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꽃은 아직 지지 않았네 24화
러시아공사관으로 갔을 것이라는 그들의 예측은 곧 맞아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아관에서 임금의 어명이 떨어진 것이다. 헌종의 부인이었던 왕태후와 왕태자비를 경운궁으로 옮기라는 어명이었다. 경운궁의 위치가 아관과 가까운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위치는 자명했다. 아관으로 파천한 것이다.
“아니, 어떻게 된 것이오!”
“백성들이 아관으로 몰려가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합니다! 관리들 중에서도 기회주의자 미친놈들이 거기서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지 않소!”
“폐하가 어찌…….”
친일파인 조정의 대신들은 하루만에 자신의 권력을 잃은 것에 정신이 없었다. 왕이 없다면 자신이 아무리 떠들어대고 계획을 한들 그 것을 승인받을 수 없었다. 춘생문사건이 터진 지 고작 두어달이 지난 때였다. 춘생문 사건의 주모자들이 처형당한 피가 아직도 생생한 때 임금을 공사관으로 옮긴 것은 미쳤다고 생각되리만큼 보통 배짱이 아니었다.
게다가 춘생문사건 때의 그 총격전을 생각하면 병력이 될 만한 자라고는 한 명도 없는 허술한 호위에 그 단단히 막아놓았던 성문이 뚤렸다는 것은 기가 막히고 팔짝 뛸 일이었다. 병력도 보충하여 단단히 막아놓은 터. 그런 굳건한 성문이 순식간에 뚫려버렸다.
“하하하!”
그런 대신들 속에서 김홍집은 허공에 대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아. 난 어디로 가야할까.’
김홍집은 복잡했다. 일본이 점령한 속에서 영의정을 하고 내각을 책임지고 왕후 시해를 묵과하였다. 더한 파탄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았자 자신의 죄는 변하지 않았고 자기합리화밖에 더 되지 않는 듯하였다. 싸하니 가슴언저리가 막혀왔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하지 못했던 자기자신에 대한 무능감과 죄책이 파도치듯 밀려왔다.
그 때 개화를 이야기했던 자들과 자신은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개화를 이야기했었던 한 궁녀와 자신도 이제 다른 길을 걷는다. 미천한 궁녀가 사태를 바꾸었는데 자신은 그 동안 무얼했는가.
그 동안 친일을 하며 권력을 잡아왔던 조정대신들은 밤을 새워 대책을 토의했지만 김홍집은 심드렁하게 그 이야기를 들었다. 왕이 없는 판국에 어떤 대책이든 통할 리가 없다. 저들도 그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닐 터. 끝까지 살아남고자하는 그 발악이 허망했다.
“대감께서 나가시려 하옵니까?”
그가 밤을 새우고 밖을 나서려 하자 궁녀가 그를 불러세웠다.
“그렇소. 밤새 자지 못했고 가족들도 걱정하니 집에 들어가려 하오.”
“감히 아뢰옵건데 대감마님께서는 나가지 마옵소서.”
“왜 그러오?”
“아관파천이 일어난지 고작 하루이옵니다. 사람들이 미쳐날뛰고 있다 하옵니다. 일본에 대한 반감이 크다하니 조심하셔야 하옵니다.”
“나를 해할 것이란 말이오?”
김홍집의 웃음이 어떤 뜻인지 몰라 궁녀는 당황하였다.
“지금 기세로 보아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옵니다. 제발 가지 마소서.”
“만일 죽는다고 한들 내 나라 백성들에게 죽는 것인데……무어 원통하다 하겠소.”
김홍집은 이미 궐 밖을 나서고 있었다.
“대감!”
김홍집은 앞으로 걸어나갔다. 숙양이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조정의 누구도 두려워 나가지 못하는데 하물며 그 수장인 김홍집이었다. 단발령을 내렸던 내각도 역시 2차 김홍집내각이라 불리지 않는가. 결코 무사하지 못할 성 싶었다.
“대감 가지마옵소서!”
