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쓰기 장편/그 꽃은 아직 지지 않았네(역사)

그 꽃은 아직 지지 않았네 30화

강복주 2023. 6. 2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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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힘이 있는 쪽으로 붙는다. 아관파천 때에는 친러파로 꽉 차 있던 조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 새 친일파로 꽉 차 있었다.

친척인 엄주원은 엄선영에게 물어왔다.

누님, 재산을 어떻게 할까요?”

동생의 생각은 어떠하오?”

선영은 짐짓 태연한 척 하며 물어보았다. 다시 일본으로 가득차 망해가는 나라. 그들은 우선 황실의 재산을 몰수하여 민심을 사로잡고 그들의 재산을 축적하려고 하였다.

누님께서 평소 교육에 관심이 많으시니 이 참에 학교를 세우시는 것도 좋을 듯 하옵니다. 폐하께오서도 교육에 관심이 많으셔서 광무학교, 한성중학교등을 세우지 않았사오리까? 순비전하께서 이전에 주익이가 세운 양정의숙을 지원해주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그래, 교육을 알아보려 했었네. 내 생각이 그와 같네.”

엄주원은 미소를 물었다. 두 남동생이 죽은 이후 방문했던 엄주원과 엄주익을 양자로 들여 자신의 친동생을 삼은 터. 엄주원은 다소 가벼운 성품이었으나 재치가 출중하여 좋은 생각을 떠올리고는 하였고 엄주익은 나이가 어렸으나 강단이 있었다. 선영은 지지세력이 약함을 실감하여 두 동생을 전폭적으로 돌보고 있었다.

배워야하리. 조선의 이들이 많이 배워야하리. 장차 살아남고자 하면.”

선영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주익이가 남자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웠으니 이번에는 여학교를 세워 여자들을 가르치겠네. 여학교는 크게 부족한 형편이니 학교를 두 개 세우세.”

엄선영이 통이 큰 것은 유명한 일이었다. 엄주원은 학교를 두 개 세우라는 명령에도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다른 때보다 유달리 통이 크다고는 생각하였으나 깊이 생각할 일은 아니라 보았다. 가문에서 교육을 추진하는 것은 엄선영이 높은 지위에 오른 이후로는 늘 권유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선영은 교육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으며 엄주원 그 자신도 사저에 사숙을 세워 교육을 추진하고 있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헌데 아우님. 수학원은 잘 세워지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누님. 영친왕 전하께오서 장차 공부하실 곳인데요.”

수학원은 광무황제가 세우고 있었다. 영친왕. 선영이 가장 심혈을 쏟고 있는 사람은 영친왕이었다. 영친왕은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영특한 곳이 있었다. 물론 온 황실의 사랑을 받고 있기에 다소 버릇없는 기질은 있었으나 참을성과 인내력, 승부욕도 더불어 지니고 있었다. 영친왕이 울며 저 사람을 혼내라고 떼를 쓰면 선영은 얼굴을 굳히며,

전하께오서는 장차 나라를 짊어지실 것이옵니다. 사사로운 감정과 공과를 구분하소서.”

라며 꾸짖기도 하였는데 그러하면 어린 황자는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울음을 그치고 참느라 꺼이꺼이 애를 쓰는 것이었다. 말을 알아듣는 황자를 다들 아부를 겸하여 신통방통하다 하였지만 엄선영은 단순히 제 새끼여서 어여쁜 것을 넘어서 황자의 품성이 뿌듯하였다. 장차 폐하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될만큼 영친왕은 공정하고자 노력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그가 잘했을 적에 엄선영의 감정은 혼낼 때보다도 더욱 주체할 수 없어 5살 영친왕의 필체가 명필이라 하여 간판에 걸린 적도 있었으니 대체로 영친왕에게 주어지는 애정은 지나치리만큼 커서 공정한 성품에도 불구하고 버릇이 없는 결점은 어린아이로서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아이가 반듯하다하여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정세였다. 외세가 조선의 황실이 자정효과를 가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은 분명하였으며 황궁을 차지한 일본은 호시탐탐 조선을 삼킬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몇 년 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군사력을 러일전쟁의 결과로 지켜본 조선인들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러시아도 의지할만한 세력기반은 되지 못했다.

황실의 재산을 압수할 정도로 일본세력의 강압이 강해졌다면 이제 나라를 빼앗기는 것이 코 앞으로 닥쳤다는 일과도 같았다. 사람들이 비아냥대었던대로 허울 좋은 황실……. 그대로 그렇게 되어버렸다.

 

왜인들이 진실로 나라를 빼앗을 작정인가? 또 불평등조약이니 차차 이 나라를 삼킬 것이 분명하다.”

