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주 2023. 12. 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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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랬어요?”

 

“연락할 수가 없었다고. 스텔라맨은 가까이 오지 말라고 분위기를 확확 내뿜지. 계좌나 가르쳐줘.”

 

“몇 달 지났는데, 돈이 있나 보네요.”

 

“당연하지. 고이 보관해뒀어. 어여 불러.”

 

그는 휴대폰을 내밀었다. 번호를 찍으라는 것 같다. 내가 머뭇거리자,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더니 귓속말을 했다.

 

“하나 부탁이 있는데.”

 

“초면에 귓속말은 좀.”

 

나는 물러섰다.

 

“아이참. 초면이 아니잖아. 저기, 내 나이 비밀로 좀 해줘.”

 

“네?”

 

“창피한 건 둘째치고 난 애들이랑 잘 어울리고 싶단 말이야. 우리나라의 장유유서가 나의 원활한 인간관계를 막고 있다고. 나는 20살이야. 알겠지?”

 

“어렵지 않지만.”

 

“이찬이라고 불러. 이찬이라고.”

 

“오빠는 참…….”

 

뭔가 동생 같은 오빠야. 내가 오빠라고 부르자, 이찬은 검지를 몇 번이고 입술에 댔다. 뒤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 일찍 왔네. 신입생들.”

 

금빛 머리로 염색한 사람이다. 역시 히어로학과는 히어로학과인가보다 싶었다. 네모진 턱에 거칠어 보이는 외양이었지만 어딘가 잘생긴 느낌도 있었다. 히어로는 요새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은퇴하면 연예인으로 전향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까.

 

“난 3학년, 황금주먹이다. 문 열어줄게.”

 

그는 문을 열어주고서 다시 어디론가 가버린다. 시간이 지나자 여러 사람이 교실에 모였다. 히어로학과에 사람들을 많이 모집한다고는 하지만 생각만큼 많은 사람이 모이지는 않았다. 40명 정도? 그래도 이렇게 많은 히어로지망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두근거리는 듯도 했다.

 

다 모이자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수련원 같은 곳에 도착한 버스. 나는 버스에서 뭔가를 내리는 선배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 술이었다.

 

“요번에는 장기자랑 대신 선배님과 소통 자리를 마련했다. 자, 활약 중이신 히어로들이다!”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수련원은 현관 앞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흔드는 저 사람은 너무도 익숙했다. 큰 키에 남들은 날렵하다고 하지만 나는 말랐다고 생각하는 저 체형. 허수아비같이 허허 웃고 있는 저 사람은, 우리 아빠였다.

 

“아이스맨이다!”

 

“파이어레드맨이다!”

 

은퇴한 지 오래되어 아무도 아빠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잘생겼다! 카멜레온맨!”

 

누구지? 나는 아빠의 이름이 들린 쪽으로 뒤돌아보았다. 이찬 오빠가 나를 보고 한쪽 눈을 찡긋한다. 저 사람이었어. 나는 외면했다.

 

나는 힘주어 카멜레온맨을 부를까 목 끝에서 망설였지만 역시 포기했다. 나를 아는 척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지만,

 

“소라야! 소라야!”

 

눈치 없는 아빠로부터 그 희망은 박살이 났다.

 

 

 

선배들은 세 명이 와있었다. 2학년이 되면 닉네임을 정할 수 있다고 하는데, 미디어에서는 그 닉네임으로 불린다. 예외적인 케이스는 있지만 대부분 대학에서 협회에 등록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알고 있었다.

 

“너희들도 2학년이 되면 닉네임을 정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 자신의 적성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겠지. 우리가 이 수련원에 온 것도 그 이유이다. 다른 학과들은 다른 수련원에 갔다. 여긴 우리 히어로학과 뿐이야.”

 

황금주먹은 뚜벅뚜벅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이스맨과 파이어레드맨, 아빠는 우리를 보며 서 있었다. 아무래도 담당자로서 와있는 것 같다.

 

수련원 안에는 휑하니 1층이 비어있었다. 호텔의 홀쯤 되어 보이는 넓은 공간이었다. 그 밑에는 마법진과 비슷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종종 보았던 그림이다. 어디서 봤더라?

 

“별자리다.”

 

누군가가 외쳤다. 그러고 보니 잡지에서 내 별자리 정도는 봤던 기억이 난다.

 

12구역으로 나누어진 원이 둥글게 그려져 있었고 바깥에는 별자리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원이 그려져 있고 사람이 누울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원으로 중앙에 하나 더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원은 총 3개였다. 12개로 나뉜 선은 희미하게 푸른 불이 나는 듯했다.

 

황금주먹은 그 중앙에 섰다. 희미하게 위로 바람이 부는 듯하다. 중력을 거슬러 오른 듯한 느낌이었다. 푸른 불이 더욱 선명해졌다.

