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쓰기 장편/그 꽃은 아직 지지 않았네(역사)

그 꽃은 아직 지지 않았네 2화

강복주 2023. 5. 2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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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입궁

 

순이가 집에 왔을 때 마루에는 치마저고리와 바지감으로 쓸 흰 명주 1필이 놓여 있었다. 아까의 최상궁이라 불리던 여인이 주고 간 것이라 하였다. 어머니는 하루 동안 저고리를 염색하였다.

며칠 후 아침이 밝았을 적에 순이는 노랑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고서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가마꾼이 집에 와서 서있었다. 순이는 가마를 보고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배를 곯지는 않을 게다. 미안하구나.”

어머니의 미안하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순이로서는 알 수 없었다.

궁녀는 천민의 신분이었으며 궁궐에 배속되어 있다 뿐, 공노비와 다를 것이 없었다. 또한 궁녀가 된다는 것은 평생을 갇힌 공간에서 노동하며 집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독신으로 지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훗날 궁궐을 나온 뒤에도 남자를 만날 수 없었으며 남녀 간의 교제가 발각되는 즉시 참형으로 다스려지고는 했다.

세종조에는 정표만 주고받았던 궁녀와 내시가 사형을 당했던 일이 있었다. 그렇게 궂은 일이다보니 사람마다 여식을 궁녀로 보내기를 꺼려 10세만 넘으면 결혼을 시키는 것이 하나의 풍습으로 자리잡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조선의 초기에는 사대부의 여식들이 궁녀를 했던 전통이 있었다. 특히 왕실의 기밀을 가까이 하는 부서인 지밀을 뽑을 때에는 학식과 외모, 가풍은 물론, 신분도 까다롭게 따졌다.

그러나 왕의 입장과 신하들의 입장은 달랐기에 왕은 사대부의 여식을 궁궐로 들이고자 했으나 양반과 사대부들이 자신의 여식을 궁궐로 들이는 것을 좋아할 리 없었다. 궁녀에 대한 말이 있을 때면, 왕과 신하는 매번 다투었다.

왕과 백성들의 오랜 대립은 결국 백성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조선초에는 사대부 첩의 자녀였던 서녀들이 궁녀를 했던 것이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기피되어 조혼이 사회문제로까지 번지자 양반과 중인은 물론이요, 평민까지도 궁녀로 선출되는 것을 국법으로 금하게 된 것이었다. 천민만이 궁녀를 할 수 있도록 원칙이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평민인 순이가 궁녀가 된다는 것은, 평민에서 종으로, 즉 천민으로 신분이 내려간다는 것을 뜻했다.

순이는 자신 앞에 서있는 가마와 가마꾼을 보고 생전 처음의 사치에 놀란 표정이었다.

어서 타거라.”

네모진 작은 방에 들어가자 덜컥거리며 작은 방이 위로 올라갔다. 사람들이 손잡이를 쥐고 자신이 탄 방을 높였다. 순이는 그 것이 가마라는 것을 알았다. 작은 방은 흔들거리며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한 시진 쯤 지났을까.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작은 방은 멈추었다.

여기가 어디에요?”

순이가 가마꾼에게 묻자, 가마꾼은 이마로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여기가 임금이 사시는 곳이지.”

그 동안 살아오며 보았던 어떤 집보다도 크고 화려한 집을 바라보며 순이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그 집을 궁궐이라고 말했다. 임금이 머무시는 집. 일반 기와집과 다르게 색색이 화려했다. 궁궐 안으로 들어가자 초록빛의 옷을 입은 여인이 서있었다. 초록빛의 옷이 궐문의 색과 닮아있어서일까. 순이는 궐문을 들어올 때 느꼈던 위압감을 그녀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순이의 먼 친척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자신은 최상궁이라 불리며 앞으로 자신을 최상궁마마님이라 불러야한다고 말했다.

