물어보고 동행해달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묶여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페리온스는 고집스럽게 타모르를 보았다.
“갈래! 갈래!”
갑자기 카르멘에게 안겨있던 세느가 다다다 앞으로 뛰었다. 타모르는 머리를 짚었다.
“어휴, 조용히 가야합니다.”
일행은 다시 수풀을 헤집고 다시 묶여있었던 곳으로 돌아갔다. 돌무더기 위에 신전은 달빛을 받아 조용했다. 새삼 고개를 들어 신전을 본 투마는 깜짝 놀랐다. 아까는 숲에 숨어 못 보았는데, 기가 막힌 것이 걸려 있었다.
“저건!”
투마가 외쳤다.
“세계에 일곱 개 뿐인 보석인 아티마!”
신전을 보며 투마가 외쳤다. 그러고보니 신전의 중앙에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그러더니 투마는 이를 갈았다.
“우리가 신들을 위해 바친 아티마인데, 엘프들의 수중에 있다니.”
“도둑으로서도 그건 처음 듣는데.”
카르멘이 갸웃했다.
“그렇겠지. 수천년 전의 일이니까.”
앉아있던 엘프는 일행을 보았다. 페리온스는 앞으로 나섰다.
“지도를 봤어요. 함께 가시죠.”
“…….”
“이름이 뭐죠?”
“뮤오린.”
“같이 가요.”
“…….”
“답답하지 않아요? 하고 싶은 걸 해봐요.”
순전히 페리온스는 직감에서 느껴지는 것들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뮤오린은 떠나고 싶어 한다. 뮤오린은 의자 밑에 놓여진 커다란 활을 주워들었다. 그러더니 페리온스쪽을 겨누었다. 페리온스는 가만히 서 있었다. 화살이 날아왔다.
“주군! 피하십시오!”
타모르의 소리가 들렸지만 페리온스는 가만히 서 있었다. 분명 이 쪽을 향해 화살은 날아왔지만 자신을 향한 게 아니다. 확신할 수 있었다.
펑!
소리와 함께 화살은 둑에 맞아 폭발했다. 폭포는 실연한 연인의 눈물처럼 흘러 내렸다.
“……따라와.”
뮤오린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