“1차조약을 거절하던 이용익대감께서 납치되었지 않사오리까.”

그렇다. 엄선영은 공포를 느끼고도 있었다. 잔학한 그들은 무슨 일을 할지 몰랐다. 명성왕후가 살해되었을 때도 누가 왕후를 죽이리라고 상상을 했겠는가. 그 영민했던 명성왕후의 계산에도 한 국가가 일국의 왕후를 죽이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들어있었고 상식을 초월한 잔학에는 당장은 지고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잔학 역시 계산 안에는 넣어야했다.

그러나 그 계산 안에도 더 이상 일본에게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의식은 들어있었다.

광무황제폐하께서는 일본이 제시한 거대한 배상금에 휘둘리고 불평등조약으로 나라가 휘둘렸던 과거를 뼈저리게 느끼고 계시네. 황제의 위에 오르신 것도 일본과 맞서기 위해서 아니시겠는가. 더 이상 농락당할 수 없네.”

엄선영의 뜻과 황제의 뜻은 동일했다. 황제는 일본천황의 위협과 이토 히로부미가 들이민 조약과 협박에도 단순히 거부할 뿐 타협의사를 보이지는 않았다.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대사를 특파하노니 대사의 지휘를 일종하여 조치하소서.’

천황이 보낸 그 문구에 황제는 콧웃음쳤다. ‘동양평화?’

갈등과 전쟁에는 늘 명분이 있으나 평화라는 말이야말로 가장 어울리지 않는 명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평화스러운 그들이 총칼을 들고 인정하라 위협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와 사령관 하세가와가 황궁 근처로 경계망을 펴고 포위하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집요하게 조약체결을 강요하였으나 그들의 협박을 한 번 당해본 기억이 있던 황제로서는 거부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황제는 침소에 들어와 궁인들이 대령한 화과와 차를 마시며 곁에 앉은 엄선영에게 말하기도 하였다.

아마 이 일은 대신들에게 달려있을 것일세. 그러나 나라를 지키는 대신들이 있을까싶소.”

엄선영은 그 말을 알아채고 대신을 불러 설득하였으나 그 표정들이 다들 침통할 뿐, 말을 하지는 않았다. 힘 앞에서 다들 자신의 권력을 찾으려면 광무황제를 따르는 것만이 방법이 아닐 수도 있었다. 엄선영은 그런 그들의 마음이 두려웠다.

일본인들이 대신들을 위협하고 다닌다고 하옵니다.”

소화가 다급하게 보고한 그 말이 더욱 선영의 위기감에 불을 떨구었다. 그러나 위기감을 느껴도 어찌할 수는 없었다. 대신들을 불러 결코 안된다고 하여도 앞에서 공손한 자들이 뒤에서 무엇을 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토의 강요로 어전 회의가 열렸다. 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이토가 메모용지를 들고 대신들 앞에서 어찌할 것인지 물었다. 궁궐을 에워싼 병사들의 말없는 살기가 어전으로 배어들어오고 있었다. 그 때, 참정대신 한규설이 목놓아 울었다. 옆에서 지키던 일본병사가 한규설을 벽 뒤로 끌고 갔다. 일본병사에게 이토가 소리쳤다.

너무 떼를 쓰거든 죽여버려라!”

엄선영은 침통했다. 을사조약은 일본의 속국으로 가는 다리와 같았다. 특히 일본의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어떤 외교도 할 수 없다는 구절은 그 동안 일본이 애를 먹었던 조선의 외교를 꽁공 묶어버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

탄식은 이제 조선이 기대었던 외교가 무너지고 아무 것도 없이 어린아이같은 조선을 보호할 방법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뜻했다.

소식은 궐 밖으로도 금새 새어나갔다. 을사년에 체결하였다하여 을사조약으로 불리우는 이 일이 어떤 사태인지, 백성들 가운데서도 명민한 백성들은 모두 알아차리고 있었다.

백성들의 사태는 어떠하냐?”

애통해하는 임금을 부축하고 돌아와 선영은 소화에게 물었다.

순비전하, 윤치호나리를 기억하시옵니까?”

기억은 한다만 얼굴이 가물가물하구나.”

윤치호는 개화당에 잠시 몸담았을 적에 몇 번 본 일이 있는 얼굴이었다. 자신을 싫어하였던 것 같았던 자. 세월이 지나 이제는 기억조차 흐리다.

그가 거리바닥에서 조약이 무효라는 것을 알리고 있사와.”

…….”