최상궁이란 분이 있어. 너를 보살펴주실 분이니 말 잘 들어야한다.’ 순이는 어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섣달그믐을 앞에 두고 데려오다니. 데려올 때가 따로 있지. 이 집도 어지간히 배 곪았나보우.”

순이의 뒤에 서있던 가마꾼이 최상궁을 보며 말했다.

섣달그믐을 이 조그만 애가 견디겠소?”

앞에 섰던 가마꾼도 혀를 차며 최상궁을 보았다.

어차피 평생을 살 것인데 언제 오든 무어가 그리 중요하오.”

딱딱하긴. 점쟁이가 팔자 죽 읊자 어미가 다 듣지 못하고 궁궐에 보내버렸다는 사람이니 마마님은 그 것을 견디기도 하겠지마는.”

뒤편의 가마꾼이 실실 웃으며 그녀에게 농을 건넸다. 최상궁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하여튼 수고했소.”

최상궁은 가마꾼을 뒤로 하고 순이의 손을 잡았다. 순이는 최상궁의 손을 잡고 대궐을 걸었다. 하얀 돌로 된 바닥과 다리, 작은 연못이 아름다웠다. 연못 안에서 잉어 한 마리가 순이에게 인사하듯 수면 위로 입을 내밀고 뻐끔거린다. 그런 광경을 보는 와중에도 순이는 가마꾼의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궁궐 생활이 그렇게 힘든 것인지 눈치를 보기 위해 최상궁의 표정을 살폈지만 최상궁의 무뚝뚝한 표정은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았다.

섣달그믐. 가마꾼 아저씨들은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기에 견딜 수 있겠느냐고 하였을까. 순이는 며칠 남지 않은 섣달그믐날에는, 그리고 설날에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섣달그믐이라면 한 해가 저무는 날. 까만 밤하늘에 영혼처럼 일렁이는 불길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짚이며 모든 것을 태우고 깨끗이 해서 잡귀를 쫓고 새해를 맞이한다고 말했다. 궁궐에서는 대포도 쏜다고 하던데 그런 것도 구경할 수 있을까? 순이는 설레면서도 두려웠지만 이 궁궐이라는 곳이 신기하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아름답구나.’

별빛이 내려앉은 호수와 하얀 돌로 만들어진 다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순이는 별세상에 온 것 같았다. 바깥의 지게꾼들과 거리를 떠도는 배설물들의 냄새가 생각난다. 이 곳은 그 곳과 동떨어진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특이하고 멋진 옷을 입은 사람들은 느긋하게 길을 걷고 있었고 해가 지고 난 후에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한가하게 들려왔다.

 

섣달 그믐날 오후. 소주방 안에서 궁녀들이 밀떡을 만들고 있었다. 순이가 들어서자 궁녀들은 환호로 맞이했다. 궁녀들은 호기심과 짖궂음이 묻은 눈으로 순이를 보았다.

얘가 삼일 전에 들어온 애야?”

어떡해.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순이는 자신을 귀여워해주는 분위기가 좋아서 배시시 웃었다. 순이가 웃자 궁녀들은 더욱 웃었고 소주방 안의 분위기는 더욱 부산스럽고 소란스럽게 변했다.

어머, 귀여워. 아기두꺼비같아. 어쩜 귀여워라.”

어쩜 오늘 울면 안되는데.”

어떤 나인은 조그마한 순이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순이는 아기두꺼비라는 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언니들은 좋았으므로 울거나 떼쓰지 않고 참기로 마음먹었다. 소녀나인들은 밀떡을 동그랗게 빚고 있었는데, 그 것을 다 빚고 나서 순이 입에 붙이더니 다시 한 번 웃었다. 순이도 따라서 웃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꾹꾹 찔렀다.

, 여기 서야지. 항아님 방해말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순이가 옆을 보자 아이들이 옹기종기 서있는 것이 보였다. 순이는 밀떡을 떼고 나서 뒤로 가서 섰다.