그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는 멀어지고 있었다.
“하아!”
참지 못하고 숙양이 하늘을 보며 탄식했다.
10. 아관의 씨앗
엄선영은 임금을 모시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록 임금이 계시는 곳이나 곧장 피신해온 터라 궁녀는 고작 둘. 외국인들은 임금의 얼굴을 닦고 음식을 하나하나 떠서 임금의 입에 넣는 엄선영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궁궐에서 나와 파천하여 국가의 위신이 말도 아닌 상태였지만 국왕은 그 것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마음놓고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산책할 수 있는 러시아공사관을 매우 만족해하고 있었다.
러시아공사관에 살고 있던 손탁도 엄선영을 반가워했다. 선영은 궁궐의 실내장식과 서양요리를 손탁이 맡아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고 손탁은 기꺼이 승낙했다.
춘생문사건 때 임금의 부름을 받았던 이범진과 이완용도 대포를 들여오는 등 러시아 공사관의 방비를 철저히 해놓고 있었다. 만일의 경우에 일본과 아관에서 총격전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을 염려해서였다. 러시아는 기꺼이 그 방비를 단단히 하였다. 그들도 임금이 손 안에 들어온 이 기회를 반기고 있었다. 아직 일본의 힘은 러시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전쟁이 나도 승산은 있었다.
왕후가 시해된 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리 미운 왕후였다지만 제 나라의 왕후를 타국이 살해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임금은 아관에 온 이후 맨 먼저 강압적이던 단발령을 ‘알아서 자유롭게 하라.’라고 선포하였다. 줄곧 개화를 추진해오던 주상의 돌아선 선택같아보이기도 하였고 늘 강압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의 성품 탓인 것 같기도 하였다.
엄선영은 임금의 옆에 늘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엄선영을 모두들 입에 담았으나 엄선영은 지극정성이었다. 뒤에서 조롱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권력과 돈이 임금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그 이유만이 자신을 버리고 임금에게 매달리는 전부는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존재의미라 교육받았던 왕의 몰락은 결코 있어서는 안되었다. 그 것은 모든 궁인들의 의미였다.
‘중전마마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는 않으리.’
엄선영은 하녀답게 행동이 재빨랐고 임금을 챙기는 것에는 수족과도 같았다. 그런 솔선수범은 양반에게 보기 힘든 것이었으나 양반들도 그런 엄선영에게 호감을 보이기도 하였다. 각계각층에서 아관파천을 성사시킨 궁녀에 대하여 떠들썩하였고 개 중에는 엄선영을 요물이라 욕하는 자도 있었지만 인물이라 인정하는 자도 있었다. 못생기고 늙고, 그러면서 왕의 총애를 받는 요물이라 불리던 그녀는 가만히 왕의 얼굴을 닦아내고 있을 뿐이었으나 그러는 동안에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 있었다.
“마마님!”
“어허, 서두르지 말라하지 않았느냐.”
박소화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오자, 엄선영은 임금의 입을 닦던 것을 깔끔하게 다 닦아내고 소화를 보았다. 하루. 고작 하루가 지났으나 러시아공사관은 편안했다. 하얀 커튼이 휘날리며 보이는 서구식 큰 창틀에서 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임금의 훤히 드러난 이마에 그 빛이 머물다가 커튼에 가려지다 휘적이고 있었다.
“큰 일이 났사옵니다.”
“또 무슨…….”
“일본군이 쳐들어 온 것이 아니오?”
임금은 편안히 앉은 자세를 깜짝 놀라 고쳐앉았다. 엄선영은 그와 함께 소화를 보았다.
“그런 게 아니오라, 영의정 대감께오서 저, 영의정 대감께오서 살해당하셨사옵니다. 시신이…….”
“영의정이라면 김홍집대감께서 살해당하셨단 말이냐? 궐 안에 계시지 않았더냐. 그들이 궐을 점령했느냐.”
엄선영의 물음이 다급했다.
