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주 2023. 11. 9.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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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게 사장이야?”

 

“동업자의 개념으로 말하는 거야. 넌 무료로 그림을 그려라. 지금 네 그림체에 반한 사람들이 많아. 필요하다면 내가 스토리 작가를 해줄게. 물론 완전 무료는 아니다. 수익이 생기면 너한테 배당금을 줄게.”

 

“…….”

 

“회사가 커지면 엄청날 거다. 지금 받는 액수는 많아야 몇백이겠지. 난 확신할 수 있어. 만화에 돈을 쓰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잘 아는 것은 나야.”

 

“왜 나지?”

 

“그림체…… 큰 장점이다. 너 때문에 유입되는 사람이 오천 명은 될 거고.”

 

진형은 얼큰하게 취했다. 취했다고는 하지만 칼라만시 소주 1병에 진형은 해롱거렸다. 사공민이 낑낑거리며 휘청이는 진형의 팔에 자신의 어깨를 갖다 댔다.

 

“이 쓸모없는 덩치는 알코올도 분해 못 하는군!”

 

“어, 전화 왔다.”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진형이 말했다. 정이선이라는 이름이 화면에 떠 있었다. 얼른 집어 들려고 하는데 휴대폰이 툭 떨어진다. 다시 집어 들었더니, 또 툭 떨어진다. 또다시 집어 들었더니 또 떨어지며 액정이 깨졌다.

 

그러나 진형의 정신은 아직 혼미해 보였다. 사공민은 정신없이 휴대폰을 진형의 주머니에 쑤셔 넣고 택시에 태워 진형의 주소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손을 흔들었다. 진형은 정신없이 잠이 들었지만, 집에 갈 때쯤엔 조금 정신이 들어 운전기사를 보았다.

 

“다 와 갑니다. 괜찮아요?”

 

백미러로 걱정스럽게 보는 눈빛에 진형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되돌려놓았다.

 

“네. 괜찮습니다.”

 

전화가 온 것 같았는데……. 진형이 서둘러 주머니를 뒤적거리자, 손이 따끔거린다. 손을 보자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젠장…….’

 

액정은 깨져서 엉망이었다. 화면이 보이지 않았다. 정신이 아직 몽롱하다.

 

겨우겨우 집에 들어와 진형은 바로 뻗었다. 침대에는 손에서 흘러나온 피가 배고 있었다.

 

 

다음 날. 이선은 상당히 화가 난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물론 손님이 들어올 때는 일시적으로 환하게 웃으며 상냥하게 접대를 했지만,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사나운 눈길로 바깥을 응시했다. 아직 이진형은 오지 않는다.

 

집착은 싫다. 자신이 집착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싫다. 어제는 대 여섯 번은 전화했다. 진형은 받지 않았다. 조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천우의 말로는 진형이 술을 마시러 갔다고 했다. 아마 큰 탈이 없지는 않지 않을까.

 

그럼 왜 전화를 안 받을까?

 

걱정되면서도 그 이전에 계속 화가 났다.

 

‘오기만 해봐.’

 

이선은 아직은 걱정보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분노는 약간씩 걱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도 전화를 했는데 진형은 받지 않았다. 경찰서에 신고라도 해야 할까?

 

‘진짜 오기만 해봐.’

 

이선이 이글이글거리는 눈으로 커피머신을 응시하자 천우는 이선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래도 천우가 열심히 커피를 내리며 이선을 커버해갔다.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손에 붕대를 맨 진형이 어슬렁어슬렁 커피숍 앞에 나타났다.

 

이선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드러내지 않고 진형을 보았다. 진형은 태연하게 노트북을 자리에 내려놓고 이선을 찾아왔다.

 

“이선아. 나…….”

 

진형의 말문이 열리자마자 이선이 말을 끊었다.

  

“손님. 뭐로 드시겠어요?”

 

“어?”

 

“뭘.로. 드.시.겠.어.요.”

 

진형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다. 자신이 화를 내야 하는데 왜 이선이 화를 내는 거지? 어제 진해준의 회사에 다녀왔으면서 연락도 하지 않고. 오늘 안 그래도 병원에 가고 휴대폰이 깨져서 그걸 얘기하려고 했는데.