 

“너희들은 이 원에 서야 한다. 이 마법진은 적성을 파악하는 도구야. 너희들이 가진 주행성이 무엇이고 지수화풍의 속성 중 어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지 알 수 있는 거지. 예를 들어 이 원에는 나를 상징하는 행성은 아직 표시되지 않았어. 그러나 내가 기운을 불어넣으면,”

 

그는 눈을 감았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지자 화살표 모양의 행성이 떴다. 뿔 모양의 구역에 행성이 떠 있었다. 행성은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푸른 불도 더욱 치솟아 올랐다.

 

“행성이 나타난다. 기운을 불어넣는 건 눈을 감고 집중하기만 하면 돼. 나는 양자리의 화성이다. 양자리는 지수화풍 중 화의 기운이고, 그런 화의 기운을 받은 화성이 나에게 힘을 주지. 격렬한 불꽃 같은 성향이다.”

 

그는 눈을 떴다. 푸른 불꽃이 사그라들어 다시 희미하게 빛이 났다.

 

“자 너희들도 해봐. 너희들의 성향을 잡고 능력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 도움이 될 거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질문 있습니다.”

 

“뭐지?”

 

“저희는 새터를 온 건데, 놀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빠진 사람도 있는데요. 우린 친목을 다지려고…….”

 

“닥쳐!”

 

황금주먹은 눈을 부릅떴다. 질문한 사람은 움츠러들었지만 황금주먹은 불붙은 듯이 주먹을 흔들었다.

 

“빠진 놈들은 내버려 둬! 도대체 지금 어떤 때인데 한가하게 놀려고 하고 있나! 너희들도 정신 차려. 유명인이 되어 간판 놀이나 할 놈들은 돌아가!”

 

그는 쩌렁쩌렁하게 온 수련원이 울리도록 말을 했다. 그러다가 겁먹은 신입생들의 분위기를 살피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일단 빠를수록 좋으니까 하는 거야. 너희들도 너희 능력에 대해 생각해둬야 이름도 짓고 그러지 않겠어? 그리고 능력에 대해 함께 해줄 선배님들도 모셨고.”

 

 

팔짱을 끼고 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아저씨들과 아빠가 하하 웃었다.

 

“능력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말 그대로 수련회니까 걱정하지 마라. 다 덤벼. 마음껏 마셔주지.”

 

황금주먹은 아까와 달리 빙그레 웃었다.

 

“그럼 됐지? 자 하나씩 나와서 시전하고 기록해두고 가라. 그리고 자기 행성 잊지 말고 잘 생각해둬. 지는 현실적이고 꾸준한 것이고 수는 물과 같이 잘 변하고 감성적이며 화는 뜨겁고 격렬하고 공격적이고 풍은 빠르며 전해지고 소통하는 것이다. 지수화풍이 12 별자리에서 트리플리시티를 이루는데 염소, 황소, 처녀자리는 땅의 속성이고 게, 물고기 전갈은 물의 속성이고 양, 사수, 사자는 불의 속성이고 천칭, 쌍둥이, 물병은 바람의 속성이다. 거기에서 행성은 목성은 팽창, 화성은 공격, 토성은 중독, 금성은 빛나거나 아름답거나 날카로운 것, 수성은 교류나 소통이다. 그걸 합친 걸 잘 생각해보는 거야. 물론 생각했다고 능력이 다 뜻대로 되지는 않지만 이미지 트레이닝도 상당히 중요하니까 여기서 중요한 팁을 주는 거다.”

 

사람들이 하나씩 앞으로 나섰다. 아까 황금주먹에게 대차게 깨진 학생은 맨 처음으로 나섰는데 게자리의 금성으로 나왔다. 나는 멀찌감치 눈에 띄지 않는 순번으로 섰다. 내 뒤에는 어느새 이찬이 서 있다.

 

“내가 앞에 설까?”

 

어느덧 걱정까지 해주는 사이가 된 걸까.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아서 여기 섰어요.”

 

“그러기엔 너무 뒨데.”

 

그는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 됐어요.”

 

“알았어.”

 

나도 잠재력 테스트는 해봤지만 이런 건 처음이다. 긴장이 되지 않을 턱이 없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눈을 감고 집중을 했다.

 

“우와!”

 

탄성이 터져 나온다. 뭐야. 뭐 때문에 탄성을 지르는 거지? 눈을 감고 있으니 상황파악이 잘되지 않는다.

 

“됐어.”

 

황금주먹이 말했다. 눈을 뜨자, 그가 싱긋 웃는다.

 

“천칭자리에 수성. 그러니까 바람 속성 수성이다.”

 

“네. 고마워요.”

 

“기대하고 있다.”

 

나는 뜨끔해서 황금주먹을 보았지만, 그는 다시 중앙에 선 새로운 신입생을 보고 있었다.

 

내가 말을 과대해석한 거지.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아빠가 빙그레 웃고 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이들 사이에 섞였다.

 

“봤어? 봤어?”

 

그런 나를 용케도 발견하고 말을 거는 건 이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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