“저……. 듣기로는 대감께서 밖으로 나가셨다 하옵니다.”
“대감께서 왜 나가셨단 말이냐! 저토록 저들이 흥분한 상태인데 왜!”
엄선영이 흥분하여 말하자 소화는 더욱 말을 잃었다. 김홍집이라 하면 자신이 개화초창기에 배웠던 스승이기 이전에 나라의 내노라 하는 수재 중의 한 명. 그는 결코 위험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 사태를 몰랐을리 없었다.
“군중들에게 사과하셨다 하옵니다.”
박소화의 얼굴에서 눈물이 한 줄기 흘렀다.
“백성들이 흥분한 속에서 단상에 올라가 그들에게 사과하셨다 하옵니다. 허나 사과를 하시기 전에 흥분한 자들이 대감을, 대감을…….”
“시신은 거두었느냐?”
“예.”
“엄상궁, 보러가세.”
임금이 말했다. 그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김홍집에 대한 임금의 감정은 어중간했다. 그는 언제나 중립이었기에 왕실의 편으로 쓰기에도 크게 마땅찮은 인물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친일내각에서 영의정으로 중심에 섰을 때, 그의 행적이 옳고 그름 이전에 임금의 감정에는 마땅찮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그가 민중들에게 사과를 하다가 그의 손에 죽었다…….
시의가 덮어진 천을 열었고 시신을 본 임금과 엄상궁은 똑같이 놀랐다. 인간의 시신이 이렇게 망가진 것은 피흐르는 궁궐 속에서 지냈음에도 볼 수 없었던 참담함이었다. 아직 궁궐 안에 놓여있는 명성왕후의 시신이 이렇게 참담하리라. 피흘리는 왕실의 시신들도 예법은 있었으나 여기에는 예법이 없었다.
“호패로 신분을 알 수 있었사오나 얼굴은 물론이거니와 형체도 알 수 없게 짓이겨지셨사옵니다.”
“군중들에게 살해당할 때 남긴 말씀이 있으셨더냐.”
엄선영이 물었다.
“조선의 백성에게 죽으니 여한이 없다……하셨습니다.”
“대감께서는 걸물이셨다.”
엄선영은 그 시신을 가까이 가서 보았다. 잔혹의 흔적. 임금은 눈살을 찌푸렸다. 엄선영은 짓이겨진 살점들을 하나하나 보며 기억했다.
그 살점과 함께 어느 옛날에 어떤 대감이 천 것들을 보며 했던 말이 또한 떠오르고 있었다. ‘배우지 못한 무지렁이들이 그렇지! 천한 것들.’ 양반 밑으로 중인, 농민, 공민, 상민, 백정등 이어지는 계급사회에서 중인과 서얼도 원통하다하는 판에 그 축에도 끼지 못하는 평민으로서 저는 태어났다. 그래서 그 말이 원통하였으며 피로서 똑똑함과 천함이 갈리지 않거늘 무식한 양반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보라……. 엄선영은 그 양반의 말을 기억하면서 자신도 내뱉고 있던 것이다. ‘배우지 못한 것들! 무지렁이들!’
그리고 또한 생각했다. ‘저들이 배웠으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저들이 이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알았다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영은 스승의 처참함을 하염없이 보았다. 그는 선량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소화야. 우리집에 가서 은자를 김홍집 대감댁에 전하라 이르거라.”
“알겠사옵니다.”
소화는 시신을 뒤돌아보다가 끔찍한지 미간을 찌푸리고 뛰듯이 밖으로 나갔다.
“영의정에 대한 애착은 없으나 참으로 끔찍하군.”
임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그 내각이며 무엇이며 모두 질려버린 듯하였고 영의정에 대한 안타까움도 남지 않은 듯하였다. 그러나 엄선영은 그에 대한 마음은 달랐다.
“어허, 임자, 우는가?”