 

“아메리카노. 이선아, 근데.”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이선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진형은 할 말을 잃었다. 왜 저러는 거야.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제 숙취가 남아있다. 자신이 술을 먹고 실수했을지도 모른다. 진형은 잠자코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 천우와 눈이 마주쳤다. 진형은 천우에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천우는 머뭇거리다가 다가왔다.

 

“이선이 무슨 일 있어?”

 

“모르겠습니다. 오늘 기분이 안 좋으세요.”

 

“그래?”

 

진형은 침묵했다. 분위기가 살얼음 같다.

 

커피를 내온 것은 천우가 아니라 이선이었다. 이선은 상냥하게 웃었다.

 

“드세요.”

 

“야아…….”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말을 꺼내 보았지만 말문이 막혀 나오지 않는다. 결국 진형은 그냥 마셨다.

 

“에 퉤퉤! 이게 뭐야?”

 

“샷 4번.”

 

“뭐?”

 

“맛이 괜찮으신가요?”

 

“퉤퉤!”

 

너무 썼다. 안 그래도 숙취 때문에 띵한 머리가 번쩍 뜨였다.

 

“좋아. 난 마음이 넓으니까…… 어제 뭐 했어?”

 

이선은 그제야 속이 좀 풀린 듯 진형을 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싱긋 웃었다.

 

“잘못한 거 알면 쭉 들이켜. 다 마셔.”

 

진형은 뭐가 뭔지 감은 잡히지 않았지만 술을 마시고 큰 실수를 하긴 했나보다 싶어 쭉 다 마셨다. 중간에 쿨럭, 거리고 퉤퉤 거리긴 했지만 어쨌든 끝까지 다 마셨다.

 

“좋아. 됐고, 뭐 했어?”

 

“너 진짜 이러다 사람 죽는다?”

 

“커피로 사람이 죽었단 얘기는 들어본 적 없어. 손은 왜 그래? 뭘 한 거야?”

 

“너야말로 뭐 했어?”

 

진형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다 덧붙였다.

 

“연락도 없고 말이야.”

 

“뭐라고?”

 

이선은 어이가 없어 한심하다는 듯이 진형을 보았다. 물론 늦게 끝나서 10시쯤에 전화를 하긴 했지만 몇 번이나 전화했었다. 진형은 적어도 12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기 때문에.

 

“정말 뻔뻔스럽다. 이진형.”

 

“뭐라고? 뭐가? 너야말로 연락을 줬어야지! 아침에 나가서 돌아온다더니 결국 천우가 문 닫았다고.”

 

“폰 줘봐. 증거 보여줄게.”

 

“폰 깨졌어. 수리 맡겼어.”

 

진형은 외면했다.

 

“대체 뭐하고 다닌 거야? 어제 몇 번이고 연락했다고. 술도 못 마시는 애가 모임도 아닌데 술 마신다고 하니까 걱정이 돼서!”

 

“네가 연락을 안 하니까 그런 거 아냐!”

 

“뭐라고?”

 

“쉬는 시간 짬짬이 있을 거 아냐. 그때도 연락을 못 해? 진해준 회사 간 거 뻔히 아는데, 그 사람이 수작 부릴 수도 있고.”

 

“진해준씨 그런 사람 아니야.”

 

이선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진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발끈해서 이어붙였다.

 

“그리고 교육받느라 연락 못 했어. 어떻게 연락을 해? 사람들 다 있는데. 그리고 연락했는데 안 받았잖아!”

 

“네가 사장님이라 그거야? 나는 일개 웹툰 작가고?”

 

진형이 버럭 소리를 치자 이선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가.”

 

“뭐라고?”

 

“당장 나가! 꼴 보기 싫으니까 나가라고!”

 

“못 나갈 것 같아?”

 

진형은 노트북을 싸 들고 벌떡 일어섰다. 머리가 조금 어지럽다.

 

진형은 나와서 뒤돌아보았다. 여전히 이선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오늘, 사업에 대해서도 상담을 하려고 했었는데. 이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휴대폰이 수리되는 대로 사공민에게 연락을 할 작정이었다. 이대로는 자신의 열등감 때문에 살 수 없다.

 

알고 있다. 이선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걸. 그러나 분에 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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