엄선영은 개화당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윤치호라는 이름이 엄선영의 머리 속에 맴돈다. 당시 나이는 개 중에 가장 어렸으나 영특하던 인물로 김옥균의 극단적인 기질과는 달리 중용과 객관을 중시했던 자여서 김옥균과 부딪히는 면도 있었다. 출신이 중인이었던 탓에 양반가의 자제들보다는 자유분방했던 이였다. 그도 역시 천민도 벼슬을 할 수 있는 혼돈한 세상에서 때를 잘 만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인물 중 하나. 엄선영으로서도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나서 그 동안 미국에서 공부했다고 들었다. 최근까지 벼슬은 하지 않아 자세한 상황을 몰랐으나 저변에서 여러 활동을 한다 들었고 충성심은 옅은 것을 알고 있었다. 최근 일본이 집권하며 외부협판에 올라있었다. 일본과의 연관도 얕다고는 할 수 없었다. 손탁이 그의 딸을 자신의 양자로 들이려한 바, 그 사실에 대해서도 전해들은 적이 있었다. 윤치호는 딸을 양자로 들이는 것에 호의적이었으나 손탁은 여러 소녀소년들 가운데서 누구를 자신의 양자로 할 것인지 망설인다 하였다. 그러나 들려오는 풍문뿐, 윤치호에 대해서 자세하게 아는 것은 없었다.

그가 왜?”

관직을 사퇴하셨고 외부대신서리를 권하였으나 거부하셨다하오이다.”

그래. 그리고 저잣거리에 나섰는가?”

송구하오나 그러하옵니다. 한성부 저잣거리에서 연설을 하셨다하옵니다. 을사보호조약에 서명한 자들을 처벌할 것과 조약이 무효라 하시었고 또 궁궐을 비판하셨습니다. 토목공사가 끊이지 않아 백성들이 굶주리고 아첨하는 무리만이 가득찼다고……. 잇속만을 탐한다고 말입니다. 벼슬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는 이들을 내쫓으라 하였고 토목공사를 중단하라 하였고 궁방을 엄히 단속하고 궁인의 청탁으로 벼슬길에 나서게 되는 일을 금하라 하였습니다.”

그래.”

엄선영은 뜸을 들였다. 그의 말은 옳은 부분이 많았으나 자신을 공격하는 부분도 틀림없이 있었다. 궁방을 단속하고 궁인의 청탁이라는 부분이 자신의 기반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였다.

백성들은 어떠하냐?”

엄선영의 눈이 담담했다. 궁인의 말이 나오기 전에 엄선영은 덧붙였다.

아마 그도 외로울 것이다.”

?”

백성들이 아무리 욕을 한들 황실은 황실이요, 그는 유교를 버렸지 않느냐. 그 것이 민중들에게는 불충으로 다가갈 것이기 때문이다……. 민중들 역시 그를 버릴 것일세. 신경쓸 것은 없다. 그도 외로울 것이고, 광무황제폐하와 이 황실도 외로울 것이다.”

 

선영은 위로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자신은 키를 쥐지 못하는 선장처럼 방향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아관파천에는 계략이 있었으나 현재는 어찌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허나 순비라는 직위에서 내려올 수는 없었다. 임금이 임명한 직위, 그래도 신하인 대신들은 떠날 수라도 있으나 내명부의 인물은 떠날 수 없다. 내려올 수 없다면 자신이 궁인들을 통솔하고 친인척인 엄주원과 엄주익을 쓰는 일을 멈출 수도 없는 것이다. 죽지 않기 위해서 엄주원과 엄주익은 반드시 필요한 이들이었다. 그들을 쓰는 일이 이치에 어긋나있다 하여도 엄선영은 그들을 쓸 것이다.

멈춘다는 것은 죽겠다는 것과 같다. 그럴 수는 없었다.

처음으로 이 위치가 번거롭다고 선영은 생각했다. 이 위치는 시야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고 움직이는 것조차 자유롭게만은 되지 않는다.

 

그 해, 영친왕은 완공된 수학원에 입학했다. 수학원은 오로지 영친왕을 위해서 만들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 전의 궁궐 안 왕자들은 시강원이나 종학에서 공부했고 광무 3년에는 종인학교를 세워 황실의 종친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따로 수학원을 세운 것은 이제 영친왕이 본격적으로 학문을 닦을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는 20명 내외의 학생만이 다닐 수 있었으며 모두 황족과 귀족의 가문의 아이여야만 했다. 그 종친들의 우두머리는 당연히 영친왕이었으며 영친왕을 중심으로 그 학교가 돌아가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선영은 미리 수학원에 가서 배울 과목을 살폈다.