임금은 시의에게 시신을 치우라 일렀다. 천이 다시 죽은 김홍집의 얼굴을 가렸고 임금은 발걸음을 옮겼다. 엄선영은 지밀상궁의 신분이었으므로 왕이 가는대로 따라 움직였다.
“자네, 보기보다 마음이 여리구려.”
“…….”
말없이 울음이 번지고 있었다. 참으려고 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 형체없는 얼굴이 뇌리에 박혔다.
“어허. 당황스럽게.”
“송구하옵니다.”
“울음을 그치시게.”
왕의 명령이었으나 엄선영은 쉽게 그 울음을 거둘 수 없었다.
“오늘은 내 침실로 오게.”
한 동안 그 모습을 보던 왕이 한 말이었다. 평소에도 늘 침실 앞에 머물던 엄선영이었다. 안쓰러운 듯 바라보는 임금의 눈빛이 특별하였으나 그 눈빛에도 불구하고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이 격변은 몇 명의 생목숨을 더 앗아가야 끝날 것인가. 편안하다고 하나 이 곳은 일국의 조정이 아닌 아관이었다. 이 곳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시선은 또한 따가워질 것이었다.
아관에 있는 시간은 그 편안함 때문인지 빠르게 흘러갔다. 그들이 아관에 머물러있는 동안 일본은 아관파천을 명성왕후 시해와 똑같은 일이라 일컬으며 각 신문마다 보도했다. 그러는 와중 아이러니하게도 왕후를 시해한 47명을 전원석방했다. 그들은 그 곳에서 영웅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왕은 그러한 소식 속에서도 아관에서의 지금이 편안했다. 그 때의 참상 속에서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고 당장 그들의 꼭두각시가 아닌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아관 안, 왕이 있는 곳은 창문 밑으로 작은 포문들이 들어서 있어 그 공간의 의미를 알리고 있었다. 러시아공사관은 늘 북적였다.
왕이 그 곳에 있는 탓에 그 곳의 무도장이며 테라스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다른 외국공사관들도 일을 보려면 이 곳으로 와야만 했다. 그 중 왕이 있는 곳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인물을 꼽으라면 역시 엄선영이었다. 그 속에서 엄선영은 특별했다. 임금은 공사관을 궁궐보다 마음편해 하였으나 선교사들이 준 음식이 아니면 엄선영이 한 음식밖에 먹지 않았다. 그런 심적인 신뢰 외에도 늘 임금의 옆에 있었기에 누군가의 눈에 금방 띄었고 그녀를 따르는 박소화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공사관에 있는 시간이 6개월이 넘어가면서 엄선영은 화를 내는 적이 잦았다. 일본이 조선의 국모를 살해하고도 그들을 전원무죄로 처리한 것도 그 화의 하나였으나 러시아공관에 있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비난의 세력이 커지는 것도 정신적인 압박을 주는 것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그 조정에 돌아가는 것을 끔찍해하는 것은 임금 뿐만 아니라 엄선영도 마찬가지였다.
침소에서 임금은 자주,
“임금으로서 이러한 말을 해서는 아니되나 자네에게만 이런 말을 하네. 나는 사람이 싫고 무섭구나.”
라고 말하였고 엄선영은 그 것에 대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김홍집이 죽은 이후로 자신도 그러한 감정이 커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 사람. 자신도 언제고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또한 아라사공관에 있는 지금이야, 왕의 수족이며 왕이 가장 아끼는 여인이지만 궁궐로 돌아가서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왕은 상냥하였으나 바람기가 있었다. 틀림없이 다른 아름다운 여인을 차지하고 자신을 잊어버리리라. 그러하면 또 사람들은 자신을 버리리라.
생각해보면 그는 자신을 한 번 버린 적도 있었다.
불안감도 들었으나 지금의 생활은 엄선영에게는 이제까지 있지 않던 나날들이었다. 요즘의 임금은 자주 선영의 몸을 탐하고 의지했다. 그 것은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한 방도로도 보였다. 그러나 그의 사랑이 그의 불안감임을 알았기에 엄선영은 그가 안쓰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