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주 2023. 5. 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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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그렇게 하셨단 말씀입니까?”

 

로진은 저번에도 갔던 학교 근처의 커피숍에 앉아 민훈과 마주보고 있었다. 민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진은 길을 가다가 산 신문을 접어 탁자의 한 구석에 놓았다. 헤드라인에 조폭과 재벌의 밀월관계라는 제목이 크게 쓰여 있었다.

 

네 손에 피를 묻힐 수는 없을 테니까, 내가 그랬지.”

 

벌집을 건드린 게 아닐까 싶은데…… Y그룹은 큽니다.”

 

익명의 제보자일텐데. .”

 

제보만 하신 겁니까?”

 

곧 경찰도 움직일 거야. 하지만 Y그룹 정도 되는 곳을 수사하려면 여론이 따라주는 게 필수지.”

 

설마 징역을 살게 하실 겁니까?”

 

그건 그 애 운이지. 그리고 그 애가 어느 정도까지 선을 넘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어쨌든 정신은 좀 차리지 않을까 싶어. 이게 정말로 그 애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는 아직 변화할 수 있어.”

 

그 애가 상상도 못할 짓을 하려고 했나 보군요.”

 

그 전에 그만두게 할 거야. 자신의 욕망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로진은 채희가 일하는 가게 앞으로 가서 기다렸다. 티셔츠에 청바지차림으로 나오던 채희는 깜짝 놀라 로진을 보았다. 로진은 덤덤하게 서있었다.

 

들어와서 기다리지 그랬어요.”

 

어차피 나올 텐데. 내가 안에 들어가 있으면 신경 쓰일 테고.”

 

채희는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모르는 순수한 표정이다. 화경의 일따위는 모르게 할테다. 로진은 그렇게 다짐하며 채희에게 엷은 미소를 보였다.

 

맛있는 거 사줄게.”

 

데이트?”

 

데이트.”

 

선배가 자주 간다던 일식집에 가요. 거기가 좋아요.”

 

채희는 그 곳이 깔끔하기도 했지만 내심 가격도 마음에 들었다. 화경이 데려간 그런 커피숍은 싫다. 비싸서 싫다기보다는 정말로 다른 세계의 사람 같다.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해도 지금은 나와 사귀는 사람이다.

 

좋지.”

 

내부가 깔끔한 일식집에 앉아 둘은 타다끼와 맥주를 시켰다.

 

잔만 받아놓을게.”

 

로진이 말한다.

 

정말요?”

 

전에 너무 취해서 후회했어.”

 

선배가 먼저 달려버렸죠.”

 

맥주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취할 때까지 마시는 게 문제야.”

 

그래요?”

 

채희는 빙긋 웃는다.

 

맥주는 옛날부터 황폐한 지역의 술이야. 따뜻하고 온화한 기후의 땅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와인을 마셨지.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와인도 전 세계에 퍼졌지만 초기만 해도 맥주는 일하는 사람들이 마시고 와인은 엘리트들이 마셨어.”

 

그래서 나를 좋아하나봐요. 나는 평범하잖아요.”

 

아냐. 너는 위스키야.”

 

위스키? 왜 위스키예요?”

 

술이 발달하면서 증류주가 만들어졌는데 맥주를 증류한 게 위스키야. 깨끗하고 불타오르지.”

 

위스키는 마시는 걸 못 봤는데.”

 

독주도 좋아해. 잘 마시는 건 아니지만.”

 

자주 볼 수 있는 게 좋으니까 맥주로 할래요. 선배가 더 좋아하기도 하잖아요. 맥주.”

 

오늘은 그다지 취하지 않고 적당히 한 잔씩을 한 후 둘은 일어섰다. 길목을 나란히 거닐며 시끄러운 대학가를 손을 잡고 해쳐나갔다.

 

오늘은 결혼하자고 안 하네요?”

 

……큰 일은 해결됐어. 기다릴게. 네가 여유있어질 때까지.”

 

그나저나 제훈이한테도 말해야하는데.”

 

말 안해도 돼.”

 

로진의 말에 채희는 피식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로진은 채희가 손을 잡자 손가락 마디마디에 손가락을 넣어 깍지를 끼고는 손을 꼭 가두었다.

 

제훈은 기획사 사장과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제훈은 Y그룹과 함께 덩달아 구설수에 올라 있었다. 기존의 연예인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조폭에게 학대를 받았다는 추측들이었다.