국어, 한문, 외국어, 역사, 도서로 인문학의 기초를 쌓고 수학, 이과로 탐구심을 쌓게 되오실 것이며 음악, 체조로 교양을 닦으시고 수신으로 제왕의 기초를 쌓으시게 될 것으로 아뢰옵니다.”

강하게 키워주시오.”

물론이옵니다. 매월 말마다 시험을 치를 것이옵고 우등하면 상을 주고 기준에 차지 못하실 경우에는 아랫자리로 내려앉도록 할 것이옵니다.”

교관들의 말에 엄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했다. 이제 세상은 엄청나게 바뀌었고 적응하기 위해서라면 황제가 될 이라도 마땅히 배우는 것이 달라야만 했다. 엄선영은 복도에 깔린 서양식 카펫을 밟으며 명단을 보며 생각했다.

자신이 걷는 길이 비록 그들과 달라도 개화의 바람이 부는 시기에 만난 그 사람들이 자신을 바꾸어놓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명성왕후에게 간택되기까지에도 변화된 사고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으리라. 자신에게 가혹했던 명성왕후였으나 명성왕후의 밑에 있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위치도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까지도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의 기반은 모두 그 때 만나 궁녀였던 자신과 같이 동문수학하거나 몇 마디 토론했던 이들이 많았다. 또한 이회와 장사를 할 때에 만났던 외국인 공사관의 사람들도 자신에게는 커다란 힘이었다.

그와 같이 영친왕에게도 만나는 사람과 조력자가 될 사람은 중요하리라. 저 동문수학한 귀족들의 자제들이 나중에 황실의 기반을 쌓는데에 영친왕에게 큰 조력이 되리라는 것은 깊은 안도감이었다. 황제폐하가 저리도 사람을 찾지 못해 고뇌하는 것에서 제 1의 권력자로서 황실에 아무런 연관도 없이, 친구도 없이, 덜컥 높은 위만 받았던 그 아픔이 떠오르는 것이다.

영친왕께서는 결코 그리 되도록 하지 않아.’

엄선영은 수학원을 강력한 왕권의 기반이 되도록 하리라는 야심이 있었다. 그런 선영의 마음과는 관계없이 영친왕은 설레어하고 있었다. 옷을 입히는 궁녀 앞에서 그는 옷장을 바라보며 이 옷 저 옷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아서 입을테니 물러가우.”

그는 궁녀를 물리치고 선영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어마마마, 그 곳에서는 몇 시간 후에 돌아오나이까?”

“2시간에서 5시간 동안 수업한다고 하옵니다. 모쪼록 스승의 말씀을 따르시며 제왕의 체면을 잘 지키고 오소서.”

후궁의 직위인 선영으로서는 아들에게도 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선영은 설레어하기도 하고 불안해하기도 하는 아들을 꼭 껴안은 후에 밖으로 내어주었다.

자신이 만든 학교이지만 문득 옛일들이 떠오르며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시진이라 하여 해를 보고 대강 시간을 잡았던 터인데 시계란 것이 들여오면서 분과 초를 나누어 쓴다. 호롱불만 있어 밤은 어둡기만 하였는데 전깃불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요새는 밤에도 환한 등을 키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세상은 무섭도록 바뀌고 있었고 점점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선영은 이 변화들에 따라가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었지만 때때로 두려웠다. 자신도 이제 제법 늙은 것 같았다.

내가 더 늙기 전에 영친왕전하의 가례는 제대로 해드려야하리.’

선영은 조급하게 생각했다.

관습적으로 조선의 왕자가 9세가 되면 혼례할 처자를 구하기 시작한다. 영친왕의 혼례는 미래의 황권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영친왕이 미래의 계승자가 된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단순히 황태자비의 사망 때문에 황손의 생산이 끊긴 탓만은 아니었다.

황태자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몸이었다. 혼례를 올린다고 해도 자식이 생길 리는 없었다.

그러니 의례히 다음 왕은 영친왕이 될 것이었다. 모두 그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자식이 많지 않은 황제이다보니 후계자는 의친왕 강과 영친왕 은밖에 없었다. 선영은 형인 이강, 의친왕을 제치고 영친왕을 후계자로 올릴 뜻을 분명히 하였으며 황제 역시 이상할 정도로 강을 싫어하는 터. 황실의 세력이 없는 강으로서는 은에게 밀려날 수 밖에 없는 판국이었으며 무엇보다 황실의 사람들은 강을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1품을 넘어선 순비전하의 아들과 종4품 숙원의 아들의 경쟁은 불보듯 뻔했다.

그런 바, 영친왕의 배우자가 될 이가 바로 장차 이 나라의 국모가 되리라는 것을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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