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주 2024. 3. 25.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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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악마의 도시

 

도시의 입구부터 뭔가 다른 싸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입구에 일행은 다시 반걸레가 된 천으로 캠프를 만들었다. 색으로 비유하자면 도시의 색깔은 마치 보랏빛이다. 우거진 나무가 온통 그늘을 만들어 놓았고 중독된 풀들이 억센 감촉으로 가죽신발에 닿아왔다. 퍼석퍼석해서 잘 밟히지가 않았다.

 

“으으, 이런 땅을 밟고 중심부까지 들어가야하다니.”

 

카일이 투덜거렸다.

 

“여기 잡초에 찔리면 중독이 될 가능성이 많으니까 조심해.”

 

어느 새 페리온스를 포함한 15세 소년 셋은 어니스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는 이런 안내에는 능숙한지 앞으로 가는 곳을 막는 풀을 몇 번만 잘라내는 것으로 커다란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왕자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어니스트는 자신의 옆으로 바짝 붙어오는 페리온스의 팔을 잡았다. 아직 성장이 덜 된 팔이지만 많은 운동을 통해 단련된 보람이 있어 단단하다.

 

“가비야운 몬스터가 나올 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으윽!”

 

카일은 그 말이 나오자 즉시 어니스트의 뒤로 숨었다. 결국 선두는 어니스트와 페리온스가 지키게 되었다. 그 뒤를 카일과 웜이 따랐다. 웜은 후발대에 가서 자주 이야기하더니 응급조치에 대한 실전에 대해서 많이 배워온 모양이었다. 손이 삐기 전에 어니스트와 페리온스의 손을 붕대로 몇 번 감아주기도 했다.

 

“여긴 왜 이렇게 보랏빛 풀들이 많은거야?”

“중독된 땅이라서 그래. 너희들 벨키스라는 범죄조직은 알아?”

“전 대륙적인 조직인데 설마 못 들어봤을까요!”

 

카일이 주사위를 던졌다. 카일이 자주가는 도박장의 이름도 ‘리틀 벨키스’였다.

 

“떠도는 말인데 말이야. 그 녀석들이 무려 미라트교황의 명령을 받고 이 땅을 이렇게 해놨다는 거야.”

 

“교황과 벨키스?”

 

“정말 어울리지 않지? 하지만 용병들 사이에서는 짜아한 소문이야.”

 

어니스트는 소년들에게 여러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별 거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소문과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소년들에게는 죄다 낯설고 신선하고 처음이었다.

 

악마의 도시에 도착하자 용병단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따로 도시의 중심부로 걸어들어갔다. 도시 외곽은 전부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갓길부터 가는 사람도 있었고 횡단하는 사람도 있었다. 페리온스 일행은 횡단을 선택한 쪽이었다. 가는 길에 우거진 나무 길 사이사이에는 마치 나무 속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나무 안에 집이 지어져 있었다. 그런 민가가 쭉 늘어서 있었다.

 

“으, 끔찍하군.”

 

웜이 말했다.

 

종종은 걷는 와중에 해골이 채였다. 해골은 아무 갑옷도, 무기도 지니지 않았다. 웜은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어니스트는 재빨리 해골의 주머니를 뒤졌다.

 

“이 사람은 이제 안 쓸 거니까 말이야. 20실버 건졌다. 1실버 정도는 나누어주지.”

 

어니스트는 각자에게 1실버를 주며 빙그레 웃는 것이었다.

 

“은화는 좋은 거야. 독이 있으면 색부터 변하니까, 제일 안전한 돈이라구!”

 

“으으, 그래도 시체를 뒤지고 싶지는 않군요.”

 

“의사가 될 거라면 시체도 만져야하는 거라고. 웜군!”

 

어니스트의 그 말에 웜은 완전히 제압당했다. ‘그렇긴 하지만!’ 다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페리온스는 말없이 광장의 중앙까지 걸어들어갔다.

 

“지하술집. 여기가 독주가 있는 술창고일 것같군요.”

 

“오! 찾았어? 남들이 오기 전에 얼른 한 병씩 챙겨! 아니, 이런.”

 

어니스트는 바삐 이 곳으로 오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선수를 놓쳤군. 비싼 건 다 빼갔잖아. 거의 썩어버린 술이군. 자, 그나마 쓸만한 건 10년 된 위스키 몇 병이야.”

 

“형. 저는 성 안에도 한 번 들어가봐야해요.”

 

페리온스는 말했다.

 

‘들어가보고 싶어요.’가 아니라 ‘들어가봐야만 한다.’라는 어조다. 어니스트는 당황했다. 광장 입구에서 조금만 더 걸어들어가면 성 안이었지만 성 안은 위험하다. 어떤 것들이 있을지 모르고 어떤 해골의 경우에는 스켈레톤이라는 괴물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스켈레톤은 소년 몇 명이 감당할 수 있는 몬스터는 아니었다.

 

“저는 이 곳을 알고 있어요. 비밀통로가 광장 술집부터 이어져 있어요. 이 술집, 성 안에 납품하던 곳이었거든요.”

 

“너 어떤 놈이냐?”

 

어니스트는 멍하니 페리온스를 보았다.

 

“그리고 르네백작님은 저를 찾기 위해 용병단을 보내신 겁니다. 저는 확신할 수 있어요. 곧 용병대에서 귀환신호가 오겠지만 저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 혼자 남으면 저는 죽을 겁니다. 도움이 필요해요. 저와 함께 남아주시겠습니까?”

 

페리온스는 급작스럽게 말하며 무릎을 꿇었다.

 

“설마.”

 

어니스트의 머릿속에 번쩍 하고 치고 지나가는 단어가 있었다.

 

“악의 씨앗. 대륙을 적대하는 아이.”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용병단일 뿐이야. 용병단에서 제일 귀한 게 뭔 줄 알아? 목숨이야.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상관없어. 하지만 나는 목숨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게 명예다. 나는 명예를 가지고 한 번 죽어보고 싶었어.”

 

“명예요?”

 

“믿을 수 없으니 증거를 보여줘.”

 

페리온스는 어니스트에게 펜던트를 내밀었다. 어니스트는 그 것을 샅샅히 살폈다. 과연 거리의 부랑아가 가지기에는 고급이다. 게다가 펜던트 안의 젊은 남성의 모습은 페리온스와 인상이 몹시 닮았다. 어니스트는 곧 확신했다.

 

“좋아. 네가 귀족의 피라면 나를 기사로 만들어다오.”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좋습니다. 기사를 임명하는 방식은 모르지만.”

 

“내가 무릎을 꿇으면 네가 나에 대해 충성을 맹세하겠느냐? 라고 물으면 된다.”

 

“그렇게 하죠.”

 

어니스트는 페리온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충성을 맹세하겠느냐?”

 

페리온스는 그에게 물었다.

 

“맹세합니다.”

 

어니스트는 대답했다.

 

“주군, 어디로 가실 겁니까?”

 

그리고 어니스트의 말투는 즉시 바뀌었다. 어니스트의 얼굴은 빨개졌지만 진심이 어려보였고 웜과 카일은 키득거렸다.

 

“진짜야? 사기치는 거 아냐?”

 

카일이 물었다.

 

“펜던트가 진짜였다니. 근데 이 것도 재미있는걸! 어니스트형이 어쩔 줄을 몰라하잖아!”

 

웜이 말했다. 페리온스는 진지하게 어니스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이 비밀통로를 통해 성의 중심부에 있는 봉인된 힘을 찾는 것입니다.”

 

“이 일이 그 정도로 큰 일이었나?”

 

어니스트는 얼떨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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