 

화경이가 조사받고 있다고요?”

 

제훈은 속으로, 쌤통이네, 하고 생각한다.

 

화경이 어찌되었건간에 자신은 원하는 것을 얻었다. 그 것을 화경이 다시 빼앗아갈까봐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빼앗아 갈까봐 두려운 것도 아니었다. 어쩐지 공허했다. 이름을 알리려던 게 그저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는데 채희를 자주 볼 수 없어서 그런지 자꾸 힘이 빠졌다.

 

소윤은 담담하게 화경의 곤욕을 바라보며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만 제훈의 옆에 있었다.

 

한편 로진은 걸어서 채희를 바래다주고 나서 한참을 지켜보다가 달려가서 채희의 뒤를 껴안고 속삭였다. 채희는 이제 그러려니 로진을 떼어냈다. 로진의 속삭임은 언제나와 같았다.

 

결혼해줘.”

 

 

 

 

 

1년 뒤. 너른 집에 15인은 앉을 수 있을 것같은 식탁에는 정적이 흘렀다. 거의 한달여만에 집에 나타난 로진은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통보를 해왔다. 그 말이 하고난 뒤 한참동안 식탁에는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났다.

 

안된다.”

 

저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너는 제멋대로 하려는 거냐? 화경이면 모를까!”

 

제 할 일은 충실하게 하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제발.”

 

로진은 일어나서 아버지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원하는대로 하게 해주세요.”

 

새어머니가 친근하게 아버지에게 말을 붙이자, 그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식사를 다 끝내고나자 그는 억눌린 목소리로 고함쳤다.

 

마음대로 해! 단 결혼식은 너 알아서 해라. 이혼해도 난 책임지지 않겠다. 그리고 다시는 이 집에 들어오지 마라.”

 

식구로서 반겨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예식 정도는 지켜주십시오.”

 

아버지는 눈을 부릅뜨고 로진을 노려본다. 그는 식탁을 꽝 쳤다.

 

알겠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하지만 네 뒤를 봐주지는 않겠다.”

 

……앞으로는 홀로 서겠습니다. 제 가정을 꾸리겠습니다.”

 

그는 외면한다. 로진은 깊숙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는 밖으로 나섰다.

 

 

 

 

 

채희는 아직 복학하지 않았다. 그녀가 일하는 곳에 찾아간 로진은 혼자 커피를 한 잔 시켜 마셨다. 집은 새로 한 채 장만해놓았다. 아버지가 준 회사가 제법 커져있다. 이제는 수익이 제법 나왔다. 살던 집은 제훈에게 팔고 나올 생각이다. 제훈은 결혼소식에 길길이 날뛰었지만 바빠서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이제는 텔레비전을 켜면 제훈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자막에는 제훈을 요정으로 묘사해놓는다. 채희가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적어서 다행이었다.

 

어쩐 일이에요?”

 

어느덧 7시다. 채희가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로진이 있는 탁자로 걸어나왔다.

 

이제 아내가 될 사람에게 맛있는 걸 사주려고.”

 

또 아내예요?”

 

어젯밤에 허락해줬잖아. 결혼하자하니, 알겠다고. 나는 그 것만 믿었는데.”

 

하하.”

 

허락도 맡고 왔어. 너희 부모님 뵈러갈 시간 잡자.”

 

결혼식 날짜도 잡고?”

 

그래. 이제 평생 같이 사는 거야.”

 

나쁘지 않네요.”

 

손잡고 가자.”

 

그래요.”

 

둘은 손을 꼭 잡고 대로변을 걸었다. 이제는 익숙한 채희의 국수집으로 걷는다. 로진은 그 국수집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로진은 문득 채희의 어깨를 감쌌다. 떨어지고 싶지 않다. 채희는 싱긋 웃으며 로진의 허리를 감쌌다. 서로 기댄 것처럼 둘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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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끝까지 보셨다니, 인터넷 너머에 계신 분이지만 뭔가 반갑네요. 

클리셰를 쓰려고 했지만 자기식대로 해석된 부분도 있는 서툰 글이었는데요..

33화를 쓰고 봤더니, 32화까지였고 5화를 빠뜨리는 실수를 했는데요. 

올린 건 빠진 것없이 연결되게 올렸으니 그냥 쭉 봐주시면 될 것같습니다. 

숫자만 오류가 있었던 거라서요

도중에 바꾸면 더 헷갈리실 것같아 당분간 이렇게 두려고 합니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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