너는 언제 왔어?”

순이는 자신에게 타박을 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육개월쯤 됐어. 너는 삼일 전에 왔다며?”

. 넌 육개월이라면서 여태 집으로 가지 않았어?”

무슨 소리하는 거야? 집엘 어떻게 가. 우린 임금님 여자라고. 너 바보야? 평생 못가. 평생.”

순이는 노란 저고리를 입고 가마를 탔을 때부터 이상다고 생각하였지만 아직도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순이는 그 의문이 해결되기 전에 밀떡을 입에 붙이고 그 위로 흰 무명천으로 고리를 만들어 얼굴에 써야만 했다. 밀떡을 입에 붙이자 말을 할 수 없었다.

해가 짧은 겨울이었다. 어둠은 빠르게 찾아와 세상을 가렸다. 어린 아기나인들이 옹기종기 밖으로 나선다. 밖은 벌써 대불놀이를 시작했는지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순이는 입을 밀떡으로 봉한 채 주위를 살폈다. 여기서 조금 먼 곳에, 화려한 복장의 여인들이 나인들과 함께 구경을 와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옷차림이었다. 그들이 남다르다는 것은 멀리서도 보이는 풍성한 가채로 쉽게 알 수 있었다. 비록 어둠이 내려와 잘 보이지 않았지마는…….

순이는 아이들과 함께 궐의 넓은 뜰 안으로 들어와 열을 맞추어 섰다. 관포를 입었고 수염이 나지 않은 남자들이 긴 장대를 들고 있었다. 그들이 내시라는 것은 후에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수선하게 열을 맞추었을 때 그들은 긴 장대에 불을 붙였다. 그들은 그 것을 쥐고 다가왔다. 순이는 공포를 느꼈다. 불이 살을 그을릴 듯이 옆으로 다가왔다. 관포를 입은 이들이 가까이 다가와 위협하듯이 고함쳤다.

쥐부리지져!”

쥐부리글려!”

쥐부리지져!”

순이는 불이 다가온 한 쪽 눈을 찌푸리며 옆을 보았다. 아까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 보였다. 순이는 울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울지 않자 불은 더욱 거칠게 다가왔다. 환관의 눈은 그가 들고 있는 불만큼이나 이글거렸다.

쥐부리글려!”

명백한 위협. 순이는 불을 마주보았다. 눈이 머는 듯했다. 뜨겁고 밝고 일렁이는 불은 기어코 울리고야 말겠다는 듯 집요하게 순이에게 머물렀다. 순이는 끝내 울지 않았다.

 

의례가 끝나고 최상궁은 순이에게 이름을 전달했다. 엄선영(嚴善英). 임금이 하사한 이름이었다. 이제 순이는 엄가 선영으로 불린다는 것이었다. 최상궁은 방 한 쪽에 순이를 앉혀놓고 순이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어제 무서웠느냐?”

순이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겁을 먹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만큼 궁궐 안에서는 말조심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들어도 못들은 척. 모두 어르신의 뜻이려니 하며 그렇게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너는 엄선영이다. 바깥의 일은 모두 잊고 이제 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라는 뜻이야. 알겠느냐?”

집에 못 가요?”

순이의 물음에 최상궁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이 여기에 오실 순 있어도…… 쫓겨나는 것이 아니면 네 뜻만으로는 여기서 나가지 못한다.”

쫓겨나기 싫어요.”

징징거릴 것 같았던 아이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그래. 아가. 네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기왕 궁녀로 온 것이면 이르게 온 것이 복일 게야.”

최상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지밀에 오는 아이는 특별하단다.”

지밀이요?”

지밀에 오면 왕실과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고, 싫어도 듣게 되는 일이나 비밀도 많이 있지……. 어찌 덕성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겠느냐. 지밀에 올 사람을 간택할 때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나 나는 덕성을 가장 많이 본단다.”

최상궁이 순이를 보는 눈빛은 따뜻했다.

지밀이란 어떤 곳이지요?”

차차 알게 되리.”

최상궁은 싱긋 웃었다.

 

지밀은 궁녀가 배정받는 부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궁녀가 소속되어 있는 곳은 모두 일곱 곳이다. 지밀(至密), 침방(針房), 수방(繡房), 세수간(洗手間), 생과방(生果房), 소주방(燒廚房), 세답방(洗踏房)이 그 이름인데 각 방에 배치를 받게 되면 수업은 도제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 으뜸은 지밀이다. 지밀은 지극히 비밀스럽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궁녀들의 사회에서 가장 커다란 권력을 휘두를 수도 있었다. 지밀은 그 이름에 걸맞게 궁궐의 가장 비밀스러운 일들을 담당하였는데, 그 일들이란 어떤 것인가.

지밀은 왕과 왕비의 신변 보호 및 자는 것, 먹는 것, 입는 것까지 관장하였으며 시중과 내전의 물품 관리 및 내시부(內侍府), 내의원(內醫院), 전선사(典膳司)들과의 중요한 교섭을 담당하였다. 또한 궁중의 대소 잔치인 혼사와 회갑 및 제사 때 왕을 시위하고 전도하는 것이 임무였다. 세자의 혼례 때 신부가 왕을 뵙는 경우 사배(四拜), (-꿇어 엎드림), (-일어나고), 평신(平身-몸을 똑바로 일으켜 서 있음) 등의 구령과 교명을 낭독하였다. 그 밖에 의식 진행과 평상시 문서관리 및 궁중 문안 편지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지밀은 왕을 제일 가까이에서 모시기 때문에 권력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후일 왕의 후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모든 부서 중 조건이 가장 까다로웠으며 가장 어린 나이에 궁녀로 들였다.

 

다섯 살에 궁에 들어온 순이는 엄선영이 된 이후로 여덟 살까지는 최상궁마마님을 곁에서 모시기만 하였다. 그녀는 여덟 살 때부터 학문을 닦기 시작하여 동몽선습, 소학, 내훈, 열녀전서를 모두 외웠다. 2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상궁은 재능을 염려하여 짐짓 꾸짖기도 하였으나 사람들이 자신이 데려온 아이에 대한 평판에 때때로 미소지었다.

그녀의 비상함은 타고난 영리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순이는 외모와 다르게 승부욕이 강하여 다른 아이들에게 지기 싫어 밤새 책을 외우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외우지 못하면 스스로 분하여 울기도 했다. 내시들이 불로 위협했을 때에도 울지 않았던 선영이다. 우연히 밤 중에 그 모습을 본 최상궁은 더욱 선영을 흐뭇하게 생각하였다.

우느냐?”

마마님!”

선영은 울다가 놀라서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너는 똑똑하니 상궁이 될 수 있겠다.”

. 마마님.”

선영은 상궁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자신도 후에는 최상궁마마님과 같은 옷을 입고 비슷한 일을 하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것은 뭇사람들에게는 야망이 되는 일이었으나 선영에게는 자연스러운 인과와 같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선영이 빠르게 학습하는 것을 시기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 영특함에 비하여 그녀는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그 것은 그녀의 외모가 이유였다.

시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웃으며 선영에게 말했다.

그 얼굴로 임금님께 은총을 받기는 글렀으니 공부라도 잘해야하지 않겠어?”

선영은 아랑곳 하지 않고 독하게 공부를 했다. 아이들은 선영의 외모를 고려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그녀가 먹고 살 방편으로 생각해준 듯하였다. 만일 선영의 외모가 아리땁기까지 하였다면 좋은 쪽으로든 좋지 않은 쪽으로든 화제가 되었을 것이나 선영의 외모가 투박한 탓에 큰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알만한 상궁들은 선영의 학문을 알았지만 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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